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 칼럼] 사람이 살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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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 기자
입력 2018-08-1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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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진 정치부장]

'사람이 살고 있었네'
1993년 소설가 황석영이 펴낸 방북기 제목이다.

1989년 남북작가회담 참석차 평양을 방문한 황석영은 처음으로 미지의 땅 평양의 생생한 모습, 북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소개했다. ‘아,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구나, 우리와 다를 게 없구나.’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충격이었다.

25년이 흐른 2018년 여름. 평양은 또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재미 한국언론인인 진천규가 쓴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를 통해서다.

그는 평양을 비롯해 북한의 곳곳을 다니면서 사람들의 일상을 직접 본 그대로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는 우리와 똑같았다고 했다.

대동강 둔치에서 산책과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아침 풍경, 하굣길에 친구와 다정하게 얘기하는 학생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노인, 백화점 식품매대에서 장을 보는 주부들, 퇴근 후 호프집에서 대동강맥주를 마시는 직장인···.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화려하거나 세련되지 않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고 그는 소개했다.

“밖에서는 곧 전쟁이 날 것처럼 떠들어댔지만, 우리는 아무렇지 않았잖아요? 평양도 똑같았어요.”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이 상상 이상의 속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번 여름휴가 때 이 책을 읽은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9월 평양 땅을 밟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 번째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서다.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와 종전선언 문제 등을 둘러싼 이견으로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이뤄지는 남북 정상회담이라 주목된다.

한반도 문제 당사자로서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고 북·미관계 진전을 촉진해야 할 우리의 역할은 다시 커졌다.

미국은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의 첫 조치로 핵무기와 핵·미사일 시설의 목록 신고를 요구하고 있고, 북한은 체제 안전 보장의 첫 조치로서 종전선언을 요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뫼비우스 띠와 같은 난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묘수가 절실하다.

정부는 북한을 설득하면서 핵시설 신고·검증 문제를 비롯한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조율하고, 미국에는 연내 종전선언 문제에 전향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협의를 집중해 나가야 한다.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핵 신고서 제출, 신고서에 따른 핵사찰 검증과 북·미 수교 협상 진행, 대북 제재 완화 조치, 평화협정 체결과 핵시설 폐기, 대북 제재 해제 및 북·미 수교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북한과 미국은 한반도 종전선언과 북한 핵물질·핵시설 신고를 각각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전제조건으로 삼지 말고, 상호 공정하게 교환해야 한다.

또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미·중은 신속하게 한반도 종전선언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함께 협력해야 한다. 북한의 핵물질·핵시설 신고 이후 핵 사찰과 핵 폐기 검증의 단계를 거치는 동안 남·북·미·중은 제재 해제와 경제 지원,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등을 실현해야 한다.

이번에 3차 남북 정상회담이 성과를 거둔다면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달 말 유엔총회에 한자리에 모여 새로운 한반도 평화 시대를 선언하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해법은 생각보다 간단할 수 있다. ‘레드 콤플렉스’, ‘북한에 대한 악마적 프레임’인 편견과 불신에서 벗어나 북한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

진천규의 말처럼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서로 약속을 지키는 것, 이 단순한 태도가 남과 북의 미래를 결정지으며 더 많은 것을 이뤄낼 것”이다.

문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이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이고 평화가 경제"라고 강조하고, 남북 경협을 통한 한반도 경제공동체라는 원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가 정착되면 경기도와 강원도의 접경지역에 통일경제특구를 설치하고,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 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향후 30년간 남북 경협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최소한 17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며 "전면적 경제협력이 이뤄지면 그 효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상호대표부로 발전하게 될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를 언급, "며칠 후면 남북이 24시간 365일 소통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치적 통일은 멀더라도 경제적 통일을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남북 경협이 본격화되고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해지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지구는 다시 활기를 찾을 것이다. 원산 마식령 스키장은 남측 사람들이 자주 찾는 새로운 레저 명소가 될 것이다. 백두산과 개마고원에는 제주 올레길처럼 트레킹 코스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평양 옥류관의 서울 분점에는 원조 평양 냉면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룰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머지않은 미래에 꼭 이뤄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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