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엔 모든 것을! 노란조끼에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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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19-05-2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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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프랑스 럭셔리 산업과 노트르담 성당 화재로 본 프랑스의 두 얼굴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Is Paris Burning?)는 1966년 프랑스의 거장 르네 클레망 감독이 2차 대전 중 실제 일어난 사건을 기반으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어낸 전쟁 영화의 제목이다. 노르망디에 상륙한 연합군을 저지하는 데에 실패한 나치. 파리의 함락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 1944년 8월 7일, 아돌프 히틀러는 연합군이 진격하기전 파리 전체를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당시 파리 점령군 사령관 디트리히 폰 콜티츠 장군은 다른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예술의 도시' 파리를 무척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고심 끝에 광기 어린 히틀러의 명령을 끝까지 거부하고 연합군에 항복한다. 그는 나치의 전범행위로 재판을 받았지만 파리를 구해낸 공로가 인정되어 2 년 만인 1947년 석방됐다. 또 프랑스 사람들로부터는 ‘파리의 수호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히틀러는 무려 9차례나 전화로 그에게 "파리는 붙타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한다. 

당시 잿더미로 변할뻔 했던 파리는 오늘날 회화에서 조각, 패션, 뷰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유행을 선도한다.  거리에는 에펠탑, 노트르담 대성당,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 오르세 미술관 등 세계적인 관광 명소들이 즐비하다. 이 도시가 품고있는 소중한 인류 문화유산들의 금전적 가치는 감히 우리가 헤아릴 수가 없다. 지난 4월 15일 매일 3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길에 휩싸였을때, 첨탑이 무너지는 장면을 지켜보던 프랑스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져 울먹였다. 이날 엠마뉴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예정된 대국민 담화를 취소하고 현장에 달려가 "매우 슬프다. 우리의 일부가 불탔다"고 안타까워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중세부터 근.현대에 이르기 까지 프랑스 역사와 문화의 '아이콘' 노트르담 대성당의 신속한 재건을 통해 국민 대화합의 길을 찾고 있다. 특히 세게 유명 럭셔리 브랜드 기업을 거느리는 프랑스 대부호들이 거액의 기부를 통해 대성당 복원에 대한 열의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의도와는 반대로 '노란조끼(Gilets Jaunes)' 시위로 부각된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럭셔리 브랜드와 신화 (mythology)

예술이란 미적(美的)작품을 만드는 인간의 창조 활동을 일컫는다. 화려한 문화예술의 전통에 기반을 둔 프랑스 럭셔리 산업은 그동안 국가 경제 발전과 안정의 큰 축이 되어 왔다.  샤넬(Chanel) 까르띠에(Cartier) 디올(Dior) 랑방(Lanvin) 루이비통(Louis Vuitton), 입생로랑(Yves Saint-Laurent), 에르메스(Hermes) 지방시(Givenchy).....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이다.  단순히 브랜드 그 자체에 그치지 않는다. 로맨스, 우아함, 풍요.. 이러한 단어들과 잘 어울리는 파리의 이미지, 이와 연관된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브랜드 마다 가득 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머니와 사별하고 보육원에 맡겨진 가브리엘 '코코' 샤넬 (1883~1971). 그녀는 캬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다, 재력가의 정부가 되고 이후 보육원에서 배운 바느질 기술과 타고난 미모와 감각을 발판으로 세계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한다. 오늘날 샤넬은 향수와 핸드백 등 많은 제품에 그녀의 이름을 새길 뿐 아니라, 그녀에 대한 로맨틱한 스토리를 반복해서 들려준다. 무슈 크리스챤 디올(1905~1957)은 장미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여성에게 뷰티뿐 아니라 사랑과 행복까지 선사한다는 그의 철학이 향수와 화장품 등 디올의 제품에 깊이 담겨있다.  루비이통은 19세기 부유한 항해사들에 대한 책과 영화의 제작과 각종 전시회를 통해 자신들이 '여행 예술'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임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하나의 브랜드가 진정한 명품으로 인식되려면 디자이너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과 기술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영감을 일으키는 신화(mythology)가 필요하다. 그렇지 못한 경우 단지 값만 비싼 사치품의 공급업자로 인식되고 말 것이다.

