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경계지능' 청년들… 인구 7명 중 1명이지만 여전히 제도 밖

이승우26살이 7월 21일 별의 친구들 베이커리에서 휘낭시에 조리법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유나현 기자
21일 별의 친구들 베이커레이서 이승우(26)씨가 휘낭시에 조리법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유나현 기자]
 
오후 2시. 점심 영업이 끝나가는 서울 관악구 ‘청년밥상 문간 슬로우’ 낙성대점에서 한 청년이 손님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닦고 있다. 소독제를 뿌리고 식탁 모서리 하나 놓치지 않은 채 분주히 훔쳐낸다.

“손님들이 오시는 곳이니까요. 깨끗하게 닦아야 마음이 편해요.”

김지우씨(27)는 곁눈질로 손님들의 식사 상황을 살피며 주문을 주방에 전달하고, 사용한 앞치마도 꼼꼼히 정리해 행거에 걸었다. 

여느 아르바이트생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지우씨와 주방에서 일하는 두 명의 다른 청년들은 모두 ‘경계선 지능인’이다.

◆IQ 71~84, 인구 7명 중 1명

경계선 지능인은 지능지수(IQ)가 71~84인 사람을 말한다. 지적장애 등록 기준인 IQ 70 이하에는 해당하지 않아 장애인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평균 지능에는 미치지 못한다.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IQ 정규분포상 전체 인구의 약 13.6%가 이 범위에 속한다. 2023년 5월 기준 총인구에 대입하면 약 699만명, 인구 7명 중 1명꼴이다. 지적장애 출현율이 2017년 기준 0.38%였던 점과 비교하면 훨씬 큰 규모지만, 이들이 정확히 몇 명인지 보여주는 국가 통계조차 없다.

문제는 이들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놓여 제도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는 점이다.

김지우씨는 군 신체검사에서 경계선 지능으로 4급 판정을 받아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면서 처음 자신의 상태를 자각했다. 대학 졸업 후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주 60시간씩 일하던 시절에는 “조금 느리다”는 이유로 주방장과 부점장에게 질책을 받았고, 해고될 뻔한 적도 있었다.

 
20일 청년밥상문간 낙성대점에서 김지우27살씨가 손님들이 쓰고 간 식탁을 닦고 있다 사진유나현 기자
20일 청년밥상문간 낙성대점에서 김지우(27)씨가 손님들이 쓰고 간 식탁을 닦고 있다. [사진=유나현 기자]
 
◆“일자리가 없다”… 교육이 끝나도 남는 것

청년밥상 문간 슬로우점은 이문수 신부가 2015년 한 청년이 작은 방에서 굶어 숨졌다는 뉴스 보도를 접한 뒤 문을 연 저가 김치찌개 식당에서 출발했다. 현재는 여러 지점을 운영하며 느린 학습자 청년들의 일터 역할도 하고 있다.

이태균 팀장은 청년들의 가장 큰 강점으로 성실함을 꼽았다.

“손발이 조금 느릴 수는 있지만 큰 차이는 없습니다. 자기가 맡은 역할에 책임감을 갖고 움직입니다.”

이 팀장은 “슬로우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다른 기업에서도 일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인턴 제도가 확대되면 좋겠다”며 “이 청년들의 경계가 애매하다 보니 별도의 경계선 지능인 대상 일 경험 제도가 없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이 이들을 고용하거나 실습 기회를 제공할 때 국가 인센티브라도 받을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별의 친구들 베이커리… 저마다의 속도로 꿈을 굽는 곳

같은 문제의식은 ‘별의 친구들’ 베이커리에서도 이어졌다.

이승우씨(26)가 이날의 메인 제과제빵사를, 안효제씨(29)가 보조를 맡았다. 메뉴는 휘낭시에와 초코아몬드 쿠키였다.

별의 친구들은 2002년 학교폭력 등으로 고통받는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시작됐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현수 대표가 설립한 이곳은 오늘날 장애인과 경계선 지능인,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우울증을 겪는 청년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신경다양성’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두 청년 모두 경계선 지능인이다.

윤태현 팀장은 “효제씨는 처음에는 자신이 느린 학습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며 “그러다 백선희 국회의원이 방문했을 때 느린 학습자들을 위해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냈다”고 말했다.

승우씨의 꿈은 자신만의 디저트 카페를 여는 것이다.

“집에서도 휘낭시에와 티그레를 직접 구워요. 나중에 제 카페를 차려서 팔아보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맛있다고 말해줄 때 가장 보람 있어요.”

아직 자신의 꿈을 찾는 중인 효제씨는 쿠키에 들어갈 설탕을 계량하며 “뮤직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희가 다른 사람들보다 배우는 속도가 다른 건 맞아요. 하지만 그걸 이해해주고 기다려주면서 저희에게도 취업 기회를 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할 수 있도록요.”

윤 팀장은 취재 말미 현실을 짚었다.

“한국에는 아직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말이 들어간 법조차 없습니다. 청년들이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는 거의 없고, 하루 3~4시간 정도만 일할 수 있는 이들의 체력을 고려한 작업장도 많지 않습니다.”

◆오름카페… 경계를 지운 진짜 일터

다음으로 발길이 닿은 곳은 서대문구청 뒤편에 자리한 오름카페였다. 서울시와 서대문구가 위탁한 이 카페는 구립장애인내일키움직업교육센터가 운영한다.

오전 9시 30분 문을 열기 전부터 최유미씨(45)는 야외 벤치를 부지런히 닦았다.

유미씨는 이곳에서 10년을 일한 베테랑이다. 주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오픈 근무를 맡는다.
 
