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논설고문 [극동대 교수]

 
1. 특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8일 검찰이 자신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자 ‘김건희 특검’으로 맞설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두 사안은 동열에 놓을 사안이 아니다. 하나는 당사자가 순수한 사인(私人)이었을 때 일이고, 다른 하나는 선출된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된 비리 혐의다. 특검은 공직자의 비리를 주 대상으로 한다. 공직자가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그렇다.
 
김건희 건은 그동안 나름대로 검찰의 판단을 거쳤다. 주가조작 혐의는 문재인 정권에서 2년 반 동안 수사를 받았지만 기소되지 않았다. 허위 경력 기재는 공소시효가 지났다. 반면 이 대표는 선거법 기소에 이어 14일 성남FC 후원금과 관련해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 두 사안은 시기나 성격도 다르다. 패키지가 될 수 없다. 이 대표는 2021년 7월 12일 MBC 라디오와 인터뷰하면서 “결혼 전 일은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특검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패스트트랙에 태우기도 어렵고, 태운다고 해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특검을 들고 나왔다. 누가 봐도 검찰의 기소에 대한 맞불 놓기로 비친다. 당내에선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내 눈에서는 피눈물이 난다는 걸 명심하라”는 말 등이 쏟아졌다.
 
발의된 특검도 대규모다. 특검보 4명과 파견검사 20명을 포함해 100여 명으로 팀을 꾸리도록 돼 있다. 역대 최대로 알려진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최순실 특검(105명)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2. 영수회담
 
이 대표는 그러면서도 윤석열 대통령과 1대1 영수회담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여야를 떠나서 민생을 구하는데 어떤 게 필요한지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대자”는 것이다. 민생을 살리겠다는 집념이 그만큼 강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절박한 정치적 동기가 있는 건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한쪽에선 특검을 하자며 영부인을 직격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1대1 영수회담을 요구하는 것인데, 우리 정치사에서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정치권 일각의 시선대로 이 대표는 자신을 향해 조여오는 검경(檢警)의 칼날을 무디게 하려고 그러는 걸까. 그렇다면 영수회담까지 방탄용이라는 얘기인가.
 
국민의힘 일각에선 “우리도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고가 옷 구입 의혹 사건에 대한 특검 요구로 맞서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저런 식으로 나오면 ‘쌍특검’으로 갈 데까지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3월 25일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는 김정숙 여사를 업무상 횡령과 국고 손실 교사죄 혐의 등으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김 여사가 청와대 특수활동비 담당자로 하여금 수백 벌의 고가 명품 의류와 수억 원에 해당하는 장신구 등을 구입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민생대책위는 “청와대에선 모두 김 여사가 사비로 구입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공직자 재산변동 신고에서는 누락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한국납세자연맹도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에 특활비 지출 내역과 김 여사의 의상과 액세서리 등이 포함된 의전비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문재인 청와대는 “국가안보 등 민감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거부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월 일부를 공개하도록 결정했다. 청와대는 불복하고 3월 항소했다. 납세자연맹은 윤석열 대통령실에 대해서도 특활비 공개를 요구 중이다.
 
3. 정치와 기회
 
이런 상황에서 ‘쌍특검’을 하게 되면 여야 극한대치로 정국은 얼어붙고 국정은 마비될 게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거론되지 않을 수 없다고 보면, 이에 반발하는 친문(親文)과 친명(親明) 간에 갈등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집권 여당이 그 단초를 제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대표는 대선 이후 우리 정치를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정상 궤도에 복귀시킬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가 먼저 자신의 사법 리스크에서 당을 떼어 놓을 각오를 했어야 했다. ‘김건희 특검’만 해도 당 안팎에서 처음 그 얘기가 나왔을 때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으니 당이 나서서 그 짐을 나눠 지려 하지 말라”며 말렸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신선한 충격을 줬을 것이다. 내가 너무 순진한가?
 
이 대표는 그와는 정반대로 갔다. 그의 행보는 오직 ‘방탄’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비쳤다. 대선 패배에 대한 의미 있는 진단과 논쟁 한번 없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당대표가 됐다. 이 과정에서 당헌까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꾸었다. 결과적으로 ‘사법 리스크와 당의 분리(격리)보다는 일체화를 꾀한 셈이었다.
 
4. 방탄
 
그는 ‘방탄’에 성공했을지 몰라도 다수 국민이 ‘방탄’ 너머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 정치인의 야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 어떤 비정함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팬덤 지지자들 생각은 다르겠지만 필자에겐 그렇게 다가온다. 적어도 그가 큰 꿈을 이루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이념과 계층의 유권자들은 나와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야당 탄압' 탓으로 몰아붙인다. 정부·여당에 대해 “정쟁, 야당 탄압, 정적 제거에 국가 역량을 소모하지 말라”고 한다. 다수 국민의 인식과는 간격이 있다. 논객 진중권의 반응이 그 간격을 잘 보여준다. “무슨 정적 제거이고, 무슨 국력 소모인가. 공직자라면 ‘수사를 성실히 받고 제게 씌워진 혐의를 벗겠습니다’라고 해야지 당 차원에서 무슨 기구(윤석열 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를 만든다고 될 일이냐.”(문화일보 9월 14일)
 
필자는 17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혐의(허위사실 공표) 공소장을 보았다. ‘대장동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에 대해 이 대표는 “성남시장 재직 때는 하위 직원이라 몰랐다”고 했지만 해외 출장을 함께 가고, 대장동과 관련해 여러 차례 보고를 받았음이 드러났다.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 특혜’ 건도 이 대표는 당시 “국토부에서 협박을 받았다”고 했지만 협박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5. 정치가와 정치인
‘진보’로 분류되는 한 중견 언론인은 이 사건과 ‘성남FC 후원금 의혹’ 에 대해 모두 “이재명 대표의 부패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을 폈다. “법리상 유죄일 수는 있어도 정치를 그만둬야 할 정도의 부패 범죄는 아니다”는 것이다.(한겨레 2022년 9월 17일) ‘정치’를 ‘법’이라는 경직된 틀로만 볼 수 있느냐는 점에선 공감할 부분이 없지 않지만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논쟁이 길어지는 걸 원치 않기에 딱 하나만 묻고 싶다. 그 거짓말이 내 진영(내편)이 아닌 반대 진영에서 나왔어도 그렇게 관대했을까.
 
지난 대선 과정에서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로 존경하는 줄 알더라”고 했다. 2021년 12월 3일 전주에서 “우리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했다가 문제가 되자 3월 7일 그 경위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이 대표는 단순한 수사(修辭)였다고 해명했지만 나에겐 쉽게 잊을 수 없는 말로 남아 있다. 지금도 그 말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직 이르지만 이 대표는 벌써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에 대한 필자의 고언도 그래서 나왔다.) 진부하지만 정치학개론 시간에 누구나 배우는 게 정치가(statesman)와 정치인(politician)에 대한 구별이다. 정치가는 대의(大義)를 좇아 큰 정치를 하는 사람이고, 정치인은 정치 자체에 능한 사람이다. 임기응변이 뛰어나고, 정쟁(政爭)에서도 좀처럼 지는 법이 없다.
 
대선 직후인 지난 3월 10일 한국갤럽은 투표자 1002명을 상대로 윤석열, 또는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윤 후보는 ‘경험 부족’이 18%로 1위였고, 이 후보는 '신뢰성 부족‧거짓말'이 19%로 1위였다. 권위는 물론 심지어 권력까지도 도덕성에서 나온다. ‘한 사람의 인격을 시험해보려면 그에게 권력을 주어라’(링컨)는 말도 있다. 이 대표, 져야 이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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