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석 감독의 인생, 극장] '흑인 오르페' 세상을 보는 눈

최송희 기자입력 : 2020-11-26 10:52

영화 '변호인' '강철비' 시리즈를 만든 양우석 감독[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의 힘은 세다. 한 편의 영화는 누군가에게 좌표이자 안내서가 되기도 한다. 저마다의 이유, 저마다의 감성이 담긴 한 편의 영화. <인생, 극장>은 감독들의 '인생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다. 감독들의 인생, 그들의 작품에 영향을 미친 작품은 무엇일까? 영화 '변호인' '강철비' 시리즈를 연출한 양우석 감독에게 물었다.

"중학교 1학년 때쯤인가 영화 '흑인 오르페'를 보았어요.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이에요. 당시 전 흑인만 나오는 영화를 처음 보았기 때문에 충격이 엄청났죠. 게다가 영어를 쓰지 않는다니! 호기심을 자극했어요."

양우석 감독이 인생 영화로 꼽은 작품은 마르셀 까뮈 감독의 '흑인 오르페'(1959)다.

정열적인 브라질 축제 카니발의 전야제가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 언덕에 자리잡은 한 마을. 축제를 앞두고 모두가 들뜬 분위기다. 자신을 죽이려는 누군가를 피해 도망친 에우리디쎄(마르페사 돈)는 사촌 세라피나(레아 가르시아)를 찾아온다.

시내 전차 운전사인 오르페(브레노 멜로)는 마을 사람들의 우상이다. 에우리디쎄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그의 노랫소리에 반하게 되고 짧은 시간 순수한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오르페에게는 이미 약혼녀 미라(루르데스 데 올리베이라)가 있는 상황. 두 사람의 마음은 점점 더 애틋해져 간다.

밤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삼바에 흠뻑 취한다. 에우리디쎄도 오르페와 함께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때 죽음의 탈을 쓴 한 남자가 에우리디쎄를 찾아내고 그녀는 엄청난 공포에 휩싸인다.

한편, 세라피나는 남자친구와 함께 있기 위해 에우리디쎄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 카니발에 참가하게 한다. 세라피나는 죽음의 가면을 쓴 자가 유리디스를 죽이러 온 것을 보고는 도망가라고 소리치려 하지만, 카니발의 소란스러움과 군중들의 소리에 에우리디쎄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결국에우리디쎄는 죽게 되고, 오르페는 그의 시신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 광경을 본 약혼녀 미라는 분노하며 온갖 욕설을 퍼붓고 돌을 던진다. 돌에 맞은 오르페는 에우리디쎄를 안은 채 벼랑에 떨어져 죽고 만다.

[사진=영화 '흑인 오르페' 포스터]


"할리우드 서부극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다가, '흑인 오르페'를 보니 또 다른 세상이 열리더라고요. 굉장한 호기심을 느꼈어요. 영화가 세상을 보는 창 중 하나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알게 모르게 배워가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언어, 문화, 흑인 배우들을 보면서 넋을 잃었어요. 어마어마한 감동과 재미 그리고 흑인 표현주의적 사랑이 강렬하더라고요."

양우석 감독의 말처럼 영화 '흑인 오르페'는 영화사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다. 아름다운 항구 리우데자네이루를 배경으로 비극적인 남녀 간의 사랑을 현실감 있게 그린 이 영화는 브라질과 카니발 문화를 소개하고 현대적인 물질문명에 휩싸이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원시적인 혈통 흔적을 담아냈다.

"'흑인 오르페'에 영향을 받았지만,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지는 않았어요. 당시 우리나라 영화는 에로 영화 산업이 크게 발전할 때였거든요. 방송국 PD 시험에 합격했지만 제게 목표는 영화 연출이었어요. 디지털, 기술, 투자 심사 등을 전전하다가 포기했던 영화 연출에 도전하게 된 거죠."

'흑인 오르페'는 양우석 감독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선물했다. 그가 작품을 만드는 방향을 안겨준 셈이다.

"앞으로 제가 몇 작품을 더 찍을지는 모르겠지만, 늦게 시작한 만큼 남다르게 가야 하지 않나 싶어요. 남들보다 어려운 소재, 어렵게 찍어야 그나마 제가 받은 관심에 보답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영화 '흑인 오르페'는 1959년 제12회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제3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 영화상을 각각 받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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