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시론] 국민소득 3만 달러와 저성장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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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군득 경제부 부장
입력 2019-04-2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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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1349달러(약 3449만4000원)를 기록했다. 2만 달러 진입 12년 만에 3만 달러를 넘어섰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진입은 선진국 반열에 합류하는 기준점이라는 부분에서 의미 있는 대목이다.

세계경제에서는 ‘30-50 클럽’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1인당 국민총소득 3만 달러와 인구 5000만명을 넘는 국가를 가리킨다. 현재 30-50클럽은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등 6개 국가뿐이다. 우리나라는 이 클럽에 일곱번째로 들어간 것이다.

이처럼 세계무대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뒀음에도 한국경제는 경제성장률 하락 등 역주행한다는 우려가 높다. 지난 5년 동안 꾸준히 ‘디플레이션’이 거론될 정도로 불안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는 경제성장률 3%대 진입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오히려 2%대 중반이 굳어지는 모양새다. 앞으로 한국경제가 3%대 달성을 할 수 있을지도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전문가와 언론에서는 지금의 우리 경제가 일본을 닮아간다며 호들갑이다. 2%대 중후반 경제성장률도 ‘뒷걸음’이라며 정부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배군득 아주경제 경제부장]

하지만 지금의 한국경제가 과연 이들이 주장하는 ‘저성장’이 맞는 것일까. 우리 눈높이가 지나치게 높은 것은 아닐까. 반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국경제를 보면, 확실히 성장 동력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지 못하면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다. 그렇다고 1980년대처럼 6~7%대 경제성장률을 주문하는 것은 무리다. 이제 3%대 성장률도 우리에게는 버거울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신흥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 구조적 변화에 동참해야 한다. 지금의 2%대 경제성장률을 받아들이고, 정책과 눈높이 조정이 필요한 시기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30-50클럽 6개국의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진입 시점 경제지표를 보면, 미국을 제외하고 모두 성장률이 좋지 않았다. 3%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국가는 미국(3.8%)이 유일했다.

미국의 경우 1997년에 30-50클럽에 들어갔다. 이후 미국경제는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영국은 2002년에 30-50클럽에 가입했는데, 당시 경제성장률은 2.5%였다. 한국(지난해 2.7%)과 가장 비슷한 경제성장률이다. 영국이 30-50클럽에 진입하는 데 11년이 걸렸던 점도 흡사하다.

미국과 영국, 한국을 제외한 4개 국가는 모두 1%대 미만이다. 7개 국가 중 국민소득 3만 달러 진입 당시 둘째로 경제성장률이 높은 국가가 한국인 것이다. 더구나 지난 10년간 저성장 터널에 갇힌 세계경제 흐름을 볼 때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상당히 선방한 지표다.

30-50클럽은 2004년 이탈리아‧프랑스 이후에 명맥이 끊겼다. 앞으로 저성장 국면의 세계경제 속에서 30-50클럽 국가가 더 나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한국이 30-50클럽에 가입했다는 것은 그만큼 찬사 받을 일이다. 저성장은 선진국들이 받아들여야 할 필연이다. 국민소득이 증가하는 데 경제성장률도 동반 상승해야 한다는 인식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일반적으로 1레벨에서 시작해 10레벨, 20레벨까지는 쉽게 올릴 수 있다. 초보자에게는 정착금이나 성장을 위한 경험치가 쌓이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게임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20레벨 이후부터는 레벨 올리기가 쉽지 않다. 경험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난이도가 높은 던전이나 퀘스트를 수행해야 한다. 지원금도 없고, 인큐베이터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렇게 올린 경험치도 초보자 시절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국경제는 이미 초보자 레벨을 한참 지났다. 이제 1980~90년대 시절 ‘헝그리 정신’으로는 중급자 레벨에서 통하지 않는다. 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의 경제성장률이 ‘저성장’이 아닌 우리의 실제 ‘현실’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경제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레 경제성장률이 둔화된다. 이는 30-50클럽 국가들뿐만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진입한 23개국 모두 겪었던 과정이다. 더구나 23개국 중 과반수 국가가 3만 달러 달성 이후 3%에 못 미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따라서 지금의 한국경제는 저성장이나 경기침체라는 표현이 올바른지 따져봐야 한다. 정부도 저성장에 맞춘 정책에 고민해야 한다. 산업 육성도 중요하지만 환경적 요소와 대기업‧중소기업 격차를 줄이는 방안도 내놔야 한다. 양극화는 선진국의 아킬레스건이다. 경제적 격차가 커지는 순간이 바로 ‘저성장’이 본격화되는 시점일 것이다.

특히 우리 앞에 놓인 경제 문제 본질을 해결하기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잘못된 프레임을 바로잡아야 하는 게 더 시급해 보인다. 달성 가능한 경제성장 목표치를 현실화하고 경제 심리를 안정시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한국경제는 여전히 절망보다 희망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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