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김호이의 사람들]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 생전 인터뷰서 "평범한 이웃 이야기 다시 그리고 싶다" 196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한 만화 검정고무신은 초등학생 기영이와 중학생 기철이를 비롯해 이들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만화 검정고무신은 지난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소년챔프에 연재돼 큰 사랑을 받아온 작품. 무려 14년간 연재된 검정고무신은 시사 만화를 제외하면 최장기 연재 기록을 가지고 있다. 특히 45권까지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이처럼 오랜 기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아 온 만화 검정고무신의 작가 이우영씨가 지난 11일 별세했다. 고(故) 이우영 작가가 방문을 잠근 채 기척을 보이지 않는다는 가족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고 경찰이 소방당국과 함께 강제로 문을 열고 숨져 있던 이 작가를 발견했다. 이 작가의 가족은 "(이 작가가) 최근 저작권 소송 문제로 힘들어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작가는 지난 2020년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검정고무신은 현재 중요한 시점에 놓여있다"고 말문을 연 뒤 "잘못된 계약을 바로 잡으려 하는 도중 원작자가 피소를 당하는 입장에 놓여 만화가협회와 힘을 모으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이 잘 마무리돼 기영이와 기철이를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지난 1980년대 요동치는 시국에 꿋꿋이 버티던 우리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그려보고 싶다"고 전했다.(고 이우영 작가 생전 인터뷰 기사: https://www.ajunews.com/view/20201011153639350) 하지만 그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이 작가는 지난 2021년 기자와의 통화에서 "만화 검정고무신 영상을 본인 유튜브 채널에 올리고 싶지만, 저작권 때문에 고민이다"라고 밝혔다. 또 이 작가는 지난해 극장판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즐거운 나의 집' 개봉을 앞두고 한 유튜브 채널에서 "원작자인 나에게 허락도 구하지 않고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으며 얼마 되지 않는 원작료까지 지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캐릭터 대행 회사로부터 자신들 허락 없이 검정고무신 캐틱터를 등장시킨 만화를 그렸단 이유로 피소돼 4년째 소송을 진행 중이다"라며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검정고무신'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형설앤 측은 "이는 이 작가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극장판 검정고무신:즐거운 나의집은 글 작가인 이영일 작가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지난 1999년부터 검정고무신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온 새한프로덕션이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다"라고 전했다. 다시 말해 원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이 작가의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한편 향년 50세로 세상을 떠난 이 작가에게 만화 검정고무신은 자식 같은 존재였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태어나기도 전 이야기를 어떻게 접했냐는 질문에 "부모님 사진첩과 어른들의 이야기, 공공기관 자료 등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아 전차 이미지를 구하기 위해 작업하던 포천 산골짜기에서 서울역까지 여러 번 찾아가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 작가는 "추억은 반드시 행복한 감정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슬픔과 우울함, 고독함 등 우리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시간이 지난 다음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힘든 지금도 행복하다고 말하며 사는 강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2023-03-15 08:49:13 [김호이의 사람들] 탁현민 전 청와대 행정비서관이 말하는 디테일의 비결 문재인 정부 시절 1195개에 달하는 국가기념식과 대통령 행사를 기획했던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그는 지난 5년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경험한 사람 중 한명이다. 그와 함께 대통령이라는 직업을 비롯해 많은 행사를 기획하며 느낀 디테일의 비결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어렸을 때 장래희망에 한명씩은 대통령을 적었던 것 같아요.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경험한 이들 중 한 분이실텐데요. 직접 경험한 대통령은 어떤 직업인 것 같나요? A. 제가 제일 가까이 있었던 건 아니예요. 저보다 더 가까이 있던 분도 있었는데 다만 제가 했던 일이 대통령 옆에서 했던 일이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어요. 우리가 어렸을 때 장래희망에 대통령을 썼던 건 대통령이 멋있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힘도 강하고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장래희망에 대통령이라고 썼던 거죠. 하지만 제가 옆에서 보니까 대통령이 원하는대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더라고요. 대통령은 항상 다른 사람의 말을 많이 들어야 되는 자리, 많이 생각해서 결정해야 되는 자리, 많이 고민해야 되는 자리예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걸 권한과 권력이라고 하잖아요. 그것보다 책임이 훨씬 크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Q. 문재인 전 대통령은 힘든 일이 있을 때 쉽게 티가 나는 편이였나요? A. 거의 그런 일이 없었죠. 사람이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티가 나잖아요. 근데 그걸 굉장히 절제하는 분이었어요. 그래서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Q. 청와대에서 일을 잘하거나 못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A. 공무원이 일할 때 목표라는 게 있고 그 목표를 달성했냐 안했냐를 평가 받잖아요. 그 성과를 달성하면 과정이 어땠든 일을 잘한 거고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그 프로젝트는 실패하고, 담당자가 일을 못한 것으로 평가 받죠. Q. 다시 청와대에 돌아갈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A. 안갈 것 같아요. 또 다시 하라고 하면 굳이 다시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그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서 선택할 수 있다면 미래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그 일이 어떤 일인지도 알고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알면 또 할까 싶긴 해요. Q. 탁 전 비서관의 취미가 궁금해요. A. 낚시 하거나 산에 가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빈둥빈둥 거리는 것과 음식하는 걸 좋아해요. Q. 디테일은 훈련인가요 아니면 타고난 성격인가요? A. 디테일은 '애정'이에요. 자기가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궁금해지잖아요. 자기가 하려는 일에 애정이 있으면 디테일해져요. Q.계획을 세우는 편인가요? 반대로 즉흥적인 스타일 인가요? A. 청와대에 있으면 1년치 계획이 나와요. 상황에 따라 바뀌는 일도 있죠. 다만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그 상황에 맞춰 진행을 하다 보니 제가 했던 일은 즉흥적일 수 없어요. Q. 탁현민에게 5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나요? A. 기획하고 연출하는 사람으로서 다 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근데 코로나가 조금 아쉬웠어요. 제약과 규모를 줄여야 되는 게 많아서 생각했던 것들을 많이 못했어요. Q. 청와대 참모 중 가장 주목을 받은 것 같은데 많은 부담도 있었을 것 같아요. A.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하는 일이 드러나는 일이잖아요. 세상의 모든 일이 이목을 끄는 일이 있고 조용히 묵묵히 하는 일이 있잖아요. 부담이 되긴 했지만 업무 특성상 어쩔 수 없죠. Q.정치인 혹은 정치 집단이 어떤 모습이어야 호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A. 