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8차' 누명 씌운 형사, 남일 말하듯 “그럼 잘못된 거죠”...죄책감 없는 듯

신동근 기자입력 : 2020-08-12 09:57
재판 말미에서야 겨우 '미안하다' 사과... '다른 형사가 그랬다' 회피성 발언도 '사과했다'는 언론보도는 전체적 분위기와는 크게 다른 것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 확인된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을 담당했던 당시 형사가 법정에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법정에서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재판부, 검찰, 변호인까지 합심해 추궁하자 마지못해 “그럼 잘못된 거죠”라며 남일 말하듯 잘못을 인정했다.

11일 수원지법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사건 재심 4차 공판에서 화성 8차 사건 담당 형사였던 심모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열렸다.

이날 심씨는 대부분의 질문에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로 대답했다.

그는 31년 전 윤씨를 임의동행으로 데려간 뒤 사흘간 잠을 재우지 않고 조사하고, 윤씨의 진술과 관계없이 기존의 수사보고와 고인이 된 최모씨(당시 심씨의 부하)의 진술서를 토대로 사실관계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조서를 작성한 의혹을 받는다. 심씨는 윤씨를 검거했다는 공을 인정받아 한 계급 특진했다.

윤씨 측 변호인은 심씨가 작성한 조서에는 “범행을 더 늦게 들키고자 피해자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나왔다는 등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있다”며 “심씨는 아주 능력있는 엘리트로 주위에서 여겨졌다. 조서를 잘 만들었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적은 조서로 판사까지 완벽히 속였다”고 지적했다.

또 변호인에 따르면 심씨가 작성한 조서엔 윤 씨가 일하던 공업사 주인 홍모씨가 함께 입회했다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지난 재판에서 홍씨는 이 과정에 입회한 적이 없고 오히려 “자백을 했다고 해서 가봤더니 (임의동행) 하루만에 가족처럼 지내던 나를 못 알아보는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윤씨도 보호자나 법률 조력자와 함께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심씨는 자신은 허위로 작성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변론했지만 재판부가 '(증인인) 홍씨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고 묻자 태도가 돌변해 침묵했다.

조서에 대한 질문이 계속 이어지자 심씨는 기억이 대부분 안 난다고 발뺌했다. 결국 변호인이 당시 진술조서 등 증거를 보여주자 그때서야 “그런 건 잘못됐네”라고 자신은 별 관련이 없다는 듯 말하기도 했다.

이어 변호인이 '피해자 측 가족의 진술도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기억 안 난다. 내가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 아닌데 그건 아닐 것 같다”고 부인했다.

폭행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동료에게 떠넘기기도 했다. 함께 근무하던 “최씨가 윤씨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는 식이었다. 

변호인이 모든 잘못을 타인에게 돌리는 것이냐고 추궁하자 '그건 절대 아니다'면서도 “폭력으로 자백을 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공명심에 (성폭행 가해자인) 윤씨를 때렸다고 생각했다”고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으로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이후 “폭력으로 자백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이 사건에서 최씨가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사실상 앞선 진술을 뒤집기도 했다.

이에 변호인과 검찰은 각각 한 차례 이상 '위증의 죄'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누명을 썼던 피해자 윤씨는 중간중간 그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고, 재판 휴정시간에는 “새파란 거짓말을 한다”고 말하며 화장실로 이동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심씨는 “당시에는 현장 체모에 대한 국과수의 방사성동위원소 감정 결과가 있어서 윤씨를 범인이라고 100% 확신했다”며 이런 확신 때문에 윤씨가 장애인이라 범행이 어렵다는 등 다른 상황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변론했다.

한편 이날 변호인 측은 신문이 시작되기 전 ‘진정한 사과의 기회는 지금뿐’이라며 미국의 검사가 잘못된 수사로 억울하게 옥살이한 피고인에게 사과하는 영상을 보여줬다.

재판 말미에 윤씨가 국민에 대해 사과를 할 생각이 없냐고 심씨에게 묻자 “내가 왜 국민한테...”라고 말하면서도 “윤씨에게 죄송하다. 저로 인해서 이렇게 된 점에 대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앞서 8차 사건과 관련된 핵심 증거물인 체모 2점에 대한 국과수 감정결과에 대한 회신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해당 체모는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것으로 이춘재와 윤씨의 체모와 각각 비교된다.  

변호인 측은 "법원에 정식으로 회신서가 도착하면 그때 의견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재심 5차 공판은 이달 24일 증인신문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1989년 7월 25일 윤씨를 임의동행하기 위해 윤씨가 있던 농기구 수리센터에 심씨와 함께 찾아간 경찰 장모씨다.

이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발생했다. 박모(당시 13세)양이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과거 이 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씨는 이후 감형돼 수감 20년 만인 2009년 8월 출소했다.
 

이춘재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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