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가수 인순이의 무대에서의 42년 간의 삶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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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기자
입력 2019-04-0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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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김호이의 사람들>의 발로 뛰는 CEO 김호이입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수를 생각하면 누가 제일 먼저 떠오르시나요?

이승철? 가수 싸이? 방탄소년단? 등 수많은 가수들이 떠오를텐데요. 이번 인터뷰는 해밀학교의 이사장이자 올해 데뷔 42년을 맞이한 가수 인순이의 인터뷰 인데요.

어떻게 보면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 동안 가수라는 삶을 살며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한 셈인데요. 저는 이번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수로써의 인순이 뿐만 아니라 엄마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으로써의 김인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진= 인순이 제공/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인순이]


Q. 올해로 데뷔 42주년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A. “세월이 이렇게 빨리 흐르고, 내가 뭘 했었지? 한 게 없는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무대에 서는 시간들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내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소중한 42년이에요.

Q. 42년이라는 세월이 짧지 않은 시간인데 그렇게 오랫동안 가수라는 직업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A. 가족이었던 거 같아요. 내가 좋아서 했던 것도 있지만 처음에는 가족을 위해서 노래를 했었어요.

Q, 많이는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다문화에 대한 차별이 남아있는데 다문화에 대한 시선이 어떻게 개선되었으면 하나요?

A. 지금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인정해주고 품어줬으면 좋겠어요.

Q. 이번에 다문화가정 대안학교인 해밀학교가 정식인가를 받아서 중학교로 전환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다문화학교라는 타이틀이 없어지는 건가요?

A. 아니에요. 특성화 개념의 학교로 다문화 아이들 60% 한국 아이들 40%로 운영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50:50으로 아이들이 들어와서 그렇게 학교를 운영해나가고 있었는데 지금은 교육부에서 다문화에 대해서 조금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조금 더 많은 다문화 학생들이 들어올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인가는 났지만 학력인정 인가만 난거예요.

그래서 나라에서 재정적인 게 나오거나 나라의 지원 없이 졸업장만 나라에서 인정하는 것을 주는 형태의 인가가 났어요.

Q. 가수로 오랫동안 활동을 하다가 학교를 한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A. 처음에는 “왜? 갑자기?”라는 반응을 보이다가 내가 갖고 있었던 힘들었던 마음들과 함께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 힘들어 한다면 내가 좀 도움을 주고 싶다고 얘기를 하면 그때는 “당신이 해야 할 일 같습니다”라고 얘기를 해줬어요.

Q. 올해 4회 졸업식을 하셨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셨나요?

A. 내가 이 아이들의 인생을 책임진 거니까 계속 아이들과 같이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커질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맨 처음에는 그냥 몇 명의 아이들이라고 내가 마음을 함께 할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고 아이들의 정체성이나 부모님에 대한 생각 등으로 힘들어 할 때 “옆에 있어줘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이제는 몇 명이 아니라 수십명이 되고 학교도 새로 짓고 커지면서 조금 힘은 들지만 앞으로도 계속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진= 해밀학교 제공/ 해밀학교에서 인순이 이사장과 학생]


Q. 정식인가를 받기 전 다문화 대안학교였을 때부터 기숙형 학교였던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대부분 학교들이 고등학교부터는 기숙사가 있지만 초 중학교는 안전상의 이유로 기숙사가 없는데 정식인가를 받은 해밀중학교는 계속 기숙사 학교로 가는 건가요?

A. 그럼요. 왜냐면 전국에서 다문화 아이들이 와야 하니까 기숙사 형태가 유지가 되고 전원해서 아이들이 마음을 조금 더 편안하게 가질 수 있고 학교생활을 조금 더 집중적으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강원도에서 학교를 한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기숙학교를 생각했고 기숙학교에 있으면서 사랑해주고 이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기숙학교로 갈 거 같아요.

Q. 부모님들께서 안전상의 걱정을 하시지는 않으신가요?

A. 안전상의 문제는 부모님들한테 설명을 다 했어요. 처음에 만들어질 때부터 CCTV 같은 걸 다 설치하고 건물 안에 식당을 빼버렸어요.

한끼 정도는 기숙사에서 먹을 수 있는데 그것도 아이들이 자는 방과는 조금 떨어져 있고 단층이기 때문에 항상 창문만 열면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놓고 사감 선생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안전의 문제는 없어요.