아이러니하죠. 우리는 정치인이 정치인 같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나요? "저 사람은 정치인 같지 않다"고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죠. 정치라는 건 공감과 이해의 폭이 넓어야 해요. 모든 사람에게 다 그렇게 대할 수는 없겠지만, 정치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많이 생각하고 사람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Q. 항상 마음처럼 되진 않기 때문에 보여주고자 했던 것들이 오해를 만들면 굉장히 답답할 거 같아요. 예전 모습을 떠올리면 어떤 부분은 굉장히 욱하는 분 같고 또 그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도 (사표는 몇 번 냈지만) 5년동안 청와대에 있던 걸 생각하면 힘든 걸 꾸욱 참아내는 분 같아요. 어떤 모습이 더 ‘탁현민’다운 성격인가요? A. 한 사람 안에는 여러가지 모습이 있어서 하나로 규정되는 사람은 억울하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의 다양한 측면이 있거든요. 한 사람을 평가할 때 다양한 면을 함께 봐야지 그 사람의 단면을 보는 건 무모한 거라고 생각해요. 제일 좋은 건 그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거죠. 사람에 대해 평가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아요. Q. 청와대 비서관으로서의 탁현민, 사람으로서의 탁현민은 어떤 사람인가요? A. 청와대에서 일했던 모습의 저는 제 인생의 한 순간이에요.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로 포장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Q. 직업만족도는 5점 만점에 몇점 이고 탁현민이 경험함 대통령 비서관이라는 직업은 어떤 직업인 것 같나요? A. 1점도 줄 수 있고 5점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힘들지만,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1점이겠죠. 하지만 열심히만 한다면 다른 곳에서 경험해보지 못할 것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5점이에요. Q.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어 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 한말씀 해주세요. A. 자기가 하는 일에 애정을 가져야 돼요. 그러면 일도 재밌을 거고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만족할 수 있겠죠. 애정 없이 하는 일은 사랑 없이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하는 것처럼 공허한 것 같아요. 그 일에 성취와 상관 없이 본인이 하는 일에 애정을 갖는 편이 여러모로 좋아요. 2023-03-08 17:53:43 [김호이의 사람들] 탁현민 전 청와대 행정비서관이 끝까지 남았던 이유 문재인 정부 시절 1195개에 달하는 국가기념식과 대통령 행사를 기획했던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그는 홍범도 장군 귀환과 5.18 민주화운동기념식,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등 대중에게 인상 깊은 장면들을 선사했던 정부 의전 뿐만 아니라 G7정상회의, 대통령과 BTS의 유엔총회 연설 등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했던 순간의 한편에 있었다. 그랬던 그가 최근 5년간의 시간을 기록한 <미스터 프레지던트>를 출간했다. 책 제목인 미스터 프레지던트는 원래 대통령이 입장할 때 사용되던 입장 곡 제목이기도 하고 대통령 행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지난 2017년 선임행정관으로 처음 청와대에 발을 들인 그는 2019년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을 거쳐 그 후에는 의전 비서관으로서 5년간 대통령과 함께했다. 그는 사표를 세 번이나 썼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남아있었다. 그는 “중간에 사표도 냈지만, 그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정부의 누구라도 대체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내가 필요하다는 부탁을 받았다면 그걸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상사로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어땠을까. 그는 “엄한 아버지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탁 전 비서관은 “아버지는 자식들을 사랑하잖아요. 애정이 있지만, 애정을 표현하기 보다는 엄하게 하셨던 것 같다”고 부연했다. 청와대에서 그의 하루는 어땠을까? 그는 출퇴근의 의미가 없었다고 했다. 보통 직장인은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지만, 청와대에선 퇴근 후에도 일할 준비가 돼 있어야 했기 때문. 그는 “출퇴근은 큰 의미가 없다. 보통 오전 6시쯤 출근해 저녁을 먹고 오후 7시쯤 퇴근을 할 수 있으면 하고, 퇴근을 못하면 계속 일을 한다. 청와대는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밤과 새벽에 아무 일도 안일어나는 게 아니지 않느냐. 일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든 일어날 수 있는데 그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을 청와대에서 지기 때문에 청와대 근무자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퇴근한 다음에도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탁 전 비서관은 “지금은 많이 자거나 낚시하고 간혹 원고를 쓰면서 보내고 있다”며 근황을 전했다. 2023-03-08 17:32:24 [김호이의 사람들] 맑눈광 김아영이 말하는 MZ 김아영 배우는 SNL에서 맑은 눈의 광인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는 MZ오피스 코너에서 사내 선후배 관계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철저하게 자신의 권리를 먼저 챙기는 MZ세대 사원 역할을 개성있게 연기하며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와 함께 MZ세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SNL에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요. 출연을 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시청자로서 볼 때와 직접 연기를 하면서 어떤 걸 느꼈는지 궁금해요. A. 출연을 한 계기는 제작진 분께 연락이 와서 1차 오디션을 보고 다음날 2차 오디션을 봐서 최종 합격됐어요. 직접 현장을 느끼니까 다들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TV로 봤을 때는 결과물만 봐서 막상 재밌기만 했는데 그 과정을 직접 함께 하니까 이 결과물이 나오기 까지 정말 많은 과정과 고민의 시간들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Q. 오디션을 하루 간격으로 본 거예요? A. 그렇죠. 연락이 오고 일주일 뒤에 오디션을 보게 됐고 다음날 최종 오디션을 봤죠.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대본 리딩을 할 때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해요. 그런 모습 빠져들면 저 혼자서 웃기도 해요. 게스트 분들도 그런 부분들을 좋아하시고요. Q. 맑은 눈의 광인, 눈까리 등의 별명을 얻었어요. 스스로에게 어울리는 별명을 지어준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A. 매력이 많아서 무엇이든 변신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Q. 네이버에 김아영을 검색했을 때 나왔으면 하는 게 있나요? A. 김아영 연기 잘한다, 김아영 재밌다, 김아영 잘한다, 김아영 귀엽다. Q. 직업은 배우인데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더라고요. A. 직접적으로 들어보지는 않았는데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말을 들으면 "내가 재밌게 연기하는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라고 생각해요. Q. 평소에도 속마음을 잘 말하는 편인가요? A. 저는 하고 싶은 말은 하는 편이에요. 앞 뒤가 다른 사람을 별로 안좋아해서 불편하거나 하면 말을 직접 하는 편이에요. Q. 인턴 사원, 인턴 기자 등 인턴 연기를 많이 했는데요. 김아영 배우의 인턴 생활이 궁금해요. A. 알바 경험은 있는데 인턴 경험은 없어요. 카페 알바를 3년 정도 했었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저는 재미를 느끼는 곳에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면 금방 나왔던 것 같아요. Q. 김아영이 생각하는 MZ란 뭔가요? A.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세대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본인 생각에 대해 말도 잘 하는 것 같고요. Q. 배우로서의 김아영, 사람으로서의 김아영은 어떤 사람인가요? A. 사람으로서의 김아영은 생각이 많고 그러면서 낙천적인 부분도 있어요. 