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판문점 '번개' 그후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 속도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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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19-07-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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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외신기자들은 한국전쟁 이후 근 70년 세월 동안 남북한을 분리시켜 온 휴전선 비무장지대(DMZ)를 설명할 때 '냉전의 마지막 전선(the Cold War's last frontier)'이라는 수식어를 자주 사용한다. 이름은 비무장지대이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군사 요새화된 지역으로, 항상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역력하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오늘날의 DMZ를 탄생 시킨 곳이 판문점이다. 

원래 이름이 '널문리'였으나 정전회담에 참석했던 중공군 측을 배려해 '반먼디엔(板問店)', 즉 판문점이라는 지명이 탄생했다. 판문점은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  JSA)이다. 유엔군과 북한군이 공동으로 경비하기 위해 군사분계선 상에 인위적으로 설정된 지역으로 예전에는 양측 군인들이 자유롭게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다. 그러나 1976년 8월 발생한 북한군에 의한 도끼만행 사건으로 JSA 안에서도 상대방 지역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JSA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유엔군 측 초소 앞에서 한국인 노무자들의 미루나무 가지치기 절단작업을 감독하던 미군장교 2명이 도끼와 쇠망치를 휘두르는 북한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후, 한반도는 전쟁 위기로 치달았다. 미국의 무력시위에 당황한 김일성 주석의 사과로 이 사건은 겨우 일단락 됐다. 간혹 한반도에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판문점은 남북간 왕래의 통과지점이었다. 1998년 6월과 10월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소 1001마리를 몰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는 일대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냉전의 해체로 상징되는 '20세기 마지막 전위예술'이라는 평가를 받은 당시 '소떼 방북'은 남북 경제 협력의 물꼬를 트고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인터넷]  1998년 6월 소떼 방북 당시  정주영 명예회장 


과거 리얼리티 TV쇼의 진행자로 '쇼맨십'에 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지난 30일 판문점 '깜짝' 회동은 정 회장의 소떼 방북 당시 못지않게 많은 화제를 낳고 전세계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양 정상이 의전과 경호 등의 통상적 외교 관행을 철저히 무시하고 분단과 대결의 상징 JSA에서 손을 맞잡은 극적인 장면은 전 세계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은 첫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된 트럼프. 그러나 이번 회동으로  북한의 미사일·핵 개발로 야기된 위기의 먹구름이 다소나마 걷힐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 못하고 있다.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에게 이번 김 위원장과의 판문점 '번개' 회동은 자신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주인공임을 알리고 싶은 좋은 기회였다. 국방색 재킷을 걸치고 DMZ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위협적인 언어로 북한을 압박하던 역대 미국 대통령과 달리 트럼프는 양복 차림으로 대북 화해 제스쳐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자유의 집'에서 53분간 밀담을 나누는 동안 옆방에서 대기하며, 이번 이벤트의 조연 역할을 자처했다. 그리고 트럼프의 즉흥적인 트윗 메시지를 계기로 성사된 이번 판문점 남·북·미 회동을 사실상의 종전선언으로 규정했다. 

트럼프의 이번 판문점 방문은 지난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 상태인 비핵화 협상을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판문점 '브로맨스'가 긍극적으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큰 진전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모멘텀이 된다면, 이는 트럼프의 주요 외교 치적으로 대선 캠페인에서 그에게 큰 힘을 보탤 수 있다. 그러나 TV를 통해 이번 회동을 보면서 본질적 의제인 북한 비핵화를 위한 희망적 메시지보다는 트럼프의 타고난 '쇼맨십'만 구경을 한 느낌을 가지는 것은 왜 그럴까?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번 북·미 회동에 대해 '리얼리티 쇼 외교'를 펼치며 독재자를 친구로 부르고 등을 두드렸지만 그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한 "미국 외교역사상 최악의 날 중 하나"로 비난했다.

 

김정은, 트럼프 맏딸 이방카와 인사 (서울=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는 1일 전날 판문점 회동 기록영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백악관 선임보좌관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판문점 회동에서 어떤 밀담이 오갔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조만간 북·미간 실무협상을 재개한다고 밝혀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전제로 본격적으로 양측간 이견 조율에 나설 전망이다. 트럼프가 판문점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미국 언론들의 보도 내용을 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접근에 대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북한과의 새로운 협상에서 미국의 목표가 핵포기가 아니고 핵동결로 고려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북핵 문제의 해법이 핵동결을 목표로 할 경우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으로 이는 미국의 대북 정책의 큰 전환을 의미한다. 한·미 양국은 이 보도를 강력 부인하고 있지만, 미국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진전을 위해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 등 여러가지 제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와 평화 체제의 동시적 단계적 이행을 요구하는 북측의 요구에 미국이 유연성 있게 나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북한과 실무협상을 지휘할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언급 내용이 주목을 받는다.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의 2일 보도에 따르면, 비건 대표는 지난달 30일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전용기 기내 회견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량파괴무기(WMD) 프로그램의 완전한 동결”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포기한 것은 아니라면서 “동결과 비핵화 최종 상태(end state)의 개념, 그리고 그 안에서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향한 로드맵을 논의하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그는 협상 과정에 일부 거래(give and take)의 여지가 있음을 수차례 시사하면서 북한에 양보할 수 있는 것으로 인도적 지원과 인적 교류 확대, 서로의 수도에 주재하는 것(presence) 등을 언급했다고 한다. 서로의 수도에 주재하는 것은 평양과 워싱턴의 연락사무소(liaison office)나 이익대표부(interest section)의 설치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판문점 회동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양국 관계 개선의 한 방편으로 연락사무소 개설안을 논의했을 가능성도 커 보인다. 

현재 평양에는 24개국이 대사관을 두고 있다. 영국, 독일, 스웨덴 등이 미국의 이해를 대변해 주기도 하지만 미·북간 직접 접촉은 뉴욕에 있는 북한의 유엔 대표부를 통해서 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유엔 주재 북한 외교관들이 본국의 지시 없이 자유롭게 미국과 접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면에서 준외교공관 성격인 연락사무소나 이익대표부 개설은 양국 관계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연락사무소 개설과 종전선언은 지난 하노이 회담에서 양측의 주요 의제였으나, 비핵화에 대한 이견 절충 실패로 합의문 도출에 실패했다.     

베트남은 종전 이후 20년 만에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하고 오늘날의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한 반면, 북한은 아직도 미국과의 수교 첫걸음이라 볼 수 있는 연락사무서조차 교환 못하고 있다. 사실 클린턴 행정부 당시 미국과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한반도 핵 위기 봉합에 나선다. 이때 양국은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를 합의했지만 북한 군부의 반발로 물거품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판문점 북·미 회동에 대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최근 제재 해제보다는 체제 안전 보장을 강조하고 있는데 안전보장에 대한 정치적 증표는 수교"라며 "수교로 가기 위한 연락사무소 상호 개설 등을 미국이 적극적으로 조치하면서 협상 시동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조언했다.

미국은 쿠바에 자국민의 여행을 금지하는 등의 봉쇄조치를 취하면서도 양국에 '이익대표부'를 38년간 유지함으로써 대화의 채널을 열어두었다. 북·미가 '이익대표부'나 연락사무소 설치를 통해 정기적으로 '상주하는(in-residence)' 대화 채널을 가동한다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매우 의미 있는 한걸음이 될 전망이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처럼 트럼프의 화려한 판문점 행차가 한반도 평화에 좋은 선물을 안겨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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