게다가 홍천 양덕원의 경찰서와 소방서 그리고 주민들한테도 다 말씀을 드려놨기 때문에 언제든지 무슨 일이 있으면 대처를 할 수 있도록 해놨어요.

Q. 약 42년 동안 불렀던 음악 중에서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음악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저는 곡들마다 전부 성취감과 영광을 줬던 거 같은데 <아버지>라는 곳이 가장 나를 올라가게 해줬어요.

<아버지>라는 곡이 사실 지금으로 보면 맨 뒤에 인기가 된 곡이기는 한데 그것이 단 한번에 온 국민들을 울렸고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하면서 큰 영향을 준 곡이라 그 곡이 내 인생에서 나를 바꿔 놨어요.

Q, 인순이 씨의 노래 중에서 <딸에게>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를 부를 때 딸 세인 양을 생각하면서 부른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그 노래를 들었을 때 세인 양의 반응은 어땠나요?

A. 그게 자기한테 부른 거라고 되게 쑥스러워하더라고요. 세인이가 대학에 갈 때 내가 책(딸에게)을 썼고 그 책에 어울리는 <딸에게>를 불러서 그 음반과 책을 줬었는데 되게 쑥스러워 해서 그 쑥스러워 하는 모습이 너무 예뻤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유학할 때 너무 힘든 날이 있었는데 와이파이가 잘 안 터지는데 힘들어서 울면서 엄마 노래 한번만 듣게 해달라면서 와이파이가 안터지니까 전화기를 들고 돌아다녔다는 거예요.

근데 교회 안에 와이파이가 터지는 것이 있었는데 그때 딱 들었던 노래가 <딸에게>였는데, 그거 딱 한곡만 듣고 와이파이가 없어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하더라고요.

Q. 지금의 딸 세인 양을 보시면 어떠한 생각이 드시나요?

A. 학교 졸업하고 정말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회사 들어갔다가 어느날 이민가방을 싸들고 와서 창업한다고 해서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제 조금씩 앞이 보이는 거 같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자랑스러워요.

Q. <아버지>라는 노래를 불렀을 때 어떠한 심정으로 노래를 부르셨나요?

A. 거기에 생각을 깊게 하면 노래를 못할 거 같아서 심정을 지워버리려고 노력하면서 불렀어요. 지금도 가능하면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누구든지 엄마나 아버지는 단어 존재만으로도 눈물이 나서 정말 아이러니 하지만 그 노래를 부를 때는 가능한 감정을 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세인 양의 어머니로서 인순이 씨의 어머니는 어떠한 모습 그리고 어떠한 존재였나요?

A. 우리 엄마는 장군 같이 아주 단단하게 서 있으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내가 힘들어 할 때 옆에서 지켜주기도 하고 대신 싸워주기도 하고 우리 엄마 역시도 힘들게 가족을 부양하던 사람이었었고 그래서 흔들리지 않으려고 꽤 많이 노력했던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Q. 어느덧 1년이 된 평창동계올림픽의 주제가인 ‘Let Every one Shine’을 부르셨는데 어떻게 보면 30년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었는데 그런 국가적인 행사에서 노래를 불렀던 감회가 어떠셨나요?

A. 정말 가문의 영광이었죠. 기쁜 걸로 따지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어요.

히트곡을 내는 것도 굉장히 좋지만 나라에서 큰 일이 있을 때 대표로 노래를 한다는 것은 굉장한 신뢰를 받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저는 정말 감사했어요.

Q. ‘Let Every one Shine’에는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나요?

A. 지금 여기 우리가 모여 있으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뛰고 꿈과 희망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이 자리를 빛낼 것이며 선수 그리고 모든 관객들 하나하나가 빛나게 하는 그런 노래예요.

Q. 음악에 있어서 슬럼프가 왔을 때 어떻게 극복을 하시나요?

A. 저는 슬럼프가 왔을 때 노래 연습을 했어요. 밴드도 만들고 코러스 무용팀 등을 하면서 야외콘서트를 굉장히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때 연습을 해둔 걸로 열린음악회에 나가서 정말 큰 인기를 얻었어요. 슬럼프가 왔을 때 연습을 해둔 것이 그때 빛을 바란 거죠.

사람들이 볼 때 열린음악회 전에 나와 열린음악회 시작 후에 나하고는 사람들이 판이하게 달라졌다고 해요.

