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의 낱말인문학]'사회적 거리두기'란 말은 엉터리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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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20-03-1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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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방역 중인 구로지하철 역사.



'인간'이란 말은 '사람 사이'란 뜻인데

요즘만큼 '인간(人間)'이란 말이 실감나는 때도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을 가리킬 때도, '사람(人) 사이(間)'란 뜻의 이 말이 쓰이는 건 의미심장해 보인다. 인간이 혼자만으로 살 수 없다는 절박한 깨달음이 그 말에 숨어있는 듯 하다. 혼자만으로 살 수 없다는 그 운명같은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그 거리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이 문제는 스스로 정해야 하는 문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설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핏줄이나 가족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생물학적인 지근거리'를 말하고 있고, 사랑과 증오 같은 다채로운 감정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리학적인 거리'를 상징하고 있으며, 마차나 기차나 자동차는 그 거리를 좁히는 핵심 수단이며, 디지털 속의 모든 기술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새로운 거리'에 대한 제안들이며, 이웃이나 인접국가 간에도 가깝기 때문에 생기는 '거리의 감정'이 만들어진다. 부부간에도 서로의 '거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가 평생의 과제다. 종교는 신과 인간의 거리, 삶과 죽음의 거리에 대한 믿음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깨닫게 된 것 중에, 세상의 모든 유통, 쇼핑, 모든 집단행동, 모든 사회행위들, 다양한 즐거움들, 모든 모임들, 온갖 놀이들이 사람과 사람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점도 있다. 무자비한 전염병은 그 '거리'를 불심검문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로에 바이러스를 개입시켜 놓았다.

아직도 이 바이러스를 박멸할 온전한 방법을 찾지 못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격리'다. 사람 사이를 떼어놓는 것이다. 이 단순해 보이는 조치는, 처음에는 쉬워 보였지만 갈수록 인간의 생활 전반을 위축시키고 마비시키고 비정상적인 상태에 빠지게 한다. 사람이 사람을 통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인간경제의 대부분의 동력은 사라지고 인간은 저마다 자신을 격리한 채 무기력하게 버티며 이 전염병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에드워드 홀]



전염병 와중에 생겨난 '사회적 거리두기'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나치게 가깝거나 먼 것을 경계하고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사회생활의 지혜처럼 여겨져 왔다. 담담한 관계를 강조하는 것 또한 서로 '잊히지 않고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노하우를 칭찬하는 말이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가. 좋으면 자꾸 가까워지고 싶고 싫으면 하염없이 멀어지고 싶은 심정을 절제해야 하니 말이다.

전염병의 와중에,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란 기묘한 표현이 일상에 등장했고, 사람들이 모이는 일체의 사회생활을 자제하는 행위를 그렇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전염병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만큼의 거리를 만들어 방역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존에 쓰였던 '사회적 거리'라는 개념은 그런 뜻과는 조금 다르다. 미국의 사회학자 R.E.파커가 제시한 의미는 이렇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공간에서 두 지점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거리로 설명할 수 있다. 친구 간의 거리와 지하철을 함께 타는 사람 간의 거리 중에서 어느 관계의 거리가 가까운지를 설명하는 방법이다. 생산과 소비가 통합된 농촌의 가족과, 그것이 분리된 도시민의 가족을 비교했을 때 농가가 훨씬 '사회적 거리'가 가깝다는 식이다.

다른 개념의 '사회적 거리'도 있다. 보가더스(Bogardus)의 거리라 불리는 이 연구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호오의 태도를 다루고 있다. 보가더스는 1,725명의 미국인 피실험자에게 40가지 종류의 이주민에 관한 설문을 했다. 이들에 대한 심정적 거리를 묻는 질문이었다. 이들을 당장 추방해야 하느냐, 방문만 허용해야 하느냐, 시민으로 허용해줘야 하느냐, 미국에서 직업을 갖는 것을 허용해야 하느냐, 학교 친구로서 지낼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느냐, 이웃으로서 지낼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느냐, 직장동료로서 지낼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느냐, 결혼을 통해 가족이 되는 것까지 허용해줘야 하느냐 따위의 문제들이다. 이런 허용의 범위는, 이민정책에 대한 국민여론을 분석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이주민에 대한 미국인의 '거리감'(차등적 인식)을 표현하는 잣대로 쓰인 말이다.

