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일상화된 의인 코스프레…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3-05-03 15:04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임병식 위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일 서울중앙지검에 자진 출두했다. 송 전 대표는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 관련 피의자 신분이다. 검찰은 합의된 일정이 아니기에 되돌려 보냈고, 송 전 대표는 검찰청 현관에서 입장문을 읽고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통상 형사 피의자가 수사기관에 자진 출두하는 건 형벌 경감을 염두에 둘 때다. 송 전 대표 출두는 이보다 정치적 목적이 강했다. 그는 “검찰은 주위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송영길을 구속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전당대회 금품수수 논란에 대해 송구스럽고 죄송하다. 모든 건 내 책임”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를 인정한다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모호하다. 당당하다면서 구속하라는 건 뭔가 싶고, 또 “송구스럽고 죄송하고 모두 내 책임”이라는 저의는 뭔지 헤아리기 어렵다. 아니라고 대놓고 부인하기에는 뒤통수가 따갑고, 그렇다고 인정하자니 자신과 민주당을 바라보는 국민들 앞에 염치가 없어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한 게 아닌가 싶다. 송 전 대표는 유력 정치인이다. 검찰이  소환하지도 않았는데 그가 검찰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건 다름 아니다. 구속영장 청구가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나서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또 정치적 메시지를 발신함으로써 검찰 수사를 반박하고 공수 전환을 꾀할 목적이다.

피의자가 출두(출석) 일정을 정하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검찰 수사를 반박하는 건 민주당 인사들 사이에 낯익은 풍경이다. 국민들 눈에는 염치없는 짓이지만 어느덧 일상이 됐다. 송 전 대표는 물론이고 이재명 대표와 측근 정진상 실장, 노웅래 의원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검찰 수사에 맞섰다. 이날 송 전 대표는 “귀국한 지 일주일 지났지만 검찰은 나를 소환하지 않고 주변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며 자진 출두 이유를 들었다. 또 검찰이 돈 봉투 녹취록을 언론에 유출함으로써 파리에 있는 자신을 사실상 소환했다며 검찰 탓으로 돌렸다. 그래서 출두했다는 것인데, 정당성은 물론이고 해명 또한 구차했다.

만일 송 전 대표에게 혐의가 있다면 검찰은 소환할 것이다. 거꾸로 죄가 없다면 소환할 이유가 없다. 주변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자신을 구속하라는 ‘의인 코스프레’는 소영웅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덧붙여 적법한 수사를 괴롭히는 것으로 호도하는 건 초점 흐리기다. 그렇다면 검찰은 어떤 수사도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확대된다. 돈 봉투 사건에서 송 전 대표는 핵심이다. 주변을 걱정하기에 앞서 자신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훼손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 야당 탄압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것 또한 공감하기 어렵다.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발부한다. 만일 구속 사유가 안 되면 구속영장 청구는 기각된다. 야당 탄압과는 관계없다.

앞서 송 전 대표는 ‘물극필반(物極必反·사물은 극에 달하면 제자리로 돌아간다)’을 언급하며 자신을 변호했다. 기획수사로 규정한 상황에서 자신을 둘러싼 수사가 비정상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돈 봉투 사건은 검찰이 기획하지도, 여당이 조작한 것도 아니다. 측근인 이정근 사무부총장과 윤관석·이성만 의원, 그리고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 등이 형, 오빠라고 부르며 벌인 낯 뜨거운 금품수수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스스로를 의인으로 착각하고 정치수사로 호도하고 있으니 공감하기 어렵다.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또한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검찰 정권의 수사는 증자살인(曾子殺人),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했는데 역시 가당치 않은 자기변명에 불과했다.

‘거짓말도 여러 사람이 하면 믿게 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사자성어를 들먹였지만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사자성어로 혐의를 부인하는 것도 민주당 인사들 공통점이다. 그렇다면 누구 잘못일까. 구속 사유를 따져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 잘못일까, 아니면 국민을 상대로 조악한 변명을 늘어놓은 정 전 실장에게 문제가 있을까. 상식적이라면 정 전 실장에게 혐의를 묻는 게 합리적이다. 한데 송 전 대표와 이 대표, 정 실장, 노 의원 등 검찰 수사에 직면한 민주당 인사들은 하나같이 자신은 잘못 없고 검찰이 정치적으로 탄압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쯤 되면 국민들 인식에 심각한 장애가 있다.

출석 날짜를 피의자가 정하는 관행도 민주당 인사들 사이에 ‘밈’이 된 지 오래다. 마치 검찰이 죄 없는 야당 인사를 잡아넣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송 전 대표가 일방적으로 출두해 정치 퍼포먼스를 펼쳤던 조국 전 장관과 이재명 대표 또한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이 대표는 올해 1월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검찰 소환 통보를 받자 출석 날짜를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당시 그는 “수없이 많은 현안이 있는 주중에는 일해야 하기에 (주말인) 28일 출석하겠다”고 했다. 또 “변호사 한 명만 대동하고 출석해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했다. 2월 23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는 “법치의 탈을 쓴 사법 사냥이 일상이 돼 가고 있는 폭력의 시대”라며 66분에 걸쳐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해명했다.

이 또한 국민들에게 오만하며 파렴치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주중에 일하느라 바쁜 건 이 대표만이 아니다. 성실한 국민이라면 누구나 주중에 바쁘다. 원내 1당 대표라는 이유로 출석 날짜를 자기 편리대로 결정하는 건 또 다른 특권이다. 변호사 한 명만 대동해 당당하게 맞선다는 말도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민주당 의원 모두를 동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게 내세울 만한 말인지 의문이다. 언제부터인지 민주당에는 반성도 인정도 부끄러움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염치를 모르는 정치는 탐욕과 동의어다. 감동 있는 정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데서 시작한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이유는 ‘부끄러움’을 알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건 스스로를 돌아보고, 시시비비를 따져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양심을 뜻한다. 부끄러움과 염치를 잃어버린다면 공동체는 유지되기 어렵다.

이 대표와 송 전 대표는 진영 대결을 부채질하는 정치적 선동을 멈춰야 한다. 검찰과 법원에서 논리와 증거로 입증해야 한다. 이쯤 해서 유동규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그는 정진상에게 “부끄러움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오래된 칠판에 쓰여 있는 글씨는 잘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데, 그걸 쉽게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부끄러움은 누구 몫인가.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