22일 서대문구청 뒷편의 오름 카페에서 최유미45씨가 커피를 내리고 있다 사진유나현 기자
22일 서대문구청 뒷편의 오름 카페에서 최유미(45)씨가 커피를 내리고 있다. [사진=유나현 기자]
 
이날 오전에도 등산객과 관광객이 하나둘 몰리며 주문이 쌓였지만, 함께 일하는 매장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동안 그는 혼자 모든 주문을 처리했다. 유미씨 역시 센터에 등록된 경계선 지능인이다.

근무 여건에서 무엇이 더 나아지면 좋겠느냐는 질문에는 “손님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손님들이 음료와 샌드위치를 맛있게 드실 때 가장 보람 있고 즐겁다”고 답했다.

◆“성실한 사람이 손해 보는” 구조

내일키움직업교육센터 이도형 팀장은 앞선 두 곳과는 또 다른 고용의 현실을 짚었다.

그는 “우리 보호작업장에서는 일반 고용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이 직업재활을 하고, 그중 근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분들을 오름카페나 임가공 사업, 하하베이커리 등을 통해 실제 수익을 창출하는 고용으로 연결한다”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복지시설이나 구청·시청 단위에서는 경계선 지능인과 발달장애인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문제는 공공일자리의 배분 방식이다. 서울의 여러 구청은 연말과 연초 장애인일자리사업을 공고하고 장애인을 직접 고용한다. 반일제나 전일제 근로계약을 맺고 급여는 구청이 지급한다.
 
22일 내일키움교직업교육센터 팀장 이도형씨가 경계선 지능인들의 사회 고충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유나현 기자
22일 내일키움교직업교육센터 팀장 이도형씨가 경계선 지능인들의 사회 고충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유나현 기자]
 
그런데 이 팀장은 “유미씨보다 직무 수행 능력이 훨씬 떨어지는 분들도 한 달에 170만원가량을 받으며 일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거의 혼자 카페를 운영할 수 있는 유미씨보다 지시를 잘 따르지 못하고 일도 서툰 분들이 더 많은 돈을 받고 덜 성실하게 일한다면, 경계선 지능인뿐 아니라 열심히 일하려는 발달장애인에게도 억울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팀장은 배려가 곧 무조건적인 우대가 돼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잔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센터에서 일하는 분들이 지각하거나 일을 설렁설렁하면 예외 없이 대응합니다. 장애인이니 이해해 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무조건 봐주는 것 역시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그저 조금 더 느릴 뿐입니다.”

◆IQ라는 숫자와 가능성 사이

10년 넘게 장애인 복지 현장에서 일한 사회복지사 정주연씨는 IQ라는 단일 기준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가 근무했던 지적장애인과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한 센터에서는 사회적응 프로그램으로 식당에 갈 때 이용자들의 취향을 묻지 않고 메뉴를 자장면으로 통일하곤 했다.

정씨가 한 이용자에게 “자장면, 짬뽕, 볶음밥 중 무엇을 드시겠느냐”고 묻자 그는 “짬뽕”이라고 또렷하게 답했다.

“장애가 있으니 스스로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선은 편견에서 비롯된 왜곡된 인식입니다.”

정씨는 “IQ를 배제하기보다는 참고 자료로 활용하되 개인의 사회적응 능력과 의사소통, 자기관리, 일상생활 수행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며 “지원은 장애 유형이 아니라 개인의 기능과 욕구를 중심으로 개별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교육, 독일은 일자리… 한국은?

일본 문부과학성은 학습장애를 “전반적인 지적 발달은 뒤처지지 않지만 듣기·말하기·읽기·쓰기·계산·추론 중 특정 능력의 습득과 사용에 현저한 어려움을 보이는 상태”로 정의한다. 

독일은 직업 활동을 중심으로 접근한다. 돈보스코 직업학교와 직업교육훈련소는 경계선 지능과 자폐 등 비교적 가벼운 장애가 있는 16~25세 청년들에게 개별화된 직업교육을 제공한다.

어느 나라도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지원을 단일 법률로 규율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들이 설 수 있는 제도적 발판은 마련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는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중앙정부 차원의 법안은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보호자가 사라진 뒤”… 아무도 답하지 못한 질문

취재에서 만난 청년들은 대부분 20~30대였고, 오름카페의 유미씨가 45세로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현장의 누구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도형 팀장이 가장 조심스럽게, 그러나 가장 무겁게 꺼낸 이야기가 바로 그 지점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경계선 지능인의 보호자가 더 이상 곁에 계시지 않게 되는 경우입니다. 노인 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은 전무하다시피 하고, 돌봄 서비스 외에는 현실적으로 받을 수 있는 지원이 많지 않습니다.”

“경계선 지능인도 나이가 들었을 때 이들을 돌봐줄 사회적 시스템이 생기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결국 가장 시급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꾸준한 임금이나 수익원이 있어야 생활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젊은 경계선 지능인조차 안정적인 소득을 버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아직 한국 사회가 답을 준비하지 못한 질문이다.
 
20일 청년밥상문간 낙성대점 입구에서 김민성 장민규 김지우씨가 사진 촬영을 위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유나현 기자
20일 청년밥상문간 낙성대점 입구에서 김민성, 장민규, 김지우씨가 사진 촬영을 위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유나현 기자]
 
◆에필로그

다시 김치찌개집. 오후 4시가 되자 청년들은 나란히 퇴근을 준비했다. 각자 이름이 새겨진 앞치마를 곱게 접어 의자에 걸어두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집으로 간다”고 답했다.

내일도 바쁜 근무가 기다리고 있다면서도 힘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한 뒤 나란히 문을 나서는 청년들.

느린 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였다.

이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능력이 아니라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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