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배철현의 아침묵상] 교육敎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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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입력 2017-12-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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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희망
희망은 곧 실현될 현실이다. 나는 장소와 시간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희망을 구체적으로 만들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소중한 도구를 희망을 위한 거룩한 씨앗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 희망은 움도 트지 못한 채 땅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나는 희망을 찬양하는 시인이다. 희망이 없다면 순간을 사는 인간에겐 인생이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희망은 지금 이 순간 오감으로 확인할 수 없는 미래다. 사람들은 당장 자신들이 오감으로 확인할 수 있는 쾌락만이 진선미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희망이라는 신기루를 더듬어가는 사냥꾼이 되고 싶다.
 
교육은 희망에 대한 투자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 이상의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 성현들은 이것을 진, 선, 미라고 불러왔다. 교육은 인간 누구나 지니고 있는 이 소중한 보물들을 찾으라고 촉구한다. 그 보물은 자신의 삶을 위한 지표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빛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육을 받은 사람은 진실하다. 스스로에게 참인 사람이다.

성서에 '욥'에 대한 특별한 묘사가 있다. 신은 욥의 그런 면이 좋았다고 감탄한다. 욥은 남에게 정직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온전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하루를 마친 늦은 저녁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그 모습이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사람이다. 스스로에게 참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스스로에게 참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상대방을 참으로 대한다. 경쟁을 위해 교육받는 사람은 영원히 무식할 수밖에 없다. 그(녀)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온전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겸손해진다.
 
교육받은 사람은 착하다. 착하다는 말은 스스로 완벽한 인간이 되기 위해 자신에게 엄격하여 쓸데 없는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을 제어하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은 절제한다. 자화자찬과 승리주의가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그는 자신이 자신에게 엄격한 스승이 되어 매순간 행동한다. 그런 사람에겐 신비한 향기가 있다. 주위사람들이 저절로 그에게 끌려간다. 착한 사람이 가지는 특별한 기운을 ‘아우라’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아우라를 지닌 사람을 각 분야의 일가를 이룬 천재들이라고 부른다.
 
교육받은 사람은 아름답다. 그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그 뜻을 기꺼이 따른다. 그런 사람을 보면 평온하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그도 거리낌 없이 말하고 행동한다. 나무가 항상 자신의 자리에서 사시사철의 순환에 맞게 변화하듯이, 어떤 경우엔 자신이 그토록 정성스럽게 만들어댄 나뭇잎을 다 버리고 벌거벗는다. 그러나 시간이 되면 온몸을 푸른 잎으로 장식을 한다. 그는 때와 장소를 정확하게 파악해 행동한다. 부자연스럽지 않다.
 
건명원(建明苑)
2013년 가을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어느 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투자했다. 그 희망의 투자가 ‘건명원’이다. 그는 1년 동안 진행되는 모든 교육비용을 아낌 없이 지원한다. 북촌 마을에 멋진 한옥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일주일에 두 번(수요일 저녁·토요일 오전)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원생들을 훈련시킨다. 건명원은 학생들이 교육받는 장소라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 가치를 발휘하도록 자극하는 훈련소다. 지난 토요일 3기 수료식이 거행됐다. 38명 중 19명이 수료증을 받았다.
 
수료식은 일년 동안 학생들에게 일어난 변화를 확인하는 의례다. 나는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와 자각의 변화를 보고 싶었다. 몇몇 학생들이 자신의 일 년을 되돌아보면서 준비해 온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들 중 한 명은 작가가 되고 싶은 희망에 다시 불을 붙였다. 그의 글은 내가 요즘 들은 글들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글이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미사여구와 셰익스피어의 과도한 감정표현들을 억제하고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한 글이었다. 이런 글들을 읽거나 들으면 자연스럽게 눈물이 반응한다.
 
