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 북·​중의 시선] 전략적 딜레마에 빠진 중국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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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섭 전 주중 공사, 전 주선양 총영사
입력 2021-05-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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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의 문재인-바이든 한·미 정상회담은 북한핵 문제의 해결과 한·미·중 관계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보여주었다. ‘북한의 비핵화’를 넘어선 ‘한반도의 비핵화’를 목표로 설정하는가 하면, 기존의 문재인-김정은 남북한 합의와 트럼프-김정은 싱가포르 선언을 바탕으로 남북 관계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미·중 관계에서는 한·미 공동선언 최초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협력하기로 명시하고,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철폐함으로써 중국 견제에 획기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본지는 바이든 시대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 변화를 진단, 전망해줄 전문가 7명의 초대칼럼을 마련했다. 그 두번째 칼럼은 신봉섭 전 주중 공사, 전 주선양 총영사가 맡았다. 신 총영사는 현재 한림대 객원교수로 동북아 국제관계와 북·중관계 등을 강의하고 있다. <편집자 주>
 

신봉섭 전 주중 공사, 전 주선양 총영사 


지난 22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선언은 한반도 외교의 불확실성을 지우고 동북아 질서에까지 파급 영향을 가져올 전망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의 파열음 해소를 넘어 ‘가치를 공유하는 책임동맹’으로서 신기술과 글로벌 영역으로 협력의 외연을 확장하는 성과를 남겼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반발을 잠재우고 실질적인 남북관계와 비핵화 진전을 보여줘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북핵 해법에 있어 바이든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확고히 하면서도 북한의 약속이 있어야 만남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성 김 대북특별대표 임명으로 대북 관여정책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힘을 실어주면서 새로운 북핵 외교전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이에 공동선언의 대북 함의와 파급 영향을 △한·중 관계 조정 △비핵화 진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 변수와 한·중 관계 : 중국의 반발

중국 정부는 공동선언에 대만∙남중국해 문제가 포함된 데 대해 내정간섭으로 용납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미∙중 갈등에서 중립을 유지하던 한국정부가 미국 쪽으로 기운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서 비롯된다. 지난달 미·일 정상회담에 대한 거친 반발에 비하면 수위가 낮은 편이지만, 일부 전문가는 제2의 사드 보복과 같은 후폭풍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공동선언을 보면, 전략적 모호성을 고수하던 문재인 정부가 돌연 미국의 중국 견제에 호응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지난 3월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담까지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다. ‘중국’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대만해협, 남중국해 영유권, ‘쿼드’ 중요성 인식,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 핵심기술 수출통제 협력의 중요성, 민주적 가치에 따른 공급망 조성 등이 거론됐다. 쿼드 가입은 아니지만 결국 사안별 협력이라는 제한적 편승을 선택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중국이 고수하는 핵심이익 또는 민감한 이슈가 두루 언급된 만큼 어떤 식이든 한·중관계에 영향이 미칠 것이다.

물론 당장 노골적인 반감으로 표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불장난 말라'는 즉각적인 반응은 국내용일 수 있다. 중국으로서는 과거 사드(THAAD) 보복으로 한국 내 우호 여론을 반중(反中)으로 돌려놓았던 실착을 반복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제2의 사드식 압박은 한국을 더욱 ‘쿼드’에 밀착하는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다. 2017년 중국의 사드 제재는 결국 ‘중립지대’가 될 수도 있던 한국을 미국 진영으로 떠밀어서 한반도 ‘레버리지’ 손실을 자초했었다. 또한 강대국으로 부상하려던 국가 이미지를 깎아먹는 손상을 입었고, 미·중 전략경쟁에서 ‘국제고립’이라는 부메랑으로 돌려받았다. 한국에는 치명적인 경제 타격을 입히지도 못하고 오히려 주변국에 경계심을 높이는 ‘학습효과’를 불러왔을 뿐이다. 2015년 61%에 달하던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사드 갈등으로 급락한 이래 최근 조사에서는 일본과 비슷한 26.3%까지 하락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외교부는 중국과 내부적 소통을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지며, 또한 중국도 한국의 입장과 노력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5월 30일 ‘2021 녹색미래(P4G) 서울 정상회의’에 중국 최고위급인사의 참가 계획에 변동이 없다는 점은 일단 우려 해소에 긍정적이다.

바이든 정부의 북핵 해법은 유효한가?

바이든 정부의 대북 입장은 기조와 원칙·방향 정도만 공개했을 뿐, 외교적 관여방식이나 대화의 형식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적대시 정책 철회나 제재 완화에 대한 선물은 없었지만 싱가포르 합의 계승, 적대가 아닌 해결, 최대한의 유연성 등 호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지난 시기 대북정책에서 경험한 교훈을 진지하게 인정한 점은 고무적이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접근방식에도 동의한 셈이다. 북한으로서는 당장 대화에 나설 인센티브가 없어 계산이 복잡할 것이다.

