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헌법정치] 그를 버려야 보수가 산다

  • 이제는 '자기희생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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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26대 서울대 총장]


 
대한민국 보수가 가야 할 길 ④

자유민주주의는 어느 극단에 이르지 않으면서 절제와 관용을 통하여 정치현상을 헌법질서의 틀로 수용하는 체제이다. 이에 기초하여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가 나누어진다. 자유민주주의는 폭력적·배타적·폐쇄적인 극우·극좌를 배척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사회를 피로 물들게 한 나치나 파시스트 같은 극우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그런 반성적 성찰에 따라 1949년에 제정된 독일기본법은 방어적·전투적 민주주의를 채택한다. 자유민주주의의 적에 대한 관용의 한계를 의미하는 위헌정당 해산제도가 그중의 하나다. 한국에서도 정부의 제소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2014년 통합진보당이 위헌정당으로 해산되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극단적인 세력의 발호에 대한 우려가 깊어진다. 진보세력의 몰락과 극우세력의 돌풍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정부가 추구하는 마가(MAGA) 즉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의 이면에는 자국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이민자의 국가에서 이민을 배척하는 배타적 국수주의로 치닫게 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의 본고장인 유럽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실시된 두 차례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범좌파가 배제되고 그 자리에 극우파가 진출하였다. 이는 1958년 제5공화국 창설 이래 결선투표에서 중도우파와 중도좌파 후보 간의 양자 대결로 이어지던 양상을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라인 강의 기적’을 통하여 인민민주주의를 지향한 동독을 흡수 통일한 서독의 힘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보수와 진보의 상호발전에 기초한다. 그 독일에서도 최근 나치주의자들이 공공연하게 활동하는가 하면 극우세력이 보수의 가치를 훼절시킨다. 이들은 타민족, 타인종, 타국가를 배척하는 폐쇄적 국가주의에 기초한다. 이런 흐름의 배경에는 중동과 아프리카로부터 밀려오는 이민자 물결에 진보의 인류애에 기초한 포용과 연대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자리한다.

한국의 보수를 대변해 온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 이후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 자유민주주의를 훼손시킨 비상계엄의 후유증으로 친윤·반윤, 반탄·찬탄으로 나누어져 뒤엉킨 채 혼돈 상태다. 비상계엄은 실패했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으로 대통령은 파면되었다. 이쯤 되면 탄핵 이전과 달리 윤 전 대통령과는 결별해야 앞뒤가 맞는다.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파면된 대통령의 옹호는 양립하기 불가능한 명제다. 위헌해산된 통합진보당의 부활이 불가능한 것과 같은 논리의 연장선상이다. 파면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의 후보가 파면 이후 실시한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기는 불가능하다. 6·3 대통령선거에서 지지한 국민의 41%는 결코 국민의힘 후보가 좋아서가 아니라 어느 특정 세력이 나라를 완전히 장악하기보다는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의 원리에 입각하여 정치제도의 정상적인 작동을 원하는 결과로 보아야 한다.

보수의 성지라는 TK 전당대회장에서조차 아수라장이 됐다. 같은 날 여론은 TK에서 사상 처음으로 민주당에 역전당했다. 총선과 대선을 휩쓴 여당은 이참에 아예 국민의힘을 궤멸시키려 한다. 심지어 위헌정당 해산까지 주장한다. 과거 보수 정당은 고비 때마다 혁신으로 위기를 정면 돌파해왔다. 2004년 3월 한나라당은 민심을 외면한 채 새천년민주당 잔류파들과 합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하였다. 그 반작용으로 지지부진하던 열린우리당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위기에 직면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전·현직 당대표를 비롯한 핵심인사들을 공천에서 배제시켰다. 새로 취임한 박근혜 대표는 천막당사를 차리면서 국민에게 용서를 구했다.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으로 대표되는 젊은 정치인들도 당 혁신의 깃발을 내걸었다. 개혁과 쇄신 덕분에 4월 15일에 실시된 제17대 총선에서 겨우 개헌저지선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의 소위 ‘탄돌이들’의 오만은 결국 정권교체를 자초했다. 상실감에 가득 찬 진보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돌풍을 일으켰지만, 오히려 보수의 정권연장만 도와주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인용으로 우파는 몰락의 길을 자초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두 전직 대통령은 영어의 몸이 되었다. 위기에 선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윤석열을 대선 후보로 차출하였다. 필자는 OECD 국가에서 검찰총장이 바로 대통령이 된 전례가 없다는 점을 적시한 바 있다(아주경제 주최 로앤비 포럼 기조연설, 2021.11.5.). 다른 당 정부의 검찰총장을 빌려 온 예는 더더욱 없다. 직업으로서의 정치와 검찰의 긴장관계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러나 정치화된 검찰은 정치를 침몰시킨다. 정치란 ‘대화와 타협의 예술’이다. 반면에 검찰은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검(劍)을 휘둘러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정치와 검찰은 상극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정치에 최소한의 숙려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검찰 수장이 곧바로 뛰어들었으니 그가 이끄는 정치의 현장에는 대화와 타협은 실종되고 명령과 통제가 지배했다.