저는 되게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인간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배우 김아영은 해야 되는 역할이 있으면 그전에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플레이어가 됐을 때는 다른 생각 안하고 거기에만 집중하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Q. 김아영 배우가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이 궁금해요. A. 솔직한 사람을 좋아해요. 나랑 다른 생각을 가져도 그걸 제 생각에 억지로 맞추는 사람보다 조금 나랑 달라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하는 사람에게 더 매력을 느끼고 그런 사람들과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Q. 인턴생활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인턴 연기를 그렇게나 잘하는 건가요? A. 캐릭터에 빠져서 그렇게 느낀 게 아닌가 해요. Q.MZ세대 이후는 어떤 세대일까요? A. 더 똑똑할 것 같고 더 다양할 것 같아요. 제가 연기한 '맑은 눈의 광인' 캐릭터는 말이 많거나 사회성이 좋은 캐릭터는 아니잖아요. 근데 사회성 좋고 자기 할 말 잘하고 사회성 좋은 사람도 있거든요. 다음 세대는 획일화 시킬 수 없을 것 같아요. Q. MZ오피스를 통해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뭔가요? A. 사실 처음에는 MZ오피스를 통해서 메세지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거든요. 그냥 인물에만 집중을 했었는데 점점 갈수록 처음에는 이 인물에 대해 단면적인 부분만 봐서 비난도 있었거든요. 너무 이기적이기도 하고 사회생활을 못하는 것처럼 MZ를 그린 게 아니냐라는 말도 많았지만 갈수록 이 친구가 일의 효율이 좋고 일을 잘한다고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생기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MZ세대를 너무 단면적으로 보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Q. 김아영에게 출근과 퇴근의 의미는 뭔가요? A. 현장을 생각하면 "와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고 퇴근을 생각하면 "집 가서 빨리 자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Q. 맑은 눈의 광인 같은 친구나 후배를 맞닥뜨린 적이 있나요? A. 비슷한 사람이 있었어요. 근데 누군가를 참고하지는 않고 제 생각들로 만든 거예요. 2023-03-01 18:00:00 [김호이의 사람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슬럼프를 이겨내는 법 지난 2015년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며 주목받은 조성진은 현재 거장으로 가는 길목에 서있다. 꾸준한 연주를 통해 전세계인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전해주고 있는 조성진이 슬럼프를 이겨내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DG 새앨범 핸델 프로젝트를 내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A. 베를린에서 작년 9월에 녹음했어요. 5일동안 했는데 5일 차에는 관객 몇 분을 모시고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쳤어요. 그게 스트리밍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녹음을 할 때 라이브 느낌을 주기 위해서 관객을 모시고 연주회처럼 하는데요. 캠프 버전은 끝나고 앵콜 느낌으로 했어요. Q. 코로나 시기에 어떻게 보냈나요? A. 잘츠부르크에서 베를린으로 넘어왔어요. 1월에는 미국에서 있었고 시애틀 등에서 리사이클을 하고 다양한 공연을 했어요. 팬데믹 전과 비슷하게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처음에는 1년 정도 쉬어서 적응이 잘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괜찮아요. 바쁘게 지내는 게 살아 있는 것 같아요(웃음). 처음에는 2020년 상반기에 온라인 콘서트만 하면서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불안했어요. 근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저한테 집중할 수 있었고 헨델 프로그램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악보를 사서 혼자서 쳐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어요. 평소에는 시간이 없어서 못한 것들을 많이 해봤는데 헨델 음악이 많이 와닿았어요. 그리고 내후년쯤 녹음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헨델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A. 바흐 음악을 녹음하거나 연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바흐가 조금 더 복잡한 것이 있다면 헨델은 더 가슴에서 나오고 멜로디틱한 면이 있어요. 바로크 음악을 많이 접하지 않은 저에게는 헨델이 처음에 접하기에는 쉬웠어요. 근데 공부를 하면서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 영재 아카데미를 다녔는데 당시에 20대 안에 바흐와 베토벤 전곡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제 이해가 되더라고요. 바흐와 바로크 음악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30대쯤이면 브람스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니 섣불리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연히 브람스 연주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인터뷰 때 앞으로 몇 살 때 어떤 것을 해야겠다는 말은 자제해야될 것 같아요(웃음). Q. 핸드 피아노를 통해 선보인 이유는 뭔가요? A. 핸드 피아노로 하는 것이 표현을 하는데 더 유리한 것 같아요. 바로크 음악은 해석의 폭이 넓거든요. 베토벤이나 낭만시대보다도요. Q. 바흐 평균율이나 베토벤 소나타 전곡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A. 섣불리 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30대 안에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모르겠어요. 베토벤 소나타 전곡은 많은 음악가가 하고 싶어할 것 같아요. 40살 안에는 하고 싶어요. Q.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A. 슬럼프라기 보다 집중이 되지 않고 실력 향상이 정체됐을 때는 제가 피아노 치는 걸 동영상으로 찍어서 많이 봤어요. 그게 쇼팽공부를 하기 전이니 벌써 10년 정도 됐네요. 하지만 이제 이 방법을 하진 않아요. 보통 자기가 친 것을 자기가 들어봐야 안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언제부터 한 것 같아요. 제 생각을 고집하다 보면 제 음악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못받을 것 같아요. 하지만 당시에는 극복한 것 같아요. Q. 레파토리 영감은 어디서 받나요? A. 바쁜 것을 좋아해서 계속 새로운 걸 하면서 희열을 느껴요. 2023-03-01 18:00:00 [김호이의 사람들] 안시내 작가가 말하는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 만나는 사람이 바뀌면 인생도 바뀐다는 말처럼 여행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여행으로 세상을 배운 안시내 작가와 여행에서 느낀 인간관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셨는데요. 그렇다 보니 친구의 정의나 인간관계의 원칙 등이 많이 달라졌을 듯해요. A. 예를 들어 반드시 보상을 바라고 주는 마음가짐이 없어졌어요. 보통 사랑을 주면 똑같이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이젠 그런 생각을 애초에 하지 않고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가야 건강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도 여행 당시 보답을 바라지 않는 선의를 보게 되면서 "받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어요. Q. 코로나로 2년 넘게 여행이 단절된 삶을 살았잖아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요? A. 코로나로 여행이 단절 됐을 때는 제주도의 한 곳에서 오래 머물렀어요. 각박한 도시가 아니라 제주도에서의 사람들을 보고 싶었거든요. 코로나 때문에 수익도 없고 여행도 못 가서 힘들었는데 사람들이 저를 버티게 해줬어요. 코로나 이전에 바빠서 못 만났던 사람들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올 여름에는 일 때문에 이집트와 태국에 가게 될 것 같고요. Q. 여행을 뭐라고 생각하세요? 동네 산책을 여행이라고 하지 않잖아요. A. 첫 책에는 여행을 삶보다 더 진한 삶이라고 적었어요. 아직도 그 마음은 변함없는 것 같아요. 3~4일 정도 정해진 기간을 가는 건 여행보다는 관광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생각하는 여행은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고 길게 떠날 때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여행은 삶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대부분 장기여행자 분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Q. 