[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슈퍼 엔저, 한국 경제의 이중고

사진EPA연합뉴스
[사진=EPA연합뉴스]

달러당 엔화 환율이 163엔을 넘어서며 1986년 이후 4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환율 상승은 그만큼 엔화 가치가 떨어졌다는 뜻이다. 이른바 ‘슈퍼 엔저’다. 일본 안에서는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가계 부담을 키우는 악재지만, 한국 경제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엔화 약세는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원화 가치에도 추가 하락 압력을 가한다.

최근 원화 역시 달러에 비해 약세다. 그러나 엔화는 그보다 더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원화 가치가 낮아졌는데도 일본 제품과 비교하면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오히려 불리해지는 상황이다. 원유와 가스, 원자재는 비싼 달러로 수입하면서 해외 시장에서는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기업과 경쟁해야 한다. 비용 부담과 수출 경쟁력 약화가 동시에 닥치는 셈이다.

한국과 일본은 자동차·철강·기계·석유화학뿐 아니라 반도체 장비, 배터리, 로봇, 방산 등 첨단 제조업에서도 경쟁하고 있다. 엔저가 장기화하면 일본 기업은 해외 판매가격을 낮추거나 환율 효과로 늘어난 이익을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돌릴 수 있다. 반면 한국 기업은 가격을 낮춰 점유율을 지키거나 수익성을 희생해야 한다. 중소 수출기업일수록 충격은 더 크다.

한국 기업의 품질과 기술력이 높아져 엔저 충격이 예전만 못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가격 경쟁이 중요한 자동차 부품과 기계, 소재 산업에서는 환율 차이가 곧 수주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일본 기업이 비슷한 제품을 더 싼 가격에 내놓는다면 발주처가 한국 기업을 선택할 유인은 줄어든다.

엔화 약세는 원화에도 하락 압력을 가한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원화와 엔화는 아시아 통화로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엔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원화까지 약세 통화로 묶어 매도할 가능성이 커진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경우 원화의 동반 약세가 더 심해질 수 있다.

원화가 더 떨어지면 수출에는 일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원유·가스·곡물 등 수입물가가 오르고 기업의 외화 조달 비용도 커진다. 생활물가 부담까지 번지면 이미 부진한 소비 회복은 더 어려워진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도 복잡해진다. 경기와 내수만 보면 금리를 낮출 필요가 있지만 원화 약세와 수입물가를 고려하면 섣불리 움직이기 어렵다. 반대로 환율을 방어하려고 고금리를 오래 유지하면 가계와 자영업자·중소기업의 이자 부담이 커진다. 슈퍼 엔저가 한국의 금리 선택지까지 좁히는 것이다.

정부가 환율 방어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외환시장 개입은 급격한 쏠림을 막는 임시 처방일 뿐 산업 경쟁력의 격차까지 메워주지는 못한다. 엔저 충격이 큰 업종을 점검하고 환변동보험과 정책금융을 확대해야 한다.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이 환율 변화에 덜 흔들리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일본 기업이 엔저로 확보한 이익을 기술 개발과 투자에 쏟는 동안 한국 기업이 고금리와 규제, 내수 부진에 발이 묶여서는 안 된다. 핵심 기술과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면 환율이 정상화된 뒤에도 경쟁력 격차는 남는다.

원화도 약한데 엔화는 더 약한 지금의 환율 구도는 한국에 가장 곤혹스러운 조합이다. 수입물가는 오르는데 수출 경쟁력은 떨어지고, 환율 불안 탓에 금리 운용마저 제약받는다. 슈퍼 엔저를 일본만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한국 경제의 복합 위험 요인으로 보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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