40주간 진행되는 건명원 수요일 수업은 도덕경과 라틴어문법-원문 강독이다. 4명의 학생이 1년간 배운 도덕경과 라틴어 실력을 동원해 유려한 글로 연설했다. 두 명의 학생은 자신들이 원하는 도덕경 장을 선택해 개작,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철학자를 꿈꾸는 학생은 도덕경 12장에 등장하는 거피취차(去彼取此)의 의미를 자신의 몸과 목소리로 표현했다. 없어도 되는 외부의 자극을 극복하고 온전히 자신에게 몰입하겠다는 의지가 그의 얼굴에 빛났다. 20세기 초 자신에게 몰입해 현대사상을 선물한 장 폴 사르트르의 기운이 그에게 보인다. 도덕경을 일 년 동안 가르친 건명원 원장 최진석 교수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다른 두 명은 라틴어 작문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발표했다. 한 학생은 기원전 2세기 고대 로마시대 희극작가인 테렌티우스의 명원 ‘오피키움 메움 파키암’(officium meum faciam)에서 영감을 얻어 긴 라틴어 시를 지어 암송했다. 북아프리카 타르타고에서 노예로 태어난 테렌티우스는 후에 극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오피키움 메움 파키암은 '나는 나에게 주어진 나만의 고유한 의미를 완수할 것이다'는 비장한 문장이다. 이것을 발표한 미래의 디자이너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임무를 의무로 여기는 것 같았다. 르 코르뷔지에를 넘어서는 예술가가 되길 바란다. 건명원 토요일 수업은 인문-과학-예술 분야의 교수들이 가르친다. 미래를 위한 혁신은 이 세 분야의 융합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뮐러, '결박된 프로메테우스'(1872~1879), 독일 베를린 국립미술관 [사진=배철현 교수 제공]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수료식 마지막은 단막극이다. 원생들은 동대문 포목시장에 가 포목을 재단해 로마식 의상인 ‘토가’를 여러 벌 준비했다. 우리 모두 토가를 입고 이들의 ‘비극작품’을 감상했다. 우리는 건명원 한옥에 앉아 있다. 밖은 영하 2~3도 정도의 꽤 추운 날씨다. 그 분위기가 로마 시대 원형극장 버금가는 풍경이다. 이들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최초의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를 공연했다. 극작가를 지망하는 한 원생이 기본 대본을 구성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이 불쌍하다는 이유로 신들만의 소유이자 특권인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달한다. 인간은 불을 발견해 추운 겨울을 날 수 있었고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다. 특히 사냥한 고기를 구워먹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뇌는 호모 사피엔스의 뇌 크기가 됐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단단한 얼음으로 휘감긴 카우카소스산 정상에 묶었다. 독수리가 날아 와 매일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간을 파먹는다. 프로메테우스가 이런 극형을 받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가 인간의 고통에 공감(共感)했기 때문이다. 그의 공감은 야생동물과 같은 인간을 현생인류로 전환시킨 기반이다. 인간은 다른 존재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는 공감이 빚어낸 선물이다.
 
이 극이 여느 작품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이 대본을 쓴 원생이 ‘불’을 인간 모두 지니고 있는 ‘신적인 불꽃’이라고 해석했다는 점이다. 제우스가 상징한 과거의 유산들, 즉 종교, 이데올로기, 권위, 역사, 사상 등은 자신들만이 불을 지닐 자격이 있고, 불을 다룰 수 있다고 설교해 왔다. 인간 각자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불씨를 발견하는 행위가 깨달음이며, 그 깨달음을 세상에 알리는 자가 천재다.
 
불쏘시개
교육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여전히 살아 있는 불씨를 자극하는 작업이다. ‘교육하다’라는 영어단어 ‘애듀케이트’educate는 라틴어 ‘에두카레’educare에서 유래했다. ‘교육’은 ‘(마음속에 숨겨진 보물을) 밖(e)으로 인도하는(ducare) 작업’이다. 이 불씨는 자신에게 참되고 온전하고 자신에게 감동적일 때 발휘되는 천재성이다. 교육은 이 불씨를 이리저리 흔들어 활활 타오르게 만드는 불쏘시개다. 원생들은 일년 동안 딴 사람이 됐다. 그들은 자신의 불씨를 찾고 스스로에게 불쏘시개가 되려고 한다. 나는 나의 불씨를 발견했는가? 나는 내 자신에게 불쏘시개가 되어 이리저리 그 불씨를 흔들고 있는가? 나는 나에게 스스로 스승이 될 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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