여행을 통해 발견한 안시내는 어떤 사람인가요? A. 인간 안시내에 대해 면밀히 탐구하게 된 것 같아요. 아무것도 혼자 못하는 나약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모든 걸 해쳐나갈 수 있는 강한 사람이었고, 나는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자식 안시내구나. 혼자보다는 함께일 때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그렇게 강한 사람도, 약한 사람도 아니다. 너무 강한 사람도 약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넘어질 수 있지만, 곧바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Q. 안시내 작가만의 여행 기록법이 있나요? A. 저는 메모장을 이용하기도 하고 휴대폰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순간을 즐기기도 아까워서 모든 걸 기록하지는 않아요. 근데 충격 받은 일들은 기록을 해야되잖아요. 근데 그 순간을 방해 받고 싶지 않아서 뜨거운 감정을 한 두줄로만 작성해요. Q. 마지막으로 처음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말씀 해주세요. A. 첫 걸음마나 첫 자전거나 누구나 쓰러지잖아요. 그래서 저는 누구든지 처음의 단계에서는 실패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으니까 그런 것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누구에게나 처음은 똑같고 처음 낯설고 어색한 게 맞으니까. 저도 서른 초입에서 몇 번이나 넘어질지는 모르지만 이 생각을 가지면서 조금 더 넘어지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으려고요. 2023-03-01 18:00:00 [김호이의 사람들] 맑눈광 김아영이 말하는 사회생활 맑은 눈의 광인 김아영 배우는 SNL코리아 시즌3 인기 코너인 MZ오피스에서 당돌한 MZ 신입을 연기했다. 이를 본 시청자들에게 김아영 배우는 맑은 눈의 광인(맑눈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와 함께 사회생활 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SNL에서 연기를 해보니까 어땠나요? A. 순발력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연기를 잘해야 되는 것 같아요. 단순히 웃기려는 것보다 세련되게 웃기고, 이 분위기를 어떻게 하면 더 살릴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 있어서 연기를 잘해야 시청자들이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Q.연기를 잘한다는 의미는 뭔가요? A. 상황에 몰입하는 거죠. 연기를 볼 때 그 사람이 보이는 것보다 그 인물과 상황이 보였을 때 연기를 잘한다고 느껴요. Q. 수저 놓기나 물 떠오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수저 놓기나 물 떠오기는 어린 사람들이 해야 되기보다 가까운 사람이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물이 내 옆에 있으면 내가 하면 되지 "저 사람이 할 때까지 지켜봐야지"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Q.MZ오피스가 동료들과 함께하는 이야기인데 김아영에게 동료란 어떤 의미인가요? A. 함께해야 하는 것. 동료가 있어야 돼요. 동료한테 얻는 힘이 크거든요. SNL크루 뿐만 아니라 여태껏 함께한 동료들이 주는 에너지가 매우 커요. Q.SNL에서 가장 힘이 된 사람이 있나요? A. 정말 많은데 그 중에서도 수지 언니요. 수지 언니는 제가 처음에 엄청 떨려서 어떻게 해야될지 몰랐을 때 옆에서 응원을 많이 해줬어요. Q. 촬영 할 때의 김아영과 화면 속 김아영을 볼 때 어땠나요? A. 이 캐릭터와는 많이 달라요. 목소리나 성격도 다른 것 같아요. 다수랑 있을 때는 말이 없어지는 것 같고, 소수랑 있을 때 말이 많아요. 차분하지만 왈가닥 하는 부분도 있어요. Q.SNL을 본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A. 많이 좋아했죠. 유튜브에 숏츠로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까 그걸 보고 머나먼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기도 해요. Q. SNL을 출연을 하면서 성덕이 된 경험이 있나요? A. 저는 누군가를 덕질을 해본 적이 없어서 신기하고 재밌어요. 근데 SNL 크루들을 보면서 "내가 성공했나"라는 생각을 했죠. 신동엽 선배님이 대본 리딩하는데 들어올 때도 그렇고 다른 크루들을 봤을 때도 믿기지 않았어요. Q. 선배들이 어떤 조언들을 해줬나요? A. 잘하고 있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기도 하고 어떤 연기를 할 때 재밌게 하는 포인트들에 대해 팁을 주시기도 했고요. 제 캐릭터를 더욱 살리기 위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정신적인 부분에서 잡아주신 분도 계셨어요. Q. 김아영에게 성공과 행복의 기준은 뭔가요? A. 제가 느끼기에 행복은 없는 것 같고 행복은 어디에나 있는 것 같아요. Q. 요즘 소확행은 뭔가요? A.저녁 6시부터 아무것도 안 먹고 다음날 아침에 먹은 음식이요(웃음). 어제도 6시 이후에 아무것도 안먹다가 오늘 아침에 파프리카랑 버섯이랑 오리고기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고 너무 행복했어요. Q. 김아영만의 사회생활 팁이 있을까요? A. 속도라고 생각해요. 저는 너무 급하게 다가가는 게 독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음이 쌓여 가듯이 사회생활도 어떻게 해야지라기 보다 솔직하게 다가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Q. 김아영 배우가 생각하는 MZ 오피스에서의 맑눈광은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A. 자기 세상이 확실하게 있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일을 굉장히 잘하는 사람 같아요. 이 친구는 MBTI가 J일 것 같고 에너지와 완벽주의가 있는 성향이라고 생각해요. Q. 유튜브 채널 이름이 아영세상인데 어떤 세상을 그려나가고 있나요? A. 아영세상은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걸 마구마구 하고 가끔은 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전달하기도 해요. Q. 김아영 배우의 꿈은 뭔가요? A. 계속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연기도 그렇고 아영 세상을 통해서 만들고 싶은 아이디어들도 계속 생겼으면 좋겠어요. Q. 직업병이 있나요? 그리고 일상생활에 있어서 어떤 영향을 주나요? A. 배우라는 직업을 떠나서 메모장에 무언가를 적는 습관이 있어요. 좋은 아이디어나 누군가를 보고 저런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메모장에 적는 편이에요.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Q. 앞으로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요? A.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런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고 저를 맑눈광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생겼지만, 그 이외의 부분도 많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하나씩 꺼내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이 시대의 수많은 MZ들에게 한말씀 해주세요. A. 하고 싶은 거 다하자! 2023-03-01 18:00:00 [김호이의 사람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하루 30시간이 주어진다면 하고 싶은 것 '24시간'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다. 하지만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한때 "하루가 30시간이었으면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와 함께 30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 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하루가 30시간이었으면 한다는 말을 했었는데 만약 하루가 30시간이면 뭘 할 건가요? A. 만약 하루가 30시간이면 연습과 휴식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고 시차 적응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30대를 맞이한 심적인 변화가 있나요? A. 김광석을 좋아하고 서른 즈음에를 들어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하는데 몇 달 전과 비슷한 것 같아요. Q. 헨델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일반 대중이 피아노 연주곡으로 듣기 위해 즐겨 선택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요.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이번 음반을 내면서 헨델에 대한 관심도 벌써 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영향력을 가진 음악가로서 클래식 음악계에서 하고 싶은 역할이 있으시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헨델 음악은 충분히 한국의 어린 친구들도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더 많이 연주했으면 좋겠어요. 