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강국 R&D의 민낯] 매년 1조 국산화 집중투자…“밑빠진 독에 물붓다 이제야”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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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현 기자
입력 2019-07-06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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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대 R&D 예산 투입하는 반면, 국내 원천기술은 ‘제자리걸음’

  • “혁신 컨소시엄 등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로드맵 확실히 제시돼야”

  • R&D 성과물 유기적 축적·부처 간 전문성 격차 해소 모니터링 기구 필요

  • 널뛰는 과학기술정책 컨트롤타워…"연구 연속성 보장돼야" 지적

일본 정부가 4일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강행했다. 일본은 당초 예고한 대로 한국에 대한 첨단 소재 수출 규제 중 하나인 '개별수출심사'를 발효시켰다. 정부는 뒤늦게 소재·부품 산업 육성을 위해 매년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내 연구개발(R&D) 후진 정책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R&D 예산을 투입하는데 핵심 소재와 부품산업의 국산화율이 낮아 해외 의존도가 높은 것은 심각한 사안”이라면서 “국내 R&D 정책에 근원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년 동안 업계에선 소재 국산화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제기했지만, 당장 돈이 되는 완제품 수출에 초점을 맞춰 추진된 R&D 정책이 이 같은 위기 상황을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이달 말 발표하려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로드맵이 담겨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발효한 수출 제한 품목은 반도체 주요 소재 3종(플루오린 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으로 디스플레이와 주요 반도체 제조 공정에 쓰인다. 일본 정부는 3개 소재를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분류했을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사실상 수출 금지 조치에 해당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개한 ‘2017년 연구개발 활동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총 연구개발비는 전년 대비 9조3837억원 늘어난 78조7892억원다. 이는 OECD 국가 중 5위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로 따지면, 연구개발비 비중은 전년 대비 0.32% 포인트 증가한 4.55%로 OECD 국가 중 1위다.

같은 해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추정한 반도체 소재의 국산화율은 50.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해 2월 반도체 소재 국산화율을 2022년까지 7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올해도 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일본이 수출을 규제하기로 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포토레지스트·에칭가스에 대한 대일 수입의존도는 각각 93.7%, 91,9%, 43.9%를 차지한다.


 

[그래픽=아주경제]



이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해외 의존도가 높은 부품·소재·장비 등을 국산화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관련 예산이 필요하다면 임시국회 추가경정예산안 심의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정·청도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반도체 소재 등 부품·장비 개발에 예산사업으로 6조원가량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달 중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별도로 발표할 예정”이라며 “범정부 차원에서 현재 상황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긴밀히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 기업과 국내 기업의 상생 협력 프로그램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가동시켜 탈(脫)일본 전략을 통한 공급 다변화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신두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한국이 가장 취약하다고 판단되는 정밀화학기반 소재 사업의 장기적 육성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일본 외에 역량 있는 글로벌 기업과 국내 중소 소재 기업이 컨소시엄 형태의 ‘밴드’를 만드는 전략안을 구상해 국내 기술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R&D 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예산 집행 들여다보면...

“우리 R&D 정책에 근원적 문제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일본의 경제보복을 계기로 국가 연구개발(R&D)의 투자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세계 최고 수준의 R&D 예산을 투입하고는 있지만, 핵심 소재와 부품산업의 국산화에는 심각한 취약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곪은 상처가 터졌다’는 반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취합한 ‘2017년 연구개발 활동 조사결과’에서 2017년 우리나라 총 연구개발비는 전년 대비 9조3837억원 늘어난 78조7892억원(약 967억 달러)이다. 이는 OECD 국가 중 5위 수준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로 따져보면 OECD 국가 중 1위의 투자 규모를 자랑한다.

정부의 국가 R&D 집행규모(민간업체 제외)는 어떨까. 최근 5년간 국가R&D 집행규모는 연평균 2.9% 증가했으며, 정부 통합재정 규모에 대한 연평균 증가율(5.1%)의 약 0.6배 수준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의 경우, 총 집행액 19조7759억원 가운데 5개 부처(과기정통부, 산업부, 방사청, 교육부, 중기부)가 국가R&D 예산의 78.4%(15조5088억원)를 사용했다. 이 중 과기정통부(33.8%)와 산업부(15.7%)의 비중이 가장 컸다. 과기정통부는 출연연, 기초연구를 중심으로, 산업부는 기업체, 개발연구 중심으로 각각 예산을 투입했다.

같은 기간 연구수행주체별 집행규모를 살펴보면, 대학(23.2%, 4조5871억원), 국과연 산하 출연연(18.9%, 3조7333억원), 부처 직할 출연연(18.7%, 3조7071억원), 중소기업(16.1%, 3조1840억원) 순이다. 이밖에도 대기업·정부부처·중견기업·국공립연구소 등에 25% 미만 규모로 연구 예산이 집행됐다. 지난해는 중소·중견기업 지원정책 강화,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확대 등에 맞춰 중소·중견기업과 대학의 집행액을 꾸준히 늘렸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래픽=아주경제]



올해 정부 R&D 예산은 사상 최초로 20조원을 돌파했다. 연구자 중심의 R&D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부처마다 제각각 운영 중인 연구비 관리시스템 17개를 2개로 통합하고, 연구지원시스템(20→1개)을 일원화 했다. 또한 연구자 중심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2017년 대비, 4500억원 증가) 연구 생애 동안 안정적인 연구를 지원받고 연구 공백을 최소화해 우수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생애기본연구‘ 체계도 마련했다.

