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무역전쟁 향방, 트럼트 대신 '4중전회'에 물어야

베이징=이재호 특파원입력 : 2018-10-01 11:25
美 중간선거 전후 무역전쟁 완화 요원 북핵까지 얽혀 양보없는 '강대강' 지속 4중전회 통해 中수뇌부 의중 드러날듯

지난달 3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경절 축하 만찬 행사에 참석한 중국 최고 지도부. [사진=신화통신 ]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미국 중간선거 결과가 미·중 무역전쟁의 향후 전개 양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아졌다.

선거에 진다면 지지세력 결집을 위해 공세를 더욱 강화할 것이고, 이긴다면 그동안의 대외 정책이 합격점을 받은 셈이라 궤도 수정을 할 유인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압박해 북한 비핵화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던 기존 전략도 이미 폐기한 모습이다.

교착 상태에 빠졌던 북·미 협상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중국에 유리해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달 중 열릴 중국 공산당의 제19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경제 등 주요 국정 현안의 방향성을 확정하는 자리인 만큼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무역전쟁의 판도가 결정될 전망이다.

◆"중국이 선거 개입"…무역전쟁 완화 저 멀리로

1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난주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광폭 행보가 두드러졌다.

왕 국무위원은 방미 기간 내내 무역전쟁의 불합리성을 알리고 중국의 개방 의지를 피력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는 지난달 28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보호무역주의는 자신을 해칠 뿐 아니라 모두에게 해가 된다"며 "중국은 (미·중 무역 갈등을)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미국외교협회 행사에 참석해서는 "중국은 미국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미국에 도전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몸을 낮췄다.

이어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이 대중 무역에서 손해를 봤다거나 중국이 미국 기업을 압박해 기술 이전을 강요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왕 국무위원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 입에서 나온 한 마디 때문에 미·중 갈등은 더욱 격화할 수밖에 없게 됐다.

트럼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 중국이 미국의 11월 중간선거에 개입하고 있으며, 이는 무역전쟁 때문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고도 했다. 미국 내 반중 정서를 자극해 지지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최고 지도자까지 끌어들이는 바람에 양국 간 감정의 골은 한층 깊어졌다.

무역전쟁 장기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발언으로, 미국 중간선거를 계기로 양국이 타협점을 모색할 것이라는 기대 역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중국 내 우려도 크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웨이제(魏杰) 칭화대 경제관리학원 교수는 "양국 무역 마찰이 격화하면서 미국 정치권과 국민들의 반중 감정이 확산하고 있다"며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웨이 교수는 "무역 마찰이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처우나 대만 문제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양국이 경제를 포함해 사회 전반에 걸쳐 전면전에 돌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북핵·무역전쟁 별개 대응 가닥

무역전쟁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입장은 지난달 24일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10% 관세 부과를 강행하면서 확인됐다.

생필품 수입선을 다변화할 시간을 벌고 연말 쇼핑 시즌에 물가가 급등하는 것을 막기 위해 관세율을 당초 예상보다 낮은 10%로 책정했다.

중간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내년 초부터는 25%로 상향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 2670억 달러 규모의 추가 관세 부과도 아마 현실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치권 일부와 재계의 아우성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 강공 일변도의 길로 접어든 것은 북한 비핵화 문제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남북 평양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가 재가동하고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중간선거 표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회심의 카드를 손에 쥐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대북 압박의 전면에 내세워 협상력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을 구사해 왔지만 중국이 협상을 방해하고 있다는 의구심만 커진 상황이다.

북핵 문제와 무역전쟁에 별개 대응키로 입장을 정리한 마당에 북·미 대화 진전까지 이뤄지니 금상첨화다. 온 힘을 기울여 중국에 공세를 가할 일만 남았다.

내친 김에 중국을 배제한 채 남북과 미국만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식으로 대중 압박 수위를 높여 나갈 수도 있다. 다만 북한이 확실한 '뒷배'인 중국에 등을 돌리고 오롯이 미국과만 대화를 이어갈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시 주석은 최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북핵 문제의) 당사국은 북한과 한국, 미국"이라며 "그들은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며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미국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한 이상 중국도 북한을 이전보다 더 각별하게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이었던 지난 9·9절 때 중국 권력 서열 3위인 리잔수(栗戰書) 상무위원을 파견하는 성의를 보였던 시 주석이 연내 직접 방북하는 것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한반도에도 미·중 무역전쟁의 화약 냄새가 퍼지고 있다.

◆中 '4중전회' 메시지에 이목 집중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올해가 가기 전 회담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 있을까. 무역전쟁의 향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만남이기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11월 중순으로 예정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조우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 기간 중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행을 택했다.

11월 말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극적으로 회동할 여지는 남아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 어디서 시 주석과 만나든 간에 굳이 웃으며 악수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제 시 주석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무역전쟁의 향방이 갈리게 됐다.

중국 수뇌부의 의중을 확인할 수 있는 4중전회가 이달 중 열린다. 구체적인 개최 시기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은 통상 3중전회 때 경제 정책의 큰 그림을 제시하고, 4중전회에서는 당의 발전 방향과 당내 인사를 확정한다.

특히 역대 3중전회에서는 개혁·개방 실시 확정,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 도입, 사유재산 보호 인정, 정부·시장 간 기능 조절 등 중국 경제사의 흐름을 바꾼 굵직한 노선들이 발표돼 왔다.

하지만 지난해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거쳐 새 지도부가 출범한 뒤 올해 초 시 주석의 연임 제한을 철폐하는 개헌안을 논의하느라 2중전회를 허비했다.

3중전회에 가서야 주요 국가직 인선과 정부 조직 개편이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이번 4중전회는 경제 비전과 공산당 운영 전략이 함께 논의되는 역대급 행사가 될 전망이다.

◆시진핑도 리커창도 "자력갱생" 전의 불태워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세를 멈추지 않는 한 중국도 강대강(强對强) 전략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상대에게 굴복하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는 순간 중국을 이끌어 온 공산당의 권위가 크게 약화할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최고 지도부도 표면적으로는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건국 기념일인 국경절을 앞두고 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 시찰에 나선 시 주석은 무역전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피력했다.

그는 "일방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우리가 자력갱생의 길을 걷도록 압박하고 있지만 이는 나쁜 일이 아니다"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이어 "중국은 14억 인구와 960만㎢의 국토를 가진 대국이라 실물경제와 식량, 제조업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며 "결국 스스로에게 의지해 이겨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같은 시기 중국 내 주요 경제 거점인 저장성을 시찰한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중국은 거대한 시장과 인력 자원을 가진 국가"라며 "우리는 고난과 도전에 대응할 만한 자신감과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 내부에서도 무역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차분하게 대응해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협 경제위원회 부주임을 맡고 있는 류준이(劉遵義) 전 홍콩 중문대 총장은 "미·중 무역전쟁은 사실 무역과 관련이 없다"며 "양국이 세계 경제와 기술 분야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달라진 게 중요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류 전 총장은 "양국의 경쟁은 트럼프 대통령이 불러일으킨 게 아니며 트럼트 대통령이 퇴임한다고 사라질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웨이 교수는 "시장 개방을 확대해 미국의 고립주의에 맞서고 '일대일로'에 박차를 가해 동맹군을 확보해야 한다"며 "외환시장 동요를 막기 위해 국내 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느 시점이 되면 미·중은 타협을 시도할 것이다. 중국이 미국 상품을 더 사주고, 지적재산권 보호를 더 강화하고, 금융시장도 더 개방하는 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중국 경제의 지속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무역전쟁이 격화할수록 양측의 명분 싸움도 치열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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