헨델 등을 공부하게 되면 얻는 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화려한 레파토리를 하는 것보다 이런 것도 공부하면 좋을 것 같아요. Q. 클래식 음악계에서 하고 싶은 게 있나요? A. 아니요. 클래식 음악계에서 하고 싶은 역할은 없어요. 역할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제게 음악은 좋아서 하는 것이에요. 관객에게 위대한 음악을 보여드리는 것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역할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아요. Q. 어느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하시나요? A. 음악과 커리어는 분리해야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지만 이제 그런 건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이제는 어떤 사람이랑 연주하느냐가 중요해졌어요. 마음과 성격이 잘 맞는 사람과 연주를 하는 게 중요해졌어요. Q. 행복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A.행복에 대해서 매일매일 생각하는데 그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근데 투어를 마치고 집에서 쉴 때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Q. 작년 미국 연주 일정 중 트렁크를 분실해 캐주얼한 복장으로 연주해 화제가 됐었는데 당시 상황 이야기 좀 해주세요. A.베를린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갔는데 짐이 파리에서 못 온 거예요. 일정이 급해서 짐을 대만으로 보내달라고 했어요. 다른 분들께 양복을 빌리는 등 많은 분께 도움을 받았어요. Q.클래식 외에 뭘 좋아하나요? A. 다른 장르는 잘 몰라요. 바빠서 음악을 잘 못 듣는 편인데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클래식을 듣는 편이에요. Q.드라마는 어떤 걸 좋아하나요? A. 저는 비행기에서 음악보다 드라마를 많이 봐요. 더 글로리 재밌게 봤습니다. Q. 좋아서 음악가로 산다고 했지만 그래도 청중이 없으면 연주를 할 수 없잖아요. BTS는 과거 인터뷰 때 언젠가 자신들을 찾아줄 사람이 점점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안정적으로 내려올 지에 대한 고민과 스트레스가 많다고 했어요. 조성진 피아니스트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해본 적 있는 지 궁금합니다. A.저는 BTS 같은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건 거만한 것 같아요. 다만 도시에 1000명에서 2000명 정도 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2023-03-01 18:00:00 [김호이의 사람들] 래퍼 허성현이 쇼미더머니에 도전했던 이유 래퍼 허성현은 쇼미더머니9에 출연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이후 2년이 지난 2022년에는 쇼미더머니11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사실 허성현이 방송에 모습을 비춘 건 쇼미더머니 8이지만, 아쉽게 탈락을 했다. 이후 쇼미더머니9에서 준수한 실력으로 주목 받았던 그. 이날은 독특한 톤과 자신만의 스타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허성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쇼미더머니가 끝난 후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A. 뿌듯한 마음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새로 발매할 곡을 작업하며 쇼미더머니 때와 똑같이 바쁘게 지내려고 합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마음이 조급하지 않고 편한 것 같습니다. Q. 쇼미더머니에서 준우승을 했는데요. 출연 전에 비해 바뀐 게 있나요? A. 쇼미더머니가 끝나자마자 큰 공연 스케줄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 외에는 생각보다 바뀐 게 없어요. 제가 외출하는 걸 안 좋아해서 변화가 안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새로 발매할 곡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Q. 쇼미더머니에서 낸 노래 중에 가장 마음에 들거나 더 신경쓴 곡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곡을 선택한 이유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가사가 무엇인지 이유도 궁금해요. A. 파이널 무대에서 불렀던 ‘Way up’입니다. 이 곡에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과 취향이 전부 들어간 곡이에요. 첫 가사가 "폼 미쳤지 이제야 떴어 못 숨겨"인데 팬분들이 달아주신 "허성현 폼 미쳤다", "나만 알고싶다"는 댓글을 참고해 가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Q. 쇼미더머니를 통해 스스로 이뤄낸 게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스스로 이뤄낸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알티 형과 저스디스 형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고 저는 쇼미더머니 이전부터 계속해왔던 게 랩인데 오로지 랩에만 집중할 수 있게 다른 부분을 신경 써주셨습니다. Q. 쇼미더머니9 참가 이후 2년이 지나 쇼미더머니 11에 출연하면서 스스로 변화한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곡을 듣는 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니 모두가 가사를 이해할 수 있게 더 집중해서 적었고 음악에 훨씬 몰입하게 됐어요. 처음 쇼미더머니에 나갈 때도, 이번 쇼미더머니11에 나갈 때도 다른 사람과의 경쟁과 자신에 대한 증명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나갔습니다. 제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한 건지 결과로 보고 싶었습니다. Q. 쇼미더머니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뭔가요? A. 맥대디 형이 3차 게릴라 비트 사이퍼 때 마이크 잡으려고 다이빙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그냥 다이빙이었다면 “아 이 비트가 정말 하고 싶었구나”라고 생각했겠지만, 래퍼 고은이를 상대로 그렇게 몸을 던지니까 그 모습이 더 재밌었습니다. 2023-03-01 17:11:34 [김호이의 사람들] 허성현을 랩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 쇼미더머니11에서 준우승한 래퍼 허성현. 친구들의 칭찬으로 랩을 시작한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통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허성현이 랩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Q. 랩을 처음 시작하게 된 이유는 뭔가요? A. 노래방에서 다이나믹 듀오 형들의 랩을 자주 불렀었는데 친구들이 랩 잘한다고 얘기해줘 관심이 갔고 자연스럽게 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처음 랩을 시작했을 때의 꿈을 얼마나 이뤘나요? A. 처음 랩을 시작할 때의 꿈이 최고가 되는 거였는데, 아직 조금도 못 이뤘습니다. Q. 허성현에게 힙합, 랩을 잘한다는 의미는 뭔가요? A. 부르는 사람과 곡이 잘 어울리는 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부르는 사람이 재밌어야 하고, 듣는 사람도 신나야 하며 전하려는 뜻이 잘 전달된다면 그게 잘 만든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Q. 랩 디자인을 할 때 무엇을 염두에 두고 하시나요? 그리고 플로우 스케치는 어떤 식으로 하시나요? A. 플로우 스케치는 허밍으로 짜는 편입니다. 가사 없이 허밍으로 플로우를 만들 때 뭔가 느낌이 온다면 그 플로우가 잘 짠 플로우라고 생각해서 허밍을 오래 하는 편입니다. Q.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는데요. 허성현을 노래 하고 춤추게 하는 건 뭔가요? A. 결과물을 만들었을 때 오는 성취감이죠. 이 성취감이 다음 노래를 계속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에요. 만든 곡이 별로일 때 오는 상실감도 있지만, 좋은 결과물을 통해 얻는 성취감이 더욱 커서 계속 그 감정을 느끼려고 많은 작업물을 만들고 있어요. Q. 래퍼 허성현과 인간 허성현은 어떤 사람인가요? A. 같은 사람입니다. 래퍼로서의 제 모습에서 사람으로서의 제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도 싫고, 사람으로서의 저에게서 래퍼로서의 제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도 싫어서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애초에 그 둘이 같은 모습인 게 당연하다고 느껴요. Q. 앞으로 어떤 래퍼가 되고 싶나요? 그리고 가사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나요? A. 앞으로 제 일상에 생긴 감정들이나 생각에 관해서 적을 거예요. 그게 제가 되고 싶었고, 또 멋있다고 생각하는 래퍼의 모습이니까요. Q. 