명품에 대한 집착과 사랑은 세계 경제가 어려울 때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이리하여 프랑스 등 유럽의 럭셔리 브랜드기업들은 미국의 나이키 또는 코카콜라에 비해 소비자들과의 소통에 있어서 훨씬 덜 혁신적이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받는다. 소통 방식이 다소 냉담하고 구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는 비난도 종종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엄청난 이익과 부(富)를 쌓아온 데는 최고의 미적 가치와 신비로움을 추구하는 기업들에 대한 고객들의 높은 충성도 덕분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출생 순간부터 가지게 되는 개인의 특권을 사라지게 하는데 공헌한 바 크지만,  개인들이 부(富)를 이용해 미(美)와 고귀함을 추구하는 권리는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남아있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가진자들은 자신이 성취한 부와 지위를 인정받고 싶어한다. 오늘날 력셔리 산업이 번창하는 이유이다. 고가의 럭셔리 용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에게 자신을 멋지게 보이고 부(富)를 과시하기 위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물질적인 차원을 넘어 특정한 나라의 정신과 문화, 역사, 예술이 담긴 작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럭셔리 브랜드 기업들이 노트르담 성당 화재 이후 거금을 쾌척한 이유에 대해 우선적으로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분석함이 마땅하다.  

노트르담 화재 이후 거액의 기부금 쾌척한 이유는?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로 유명한 파리 8구. 이 곳에는 앞에서 언급된 많은 유명 럭셔리 브랜드를  판매하는 고급 의상실, 살롱, 부티크 등이 즐비하다.  그 눈부신 화려함은 관광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지만, 때로는 주눅들게도 한다. 이곳 럭셔리 브랜드 상점들은 최근 프랑스의 빈부 격차와 불평등을  상징하는 곳으로 인식되며 소위 '노란조끼(Gilets Jaunes)' 시위대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 작년 12월 시위대는 샤넬과 디올 등 고급 부티크 대형 상점들의 창문을 깨거나, 거리에 전시된 크리스마스 트리들을 한 곳에 쌓아 불을 지르기도 했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기업들은 지난 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이후 거액의 기부금을 앞다투어 약속했다. 구찌 등 명품 브랜드들을 소유한 프랑스 2위 부호인 프랑수아앙리 피노 케링그룹 회장은 1억유로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프랑스 최대 부호이며 전 세계 3위 부자인 베르나르 아르노 (70)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회장 일가는 2억유로를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베탕쿠르 메이예 로레알그룹 회장 일가 역시 2억유로를 내놓았다. 이들 기업들은 자신들의 기부가 프랑스 국민들뿐 아니라 세계 각국이 소중하게 여기는 중요 인류문화유산의 복구라는 공공의 이익 차원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기부금 제공이 프랑스 전역을 휩쓴 노란조끼 운동을 의식한 계산된 행동 이었다거나 국가로부터 세액공제를 받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하는 여론의 역풍에 휩싸이고 있다. 평소 서민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은 럭셔리 업체 부호들이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에 거금을 앞다투어 기부한 것을 두고 일부 시민들은 부유층의 '위선'으로 까지 규탄하고 나섰다. 프랑스 부호들은 좋은 일 한다고 발 벗고 나섰는데 욕을 먹고 있다는 심정일 것이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회장은 기부금 논쟁에 대해 “공중의 이익을 위해 한 일이 비판받는 건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한 것으로 프랑스 언론은 보도했다. 아르노 회장과 프랑수아앙리 피노 케링그룹 회장은 정부에 기부금에 대한 세액 공제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부유층의 잇단 거액 기부가 세금 회피 용도가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을 의식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프랑스 법에 따르면 소실 위기의 문화재 복원에 대한 기부금은 최대 90%까지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사진=SNS 캡쳐]


