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패거리 문화'의 단면 돈 봉투 전당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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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객원 논설위원
입력 2023-04-1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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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돈 봉투 전당대회 사건으로 더불어민주당이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대놓고 반박할 수도, 그렇다고 인정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지금으로써는 녹취록에 담긴 정황이 워낙 명확해 섣부르게 반박할 경우 돌아올 후폭풍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인지 당 지도부는 신속하게 자체 진상조사 의지를 밝혔고, 강성 의원들조차 낮은 톤으로 대응하고 있다. 조응천 의원을 비롯해 평소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의원들은 송영길 전 대표의 조기 귀국과 진상조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돈 봉투 사건은 뿌리 깊은 패거리 문화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녹취록에 등장하는 이들은 스스럼없이 호칭을 파괴한다. 이정근 사무부총장은 윤관석 의원, 이성만 의원과 통화하면서 “오빠”라는 호칭을 여러 차례 썼다. 의원들 또한 어떻게 돈을 조달하고 배분, 전달할지 논의하면서 자연스럽게 응대한다. 여의도 정치권에서 국회의원과 원외 인사 간에는 일정한 벽이 있다. 그런데 이 사무부총장은 3선 국회의원을 “오빠”라고 부르며 친밀함을 과시한다. 송 전 대표와 윤 의원, 이 의원, 이 사무부총장은 해외여행을 다닐 만큼 유대 깊은 이익 공동체로 알려진다.

한국 정치에서 패거리 짓기는 오랜 습속이다. 영향력 있는 정치인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싶어 하고, 또 일반 정치인은 어딘가에 속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렇게 형성된 패거리 안에서 소속감을 확인받고 이익을 공유한다. 우리사회에서 흔히 사용하는 “삼촌” “이모” “언니”는 정치인들의 “형님” “아우”와는 크게 구분된다. 일반인들이 말하는 삼촌과 이모, 언니는 친밀감의 표현일 뿐 별다른 의도는 없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형님” “아우”는 이익을 공유하는 이익 공동체 안에 속해 있다는 은밀한 신호다. 또 실세를 “형님” “오빠”로 부를 수 있다는 건 정치인들 사이에서 또 다른 특권이다.

강준만 전북대학교 명예교수는 이러한 행태를 밥그릇 공동체와 정치적 부족주의로 규정한바 있다. 자기가 속한 진영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이익을 나누는 부족 공동체라는 뜻이다. 강 교수는 <부족국가 대한민국>에서 열성 지지자들에 의해 지탱되는 민주당을 “‘부족의, 부족에 의한, 부족을 위한 진보’다. 그건 진보가 아니며 ‘밥그릇 공동체’에 가까운 ‘가짜 진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아래서 민주당은 ‘내로남불’을 외치며 진영에 속한 이들끼리 이익을 공유한 ‘부족국가’에 지나지 않았다는 진단이다. 끼리끼리 이익을 공유하는 부족주의가 누적되면 극단적인 진영대결로 승화한다.

앞서 언급했듯 패거리 짓기는 호칭 파괴에서 시작한다. 국회에 있을 때 유독 나이를 기준으로 서열을 정하는 정당인을 만난 적 있다. 그는 모든 자리에서 서열을 정한 뒤에 대화를 이어갔다. “형님” “아우”를 정하고 나면 어김없이 폭탄주를 돌렸다. 이는 “우리는 같은 편”이라는 암묵적 동의이자 계속해서 만날 상대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조폭 의식이었다. 한때 대기업에서 도입했던 호칭 파괴와도 결이 다르다. 대기업에서 호칭 파괴는 수평적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역량을 극대화할 목적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호칭 파괴는 추악한 편 가르기 수단일 뿐이다.

기자들에게는 출입처 기관장에게 극존칭을 자제하는 관행이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김ㅇㅇ 경찰청장을 ‘김 청장님’이 아닌 ‘김 청장’으로 호칭한다. 언론인들이 의도적으로 극존칭을 억제한 건 나름 이유가 있다. 언어는 의식과 행동을 지배하기에 대등한 관계에서 취재할 목적에서 극존칭을 경계한다. 취재원과 기자 사이에 상하관계가 형성되면 정상적인 취재는 쉽지 않다. 사회적 지위나 권위에 눌리다보면 취재원을 대상으로 제대로 묻는 게 어렵다. 덧붙여 청장(廳長)은 자체가 높임말이기에 “청장님”은 중복 존칭이다. 습관적으로 ‘님’을 붙이는 언어습관을 교정할 다른 목적도 있다. 대통령 뒤에 ‘님’을 붙여 ‘대통령님’으로 부르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된다.

거듭 말하지만 공적 조직에서 “형님” “아우” “오빠”는 패거리 문화에서 비롯된 잔재다. 가족호칭을 사용하는 심리 기저에는 대략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자신들끼리 이익을 향유하는 이익 공동체라는 동질감이다. 둘째, 패거리 안에서 심리적 안정을 취하려는 방어기제가 작동한 탓이다. 셋째, 누구도 진심으로 “형님” “아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서로를 적당하게 이용하는 싸구려 비즈니스 관계다. 결국 특정한 패거리 안에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호칭 파괴는 공정을 해치며 여러 부작용을 수반한다.

2021년 5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당선인과 2위 홍영표 의원 간 득표율 격차는 0.59%포인트에 불과했다. 치열했던 만큼 지지자들끼리 강하게 결집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돈 봉투를 뿌린 매표는 정당화될 수 없다. 더구나 송 전 대표는 민주주의 가치를 신봉하는 민주화 운동 세대다. 송 전 대표는 문제가 불거지자 이 사무부총장 개인 일탈로 치부했다.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많지 않다. 녹취록에는 송 전 대표가 인지하고 있음을 추정케 하는 대목이 나온다. 또 송 전 대표 보좌관도 깊이 연루돼 있다. 계선 상에 있는 보좌관이 송 전 대표에게 보고했을 것이라고 믿는 건 합리적이다.

송 전 대표는 586 주자 가운데 첫 민주당 대표다. 그가 돈 봉투 논란에 휩싸였다는 것만으로도 586은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다. 만일 공정하게 선거운동이 진행됐다면 전당대회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다. 또 송 전 대표는 이재명 대선 후보 선출과도 밀접하다. 대선 경선 당시 이낙연 정세균 전 총리 선거 캠프에서는 송 전 대표의 편향적인 경선 관리를 문제 삼기도 했다. 송 전 대표 당선, 이재명 대선 후보 선출,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면 돈 봉투 전당대회가 낳은 나비효과는 참담하다. “형님”과 “오빠” 패거리 문화가 낳은 참사라는 점에서 민주당에는 뼈아프다. 아직도 50만원 돈 봉투와 50억원 클럽을 비교하며 위안 삼는다면 수렁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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