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달 대신 '손가락'만 보는 경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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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군득 경제부 부장
입력 2019-03-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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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군득 경제부 부장]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쳐다본다.”

명성이 높은 승려에게 한 불자가 찾아와서 가르침을 전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승려는 “나는 글을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불자는 크게 실망했다. 그러자 승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리는 하늘에 있는 달과 같고, 문자는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지만, 손가락이 없으면 달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들었더니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것과 같다.”

사자성어 ‘견지망월(見指忘月)’은 본질을 외면한 채 일부분만 보고 집착한다는 의미로 비유되는 단어다.

견지망월은 이소룡의 발언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영화 ‘용쟁호투’에서 무술 유형과 유파와 이름에만 얽매인 중국무술을 ‘손가락’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소룡은 싸워야 할 대상을 ‘달’로 비유했는데, 이는 틀에 박혀 있는 중국무술들을 매우 싫어하고 비판하던 그가 죽기 직전까지 개발한 미완의 실전무술인 절권도 무술철학의 지향점이 됐다고 한다.

최근 한국경제가 삐걱대면서 문재인 정부 정책에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소득주도성장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모양새다. 3년차에 접어들었는데 ‘일자리’는 더 어려워졌다.

견지망월이 새삼 정부 경제정책에 비유되는 것은 문 정부가 국민경제보다 일자리 창출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국민경제(달)는 쳐다보지 않고 소득주도성장(손가락)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최저임금(손가락 끝) 등만 쳐다보는 형국인 셈이다.

손가락 끝인 ‘최저임금’만 봐도 그렇다. 정부 소득주도성장 정책 의도와 반대로 저소득층 소득이 오히려 감소했다는 통계는 대다수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일이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따른 노동시장 밀어내기 효과(구축효과)로 저소득층 취업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결국 저소득층 소득이 감소하고 분배구조가 악화될 것이라는 결과는 경제를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논리인 셈이다.

김동원 고려대 초빙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모든 문제는 한국경제의 상태와 지향하는 방향의 타당성 여부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한국경제 상태는 외면하고 소득주도 정책 타당성만 국민에게 설득하려고 한다면, ‘달’ 대신 정부의 ‘손가락’만 보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문 정부의 지난 2년간 경제정책을 들여다보면, 경제생태계와 순환구조를 무시한 행보가 곳곳에 묻어난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률로 결정한 16.4%는 집권 3년 후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는 대통령 선거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어떤 경제적 이유로도 2017년 인상률(7.3%)의 2.2배에 달하는 16.4%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대폭적인 인상이 고용시장과 경제주체들에게 미칠 영향은 이미 언론을 비롯해 다양한 경로로 예고된 부분이다. 그럼에도 최저임금위원회와 정부는 여론의 우려를 외면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정부 의도와는 반대로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일자리 창출이 시장 내부에서 상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정책 간 상충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 두 정책이 모두 실패할 위험이 높다.

혁신성장은 제조업과 대기업이 외면당하는 ‘역차별’로 어수선하다. 정부의 실물경제 정책인 혁신성장 정책 파트너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다. 제조업과 대기업은 배제돼 있다.

제조업은 국내총생산의 28%를 차지하는 국민경제 핵심 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은 대기업이 주도하기 때문에 정부가 외면하는 실정이다. 이런 사이 지난 1월 제조업 취업자 수는 443만9000명으로 1년 전보다 17만명이 줄었다. 2017년 1월 이후 2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결국 생산활동 확대를 촉진하는 성장 역동성을 지속하면서 분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정부 목표가 돼야 한다. 분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성장의 역동성을 외면한다면, 결코 분배구조 개선은 지속적으로 추진되기 어렵다. 분배구조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도 경제 역동성이 확보돼야 한다.

경제정책은 국민에게 신뢰와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장에 마중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정책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시장 경제 활용을 유도하는 묘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문 정부 3년차 경제정책은 ‘견지망월’에서 벗어나기 위한 중요한 골든타임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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