마지막으로 더 높은 무대를 향해 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저 역시 더 높은 무대를 향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계속 노력하고 발전하려 합니다. 그러니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 이후의 모습도 생각하면서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2023-03-01 17:11:07 [김호이의 사람들] 여행이 안시내 작가에게 준 의미 여행은 최고의 공부라는 말처럼 많은 영감을 준다. 때론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20대 초반에 여행을 처음 떠났던 안시내 작가는 어느덧 30대가 됐다. 그와 여행이 준 의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 건 뭔가요? A. 제 신작 제목인데 많은 분이 물어보시더라고요. 제가 항상 여행기만 냈는데 이번 책에서는 여행 이야기 뿐만 아니라 사랑 이야기, 이별 이야기 등을 담았어요. 이성 간에 사랑 뿐만 아니라 엄마의 사랑, 친구의 사랑 이야기도 담았고, 여행 등의 이야기도 들어있어요. 이런 것들이 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누구나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겪은 이야기이지만,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데에 초점을 맞췄어요. Q. 안시내 작가의 20~30대는 어땠을지 궁금해요. A. 20대는 '막무가내'였어요. 제가 3번째 책을 20대 중반에 썼는데요. 당시 대학교 졸업을 1년 남기고 그만뒀어요. 삶에 안전망들을 제거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죠. 20대의 안시내는 도전적이고 달려가는 느낌이었어요. 사람들이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을 많이 시도해봤다고 생각해요. 20대엔 돈을 벌기보다 청춘에 투자하고 싶었어요. 반면 30대 안시내는 20대 때 많은 것을 겪으면서 성숙해지고 비로소 현실 감각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봐요. Q. 첫 여행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A. 중·고등학생 당시 제 꿈은 "1년 정도는 정말 하고 싶은 걸 해보자"였어요. 집안 형편이 좋았던 건 아니지만, 1년 만큼은 그렇게 살아보자는 마음이었죠. 하지만 대학교 입학 후 학교 생활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다 보니 시간이 정말 없었어요. 21살 때 "이렇게 살다가는 평생 정해진 대로 살겠구나. 취업하고도 이렇게 살겠구나. 지금이 아니면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반년간 돈을 모아 반년 가까이 여행을 떠났어요. 근데 여행을 하다 보니까 마음이 바뀌더라고요. "1년만큼만? 아니 평생 내 마음대로 살거야"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Q. 여행을 통해 달라진 모습이 궁금해요. A.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과거엔 한계를 정해두었는데 지금은 도전적으로 바뀌었죠. 더불어 자존감도 높아졌고요. 또 예전에는 콤플렉스를 숨기려고만 했다면 이제는 인간 안시내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대로의 나 자신을 보여주게 됐어요. Q. 감옥에 있는 수감자가 작가님 책을 읽고 편지를 써서 작가님이 직접 만나러 갔다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작가가 된 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내가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특히 세계일주를 꿈만 꿔온 한 분은 제 이야기를 읽고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세계 일주를 떠난다고 하셨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내가 모자라다고 느꼈던 것들이 남들에겐 용기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2023-03-01 01:00:00 [김호이의 사람들] 전교 꼴찌였던 송정훈 대표가 미국서 컵밥으로 1등이 되기까지 전교 꼴찌·전과목 F·춤꾼···송정훈 유타컵밥 대표의 학창시절 수식어다. 춤 말고는 잘하는 게 없던 그는 20대 중반에 안 되면 돌아가겠다는 생각으로 6개월 왕복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던 어느날 전 세계 음식이 모두 모인 대형 음식 박람회에 갔을 때 한국 음식이 없는 걸 보고 친구들과 푸드트럭 컵밥을 창업했다. 싸고 맛있고 빠르지만, 그저 저렴한 한 끼 식사로 여겨졌던 노량진 컵밥에서 그는 기회를 찾았다. Q. 미국에서는 컵밥을 하시는 분들이 아예 없었나요? A. 그때 당시에 제가 알기로는 없었어요. 근데 지금은 많이 하시더라고요. Q. 사람들이 대표님께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A. 소스 맛이 뭐냐고 물어보는 분들 제일 많아요. “어떤 소스가 올라가냐” 그리고 “이 용기는 어떻게 구했냐” 이런 질문을 많이 하시죠. Q. 그러면 어떻게 대답하세요? A. 일단 최대한 대답을 드리기는 하는데 레시피를 가르쳐줄 수는 없잖아요. 제가 드릴 수 있는 정보는 예를 들어 트럭과 트레일러 중 어느 쪽이 좋냐, 용기의 크기는 어떻게 되냐, 어떻게 장사를 하느냐 등 이런 것들은 최대한 다 말씀을 드려요. Q. 미국에 매장이 있는 건가요? 아니면 트럭을 계속 이동하며 파는 건가요? A. 원래는 트럭으로 시작했었고요. 지금은 매장이 더 많죠. Q. 트럭에서 팔면 사람들이 찾아오고 싶은데 계속 움직이다 보니까 못 찾아오는 경우도 많잖아요. A. 그래서 SNS를 팔로우 해야 되는 거예요. 거기에만 공지를 했거든요. Q. 만약에 자녀가 커서 “아빠처럼 컵밥 한번 해볼래”라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A. "안 돼"라고 일단 얘기해야죠. 요식업이 쉽지 않거든요. 굉장히 쉽게 들어오는 동시에 쉽게 나가는 게 사업이에요. 무슨 자격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들어 올 수 있지만, 반면 쉽게 망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하겠다고 한다면 시켜야겠죠. 대신 여러 준비 과정을 도와주고 싶어요. 금전적인 도움이 아니라 서류 준비와 파트너들과의 관계 등에 대한 조언이죠. Q. 자녀에게 창업 선배로서 단 한 가지를 알려준다면 무엇을 알려주고 싶으세요? A. "사람을 조심해라. 그렇지만 사람 없이는 사업이 안 된다"라는 걸 꼭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Q. 3명이서 동업을 창업을 했다고 들었어요. A. 현재 두 분은 나갔어요. 저와 새로운 파트너들이 있습니다. Q. 주위에서 "친구끼리 사업하지 마라"는 얘기를 해요 A. 조심해야죠. 사업은 조심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아무와도 하지 않잖아요. 동업은 사업에 있어서 결혼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보이는 모습만 보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Q. 미국에서 컵밥을 한다고 해서 이렇게 화제가 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어쩌다가 대표님께서 화제가 된 거예요? A. KBS ’다큐 공감‘이라는 프로그램의 PD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트럭 하나로 하고 있었을 때인데 저희를 찍고 싶다고 하셨죠. 당시 저는 그 연락이 사기는 아닐지 우려했어요. 왜냐하면 저희가 성공한 것도 아니었고, 한창 열심히 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왜 우리를 찍지"라는 의문이 들었죠. 그래서 제가 다른 사람을 소개해준다고 했지만, PD님은 꼭 우리를 찍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 왔을 때 미팅을 했었어요. 커피숍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서로 막 울었어요. 그러면서 "이분과 함께 하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이 유타로 오셔서 우리 이야기를 촬영했어요. KBS에서 방영되긴 했지만, 그게 SNS에 많이 공유됐어요. 그래서 엄청난 연락들을 받기 시작했죠. Q. 대표님 창업 에피소드가 궁금해요. 어쩌다 창업을 하게 됐고 어떻게 지금의 자리까지 올랐는지 듣고싶어요. A. 그때는 정말로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무슨 꿈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었어요. 그래서 그냥 트럭을 샀고 무언가를 만들었죠. 물론 처음부터 사람들이 많이 왔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언젠가 제 트럭 앞에 사람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고 여러 마케팅을 시작했죠. 그런 과정이 조금씩 진행되면서 꿈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아울러 컵밥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도 싶었어요. 한국 음식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정말 크거든요. Q. 컵밥을 맛본 미국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A. 일단 낯설어했죠. 다만 겉모습은 굉장히 낯선데 막상 먹어보면 미국인이 평소 즐겨 먹던 소스 맛이 나기 때문에 그렇게 낯설어 하지 않아요. 반대로 한국인이 먹을 땐 "어? 이거 뭐지?"라는 생각이 들겠네요. Q. 단골도 있나요? A. 진짜 많죠. 어디든지 저희를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많고요. 