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폴란드로 간 아이들' 추상미 감독이 겪은 영화 같은 순간

최송희 기자입력 : 2018-10-22 18:37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연출한 추상미 감독[사진=커넥트픽쳐스 제공]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를 제작하며 추상미(45) 감독은 여러 차례 드라마틱한 순간들을 맞았다. 극영화 ‘그루터기’(가제)를 제작하기 위해 탈북민 출신 배우들을 만나고 취재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찍게 된 일이나 영화 제작에 회의적이었던 배우 이송이 폴란드 선생님들을 만나며 마음을 열었던 일, 태풍 콩레이가 휩쓸고 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GV에 150명가량의 관객이 찾아온 일 등 제작부터 개봉을 앞둔 순간까지 여러 차례 위기와 전환을 맞아왔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1951년 한국전쟁 고아 1500명이 비밀리에 폴란드로 보내지고 1959년까지 그곳에서 지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다. 추상미 감독은 탈북민 출신 배우 이송과 함께 폴란드로 떠나 아이들이 지낸 프와코비체 양육원을 찾아가 당시 아이들을 돌보았던 폴란드 선생님들과 만난다.

역사 속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가슴에 남아있는 사랑의 발자취. 추상미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개인적인 아픔에서 시작해 사회적 문제, 아픔까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쩌면 하늘이 준 기회일지도 모르는” 영화 제작 과정 속 극적인 순간들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만난 추상미 감독의 일문일답이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연출한 추상미 감독[사진=커넥트픽쳐스 제공]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했을 당시, 반응이 좋았다고
- 그때 굉장히 드라마틱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태풍 콩레이 때문에 행사가 다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었다. 사람은 물론이고 차도 오갈 수 없을 정도로 태풍이 거세서 결국 상영을 취소하기로 했는데 (영화 관계자 한 명 없이) “상영을 못하게 됐다”는 말만 남기는 게 아무래도 마음이 쓰여서 저와 배급사 대표님이 직접 극장에 가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7명이 극장에 와있다고 하더라. ‘아, 7명이나 와주었구나’ 속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극장에 가보니 150명가량의 관객이 와주었더라. 너무, 정말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벅찬 기분으로 영화를 함께 보았는데 함께 영화 메시지에 공감해주어서 뿌듯했다. 결국 SBS ‘한밤의 TV연예’ 인터뷰 도중 울어버리기도 하고. 하하하.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그랬지만 언론 시사회도 반응이 좋았다
- 저만의 관심사였고 이것이 관객과 소통이 될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되더라. 2년간 거의 혼자서 후반 작업을 했는데 외부 반응을 전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남편마저도 2년간 모니터링을 하니 ‘토할 것 같다’라며 ‘고문 같다’라고 하더라. 매일 같이 편집본을 보고 또 보고…. 나중에는 봐도 모르겠더라. 그런데 이 작품이 관객과 소통이 되고 공감을 얻고 있다는 걸 느끼니 기분이 이상하고 또 기쁘다.

다큐멘터리의 시작점은 극영화 ‘그루터기’였다. 극영화를 제작하려던 것이 다큐멘터리로 이어졌는데
- 2014년에 소재를 정하고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극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폴란드 교사의 자료, 다큐멘터리 등등을 받아 보았는데 자료수집만으로 이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는 것이 너무 아쉽더라. 프와코비체 양육원 원장님이 아흔이 넘었고 건강도 좋지 않다는 이야기에 이분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내용을) 담아야겠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탈북소녀 이송과 함께 폴란드로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
- 극영화 시나리오를 쓰던 도중 탈북대안학교 원장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탈북민들이)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걸 알게 됐다. 어차피 극영화는 투자를 위해 남쪽 배우들이 출연해야겠지만 조단역은 북한 아이들을 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이 연기를 워낙 잘해서 100% 싱크로율로 사투리를 구사하겠지만 탈북민 출신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기 시작했고 송이가 캐스팅되었다. 그리고 급하게 다큐멘터리로 전환하면서 이 친구를 데려간다면 여정 동안 도움을 얻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연출한 추상미 감독[사진=커넥트픽쳐스 제공]


함께 해보니 어땠나
- 긴 시간 여행을 하고 또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에 송이와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탈북 이야기에 관해서는 말하기를 싫어하더라. 경계심도 심했다.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트라우마가 생긴 모양이다.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갔는데 신기하게도 폴란드 선생님들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안아주니까 (마음이) 풀어지는 거다. 그냥 울어버리더라. 송이가 말하기를 한국에서는 (북한사람이라는 이유로) 많이 무시당했고 차가운 시선을 받았었는데, 폴란드 선생님들이 당시 북한 아이들이 얼마나 똑똑했고 열심히 공부했는지 말해주니 ‘북한에서 태어난 것에 관해 자부심이 생긴다’고. 송이에게는 대면과 동시에 정체성 회복이기도 한 시간이었다.