그건 슬럼프 때 노래 연습을 정말 많이 했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을 파고 들어가서 보기도 했는데 그렇게 공부하고 연습했던 것이 열린음악회에서 빛을 내서 지금까지 왔어요. 그래서 슬럼프라는 게 그냥 힘든 시간만은 아닌 거 같아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내가 공부하고 준비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다”라고 생각하면 굉장히 긍정적인 생각으로 그때를 꽉 채우면서 보낼 수 있을 거 같아요,

Q. 길을 걷던 중에 자신의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기분은 어떤가요?

A. 많은 사람이 이 노래를 들으면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 천천히 걸어요. 그리고 어떤 때는 음식점에 갔는데 내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신기해하잖아요. 그럴 때는 또 재미있죠. (웃음)

Q. 노래를 부르면서 실수도 많이 할 텐데 한곡을 부르기 위해서 몇 번의 녹음작업을 하시나요?

A. 노래를 녹음할 때는 진짜 수백번 불러요. 오늘 안 되면 날짜를 다시 잡아서 하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횟수를 정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해요.

Q. 공연을 할 때 보통 가사를 안보고 하는데 가사들은 어떻게 다 외우시고 공연을 하다가 실수를 할 때는 어떻게 대처를 하시나요?

A. 우리가 활동 했었을 때는 노래 한곡을 가지고 1년 내내 불렀기 때문에 국민은 다 알았어요. 그래서 노래가 틀린 거 같거나 까먹은 거 같으면 마이크를 객석에 가져다 대면 사람들이 다 같이 불렀는데 어쩌면 <거위의 꿈>이나 <아버지>도 마이크를 드리면 잘 부르시지 않을까요? 하지만 많이 연습해서 실수하지 말고 노래를 해야죠.

Q. 인순이 씨의 경우 정석으로 노래를 불렀던 걸로 알고 있는데 반면에 최근에 로꼬나 김하온 등 랩퍼 또는 가수들을 보면 개성을 많이 따르는데 선배 가수로서 지금의 신인 가수들을 보면 정석을 따라야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지금의 후배들처럼 개성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시나요?

A. 그건 시대가 선택하는 거 같아요. 우리 때는 발음만 꼬아도 노래 못한다고 하고 발음 똑바로 하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리듬이나 곡의 흐름 자체가 가사를 너무 똑바로 하면 재미가 없어지는 거 같아요.

그래서 개성도 중요하고 정석도 중요한데 듣는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대로 듣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게 좋고 나쁘다가 없어요.

Q. 인순이에게 있어서 무대란 어떤 존재인가요?

A. 그 순간만큼은 내가 최고인 거 같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생명 같은 존재가 무대인 거 같아요.

Q. 공연이 없을 때는 어떠한 취미를 가지고 생활을 하시나요?

A. 예전에는 집중적으로 노래만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거 같아요, 학교도 가봐야 되고 후원자 미팅도 해야 되고 후원을 위한 학교 설명회도 해야 되고 저의 취미인 그림도 그려야 되고 등산도 가봐야 되고 배우고 싶은 게 많으니까

이건 언제 배울까 하면서 시간을 봐야 되고 쉬는 날 없이 바빠서 요즘 도대체 내가 뭐 하는 사람인가 할 정도로 하는 일이 많아요.

Q. 오래전 <친구여>라는 노래가 큰 인기를 얻었는데 인순이에게 친구란 어떤 존재 인가요?

A. 추억소환? (웃음) 친구를 생각하면 낄낄낄 하고 웃게 되요. 우리는 시골에서 자라서 전원생활을 만끽하면서 살았어요.

개울에 가서 가재도 잡고 밤에 물고기도 잡고 산에 가서 새 둥지에 있는 새 알도 꺼내서 후라이 해먹고 심지어 개구리도 잡아먹었어요. 그렇게 개구졌던 친구들과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들만 생각나는 거 같아요.

Q. 어렸을 적 친구들과 함께 했을 때는 인순이가 아닌 김인순으로 함께 했다가 어른이 돼서 인순이가 되고나서 동창회에 갔을 때 가슴 아팠던 스토리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떠한 사연이 있었나요?

A. 나는 그때 그 추억이 너무 그리워서 김인순으로 동창회에 갔는데 친구들한테는 어느새 나는 인순이가 되어 버린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 준다고 싸인해달라고 하고 사진 찍자고 하니까 “여기에서 만큼은 김인순이었으면 좋겠는데 여기에서도 인순이이구나”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때는 울면서 조금 빨리 돌아왔던 기억이 있어요.

