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뉴스풍경'] 코로나19시대의 벚꽃 거리두기…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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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20-03-2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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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제주시 전농로 일대의 벚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매년 전농로에서 열리던 벚꽃축제는 취소됐다. [연합뉴스]




전염병은 바이러스일 뿐이다. 그것은 과학으로 관찰되고 의료 기술로 막을 수 있는 것일 뿐이며 생물과 무생물의 특생을 가진 기이한 반생명체일 뿐이다. 코로나19는 정치나 경제나 종교나 풍류나 스포츠와 같은 인간적인 관심사와 당연히 무관하다. 남녀노소를 가리지도 않고 국가를 가리지도 않는다. 외교적 배려의 대상도 아니지만 종교적 소신으로 이길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문명이 더 유리한 것도 아니며, 대범하게 여겨 풍류를 기탄없이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과학전문가는 이런 말을 했다. 코로나19는 포유류를 숙주로 삼아 숙주의 복제시스템을 활용하여 자신의 유전체를 복제하고 증식한다. 숙주가 없으면 그냥 단백질과 핵산의 덩어리인 무생물 상태로 존재한다.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은 포유류의 몸일 뿐이다. 그것은 어디로 들어갈 곳이 없나 하고 기웃거리는 먼지같은 존재다. 포유류에 들어오는 순간 생물체가 되어 살아있는 행위를 시작한다. 코로나19는 굳이 인간에게 들어오고자 하는 뜻도 없었다. 침팬지 비슷한 것이 있길래 들어와본 것이고, 여전히 침팬지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경남 쌍계사 십리벚꽃길, 하동 벚꽃축제는 인간의 봄날이 왜 낙원인지 무수한 꽃송이들이 하늘거리며 말해주는 시한부의 풍류다. 바이러스 시절에도 꽃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피어나 기탄없는 빛들을 내보낸다. 다만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가장 두려워진 사람들이 자진해서 축제를 철회하고 "오지마소"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한 시절의 꽃같은 매출을 포기하기는 했지만, 오는 손님을 막고 외면해야 하는 축도 속눈물 안 흘릴 리 없기에, 그래도 오는 고집스런 풍류객들을 내쫓진 못했다. 그러다가 사달이 났다. 벚꽃이 숙주가 된 게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전해준 것이지만 사람들을 부르고 모은 것이 꽃들이니 지금은 그것들마저 유죄로 느껴지게 됐다.

십리벚꽃을 구경할 엄두도 못낸 사람들은, TV에 등장하는 확진자들의 뉴스로 무인벚꽃의 고즈넉한 근황을 구경한다. 저토록 간드러지는 꽃잎과 저토록 흐드러지는 연분홍 치마가 저홀로 봄날은 간다고 소리치는 모니터 속에서, 문득 손택수의 시집 제목이 떠오르는 것이다.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벚꽃은 흰 꽃도 아니고 붉은 꽃도 아니며, 그렇다고 엄밀히 말해 분홍도 아니다. 꽃술을 감춘 꽃속이 피밴 붉음을 살짝 드러낼 때 모시적삼처럼 여린 흰빛들이 그것을 서둘러 감췄다 말았다 하면서 내는 빛깔이기에 무엇이라 말할 수 있는 빛이 아니다. 햇살이 귓등을 비춰 흰빛이 붉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바이러스가 사람인지 침팬지인지 가리지 않듯 꽃들도 상춘객이 오든 오지 않든 가릴 이유가 없다. 제풀에 환장하는 포즈로 바르르 떨며 짧디짧은 화양연화를 누릴 것이다. 손택수의 물음에 실없이 내가 오늘 대답해야겠다. 

"무인천지유다앵無人天地猶多櫻, 붉은빛이 더합니다그려."

                                    이상국 논설실장
 

독일 베를린에서 22일(현지시간) 벚꽃이 만개하자 한 여성이 거리로 나와 사진을 찍고 있다. 독일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위해 시민들에게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집에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협조가 이뤄지지 않자 바이에른 주(州)는 이날 외출제한령을 발동했다. [베를린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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