산후 우울증을 겪으며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제작하게 된 거라고. 영화 초반에 짧게 설명되던데
- 이 여정이 상처를 들여다보고 또 성찰할 수 있는 일이지 않나. 솔직히 저도 배우라서 이런 소재를 가지고 나와서 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걸 설명하지 않으면 ‘왜 갑자기’라고 물을 수밖에 없겠더라. ‘뜬금 없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간단하게나마 저의 상태를 설명했고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풀어낸 거다.

영화를 제작하던 당시만 해도 남북의 평화적 무드가 성립되지 않았었다
- 그랬다. 분위기가 달랐다. 2017년이 가장 힘들었지. 진도도 안 나가고, 구조도 다르고, 몸은 너무 아픈 데다가 제 아이는 너무 말을 안 들으니. 하하하. 육아하면서 꾸역꾸역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서로 으르렁거리기까지 했다.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신앙의 힘으로 버텼었는데 어느새 상황이 이렇게 좋아졌다. 신기하더라. 2018 평창올림픽 때도 ‘지금이 타이밍’이라 생각했는데, 배급사와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개봉이 10월 말로 미뤄졌다. 기다림에 지쳐있었는데 요즘 상황을 보면 타이밍은 지금이 더 좋은 것 같다.

[사진=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틸컷]


영화 한 편을 작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인가
- 편집. 후반 작업할 때 ‘이러다 죽겠구나’, ‘소리 없이 사라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후반 작업할 때도 드라마틱한 상황을 겪었었다. 작품이 99% 완성되었고 배급 날짜도 정해진 상태였다. 그런데 아들이 ‘엄마 놀아줘’하고 제 무릎에 확 앉더라. 마우스가 튕겨져 나가면서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외장 하드가 떨어져 부서지게 됐다. 작업할 때 초반에만 백업해둔 상태라 힘이 쭉 빠졌다. 기술자를 불렀는데 ‘이거 못 고칠 수도 있겠는데요?’라고 하더라. ‘복구가 안 될 수도 있다’면서 3일 정도 걸린다고. 그 소리를 듣고 내내 잠을 잤다. 저는 어처구니가 없으면 잠이 와서…. 하하하. 그렇게 내내 자고 일어났는데 ‘자료가 복구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다큐멘터리는 감독의 개입 또한 중요하다.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 고민했을 텐데
- 우리 작품은 극영화 같은 부분도 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확실히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 감독이 개입해 의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고 그들의 삶 자체를 날것으로 담는 경우도 있다. 저는 후자의 경우,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작품은 극영화로 가는 징검다리기 때문에 드라마를 담아내려고 했었다.

개인의 문제에서 어느덧 사회적 파장까지 일으키게 됐다
- 이런 관심이 신기하다. 전혀 관심이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고 시대였는데 이렇게 파장이 일어나게 되다니. 시대가 주는 의미는 앞으로 제가 영화를 만들 때도 필요한 메시지다. 이런 치유의 메시지가 선한 선순환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극영화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빠르면 내후년 정도 (촬영을) 내다보고 있다. 일단 로케이션 허락도 맡아야 하니까. 폴란드 푸아코비치 마을에서 촬영할 예정인데 마을 전체도 아름다운 곳이라서 극영화의 비주얼은 미리 장담한다. 폴란드 현지 스태프들과 협업해 만들 생각이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연출한 추상미 감독[사진=커넥트픽쳐스 제공]


감독 추상미도 좋지만 배우 추상미를 그리워하는 팬들도 있다
- 2009년 드라마 ‘시티홀’ 이후 연기를 쉬고 있다. 솔직히 저는 무대가 조금 더 그립다. 어린 시절 아버지(배우 고 추송웅)의 무대를 동경해 저도 연극 무대로 데뷔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브라운관, 스크린보다 무대에 대한 그리움이 더 큰 것 같다. 일단 극영화인 ‘그루터기’를 만들고 난 뒤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감독 추상미가 되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에 관한 성찰을 하게 된 거다. 제게는 모성이라는 이슈가 있고 모성으로 세상을 볼 때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까. 이것을 ‘어떻게 소통하면 될까?’ 사회적 이슈, 상처를 관심 있게 다루고 싶은데 어떤 방식으로 다뤄야 하나 고민이 생겼다. 사람 그리고 그들의 삶에 관심이 커졌다. 배우일 때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훌륭한 배우는 세상과 소통하지만 저는 훌륭한 배우가 아니라 제 안에 감정을 끄집어내려고 했었으니까.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개봉시키며,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게 있다면?
- 사람들은 모두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개인적으로 겪은 상처가 이 작품으로 치유되었듯, 관객들도 이 작품으로 위로와 치유를 얻었으면 좋겠다. 사랑에 대한 것들을 깨치고 언젠가 긍정적으로 발현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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