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의 헌법정치] '파기환송 10:2' …법은 판결 했고 이젠 유권자가 대답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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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26대 서울대 총장]
 
백화제방(百花齊放), 신록의 계절 5월 첫날, 한국 헌정은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오후 3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이자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유력한 차기 대통령인 피고인 이재명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죄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전부 무죄 판결을 내린 제2심 판결을 뒤집고 일부 무죄·일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다.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에서 헌재의 8:0 전원 일치 인용과는 달리 10:2 판결이다. 대법관 2명은 반대의견에서 제2심 판결과 같이 전부 무죄를 설시한다.
대법원의 법정 의견은 다음과 같다. 후보자의 표현의 자유보다는 선거의 공정성에 중점을 두며 “표현의 의미는 후보자 개인이나 법원이 아닌 일반 유권자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발언이 이루어진 당시 상황과 발언의 전체적 맥락에 기초하여 일반 유권자에게 발언의 내용이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기준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이에 따라 “공직을 맡으려는 후보자가 허위 사실을 공표할 때에는 일반 국민과 같은 정도로 표현의 자유가 허용될 수 없다.” “선거인의 알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 보장을 고려해 허위 사실 공표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 1심은 “유권자의 전체적인 인상”을 중시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표현의 자유와 피고인의 이익”을 강조하며 무죄로 뒤집었다. 대법원 판결은 1심 판결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2020년 7월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내린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7:5) 판시 사항과 그 궤를 달리한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의 법정 의견은 “단정하기 어려운 표현의 경우 원칙적으로 의견이나 추상적 판단을 표명한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한편 대법원 판결 불과 30분 후인 4시 서울정부청사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사퇴를 선언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됨에 따라 2024년 12월 14일 대통령 권한대행에 취임하였으나 12월 27일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되었다가 2025년 3월 24일 탄핵심판 기각 결정에 따라 대행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5월 1일 대선 출마를 위해 권한대행직을 사퇴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 불만을 가진 민주당은 밤 10시에 국회 본회의를 열어 1일 자정부터 권한대행을 맡게 될 최상목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상정하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31번째 탄핵소추안 발의이다. 법사위를 야당만으로 통과한 이후 본회의에서 표결에 들어가기 직전 최 부총리는 한덕수 권한대행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되고 있는 시각에 권한대행은 사표를 수리한다. 한 권한대행은 이미 사의를 밝혔지만 자정까지 권한대행직을 유지하기 때문에 사직서 수리권이 있다. 이에 1일 자정 이후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에 취임한다. 그러니까 한 총리, 최 경제부총리에 이어 대행의 대행에 이은 대행이 취임한 것이다. 사상 초유의 소용돌이 속에 국정은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5월 1일 오후 3시 이재명 유죄 취지 파기환송→4시 한덕수 대행 사의 표명→10시 최상목 대행 예정자 탄핵소추안 국회 본회의 상정→탄핵소추안 표결 중 최상목 사퇴→자정 이주호 교육부총리 대통령 권한대행 취임.
여야의 대선 놀이에 헌정은 혼돈 상태에 빠졌다. 정부·여당은 대통령이 탄핵되고 그 대통령을 모시던 국무총리가 새 대통령 선출 때까지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여 정권을 이양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선거의 최고관리자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사직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구나 비상계엄을 막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국정 제2인자가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정치의 한복판에 직접 뛰어드는 형국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합리화되기 어렵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인용에 대한 대국민 사죄가 먼저다.
대법원 판결 후과(後果)는 더 충격적이다. 야당은 대법원이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든 사법 쿠데타, 사법의 정치화 완결판이라고 비난하면서 대법원장 탄핵안까지 논의한다. 반면에 여당은 판결에 따라 이재명 후보의 사퇴를 요구한다. 시각을 달리하여 보면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하여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하였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사범에 관한 한 신속한 재판, 즉 1심 6개월, 2심 3개월, 3심 3개월을 요구한다. 이는 강행규정이다. 그런데 2022년 9월 8일 공소 제기 후 1심 26개월, 2심 4개월이 걸렸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1심 실형 일부 유죄, 2심 완전 무죄라는 반전을 거듭한 끝에 대법원은 사건 접수(3월 28일) 후 배당 당일 전원합의체 회부(4월 22일) 후 9일 만에 신속하게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의 가능한 선택지는 세 가지다. 파기환송(破棄還送), 파기자판(破棄自判), 상고기각(上告棄却). 대법원이 상고기각을 하기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가 명백하다고 보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판결 내용을 보면 파기자판을 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유죄를 확신한다. 그럼에도 파기자판은 하지 않았다. 만일 파기자판을 하게 되면 선고 형량이 문제된다. 100만원 이상이면 피선거권이 적어도 5년 이상 박탈된다. 이 경우 유력 후보의 피선거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파기환송으로 사건을 2심으로 돌려보냄으로써 다른 재판부에서 다시 한번 더 숙고의 시간을 가지도록 한 것이다.