친구들이 너무 그리워서 내가 힘들 때 친구들 보면서 옛날 생각하면 행복할 거 같아서 갔던 거 였거든요. 그래서 그 후에 친구들한테 이 얘기를 했더니 지금은 안 그래요.

Q. 인생에서 중요한 세가지와 그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A. 가족,무대,친구가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이유는 나한테 꼭 필요한 존재예요. 가족 안에서 원동력을 찾으니까 꼭 필요하고. 친구는 이제는 점점 친구가 더 그리워져요.

뭔가 나도 하고 싶은 얘기도 있고 듣고 싶은 얘기도 있거든요. 그리고 무대는 그 위에 있을 때면 내가 살아 있는 거 같아요.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Q, 엄마로서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아들 딸들에게 어떠한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A. 나는 하나하나가 이 세상에서 딱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이름은 같을 수 있어도 그 사람은 딱 하나잖아.

그래서 그렇게 특별한 존재인 걸 알고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정말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있을 만큼 사랑한다는 것도 알아줬으면 좋겠고 세상이 쉽지 않다는 거 알아 그렇지만 잘 해쳐나가서 본인이 살고자 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많은 경험을 하면서 행복했으면 좋겠어.

많이 가진 것만이 행복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주고 싶어. 작게 있어도 정말 알뜰하게 누리면서 그 안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어

Q. 42년 동안 김인순이 아닌 인순이로 살아왔는데 인순이가 아닌 김인순은 어떠한 사람인가요?

A. 내가 볼 때 김인순은 참 괜찮은 사람인 거 같은데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알려주는 것은 쉬운 건 아닌 거 같아요. 하지만 꾸준히 노력한다면 먼 훗날이라도 정말 친구 삼고 싶은 사람 그리고 정말 괜찮은 사람이란 걸 알게 해줄 수 있을 거 같아요.

Q. 가수 인순이가 아닌 김인순 자신에게 어떠한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A. 치열하고 스펙타클한 인생이지만 굴하지 않고 무릎 꿇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와서 참 고맙다. 아마도 시간이 가면 너라는 존재를 사람들은 더 인정하고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Q. 최근에 <두번째 서른>이라는 방송에 출연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인순이의 첫 번째 서른은 어떤 모습이었고 두 번째 서른은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시나요?

A. 첫 번째 서른은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그때 그 나이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너무 두려워하는 시간들이었거든요. 그래서 정말 힘든 나날들이 많았어요.

근데 꿋꿋하게 잘 왔고 지금이 이제 두 번째 서른인데 지금처럼만 열심히 살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Q. 인순이로서 처음은 어땠고 끝은 어땠으면 하시나요?

A. 처음은 초라했으나 끝은 아름다웠으면 좋겠어요. 정말 내가 세상 끝 날에 왔을 때 “정말 열심히 살았다”라고 내 스스로가 토닥토닥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순간도 놓치지 않고 “넌 최선을 다 했어” “할 만큼 했어”라고 나한테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지금 42년째 무대에 서서 음악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떠한 음악을 하고 싶으신가요?

A. 어떤 음악이라고 장르를 정하지 않고 좋은 음악이 있으면 그냥 다 하고 싶어요.

Q. 인순이에게 좋은 노래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좋은 노래란 의미있고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노래라고 생각해요.

Q. 인순이가 42년간 불렀던 노래 중에서 “가장 내 인생과 닮았다”하는 노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거위의 꿈 같아요. 노래를 부르면서 가사 자체가 내 얘기를 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노래를 부를 때는 조금 더 표현을 잘할 수 있는 거 같아요.

Q. 앞으로 인순이 자신의 노래가 어떠한 기억으로 남아주었으면 하시나요?

A. 시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어느 시대에든 불릴 수 있는 노래였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빛을 내고 있고 앞으로 빛을 낼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인생은 결코 녹록지 않지만 살아볼만한 가치는 있다. 그리고 어떤 결정을 하던 다 살아보고 결정하고 다 살아보고 얘기하라고 하고 싶어요.

다 살아보지 못하고 난 다음에는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까 함부로 얘기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쉽게 결정하지 말고 다 살아보고 그 뒤에 뭔가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Q. 추가로, 선배 가수로서 가수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A. 팬들은 진심을 금세 눈치 채요. 노래도 진심을 다해서 부를 때 팬들하고 교감하고 같이 가기 때문에 항상 무대 하나하나 마다 최선을 다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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