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시공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에 대해 향후 ‘징벌적 수준’의 조치를 예고하면서 건설업계가 바짝 얼어붙었다. 시공사 등에 대해 형사책임 범위를 확대하는 산업안전관리법(산안법) 개정안 등이 최근 국회에서 대거 발의된 데다 나아가 건설업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문화한 새로운 법안마저 발의되고 있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엄벌 의지를 밝히면서 규제 강화 법안들이 향후 힘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업계에서는 근로자 인명사고를 막기 위한 개선 필요성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중복 규제 가능성이 있는 모호한 형사처벌 방안은 예방 실효성이 떨어지고 업계에 미칠 부정적인 파급력도 크다고 우려한다.
5일 국회 등에 따르면 지난 7월 이후 이날까지 발의된 산업안전관리법 관련 법률 개정안은 4건에 이른다. 이 중 3건은 안전의무 위반 시 사업체나 대표이사에 대한 직접적인 형사처벌 규정을 신설하거나 처벌 요건을 확대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특히 최근 나온 개정안들은 건설업계에 대한 규제 강화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 법조계와 업계의 해석이다. 지난달 28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제안 이유에 포스코이앤씨 등 사례를 명시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대표이사가 사업장 안전·보건조치 핵심 사항을 사전에 확인하고 이를 위반 시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업계에서는 최근 기류로 볼 때 기존 법률 개정에 그치지 않고 건설업계를 정조준하는 강도 높은 추가 규제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후진적 산업재해를 영구적으로 추방할 것”을 지시한 바 있고,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산재 사망사고 발생 시 공공입찰 참가 제한과 영업정지 등을 병행 검토하며 건설업에서는 “산업보건안전관리 의무를 원청에 부여하겠다”고 보고하면서다.
무엇보다 건설업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구체화한 건설안전특별법이 발의되면서 업계 전반으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인이 발의한 ‘건설안전특별법’은 발주자, 설계자, 시공자 등 안전관리 책임을 사업 주체별로 확대하고, 사망 사고 발생 시 연 매출 대비 최대 3% 이하 과징금 또는 최대 1년 이하 영업정지를 부과토록 하고 있다. 아울러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 등 형사처벌도 규정했다.
국토교통부 역시 해당 법안을 통해 건설사 사망 사고에 대한 사실상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해당 회의에서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은 “매출 3%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하도급 업체 사고에도 원청에 법적 책임을 묻는 방안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해당 법안이 실제 시행되면 건설업계에 미칠 파급력은 상당할 전망이다. 수도권 소재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중처법과 산안법 강화로 현장에서는 안전 점검받는 데 하루가 다 간다는 푸념도 나온다”며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점검을 받는 상황에도 안전사고는 발생할 수 있는데 과징금이 매출액 대비 3% 수준이면 사정이 어려운 중소형사들은 처벌 한 번에 기업 존속마저 흔들릴 수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처벌 일변도인 규제는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며 안전관리 방안을 각 업체들이 효율적으로 강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산업안전보건 등 안전 분야 전문가인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건설안전특별법안은 다른 안전관계법과 중복되거나 충돌되는 규정들이 많고, 법문의 예측 가능성이 모호해 예방 효과가 상당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제재에 방점이 찍힌 엄벌 만능 기조보다는 현장의 예방 시스템을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방식을 우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처벌 규정이 미흡해서가 아닌 결국 비용 문제로 사고 예방 효과가 한계를 보였던 것”이라며 “안전을 위한 공사 기간이나 비용이 결국 건설 현장 안전 확보에 필요한 필수적인 사회적 비용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예방 정책을 입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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