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칼럼] 무관중.백마.금강산...김정은의 연말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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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 2019-10-3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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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북한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지난 10월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 결렬 직후, 북한은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지 않고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를 버리지 못한 것”을 강력히 비난했다. 그로부터 열흘 후인 15일, 북한은 평양에서 열린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남북 축구경기를 ‘무관중·비중계’ 경기로 만들어버렸다. 해외에서는 이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축구 더비”라고 보도했지만, 우리의 혼란은 더 컸다.

그 다음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는 사진을 공개하였다. 그는 ‘자기 객관화‘를 하지 못하는 지도자라는 촌평을 받으면서도 세계의 이목을 끌어오는 데는 성공하였다. 이것이 ‘미국을 향한 메시지’일까, 북한 주민들에 대한 정치적 선전일까, 우리에 대한 관광홍보일까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했다. 마침 북한을 ‘극장국가’로 규정한 연구를 읽고 토론하면서 필자가 학생들에게 ‘텅빈 축구장’과 ‘백마 탄 지도자’ 중 어떤 것이 더 충격적인 이미지인가를 질문하였을 때, 대부분의 학생들은 후자에 손을 들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23일, 김 위원장은 금강산 관광지구에 나타나 거친 말투로 과거에 사용했던 시설들을 정리할 것을 주문했는데, 묘하게도 남한 당국과 합의할 것, 그리고 “남녘 동포들이 오겠다면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다시 한번 그의 속마음이 무엇인까를 헤아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24일부터는 북한의 고위 당국자들이 ‘연말 시한’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이 어떻게 이번 연말을 지혜롭게 넘기는가를 보고 싶다”는 김계관 외무성 고문의 담화에 이어, 27일에는 김영철 아태평화위원장이 “미국이 자기 대통령과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관계를 내세워 시간끌기를 하면서 이해 말을 무난히 넘겨보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망상”이라고 밝혔다. 29일에는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나섰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그는 “조선반도 정세가 긴장완화의 기류를 타고 공고한 평화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일촉즉발의 위기로 되돌아가는가 하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 대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면서 동시에 우리 정부에 대해서도 “민족의 공동이익” 앞에서 “자기의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였다.

얼핏 보면 어색하고 투박하며, 때로는 초조한 것처럼 보이는 북한의 메시지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상당히 일관성과 진정성을 가지고 현 상황을 대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더 이상 북한을 궁지로 몰면 그들의 속성상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심지어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도 북한의 거듭되는 ‘연말 시한’ 언급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입장에서 보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하여 문제해결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잔뜩 높여 놓았는데, 실제로 얻은 것은 없다. 현재의 북한 내부의 사정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식량문제도 그렇고, 유엔제재 때문에 해외에 나가 있는 북한 노동자들도 올해 연말까지는 돌아가야 한다. 비록 단기 비자로 중국이나 러시아에 나와 있는 북한 노동자들이 일을 계속하고는 있지만 타격이 심하다. 그러나 큰 변화없이 유엔 제재가 지속되면 북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불만도 커지게 되고, 제재효과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들도 우리를 편하게 놓아주지 않는다. 주한미군 주둔비용뿐 아니라 전략자산의 전개비용까지 언급하고 있으며, 심지어 동맹을 내세워 미군의 해외활동에 한국군도 함께해야 한다는 압박카드를 흘리고 있다. 한·미동맹의 성격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초점은 금강산관광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문제로 모아진다. 지난 30일 금강산관광 재개 범강원도민운동본부는 전국 규모의 관광객을 모집해 금강산 개별관광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호응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미가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정부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결단의 시기를 놓치면 더 큰 어려움이 다가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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