중국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구상에 “건설적 역할을 다할 것”이라며 기대를 표명했다. 지난 4월 한반도사무특별대표에 유연한 전략파 인사인 류샤오밍(劉曉明) 전 주영국 대사를 임명했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 관여에 중국도 동참할 의지를 보여준다. 미∙중 간 북핵 관련 대화 가능성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따라서 중국의 대북 소통채널을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가 처한 국내외 환경이 북한문제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각종 국내문제 해결이 시급하고, 국제문제에서도 기후변화, 코로나19 대응 등 무너진 국제 리더십 회복과 격화된 미·중 전략경쟁에서의 우위 확보가 우선이다. 실제로 지난 3월 블링컨 국무장관이 발표한 바이든 행정부의 8대 외교전략 핵심과제에는 북핵 문제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한 외교를 통한 북한의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북한의 대응 태도와 북·미 대화 전망은

북한은 일단 관망 모드에 들어갔다. 침묵은 고민의 흔적이지만, 다음 행보를 치열하게 준비 중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북한은 미국의 진의 파악과 실제적인 행동을 지켜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 아쉬운 쪽이 북한인 만큼, 머지않아 북·미대화에 복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것 같다. 일단은 제재 완화를 목표로 부분적 대화 재개가 가능하고, 언제든 실무급 회담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미국이 먼저 이행 수단을 꺼내지 않고 “북한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겠다”며 지연시킬 경우, 결국 ‘인내 전략’이 되어 대화 부재 고착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 부분에는 우리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실패한 북한은 대미협상 지렛대를 찾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에 접근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이루어진 것이 없다. 러시아는 여력이 없고, 중국은 대북 계산법이 바뀌었다. 중국에 호의를 보냈지만 돌아온 건 수사(rhetoric)만 무성할 뿐 실질적인 선물은 없었으며, 양국관계의 밀착을 보여주는 어떤 극적인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우호관계가 회복된 현재도 중국의 본격적인 대북진출이나 투자는 전혀 없다. 유엔 대북제재 동참도 여전하며, 코로나 국경 봉쇄에 따른 무역 단절로 북한 내부 경제상황이 삼중고(경제제재, 자연재해, 코로나19)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일부 비료 지원 이외에 대규모 경제지원에 나서는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북한과의 동맹에 엮여서 ‘연루의 위험’에 빠질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이 같은 상황은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정책에 창의적인 접근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다. “조건만 맞으면 비핵화할 수 있다”는 북한 입장과 그 ‘조건’의 실체를 꿰뚫어 근본적인 한반도 평화체제의 틀을 마련하는 해법이 요구된다.

단기적 해법과 장기적 관리의 병행

미∙중 간 적대적인 전략 경쟁 속에서도 기후변화와 코로나19 그리고 북핵의 평화적 해결은 협력이 가능한 부분이다. 우리 정부는 북핵 중재 과정에서 미∙중 갈등의 완충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한·미 정상회담이 북핵과 한반도 안보에 미칠 파급영향에 따른 대비 과제를 숙고해 보자.

첫째, 북핵 해법의 단기 과제이다. 이제 남북 및 북·미 대화 재개의 모멘텀은 마련됐다.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면 완전한 비핵화로서의 최종 출구는 확고히 하되, 입구에 대해서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는 결국 북한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선에서 단계적 접근이 불가피할 것이다. 협상 이슈를 잘게 쪼개는 북한 살라미 전술의 함정을 경계해야 하겠지만, 2·3단계로 압축한 단계적 접근은 실질적 진전에 유리할 수 있다. 비효율적인 6자회담의 틀도 단계적 접근 프레임에 맞추어 전면 쇄신과 재편이 필요하다.

둘째, 한·중 관계의 관리 방향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 약화에 따른 ‘방기(abandonment)'의 위험이 해소된 반면, 그에 따른 ‘연루(entrapment)'의 위험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는 점에 주의가 필요하다. 미국이 한·미동맹에 중국 봉쇄와 견제 역할을 부여한다면, 이는 혜택 못지않게 큰 손실을 수반할 수 있다. 한국의 지정학적 입지를 고래 싸움의 새우로 폄하하는 비유법은 어리석다. 미국의 대중국 노선이 대립·경쟁·협력 세 방향으로 진행되는 만큼, 우리도 미∙중 협력부문에는 적극 동참하고, 경쟁과 대립부문에는 국익에 근거한 전략적 대응이 요구된다. 분야별·이슈별로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창의적 공간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셋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안착을 위한 인식 전환이다. 북한과의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체제 보장이라는 조건이 전제되지 않는 한 북핵 해결은 요원하다. 또한 강한 결집력으로 뭉친 북한체제의 지배연합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기득권 이익이 현상 변경에 따른 이익보다 더 확실하고 유리한 이상, 그들 기득권이 순순히 권력을 내려놓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핵과 북한문제를 분리하여 대응하는 것은 어떨까? 북핵은 미룰 수 없는 현안으로 위기관리 차원에서 해결하되, 북한문제는 긴 호흡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통일은 장기적 과제로서 종합국력과 지속 발전의 경쟁력에 바탕을 둘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로서는 길게 전략적인 우회 방법을 병행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북한 정권이 직면한 딜레마를 정확히 간파할 때 거기에 해답이 있다. 중국은 북한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전략가치를 중시한다. 미국이 구축해 놓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중국이 제시하는 ‘신형 국제관계’ 사이의 질서경쟁에서 한국의 전략 가치는 오히려 더 커졌다. 미국과의 신기술 협력은 그 징표다. 중국도 미국의 포위 압박을 저지하기 위해 한국을 필요로 한다. 그만큼 넓어진 입지를 통찰하는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미동맹은 그 핵심 축이고, 중국과의 연대도 필요하다. 지난 시기 국민국가 시대의 인식과 처방으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전환에 대처할 수 없다.

신봉섭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중문학과 △대만정치대학 동아연구소 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박사 △주중국 공사 △주선양 총영사 △한림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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