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 내 실거주 의무의 빗장을 추가로 풀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2일 정부 브리핑을 통해 실거주 의무 유예 대상을 '세입자가 있는 주택 전체'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기존에는 다주택자가 내놓는 매물에만 한정됐던 혜택이 이제는 비거주 1주택자가 보유한 임대 주택까지 넓어진 것이다.
매도자 간 형평성을 맞추고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상급지 진입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정부의 복안이다. 하지만 시장의 시각은 여전히 의구심에 휩싸여있다. 사실상 자금력을 갖춘 자산가들에게 '전세 낀 매수'라는 우회로를 열어준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025년 3월 토허구역 재지정 이후 1년여간의 시장 데이터와 함께 이번 조치의 쟁점 사안을 심층 분석했다.
역대 최저 매물과 무주택 매수 열기, 퇴로의 ‘명분’이 되다
이번 조치의 배경에는 심상찮은 시장 신호가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올해 3월 약 6400건을 기록하며 5년 평균 대비 50% 이상 급증했다. 반면 매물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줄어들고 있다. 특히 5월 10일 양도세 중과 재적용을 앞두고 강동구와 성북구 등지에서는 매물 잠김 현상이 가속화됐다.
주목할 점은 매수 주체다. 무주택자의 매수 비율은 지난해 평균 56%에서 올해 3월 73%까지 치솟았다. 정부는 이를 "다주택자의 매물을 무주택 실수요자가 흡수하는 건강한 시장 재편"으로 해석했다. "실수요층이 이토록 탄탄하니, 묶여 있는 매물을 더 풀어 거래를 정상화하자"는 논리가 이번 대책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실거주 시점만 늦춘 ‘기술적 완화’, ‘규제 무력화’로 읽을 수도
이번 대책은 토허구역 지정 자체를 해제하는 정공법 대신, 입주 의무 시점을 뒤로 미루는 '기술적 유예'를 택했다. 무주택자가 2026년 12월 31일까지 허가를 신청할 경우, 기존 세입자의 임대차 계약 종료일까지 입주를 늦춰준다. 유예 상한은 2028년 5월 11일로 설정됐다.
정부는 "2년 실거주 의무는 여전하며 갭투자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시장의 해석은 다르다. 입주 시점이 2년 가까이 미뤄진다는 것은 초기 투자금을 전세 보증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질적인 규제력이 약화되면서 토허구역 내 진입 문턱이 대폭 낮아지는 효과가 발생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실거주 유예를 둘러싼 정부와 시장의 동상이몽
이번 조치를 둘러싸고 정부와 시장 사이에는 크게 5가지의 핵심 간극이 존재한다. 우선 시장 매물 출회 효과에 대한 전망부터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비거주 1주택자들이 매도에 적극 나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회의적이다. 이번 조치는 '팔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페널티가 아니라 '팔 수 있는 조건'을 넓혀준 인센티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강남권의 자산 가치 상승 기대감이 여전한 상황에서 집주인들이 매물을 대거 내놓을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아울러 정부는 실수요자 보호를 내걸었지만, 현금 자산이 풍부한 자산가들의 매입 통로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는 '발표일 현재 무주택자'라는 엄격한 조건을 걸었다. 하지만 강남 3구 일대의 아파트 가격은 25억원에서 40억원대에 달한다. 전세를 끼더라도 10억원 이상의 현금이 필요하다. 결국 이번 조치의 수혜는 평범한 무주택자가 아닌, 상당한 자금력을 갖춘 무주택자에게 우선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단기적인 갭투자 형태의 매입이 가능해졌다는 점도 시장의 잠재적 불안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산 뒤 입주를 미루는 구조는 전형적인 갭투자 메커니즘이다. 비록 나중에 입주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2년 뒤 실거주 요건을 채우고 매도하면 비과세 혜택까지 누릴 수 있다. 시세 차익 실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시장은 이를 사실상의 갭투자 허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시장 안정 대신 호가만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수급 정상화를 통한 안정을 노리지만, 시장은 '수요 자극'에 따른 가격 불안을 우려한다. 매물이 풀리는 속도보다 강남 진입을 노리는 대기 수요의 반응이 더 빠를 경우, 인기 단지의 거래가 주변 호가를 끌어올리는 기폭제도 될 수 있다. 이는 강남과 비강남 지역 간의 자산 격차를 더욱 벌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기존 임차인의 주거권이다. 새 매수자가 실거주를 위해 입주하겠다고 하면, 기존 세입자는 계약갱신요구권을 쓸 수 없다. 집주인이 바뀌면서 세입자가 의사와 무관하게 퇴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향후 전세 수요가 인근 지역의 가격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후속 변수로 꼽힌다.
반복되는 규제와 두 개의 데드라인
토허구역 지정은 유지하되 실거주 의무만 계속 풀어주는 패턴이 반복되면서 시장은 "결국 규제가 더 풀릴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이는 매도자들로 하여금 매물 회수나 호가 상승을 부추기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7월 세제 개편안의 보유세·양도세 규제 강도와 올해 말 데드라인에 대한 대응이 다음 변수다. 결국 정부의 의도대로 '실수요 중심의 시장 정상화'가 이뤄질지는 다가올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의 보완 정도와 후속 대응에 달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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