지금은 한 8~9년 정도가 지났거든요. 부모님과 함께 다녔던 자녀들이 이젠 성장해 본인 가족을 데리고 오기도 해요. 그럴 때 굉장히 감동해요. Q. 창업을 준비하는 20대에게 3가지 조언을 해준다면요. A. 첫 번째는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라. 그게 요식업이건 뭐든 상관없이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나야 해요. 두 번째는 경제적인 준비를 해라. 투자자를 모으기보다 혼자 할 수 있는 상태에서 가장 위험성이 작은 계획을 차근차근 이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결혼이에요. 사업을 하다 보면 외로울 때가 많아요. 그때 100% 제 편이 돼줄 사람은 배우자거든요. 저 역시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울 사람은 제 와이프라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고 싶어 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A.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먹고 사는 것이 재밌을 수 있잖아요. 그러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일을 재밌게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다른 얘기거든요. 그래서 저는 본인이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2023-03-01 00:01:00 [김호이의 사람들] 송정훈 유타컵밥 대표가 미국서 컵밥을 팔게 된 이유 노량진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컵밥이다.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컵밥을 미국에 진출시킨 사람이 있다. 바로 송정훈 유타컵밥 대표다. 그가 미국에서 컵밥을 팔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컵밥을 처음 팔게 된 이유가 뭔가요? A. 일단 먹고 살기 위해서 컵밥을 팔게 됐어요. Q. 한국에서 했다면 비용이 덜 들었을텐데, 미국에서 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A. 일단은 제가 미국에 있었고요. 미국에서 공부를 했었고 그러면서 그쪽에 가족도 만들고 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미국에서 시작했었던 거예요. Q. 원래 꿈은 가수였다고 들었어요. A. 가수였죠. 근데 얼굴이 특별하게 잘 생긴 게 아니었거든요. 지금은 굉장히 개성 있는 분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때는 잘 생겨야 하고 꽃미남이어야 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쪽에서 좀 떨어졌던 것 같아요. Q. 미국 유학 중에는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A. 매형이랑 저랑 덴탈랩 사업을 했었어요. 이빨을 만드는 건데, 그 사업을 처음 했었다가 앉아있는 걸 제가 잘 못하거든요. 반면에 사람 만나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사람을 만나 세일즈를 하면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을 생각했죠. Q. 20대 당시 유타에서의 경험은 어땠나요? A. 일단은 되게 죄송스러운 말이기는 하지만 유학을 가고 싶은데도 못 가시는 분들도 되게 많잖아요. 근데 저는 정말로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그분들이 지원을 해주셨기 때문에 제가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거예요. 근데 저는 사실 유학을 가고 싶지 않았는데 워낙 여기서 사고를 많이 치니까, 그쪽에 가서 그래도 좀 넓은 세계를 한번 보고 오라는 취지로 유학을 보내주셨죠. Q. 가서도 빨리 돌아오고 싶었다고 들었어요. A. 그렇죠. 매일 돌아오고 싶었죠. Q. 근데 지금은 유타에서 계속 살고 계시잖아요. A. 원래는 6개월 유학을 약속 했었거든요. 근데 이제 유타에 온지 18년이 됐어요. 이렇게 될 줄은 저도 몰랐어요. Q.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에요? A. 일단은 유타라는 곳이 굉장히 안전해요.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요. 그리고 가족 문화가 많이 형성돼 있는 곳이 유타거든요. 그래서 이 곳에서 결혼을 하다 보니 정착하게 됐어요. Q. 한국에 와서 다시 살아도 되고, 미국의 다른 지역도 있는데 왜 유타인가요? A. 일단은 아이를 키우기에 유타가 정말 좋아요. 안전하거든요. 그리고 유타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면 어디서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유타에 살게 됐어요. Q. 여행지로도 추천을 하세요? A. 일단 아웃도어 하시는 분들한테는 천국이죠. 유타는 물도 있고 산도 있고 유명한 국립공원도 5~6개 정도가 있는 곳이에요. 눈이 많이 와서 스키도 정말 유명하고요. Q. 처음에 컵밥을 한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A. 다들 하지 말라고 했죠. Q. 그런데 왜 이걸 하게 됐어요? A.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하고 싶더라고요. 제가 그런 성격이에요(웃음). Q. 외식업에 치킨도 있고 햄버거도 있고 피자도 있고 종류가 많은데 왜 컵밥을 하게 된건가요? A. 일단은 간편한 게 되게 좋았어요. 들고 어디든 갈 수 있잖아요. 반찬을 여러 개 깔아 놓을 필요도 없고, 고기를 하나 하나 구워야 될 필요도 없고, 야채를 씻어야 될 필요도 없기 때문에 굉장히 빠르고 재밌어서 저한테 딱 맞았어요. Q. 우리나라에서 컵밥을 하다가 미국으로 간 거예요? A. 그건 아니에요. 그냥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봤고 노량진 컵밥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이 아이디어는 어떻게 보면 미국에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여러 가지들이 굉장히 많이 맞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컵밥을 선택했죠. Q. 시장조사 같은 것도 해야 되잖아요. A. 그런 거 모르고 그냥 시작했어요. 그런 계획도 없이 그냥 하겠다고 생각을 해서 그날 저녁에 트럭을 샀어요. 어떻게 운전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샀어요. 그 후에 몇 달 동안 주차를 해놨어요. 근데 돈이 들어갔으니까 무조건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시작한 게 컵밥이에요. Q. 주위 반응은 어때요? A. 제가 같이 하자고 했던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아 그때 할 걸” 이런 사람들도 있고 “이거 원래 내가 하려고 했었던 건데”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Q. 마케팅은 어떻게 했나요? A. 마케팅이라고 생각할 것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돈이 없었기 때문에 오시는 손님 한 분 한 분한테 전화기를 달라고 했어요(웃음). 손님으로 왔는데 전화기를 달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전화기를 줬어요. 그래서 제가 페이스북 페이지를 찾아서 '좋아요'를 눌렀죠. 그리고 전화기를 주고 얘기해요. "이 음식이 맛이 없으면 '좋아요'를 취소해도 되지만 대신에 맛이 있으면 우리를 팔로우해 달라" 이렇게 부탁했어요. 그게 첫 마케팅이었어요. Q. 한국에서도 컵밥을 많이 드셨어요? A. 저는 안 먹어봤었어요. 사업을 시작하고 한 3~4년 정도 지나고 나서 한국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노량진 가서 처음 먹어봤었어요. Q. 대표님께서 만드신 컵밥이 처음 맛보는 컵밥이었잖아요. 노량진에서 맛을 봤는데 어땠나요? A. 한국 것이 훨씬 맛있습니다(웃음). 2023-03-01 00:01:00 [김호이의 사람들] 쇼미더머니 제작진이 말하는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잃고 싶지 않은 마음 지난 2012년 시작한 쇼미더머니는 11년동안 지속될 정도로 많은 래퍼들의 꿈의 무대다. 시간이 흐를수록 힙합의 취향과 트렌드도 바뀌고 쇼미더머니가 보여주고자 하는 무대의 모습도 바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미더머니가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시간에 따라 힙합의 취향과 트렌드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쇼미더머니1 이후 1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2022년 쇼미더머니11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은 뭔가요? A. 이번 시즌은 현재 한국 힙합신에서 주목 받고 있는 루키들과 대중들에게 소개되지 않은 힙합의 다양한 하위 장르들이 대중들에게도 소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즌은 드릴 장르를 필두로 UK개러지, 레이지 비트 등 대중들에게 생소했던 힙합신의 다양한 하위 장르의 음원들이 소개될 수 있었던 시즌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이영지가 우승을 했어요. 쇼미더머니11에 출연을 한다는 것 자체로 큰 화제가 됐는데요. 고등래퍼에서 본 고등학생 이영지와 어른이 된 후 쇼미더머니를 통해서 본 어른 이영지는 어떻게 다르던가요? A. 고등래퍼에서의 이영지씨는 말그대로 대중들에게 원석 같은 존재였습니다. 