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혈투 와중에 묵직한 존재감 ..'코끼리의 재림' 모디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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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19-05-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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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총선 압승...친기업, 강한 안보정책 각광, 글로벌 외교 격량 속 중요변수로

이수완 논설위원[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이수완의 월드비전] 5월 총선 압승··· 친기업·단호한 안보정책 각광, 글로벌 외교 격동 속에 중요변수로

“인도는 승리할 것입니다.” 지난 5월 23일 밤, 뉴델리 힌두민족주의 우익정당 인도인민당(BJP) 당사 앞에서 환호하는 지지자들 앞에 나타난 나렌드라 모디 총리(68)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쳤다.

올해 초만 해도 모디 총리가 이끄는 BJP가 5월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고성장과 일자리 창출 등 5년 전 '모디 열풍' 속에 제시된 장밋빛 선거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유권자들의 적지 않은 불만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BJP는 연방하원(로크 사브하) 543석 가운데 303석을 차지했다. 지난 30년 이래 인도에서 단일 정당이 차지한 최다 의석이다. 이번 역사적인 승리로 2032년까지 미국과 중국에 세계 제3위 경제대국을 구축을 목표로 하는 모디의 '뉴 인디아(New India)' 비전도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구도 하에 양국이 경쟁적으로 러브콜을 보내면서 모디 총리의 주가도 날로 상승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인도 최대 야당인 중도좌파 인도국민회의(INC)는 5년 전 참패를 만회하려고 무상복지 확충과 공무원 증원을 통한 일자리 제공 등을 내세웠지만, 유권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반면 모디 총리는 경제성장을 통한 일자리 마련에 초점을 두고 대규모 인프라 건설과 기업활동 지원을 약속했다. 최근 민간 소비와 산업 생산이 둔화되며 7%를 상회하던 성장률이 6%대로 내려가고 실업문제도 악화되었지만, 지난 5년간 모디의 '메이드 인 인디아(Made in India)'라는 친(親)기업 제조업 강화 정책과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유치 노력이 평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표심을 좌우한 건 모디 총리의 국가안보 문제에 대한 단호한 대응이었다. 지난 2월 모디 총리는 이웃 파키스탄과의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카슈미르 지역에서 인도 경찰관 40명이 이슬람 무장단체 공격으로 숨지자 파키스탄을 배후로 지목하고 보복 공습을 단행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3차례 전쟁을 치렀고, 핵전쟁 직전까지도 갔던 파키스탄에 대한 응징은 모디를 결단력 있는 인물로 부각시키고, 이번 선거의 주요 이슈를 경제 둔화에서 안보로 전환시켰다. 선거를 코앞에 둔 지난 3월에는 미사일로 지상에서 300㎞가량 떨어진 인공위성을 격파하는 실험에 성공해 미국, 중국, 러시아에 이어 우주강국으로 도약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국가 안보를 중시하는 인도 보수층과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을 적대시하는 힌두민족주의들의 결집을 이끌어 내면서, 모디 총리가 예상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 주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선거과정에서 지나치게 민족주의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종교와 계층 분열을 심화시켰다는 우려에도, 세계 각국은 그의 승리에 안도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도 모디 총리가 그동안 국제외교 무대에서 적극적으로 많은 국가들의 정상들과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모디의 집권 2기에도 인도의 대외 정책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인도는 미국과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 호주 등과 군사·안보 파트너십 강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되 중국과의 관계도 사안에 따라 밀었다 당기는 등 현상 유지 전략을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5년 전 처음 집권 당시와는 국제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인지라, 모디가 어떤 선택을 할지 크게 주목되고 있다.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심에 있다. 동시에 과거 비동맹 진영의 맹주로서 중국·러시아와 손잡고 미국의 이익만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을 견제하는 역할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압도적 총선 승리로 큰 자신감을 얻은 모디 총리는 그야말로 국제사회의 귀하신 몸이 될 수밖에 없다.