노란조끼 시위대의 분노

노란조끼 시위는 지난해 11월 정부의 유류세 인상에 반대한 시민들이 운전자가 의무적으로 구비하는 형광 노란색 조끼를 입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위를 일컫는다. 마크롱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 높은 생계비로 인한 좌절로 촉발된 시위는 지난 12월  프랑스 정부가 시위대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며 잦아들었다. 당시 정부는 유류세 인상 시기 6개월 연기, 초과근무 수당에 대한 세액 공제, 최저임금 인상 등을 약속했다. 그러다가 ‘노란 조끼’는 성당 재건에 거액 기부금을 내놓는 부유층에 거센 분노를 표현하며 지지부진 하던 반정부 시위에 불을 다시 댕기고 있는 것이다. 지난 달 25일, 마크롱은 노란조끼 시위에 따른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으로 50억유로(약 6조5,000억원) 상당의 감세안을 내놓았다. 또 '권위주의' 색채를 줄이기 위해 프랑스 정·관·재계에 포진한 엘리트를 육성해온 그랑제콜 국립행정학교(에나)를 폐지한다는 구상도 공식화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파격적인 당근책에도 노란 조끼 시위대는 제안이 충분하지 않다며 시위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노란 조끼' 시위에는 “노트르담에는 모든 것을, 불쌍한 이들에게는 무엇을?”이란 플래카드도 등장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불평등을 묘사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이란 프랑스어)’을 인용한 문구다. 지난 주말에도 파리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23주째 '노란 조끼"시위가 이어졌다. 대성당 화재의 비극을 국민과 한마음으로 극복, 국민통합의 계기를 마련코자 했던 마크롱 대통령 정부와 재계는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마크롱, 구겨진 프랑스인의 자존심 다시 회복시킬까  

"국민 여러분! 오늘 드디어 프랑스가 높이 날아오를 시간이 됐습니다." "어떠한 이유로도 더 나은 프랑스를 만들려는 저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난 2017년 5월 프랑스 25대 대통령에 당선된 39세 '정치신인' 마크롱의 취임사 일부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프랑스인들이 위축된 자신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전진할 것을 촉구했다. 또 결집과 화해를 통해 프랑스를 최고 국가의 반열에 올리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마크롱 정부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평가는 매우 인색하다. 그의 각종 개혁 드라이브는 밑바닥 민심과 어긋나며 헛바퀴를 돌고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과연 이번 노트르담 재건 작업을 국민 화합과 국가 발전의 길로 이끌고 나갈 수 있을까? 또 무너진 성당 철탑을 복원하듯 구겨진 프랑스인의 자존심과 사기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 갈등을 봉합할 수 있는 소통의 리더십이다.
 

23주째 '노란조끼' 시위 화염 (파리 AP=연합뉴스) 화염이 치솟는 프랑스 파리의 20일(현지시간) '노란 조끼' 시위 현장에서 한 남성이 '내일 하늘이 노랗게 되겠지'라는 글귀 판을 가슴에 단 채 지나고 있다. 이날 파리 등 프랑스 전역에서 23주째 이어진 노란 조끼 시위에서는 기업가들이 성당 복원을 위해 거액을 기꺼이 내놓는 것은 '위선'이라는 분노의 목소리가 쏟아졌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주먹쥔 마크롱…"소득세 줄이되 더 많이 일해야" (파리 AP=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프랑스의 파리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생방송 대국민 TV 담화 중 두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그는 이날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소득세를 대폭 내리려고 한다"고 전제하면서 줄어든 세수는 정부지출과 조세감면을 축소해 메우겠으며, 소득세를 줄이는 대신 국민이 더 많이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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