이제 보수의 갈 길은 자명하다. 첫째, 윤 전 대통령과는 정치적으로 결별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파면되었지만 지금 정치적으로는 부활하지 않았느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똑같은 파면이라도 두 경우는 전혀 다르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미숙함에 겹쳐진 독선과 아집이 탄핵으로 귀결되었지만, 부정부패나 헌정파괴와는 무관하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이라는 민주헌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친위 쿠데타’(self coup d’État)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실현 불가능한 유혹에 빠진 참혹한 결과이다. 3개의 특검을 통하여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공정과 상식’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헌정파탄뿐만 아니라 부부의 부정부패 스캔들이 온 국민의 가슴을 에이게 한다. 상명하복에 익숙한 대통령제 국가에서 이들 부부를 추종한 고위공직자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되고 있다. ‘윤 어게인’에 현혹되었던 선량한 시민들도 수없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난 민주공화국민의 상처가 너무나 크고 깊다.

정의의 여신 디케(Dike)가 들고 있는 저울추는 균형을 유지한다. 균형이 무너지면 일상이 무너진다. 사람의 몸이 균형을 잃으면 병마에 시달린다. 국가사회의 균형이 무너지면 IMF사태와 같은 경제위기로 온 국민이 도탄에 빠지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국가는 소멸의 길로 간다. 중남미 국가에서 난무한 포퓰리즘 정부의 몰락은 이를 단적으로 반증한다. 그 과정에서 선량한 백성들만 도탄에 빠져들었다. 고국을 버리고 이민 행렬에 동참한 백성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국가도 지도자도 없다. 일제강점기에 국권을 찬탈당한 선조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가던 모습과 겹쳐진다.

국민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정치가 건전하게 작동하려면 보수와 진보라는 두 날개가 나란히 날아야 한다. 한국 진보는 비록 팬덤(fandom) 현상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지만 틀을 자리잡아간다. 진보를 지지하는 세력은 자생적이다. 그들은 떳떳하게 당비를 내고 권리당원으로 활동한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조국혁신당, 정의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녹색당 등등, 이들 정당은 권리당원들로 정치적·경제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유지한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어떠한가. 권리당원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의문이다. 당대표 선거에서 특정 종교세력이 가입시킨 당원들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설도 파다하다. 우파를 자처하는 다른 정당들도 국민의 사랑을 받기에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다. 친윤이나 부정선거의 망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젊은 피의 상징이던 이준석 대표는 쫓겨나서 개혁신당을 차렸다. 당 대표와 대선 후보까지 역임한 인사조차 당의 간판을 내려야 한다고 일갈한다. 하지만 분열은 곧 패망이라는 사실은 박근혜 탄핵 이후에 살아 있는 교훈으로 작동한다.

영국을 대표하는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는 ‘점진적 개혁과 실용적 발전’을 보수의 핵심으로 설파한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보수의 가치는 ‘전통과 관습의 존중, 그에 기초한 법의지배’로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보수는 ‘부국강병에 입각한 국리민복’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제시한다. 그런 점에서 보수는 경제발전을 중시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은 공산세력에 적대적인 ‘철의 장막’(iron curtain)을 구축하였다. 노동당 정부가 곳간을 헐어놓은 경제 위기에서 부국강병을 실천한 ‘철의 여인’(iron lady) 대처 총리는 보수의 지도자로 길이 남아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인권보다는 초근목피로부터의 탈피를 통치의 기본철학으로 삼았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이철·유인태가 아직도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도 대한민국 경제의 토대를 구축한 경제대통령으로 추앙받는다. 그 이면에는 자신을 사지로 내몬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통하여 ‘용서와 화해’를 실천한 김대중 정신이 자리 잡는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시대정신으로 ‘통합과 협치’를 꼽는 권노갑 이사장의 인터뷰가 울림을 준다(헌정 2025년 8월호).

다른 한편 진보는 ‘사회연대에 입각한 보편적 인권과 평등’을 중시한다. 그런 점에서 진보의 가치는 노무현이 꿈꾼 ‘모두가 함께 잘사는 대동세상’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인권과 평등은 그냥 구현되지 않는다. 나라 곳간을 허물어야 한다. 영국 노동당의 경제정책 실패로 보수당의 대처가 탄생하였다. 프랑스 제5공화국 최초의 좌파 대통령인 미테랑도 국유화정책의 실패로 결국 정부를 우파에게 내주는 사상 초유의 동거정부를 작동하게 했다. 현재 유럽은 난민문제로 분열되어 있다. 난민 수용을 주장하는 진보세력의 인도주의는 자국의 불안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아 국민적 지지가 바닥을 친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온 나라를 아니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고 별다른 성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유지하는 데에는 민주당의 무능과 허구가 자리한다.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에 도취된 나머지 민생을 외면한 결과다.

‘자유’를 화두로 삼은 윤석열의 취임사는 비상계엄과 더불어 허공 속으로 날아갔다. ‘민주’의 날개를 접은 ‘자유’의 참혹한 실패다. 이재명 정부는 미국발 관세폭탄에 따른 빈 곳간을 세금으로 채우려 한다. 그런데도 이재명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기대는 하늘을 찌른다. 보수의 위선에 대한 반작용이다. 이 와중에 국민의힘은 혁신과 쇄신은커녕 분열과 혼란을 거듭한다. 조만간 사라질 알량한 자리 지키기에 급급하다. 보수의 재건을 위해 전 정권에서 호가호위하던 인사들이 스스로 진퇴를 결단하는 용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 주요 이력 

▷파리2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한국공법학회 회장(2005~2007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2009년 1월~2012년 12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2010~2013년) ▷동아시아연구중심대학협의회 의장 ▷제26대 서울대 총장(2014년 7월~2018년 7월)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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