다음 달 28~29일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모디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별도로 3국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호건 기들리 미 백악관 부대변인은 3국 정상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 태평양'을 위한 공유된 비전을 추구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일본, 인도와 안보,경제에서 손잡고 중국을 포위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미·일·인도 3각 협조 체제를 통해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정책을 펼치고 있는 중국의 해양진출 구상을 봉쇄할 것이라는 의도인데, 아시아에서 거대한 경제·군사 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웃 중국과의 협력 관계도 의식해야 하는 모디 총리가 어떤 입장을 밝힐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미국은 2001년 9·11테러 사태 이후 인도와 경제뿐 아니라 군사분야에서도 관계를 증대시켜 왔다. 대(對)테러전쟁에서 서남아지역 중심국가인 인도와 안보 협력 필요성을 절감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2005년 인도와의 관계를 ‘글로벌 동반자 관계(global partnership)’로 격상했다. 특히 버락 오바마 정부 들어서 미국이 ‘아시아로의 회귀’를 천명하면서 인도와 인도양이 지닌 전략적 중요성은 한층 강화됐다.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은 모디 총리와 백악관에서 미국이 인도를 공식적으로 '주요 안보 파트너(major defense partner)'로 규정하는 데 합의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에서 무기를 수입했던 인도는 이젠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무기를 수입한다. 적어도 군사장비 판매와 기술 이전 분야에서 미국은 인도를 이미 준동맹국(quasi-ally)으로 여기며 인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은 현재 미국과의 무역 갈등이 심화되자 대미항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웃 국가인 인도가 미·일과 손잡고 중국 포위에 동참한다면, 지역의 안보 위협 증대는 물론 군사적 충돌 사태까지도 배제하기 어렵다. 중·인도 양국은 2017년 국경지역인 둥랑(인도명 도카라)에서 73일간 무력 대치하며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를 겪었다. 모디 총리는 지난해 4월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후 화애의 길을 걸으며 무력 충돌 재발 방지를 위한 군사협력까지 모색해왔다. 28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다음 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국제경제포럼에 참석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동할 예정이다. 또 다음달 13~14일 키르키스스탄 수도인 비슈케크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에서 모디 총리와 따로 중·인도 정상회담을 갖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 간 무역 전쟁 과정에서 미국의 거친 압박을 견뎌내기 위해선, 중국은 러시아와 인도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모디 총리가 재선에 성공하자 다자주의의 기치를 내세우며, 세계 경제 발전을 위해 협력하자는 축전을 보냈다. 인도와 중국은 4000㎞에 이르는 세계 최장의 미확정 국경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라이벌 대국이지만, 인도의 경제력은 아직 중국에 한참 못 미친다. 인도의 부상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인도와 호주 등 인도·태평양 지역의 주요국가를 끌여들어 미국의 압박을 최소하려는 중국의 이해가 직접 충돌하면서, 모디의 외교 정책은 어려운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도가 중국 압박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 트럼프는 인도와의 연간 200억 달러에 이르는 무역적자 해소 문제를 꺼내들며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인도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맞춰 엄청난 손실에도 불구하고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전 세계 국가들에 사용 금지를 주문하고 있는 화웨이사의 통신 장비를 자국의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사안에 따라,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한 것이다. 시한폭탄인 미·중 간의 충돌 속에서 앞으로 모디 정부에 닥칠 불편한 선택은 계속될 것이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긴박한 국제 정세 속에 자칫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경제와 안보 모두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어느 때보다 미·중·일·러 등 다각적 정상외교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미·중 간 패권 경쟁에서 발생하는 악재들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


 

총선 승리 축하 화환 받는 모디 인도 총리 (뉴델리 AP=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3일(현지시간) 뉴델리에 있는 집권 인도국민당(BJP) 당사에서 당 지도부로부터 총선 승리 축하 대형 화환을 받고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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