다른 한편 대선이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대법원이 무작정 사건을 끌어안고 있을 수는 없다. 4월 27일 민주당 이재명 후보 선출→5월 1일 대법원 파기환송→5월 2일 한덕수 전 총리 출마 선언→5월 3일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선출→5월 10-11일 후보자 등록→5월 12일-6월 2일 선거운동 기간→5월 30-31일 사전투표일→6월 3일 본투표일. 급박한 대선 일정상 대법원의 신속한 판결은 수긍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2심에서 다시 심리하고 그에 따른 판결 및 이에 불복할 경우 대법원 상고 및 대법원 판결의 전 과정을 대선 전까지 종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대법원은 최종심이자 법률심의 입장에서 피고인의 위법행위를 분명히 밝히는 효과를 거둔 반면에 피선거권 박탈 여부에 관한 최종적인 판단은 유보하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이로써 적어도 대선 전 사법적 판단은 이번 대법원 판결로 사실상 종결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만일 또다시 2심이나 대법원에서 속전속결로 판결을 내린다면 이는 야당의 주장대로 법원의 대선 개입이 된다.
대선 후 만약 피고인 이재명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이 재판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여전히 논쟁적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대법원과 헌재를 비롯하여 그 어떠한 사법적 판단도 없었다. 오로지 학자들의 학설만 존재한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재임 중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의 형사상 특권은 외국 헌법에서도 널리 인정한다. 문제는 대통령 취임 전 저지른 범죄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을 경우에 대통령 취임 후 그 재판을 중지할 것이냐 아니면 계속할 것이냐에 관하여는 학자들의 학리해석도 나뉜다.
필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문제에 대한 헌법학자로서 소신을 밝힌 바 있다(헌법학, 25판, 568면 이하). 대통령은 주권자에 의해 직선되어 국민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이 후보를 선택할 때 피의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선택하였다면 적어도 대통령 재임 중에는 형사재판을 받아서는 안 된다. 탄핵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로 한정되듯이 “직무와 무관한 취임 전 행위”로 인하여 대통령직이 박탈되어서는 아니 된다. 더 나아가 내란죄·외환죄와 같은 국사범(國事犯)도 아닌데 현직 국가원수가 재판정에 나선다는 것은 국정 안정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불소추 특권은 수사에서부터 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사사법절차에서 작동되어야 헌법규범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이 대통령에게 형사상 특권을 부여한 헌법규범의 객관적 해석·목적론적 해석에 부합한다.”(헌법학, 571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전 배심원의 만장일치 유죄평결을 받았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후 검찰과 법원은 대통령직의 엄중함을 이유로 형사사법적 리스크를 해소해 주었다. 더 나아가 프랑스 헌법에서는 대통령은 재임 중 그 어떤 재판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대통령 퇴임 후 한 달이 지나면 재판이 재개된다(제67조). 사실상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들 두 나라의 사법부 판단과 명시적 규정에 비추어 대통령 취임 후 모든 재판은 중지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재명 후보가 만약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여러 개의 재판을 받느라고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다.
다른 한편 검찰이 기소편의주의와 기소독점주의를 악용하여 야당 탄압수단으로 기소권을 남용한다면 야당 후보는 대통령이 되더라도 대통령 재임 중에도 지속적으로 재판을 받고 심지어 대통령직이 박탈될 수도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검찰이 제기한 기소 사유 중 2건은 1심·2심·3심 모두 무죄로 귀결되어 검찰의 기소권 남용의 일부가 분명히 드러난다. 또한 차제에 공직선거법 제250조 허위사실공표죄의 범주도 대폭 축소되어야 한다. “후보자, 후보자의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의 출생지·가족관계·신분·직업·경력 등·재산·행위·소속단체, 특정인 또는 특정단체의 지지 여부 등에 관하여 허위의 사실을 공표하거나 공표하게 한 자”를 처벌한다(제1항). 학력은 “졸업 또는 수료 당시 학교명”(제64조 제1항)을 기재해야 한다. 폐지되거나 개칭된 학교의 새 명칭을 사용하면 위반이다. 예컨대 금속공학과는 재료공학과로 통합 개칭되어 존재하지도 않는데 재료공학과로 표기할 경우, 구 경원대를 현재의 가천대로 기재하면 처벌된다. 그런데 왜 국민학교는 초등학교로 표기해야 하나.
이제 정치권은 조희대 대법원이 내린 고뇌에 찬 결론을 깊이 천착하여 최고법원의 판결을 비난하기보다는 선거를 통하여 국민의 신임을 얻는 데 전념하여야 한다. 누구나 법원의 판결에 불만이 없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재판 결과는 승소 아니면 패소, 유죄 아니면 무죄 둘 중 하나일 뿐이지 반쯤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법원 판결에 대한 불만은 얼마든지 표출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에 승복하여야만 사법적 정의가 구현될 수 있다. 국민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정치권부터 솔선수범하여야 한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민주법치국가의 구현을 위하여 대법원 판결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향후 파기환송심에서 충분한 심리를 진행해야 한다. 일정상 대선 전에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불가능하다. 대선 후 만약 피고인이 당선되면 재임 중에는 대통령과 관련된 모든 재판은 중단해야 한다. 물론 퇴임 후에는 즉시 재판이 재개되어야 한다. 향후 헌법 개정 시에는 프랑스 헌법과 같이 재판 중단을 명시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유포죄는 대폭 완화되어야 한다. 또한 검찰의 기소편의주의와 기소독점주의의 남용도 시정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파리2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한국공법학회 회장(2005~2007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2009년 1월~2012년 12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2010~2013년) ▷동아시아연구중심대학협의회 의장 ▷제26대 서울대 총장(2014년 7월~2018년 7월)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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