정부의 연구관리 통합이 R&D 성과물을 유기적으로 축적하고 부처 간 전문성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꾸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특히 과기정통부가 주관하는 기초과학 분야에 꾸준한 투자와 체계적인 시스템이 확보돼야 첨단소재 기술의 국산화율도 높여나갈 수 있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정부 R&D에서 기초연구 비중은 30%대에 그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연구자 주도로 자유롭게 주제와 범위를 설정할 수 있는 연구환경 조성은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실제 정부의 2018년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사업’은 집행액이 1조4200억원으로 전년대비 12.3%가 증가했고, 과제 수는 1만7547개로 전년대비 6.5%가 증가했다.

R&D 전문가는 “정부가 투자 확대만 해놓고 부처별로 경쟁적으로 새로운 기획 사업을 만들어 예산을 증액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면서 “첨단 기술의 국산화율 상향 등 실질적 이행을 위한 구체적 전략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있는지 살펴봐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최근 심의회의를 통해 2020년도 주요 R&D 규모를 20019년 대비 2.9% 증가한 16조9000억원으로 심의·의결했다. 특히 시스템 반도체, 미래형 자동차, 바이오헬스 등을 3대 중점산업으로 두고 투자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시스템 반도체에는 1450억원을 투입한다. 올해 예산(770억원) 대비 88.3% 늘어난 수치다. 이밖에 사회‧경제적 파급효과가 크거나, 과학난제 해결을 위한 도전형 R&D 신규사업에 예산을 적극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예산 배분‧조정안은 내년 정부 예산안으로 확정해 9월 중 국회에 송부된다.

◆정권 바뀔 때 마다 ​R&D정책 '흔들'

과학기술 연구제도 혁신에 대한 현장 체감도가 낮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핵심 원천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과학기술 컨트롤타워의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R&D(연구개발) 생태계 회복을 위한 작업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연구자들이 체감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4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한국의 기초원천기술 연구가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과학기술 제도가 중심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는 과학기술인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국정과제에 2022년까지 연구자 주도의 기초연구지원사업 투자를 2조5000억원 수준으로 증액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사업은 연구자가 자유롭게 주제나 범위를 설정할 수 있어 상향식(bottom-up) 방식의 R&D로 꼽힌다.

지난해부터는 과학기술혁신본부가 과학기술 R&D의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기능을 넘겨받았다. 과기혁신본부는 운영 효율화를 위해 R&D 예타 간 연계를 강화하고 조사 기간도 단축했다. 중복소지가 있는 기술성평가 항목을 기존 30개에서 10개로 간소화하고 예타 진행 시 수행기간도 평균 6개월 이내로 단축했다.

또한 정부는 기획·관리·평가·제도 전반을 손질 중이다. 연구자 중심의 R&D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시스템을 통합했다. 부처별 개별 연구비 관리 시스템 17개를 2개로, 연구지원시스템도 20개에서 1개로 정리해 행정 부담을 완화했다.

일부 지표에서는 성과도 나타났다. 2018년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사업 집행액은 1조4200억원으로 2017년 대비 12.3% 증가했다. 과제 수도 1만7547개로 6.5% 늘어났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엉뚱한 곳에 돈을 썼다면 R&D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맞지만, 특정 기술을 국산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면 모든 기술을 국산화해야 한다"며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모든 기술을 국산화 한다면 R&D 비용이 2000조원쯤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일본은 원천기술이 강하지만 상용화 기술이 약한 것처럼 각자 강점이 있다"며 "한국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초기술 연구로 가고 있지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래픽=아주경제]



그러나 과학기술계에서는 기초연구사업 증액 목표만 달성된다고 해서 연구 생태계가 복원되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지원 과제를 늘리는 것 이상으로 연구과제들이 연속성 있게 추진될 수 있는 제도적 바탕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과기혁신본부가 예타 개선안을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예타를 과기혁신본부에서 하더라도 정부가 주도하는 연구 영역에서 연구비를 받기 위해서는 상용화와 즉각 연결되는 경제성을 여전히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예타를 담당하는 부처에 관계없이 경제성을 최우선시 해야 연구비를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호원경 서울대 의과대 교수는 "기초연구사업비 증가는 과제수를 늘리는 데 급급해 과제당 평균 연구비는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며 "연구자들 간의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잠재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연구비 규모의 단계별 구조와 과제수를 치밀하게 계산해야 하는데 과기정통부와 교육부가 예산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고민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8년 연구비 구간별 과제 수는 5000만원 미만이 2만2598개로 전년 대비 1.7% 증가했으며 5000만원~2억원 미만 과제도 10.6% 늘어났다. 반면 2억원 이상을 지원받는 과제는 1만5284건으로 2.7% 감소했다. 과제당 평균 연구비 또한 2016년 3억5000만원에서 2018년에는 3억10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과학기술 정책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권마다 과학기술을 총괄하는 부처를 재정립하면서 정책의 지속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는 부서가 R&D 예산도 집행하는 방식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됐다.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이명박 정부에서 폐지됐으며 3년 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로 기능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과기위 또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래창조과학부에 흡수됐으며 이후 2015년 과학기술전략본부를 구성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차관급 기관으로 과학기술혁신본부가 부활했다.

이처럼 정권에 따라 과학기술 R&D를 관할하는 부서의 위상이 널뛰기를 하면서 과학기술 정책의 흐름이 끊길 수밖에 없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당장 정권의 성과를 위해서는 상용화 단계의 기술에 치중할 수밖에 없어 기초 원천기술 연구에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호 교수는 "연구자들이 요구한 것은 단순히 연구비를 더 달라는 게 아닌 제도적인 개혁"이라며 "R&D에 참여하는 정부 부처와 연구기관, 평가기관, 연구자가 각자의 책임을 명확히 해야 제대로 된 연구개발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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