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바람난 'K소프트파워'에 찜찜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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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입력 2021-10-25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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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히트를 치고 K-팝이나 K-무비의 인기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으니 이 때문에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수직 상승한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돈다. 외국 언론이나 평론가가 앞 다투어 한국 문화의 폭발적 인기에 주목하며 이에 따른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 상승 효과를 단언한다. 영국의 모노클 잡지는 얼마 전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독일 다음인 세계 2위로 평가했다. 역시 영국에 위치한 브랜딩 컨설턴트사 브랜드 파이낸스는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작년 14위에서 올해 11위로 상승한 것으로 발표했다. 바야흐로 한국 소프트 파워의 전성기가 온 듯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소프트 파워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하버드 대학의 조셉 나이 교수는 얼마 전 한국국제교류재단과의 세미나에서 훨씬 인색한 평가를 했다. 그에 따르면 소프트 파워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매력있는 문화, 모범적인 국내 가치, 그리고 정의로운 국제 정책이다. 그에 따르면 한류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는 벌써 세계 수준에 올랐고 국내 가치도 민주화와 산업화를 거치며 모범적이 되었다. 그러나 세 번째 정의로운 국제 정책에 있어서는 한국이 아직 모자란다고 지적한다. 지구촌의 공공선을 위하고 이타적인 외교 정책을 펴는 점에서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사실 대외 공적개발원조(ODA) 수준이나 유엔 평화유지군(PKO) 파견 등 국제 사회에 공헌하는 측면에 있어서 한국은 선진국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북유럽 국가가 국민총소득(GNI)의 거의 1 퍼센트 수준의 대외 원조를 하는 데 반해 한국의 경우는 아직 0.2 퍼센트 이하에 머물고 있어 OECD 평균인 0.3 퍼센트에도 못 미친다. 해외로 파견된 평화유지군 숫자 역시 미미한데 1990년부터 2017년까지 기간 동안 전 세계 49위에 머물고 있다. 국제적으로 관심이 높은 기후 변화나 환경 문제에 있어서도 아직은 소극적이다. 국제적으로 공인받는 재생 에너지 지수는 29위, 환경 이행 지수는 80위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국제 사회에서의 공헌을 위해서는 경제력이나 군사력 등 선진 강국의 여건을 갖춰야 하나 한국의 경우 이제야 개발국 지위를 벗어난 상황이라 이는 이해될 만하다. 아직은 지구촌 공공선에 크게 기여할 만한 충분한 여력을 갖추지 못했으니 너무 자조할 일은 아닐 것이다. 아마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 교수가 말한 소프트 파워의 다른 두 가지 요소는 어떨까? 문화나 가치에 있어 한국이 진정으로 소프트 파워의 여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가? 나이 교수는 그렇다고 했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필자는 확신하지 못한다.
먼저 규범적 국내 가치를 생각해 보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기초를 이루는 법치, 인권, 자유 등 보편적 가치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지난 수십년간 한국 민주주의 발달은 이러한 가치를 크게 신장시켰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그러나 눈을 밖으로 돌려 다른 나라, 특히 선진 민주 사회와 비교하면 역시 갈 길은 멀다. 인권을 그렇게 외쳤던 진보 세력은 휴전선 바로 건너 북한에서 자행되는 인권 탄압에 대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 역시 겉으로는 크게 신장되었지만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다. 얼마 전 집권 민주당이 추진하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보면 이 점은 분명하다. 징벌적 손해 배상을 무기로 자유롭고 정의로운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시도가 역력하다. 유엔 등 국제 사회가 이 점을 지적하자 겨우 마지못해 이 시도를 연기했다. 보편적 가치를 통한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문화를 통한 소프트 파워에 대해서도 마냥 장밋빛은 아니다. 한국의 대중 문화가 세계적 인기는 높지만 그 이면의 어두운 면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화제가 된 오징어 게임 드라마를 보면 그 작품성이나 완성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흥미를 유발하는 여러 요소들이 겸비되어 있어 한번 시청을 시작하면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그러나 그 드라마가 전하는 얘기는 잔인하고 폭력적이기 그지없다. 돈이라는 목적을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잔혹성이 지나쳐 외국의 일부 시민 단체는 청소년 시청 금지 등 규제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 점은 지난해 비영어권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영화상을 수상한 기생충 역시 마찬가지이다. 폭력과 기만이 난무하고 빈부간의 갈등과 대립이 끝없이 묘사되는 점은 시청자들에게 씁쓸한 뒷맛을 안겨준다. 물론 드라마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외국의 작품들도 폭력과 갈등을 강조한다. 할리우드 영화 헝거 게임은 오징어 게임과 유사하게 생존을 위해 죽고 죽이는 스토리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정의가 승리하는 해피엔딩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대개의 할리우드 작품들이 이러한 결말을 통해 절망 속의 희망, 어둠 속의 빛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어둡고 절망에 가득 찬 한국 드라마의 결말을 보고 외국인들은 아마 이것이 한국의 실상이라고 느낄 것이다.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K-팝은 물론 밝은 희망을 주로 얘기한다. BTS의 히트곡들은 대개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들은 유엔 무대에까지 서서 환경과 인권 등 긍정적인 가치를 전파했다. 그러나 동시에 K-팝은 여러 가지 스캔들로 얼룩져 있다. 인기 아이돌의 마약이나 성범죄 등 일탈 행위가 심심치 않게 터져 나온다. 또 인기를 위해 군인처럼 훈련받고 모든 것을 희생하는 아이돌의 모습도 보도된다. 이런 점들은 국내 팬들뿐 아니라 해외 팬들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어 한류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결국 소프트 파워의 3대 요소인 문화, 국내 가치, 대외 정책에 있어 아직은 한국이 미흡하단 얘기이다.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타국과 비교해서 아직 못 미친다는 얘기지 이 분야에서 그간 한국이 이뤄놓은 성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세 가지 모든 면에서 지난 수십년간 한국은 많은 발전을 거두었고 그 결과 이제는 소프트 파워 강국이라는 평가를 제법 받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들 평가에 우쭐하고 자만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처럼 결국 승부는 끝까지 가보아야 아는 것이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 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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