랩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대중들에게도 생경한 여느 고등학생 중 한 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쇼미더머니11에서의 이영지는 이미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유명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갖는 중압감이 남달랐을 테고 그래서 참여를 결정한 것 자체로 이미 잃을 것이 많을 수 있는 도전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스물 한 살의 이영지씨는 기존에 알려진 이미지 외에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여러 이면들에 대해 표출하길 주저하지 않았고 잃을 것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 일단 부딪힌 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성장하는 것을 무기로 택했다는 부분이 감명 깊었습니다. Q. 쇼미더머니11의 제작진이 생각하는 힙합과 랩을 잘한다는 의미는 뭔가요? A. 대중을 끌어들이고 집중하게 만드는 능력. 그게 출중한 사람이 ‘스타’이고 결국 힙합이나 랩을 잘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유독 눈에 띄는 참가자는 누구였나요? 그리고 방송에 나오지 않았던 장면 중에 기억에 남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요. A. 노윤하라는 참가자가 기억에 남습니다. 끼가 많고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어떻게 하면 본인의 매력을 잘 보여줄 수 있는지를 잘 파악하고 있는 참가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제작진이 생각하는 쇼미더머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쇼미더머니에 참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 부탁드릴게요. A. 가장 자유분방함을 가진 래퍼라는 참가자들이 미디어 속 경쟁 시스템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를 보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참가자들도 방송 시스템에 처음 들어와서 아침 일찍부터 녹화를 진행하다보면 많이 힘들어하기도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미더머니에 참가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프로그램 이름과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본인들의 이름과 매력을 알리고 결과적으로는 ‘생활인’으로서 음악을 더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쇼미에 더 많은 분들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Q.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잃고 싶지 않은 제작진으로서 마음과 앞으로 쇼미더머니가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A. 결국 서바이벌이라는 포맷은 그 근간에 ‘간절함’과 ‘진정성’이 깔려있어야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도 좋고, 유명세도 좋지만, 힙합과 무대에 간절함을 가진 진정성 있는 래퍼분들의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그려질 수 있는 포맷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더불어 오랜 시간 시즌이 지속된 만큼 포맷에 대한 시청자분들의 피로도도 어느 정도 누적된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익숙한 재미 안에서 어떻게 신선함과 새로움을 확보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쇼미더머니 도전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여러분이 꿈꾸는 쇼미더머니가 계속 될 수 있게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23-02-01 12:00:00 [김호이의 사람들] 미치에다 슌스케 배우가 한국에 와서 놀란 이유 <이 세계에서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소설이 원작이지만 영화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일어나면 전날의 기억을 잃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소녀 마오리와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무색무취의 평범한 소년 토루기. 매일 밤 사랑이 사라지는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서로를 향한 애틋한 고백을 반복하는 두 소년, 소녀의 가장 슬픈 청춘담을 다룬 영화다.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에 보답을 하기 위해 미치에다 슌스케가 한국에 왔다. 그와 인터뷰를 하기 위한 자리에서도 많은 팬들이 모여 그의 인기를 실감했다. 그가 한국에 와서 놀랐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영화가 장기 흥행 중인데 어떤가요? A. 정말로 이런 기회는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한국에서 흥행을 해서 행복해요. 일단 원작 소설이 한국에서 인기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원작 소설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해요. Q. 일본에 있는 감독과 배우들과 한국의 흥행에 대해 어떤 얘기를 나눴나요? A. 감독님과 후쿠모토씨와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만나게 되면 한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것 같아요. Q.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팬들의 성원에 감사드리고 있어요. 이 작품과 저에 대해 사랑해줘서 너무 감사해요. Q. 본인이 맡은 캐릭터와 자신의 싱크로율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A. 60% 비슷한 것 같아요. 남을 위해 뭔가를 하려는 강한 마음이 비슷한 것 같아요. 명장면은 불꽃놀이 장면이라고 생각하고 그 장면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Q. 한국에서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배우가 있나요? A. 한국 배우 중에 송강 배우를 만나 사랑을 전하고 싶어요. Q. 한국 10대 팬들이 많은데 일본에서도 10대 팬들이 많은가요? A. 일본에서도 중·고등학생 등 10대들이 극장에 찾아주고 20대 커플들이 많이 와 소중한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는 말을 많이 해줬어요. 10대는 순식간에 끝나고 반짝이는 나이인데 그 시기에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드라마틱한 사랑을 하는 것에 끌린 것 같아요. 거의 러브레터 이후 20년 만에 큰 사랑을 받은 것에 감사해요. Q. 한국 영화와 소설을 많이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송강 배우 외에 함께 하고 싶은 감독이 있나요? A. 한국 드라마는 많이 보는데 한국 영화는 많이 못 보고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한국 감독님들의 영화에 출연해 함께 하고 싶어요. 그리고 소설은 많이 읽지 않고 만화를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Q, '천년남돌'이라는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굉장히 감사하고 부끄럽다고 생각해요(웃음),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감독님의 연출 등이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Q. 한국 드라마 중에 어떤 작품을 좋아하시나요? A. 여신강림을 즐겨봤어요. 그리고 연기에 있어서 고등학생 장르가 많았는데 점점 성인이 되어가면서 정반대의 역할을 맡아보고 싶어요. Q. 감독과 작업이 어땠고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은 뭔가요? A. 배우 한명 한명에게 진지하고 다정하게 대해주셨어요.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연기에 있어서는 집안에서 아버지와 다투게 되는 부분을 신경 써 연기를 했어요. 특히 해당 장면이 표현하기도 어려워 '내게 과제구나'라는 생각도 했고요. 2023-02-01 12:00:00 이전123456789다음 다른 기자의 기사보기 현장에서 스마트폰만 떨어뜨렸을 뿐이라면 현장에서 尹정부, 韓 배터리 미래를 타국의 손에 쥐어주다 현장에서 '예스 재팬'과 디스아너드 정연우의 외교클릭 '日 변호사'가 된 검사 출신 대통령 현장에서 연봉이 낮아야 칭찬받는 '자본주의 딜레마' 현장에서 국민연금을 위한 변명 현장에서 노조의 자주성과 투명 회계 강대웅의 정문일침(頂門一鍼) "이충우 시장의 '여주시 발전 전략' 신선하고 기대 된다" 김슬기의 與당탕탕 김기현 대표가 끌어안아야 할 '47%'의 무게 현장에서 변호사-플랫폼 갈등, 입체적 접근 필요한 시점이다 김서현의 국회단상 강한 껍질 탈피해야 더 단단해진다 김세은의 너섬세상 그토록 사랑하는 이재명, 제 손으로 망치는 개딸들 현장에서 챗GPT에게 인터뷰 당해 보니 강대웅의 정문일침(頂門一鍼) 정명근 화성시장, 소신있는 시정철학 돋보인다 현장에서 AI 역사의 한 페이지 넘긴 챗GPT, 인류 역사도 넘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