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년 전 사형집행이 이뤄졌던 뤼순감옥 사형장 [인문자 기자]
지금으로부터 109년 전 오늘, 지금 이 시각.
중국 하얼빈 역에서 총성을 울렸던 도마 안중근 의사의 사형집행이 뤼순 감옥에서 있었다.
뤼순 감옥에 마련된 안중근 의사 추모 행사장의 모습.[인문자 기자]
순국 109주년을 맞아 뤼순 감옥에는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는 많은 이들이 발걸음이 이어졌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의거 후 일본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 송치되어 일본인 판사, 일본인 검사, 일보인 변호사, 일본인 통역관, 일본인 방청인 등 오로지 일본인들로만 구성된 법정에서 총 6회에 걸쳐 재판을 받았다.
뤼순 감옥에 설치된 안중근 의사에 대한 안내판.[인문자 기자]
안중근 의사는 이러한 사실에 동요되지 않고 재판장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쐈다고 밝히며 이토의 15가지 죄상을 낱낱이 밝혀 재판정을 충격에 빠뜨렸다.
재판 기간 동안 안중근 의사가 수감되었던 독방의 모습.[인문자 기자]
안중근 의사의 당당한 발언에 재판장의 분위기가 바뀌자, 일제는 이후 모든 재판을 비공개로 바꾸고 2월 14일 공판에서 사형을 선고하게 된다.
뤼순 감옥에 전시된 전시물.[인문자 기자]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는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라는 당부를 전한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집행 전까지 저술활동에 힘을 쏟았던 의자와 책상이 전시되어 있다.[인문자 기자]
이러한 어머니의 당부에 안중근 의사는 항소를 포기하고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의 저술에 온 힘을 쏟게 된다.
[인문자 기자]
결국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중국의 역사학자 장태염의 평가.[인문자 기자]
안중근 의사에 대해 중국 근대의 저명한 민주혁명가이자 사상가이며 학자였던 장태염은 ‘아주제일의인’이라 평가했다.
의인 도마 안중근.[인문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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