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내각 지지율이 정권 출범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경쟁 후보 '비방 동영상' 의혹을 둘러싼 답변이 오락가락하며 '자질' 논란으로 번진 가운데, 고물가 등 민생 불만도 부담을 키웠다.
지지통신이 18일 발표한 6월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전월보다 5.1%포인트 하락한 54.3%로 지난해 10월 정권 출범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내각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은 22.2%로 2.5%포인트 올라 출범 후 가장 높았고, 자민당 정당 지지율도 22.8%로 5.0%포인트 떨어졌다. 이같은 하락세는 한 조사에 그치지 않는다. 조사 방식이 다른 마이니치신문의 5월 조사에서도 지지율은 50%로 3개월 연속 떨어져 정권 출범 후 최저를 기록했다.
지지통신은 이런 하락의 주된 요인으로 비방 동영상 의혹을 꼽았다. 일본 시사 주간지 슈칸분슌 보도에서 시작된 비방 동영상 의혹은,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 등을 앞두고 경쟁 후보를 깎아내리고 다카이치 총리를 띄우는 동영상이 무더기로 만들어져 소셜미디어(SNS)로 유포됐고, 총리의 공식 비서가 동영상 제작자로 지목된 남성과 접촉했다는 내용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타인을 비방하는 동영상 제작이나 유포를 의뢰한 적이 없다"며 의혹을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답변에 임하는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슈칸분슌이 비서의 것으로 추정되는 음성 파일을 유료 회원에게만 공개하자, 야당은 총리에게 직접 들어보고 비서 본인의 목소리가 맞는지 확인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총리는 "(돈을 내고) 유료 회원이 될 생각은 없다"며 확인 자체를 거부했다. 나아가 총리는 22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비서의 해명을 담은 진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겠다고 했다.
이에 야당은 총리가 직접 답하지 않고 서면으로 갈음하려는 무책임한 시도라며 반발했다. 중도개혁연합의 나가쓰마 아키라 의원은 "회기 종료 직전에 진술서를 내면 제대로 따져볼 수 없다. 시간 끌기 아니냐"고 비판했다. 야당은 24일에도 진술서 대신 총리가 직접 답할 것과 총리가 출석하는 집중심의, 비서의 국회 참고인 출석을 거듭 요구했지만 자민당은 확답을 피했다. 해당 의혹에 대한 총리의 해명을 두고 "납득할 수 없다"는 여론은 이미 40.4%(지지통신 6월 조사)로, "납득한다"(19.4%)의 두 배를 넘었다.
지지율을 끌어내린 건 비방 동영상 의혹만이 아니다. 고물가에 따른 민생 불만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자민당은 2월 중의원 선거에서 식료품 소비세율을 한시적으로 0%로 낮추겠다고 공약했지만, 조기 시행을 위해 1%만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공약을 뒤집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지지통신 조사에서 소비세율을 "0%로 해야 한다"는 응답은 40.7%로 "1%"(29.4%)를 앞섰지만, 자민당 지지층만 보면 1%(36.9%)가 0%(33.5%)를 웃돌아 여당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총리와 가까운 한 의원은 지지통신에 "공약과 다른 1%로 가면 지지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중동 정세 불안이 물가 부담을 키우고 있다. 석유제품 원료인 나프타 공급이 흔들리면서 식품업계가 포장재를 줄이는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실제로 마이니치 5월 조사에서는 공급 불안에 대비해 정부가 국민에게 석유 관련 제품을 지금보다 더 아끼도록 요청하는 편이 좋겠다는 응답이 52%로, 그럴 필요가 없다(25%)는 응답의 두 배를 웃돌았다. 물가 대책으로는 소비세 감세(41%)를 현금 지급(29%)보다 선호했지만, "둘 다 적절하지 않다"는 응답도 30%에 달했다. 마이니치는 물가 상승과 중동 정세 혼란 속에 정부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짚었다.
이런 악재가 겹친 급격한 지지율 하락을 두고 자민당 안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지통신은 지지율이 정권 출범 후 최저로 주저앉자 여당 내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중진 의원은 비방 동영상을 두고 "이미지에 타격이 크다"고 했고, 또 다른 중견 의원은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가랑비에 옷 젖듯 두고두고 타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립 여당인 일본유신회의 한 간부도 "총리의 해명에 무리가 있다"며 오락가락하는 발언을 꼬집었다. 총리와 거리를 둔 또 다른 중진 의원은 총리가 음성 확인마저 거부한 데 대해 "너무 불성실하다. 처음부터 성실하게 답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여전히 50% 중반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SNS 영향력을 최대 무기로 자민당 총재 선거와 중의원 선거를 잇따라 승리로 이끈 총리가, 바로 그 SNS발 비방 동영상 의혹에 발목을 잡힌 모양새다. 지지율 하락이 자민당 정당 지지율 동반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부담도 커졌다. 중도개혁연합의 오가와 준야 대표는 "총리로서의 자질과 신임이 위협받을 수 있는 국면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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