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R]달라지는 中소비자...'묻지마 소비 대신 질적 소비'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윤세미 기자
입력 2019-03-06 13: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中소비자, 가계 부채와 경기 둔화로 목돈 지출 꺼려

  • 과시적 소비보다 삶의 질 높이는 소비로 이동

  • 여행ㆍ자기계발 등 서비스 산업 성장세 견조

[사진=AP·연합뉴스]


중국인 리 창(36)은 지난 5년 동안 가계 소득이 70%나 늘어났다. 하지만 생활이 퍽 나아진 것 같진 않다.

“경제적 압박은 점점 높아지기만 해요.” 다롄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리는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리의 월급은 1만2000위안(약 200만원) 정도. 중국 북동부 평균 수준이다. 하지만 그는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온라인으로 최저가를 검색하고 외식도 웬만하면 피한다.

주택자금 대출을 받은 뒤로는 허리띠를 더 졸라매기 시작했다. 앞으로 30년 동안 매달 2500위안씩 대출을 갚아나가야 한다. 또 난임 치료와 출산, 유아용품 구입에 쓴 돈만 해도 5만 위안이 넘는다. 심장병을 앓는 아버지 병원비로 나가는 돈이 매달 700위안이다. 아이 교육비 내는 것도 빠듯하고 냉장고를 바꾸는 것처럼 목돈이 나가는 소비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묻지마 소비' 대신 '질적 소비'로 

니혼게이자이는 요즘 중국 중산층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리의 사례를 소개했다. 주택 대출에 자녀 보육비, 각종 의료비 부담에 짓눌려 소비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보다 거시적으로는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중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중국의 소비심리를 갉아먹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6.6%까지 떨어지면서 199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해는 그보다 더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정부는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6~6.5%로 제시했다. 

선 신펑 노스이스트증권 애널리스트는 “암울한 경제 전망과 늘어가는 가계 부채로 인해 중국의 소비 성장세가 현저히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중국 가계부채 중 59%가 주택자금 대출이다. 또 소매판매 증가율은 지난해 9%까지 떨어졌는데, 특히 미·중 무역전쟁 여파가 확연해진 4분기 들어 둔화세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11월에는 소매판매 증가율이 전년 대비 8.1%에 머물면서 1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주머니 사정이 악화되자 한때 유명 브랜드와 값비싼 제품을 찾아 '묻지마 쇼핑'에 나서던 중국 소비자들은 목돈 지출을 미루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기 시작했다. 또 중국 경제를 주도하는 다롄, 상하이, 광저우 등 연안 대도시의 경우 이미 주민들이 웬만한 가전제품이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 둔화 속에서 굳이 목돈을 써가면서 기존 물건을 교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게 니혼게이자이의 설명이다.

결국 이는 교체주기가 긴 자동차나 가전제품의 판매 부진으로 연결되고 있다. 중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내 휴대폰 출하량은 4억1400만대로 전년 대비 15.6% 급감했다. 지난해 신차 판매량 역시 약 20년 만에 처음으로 전년 대비 2.8% 감소한 2808만대에 머문 것으로 중국자동차협회(CAAM) 자료는 보여준다.

이제 중국의 소비는 수입의 상당 부분을 집이나 차에 투자하던 것에서 문화와 오락 등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지출을 줄이면서도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나타나는 변화다. 

이는 바링허우(1980년대 출생자)와 주링허우(1990년대 출생자)가 중국 경제 활동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현상과도 맞물린다. 중국의 신중산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들 세대는 주로 대도시에 거주하면서 물질적으로 과시적인 소비에 치중하기보다 삶의 질과 경험을 추구하며 중국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가계 지출에서 여행과 교육 등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베이징에서 민간투자회사에 다니는 쑨 자양(31)이 그 예다. 쑨과 남편은 매달 5만 위안을 번다. 중국에서 꽤 높은 월급을 받는 것이지만 집이나 차를 장만할 생각이 없다.

쑨은 집을 사지 않기로 한 이유로 ‘팡누’가 되기 싫어서라고 했다. 팡누란 '집의 노예'라는 의미로 빚에 쪼들려 일을 족쇄처럼 차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베이징 집값이 워낙 높다 보니 웬만한 아파트라도 한 채 사면 남은 일생을 빚을 갚으면 살아야 하는데 이게 싫다는 것이다.

베이징의 편리한 지하철 시스템을 두고 굳이 밀리는 도로 위로 자동차를 몰고 나갈 필요도 없다는 게 쑨의 생각이다. 또 그는 자전거 대여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고 가구와 가전제품, 휴대폰도 모두 중고로 구입한다. 이렇게 해서 아낀 돈은 좋은 와인이나 위스키를 사고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로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떠나는 데 쓴다.

◆자동차·휴대폰 지고 문화·오락 뜨고

이런 변화는 관련 산업 성장세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자동차와 휴대폰 시장은 위축세지만 중국의 소비 변화에 발맞춰 여전히 높은 성장률을 구가하는 산업도 적지 않다고 니혼게이자이는 강조했다. 

일례로 중국의 전자상거래 시장은 연간 20%에 이르는 초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보다 싸고 편리하게 물건을 사는 데 익숙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배달 서비스를 등에 업은 외식업이나 영화 산업 역시 10%에 육박하는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여행업도 호황이다. 중국관광연구원(CTA)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국내 여행은 55억 건으로 전년 대비 10% 이상 늘었고, 해외 여행은 1400만건으로 13% 증가했다.

피트니스 클럽이나 학원과 같은 자기계발 산업의 성장세도 눈에 띈다. 2018년 피트니스 시장 규모는 1620억 위안을 기록, 전년 대비 8.3% 성장했다고 리서치업체 중국산업정보망(CIIN) 자료가 보여준다. 또 중국상업정보망(CCIN)에 따르면, 작년 온라인 교육 서비스 시장은 3010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37%나 커졌다.

편의점 시장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2017년 중국 편의점 수는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해 10만개를 돌파했다. 전체 편의점 시장 규모는 23% 확대돼 1900억 위안을 넘었다. 지난해 성장세는 이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뚜렷한 소비 둔화 분위기를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14억 인구가 가진 소비 잠재력이 크다고 본다. 

리강 리우 씨티그룹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CNBC 인터뷰에서 중국의 높은 저축률을 언급하면서 소비가 확대될 여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주요 20개국 중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률이 가장 높은 국가에 속하는 만큼 정부의 소비진작 정책이 뒷받침되면 은행에 들어갈 돈이 시장에 풀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 정부도 경기 둔화 방어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내수 확대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올해 초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자동차와 가전제품 구입에 대한 보조금을 부활시키기도 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