에드워드 홀의 사회적 거리 1.2m~3.6m

지금 가장 실감나는 사회적 거리는,  에드워드 홀(Edward Twitchell Hall, Jr. 1914~2009)의 소셜 디스턴스(social distance)가 아닐까 한다. 그의 책 '숨겨진 차원(The Hidden Dimension)'에서는 인간관계를 4가지의 거리(distance))로 분류하고 있다. 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는 가족이나 연인 사이의 거리로 0~46cm 정도의 거리다. 착 달라붙어있거나 아주 조금 떨어져 있는 것이 편안한 관계라 할 수 있다. 개인적 거리(personal distance)는 친구나 지인 간의 거리로 46cm~120cm 정도라고 분석한다. 서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면서 대화를 나누기에 좋은 사이다. 공적인 거리(public distance)는 360cm 이상이며, 연설이나 강연을 할 때 필요한 거리다. 공연을 할 때 무대와 객석 사이도 이 정도는 띄워져야 한다.

개인적 거리와 공적인 거리 사이에,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가 있다. 보통 사회생활을 할 때, 공공장소에서 대개 유지하고자 하는 거리이다. 120cm~360cm 정도가 된다. 이름은 '사회적 거리'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공공시설에서 이 거리를 유지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각종 집회나 행사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이 거리를 유지하면서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무실 내에서의 생활이나 시장이나 백화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에드워드 홀이 제시한 '사회적 거리'는 자연스럽게 유지하는 거리가 그렇다는 것이지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이 거리가 편한 까닭은, 개인의 공간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염병 시대에 갑자기 권장되기 시작한 '사회적 거리'는 개인적인 공간 여유를 위한 거리가 아니라, 전염병이 비교적 직접 전염되기 어려운 정도의 거리를 의미하게 됐다. 일종의 공간 격리 개념으로서의 '사회적 거리'다. 그런데 용케도, 전염병 격리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2m가 에드워드 홀이 말한 사회적 거리 속에 들어있다. 이 학자가 족집게인 게 아니라, 우연히 맞아떨어진 거리가, 이 낱말의 개념을 살짝 바꿔 되살아나게 한 셈이다. 어쨌든, 이제 사회적 거리는 인간이 자연스럽게 공공적인 장소에서 공공활동을 하면서 유지하려고 하는 심리적 거리가 아니라, 전염병 방역을 위한 의무적 거리가 되었다. 이걸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표현으로 함부로 써도 될지는 의문이다.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치유

이와는 조금 다른 각도이지만,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연극론에서 제시한 '거리두기'라는 개념이 있다. 심리치료에서 정신적 외상을 입은 환자가 그 외상에서 거리를 두기 위해 미술활동 같은 것을 하면서 강력한 정서로부터 거리를 두는 방식이다,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환자는 자신을 객관화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최근에 회자되는 '사회적 거리 두기'는 브레히트도 예상 못했을 만큼 본질적인 자기 객관화를 가능케 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저마다 각자 고립되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모든 관계들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기회가 생겨났다. 또한 모든 삶의 행위들과 그로해서 빚어지는 감정들의 정체가 '거리를 좁히는 일'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친밀과 애정, 인간의 증오와 혐오와 설움 같은 것들 또한 사람 사이에 생겨난 '거리'들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너울이었음도 알게 된다.

학습도 거리이며 존중도 거리이며 신앙도 거리이며 생각도 거리이며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무언가를 향한, 혹은 무언가에서 벗어나는 거리를 만드는 행동들에 불과했다는 것도 자각하게 된다.

콩글리시의 쇄도, 유식한 체 하는 무식

'사회적 거리 두기'보다 더 마땅한 말을 찾기 어렵기에, 아무도 다른 말을 제안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말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우선, 이 행위는 전염병의 공포에서 생겨난 것으로 자발적인 '거리 두기'가 아니다. 사회적 거리를 둔 것도 아니고, 생물학적 거리를 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거리'를 둔다는 말은 생물학적 거리를 두는 것보다 훨씬 인간관계를 삭막하게 하는 말이다. 단순한 접근이나 소통을 자제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활동으로서의 관계 형성 자체를 거부한다는 뉘앙스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정부나 매스컴이 내놓는 용어 중에는 막 지은 티가 나는 '콩글리시'나 정체불명의 말들이 보인다.  '유식한 체 하는 무식'에 가까운 졸속어의 남발이다. 방역이 급하니 깊이 생각할 겨를 없이 내놓는 사정은 이해하지만, 언어는 한번 박히면 수정도 삭제도 어렵다. 공적 마스크(public mask)라는 말은 마스크 하나를 놔두고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대여해 같이 쓰는 듯한 함의가 느껴진다. '마스크 5부제'나 '마스크 배급제'같은 말도 논란이 많다. 우선 5부제에 들어있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지 않는가. '사회적 거리 두기'도 비슷한 경우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면 그냥 단순하게 '2m 거리두기'로 했으면 개념도 쉽고 그 방법도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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