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병길 감독 "출발조차 없다는 것에 대한 갈증, '악녀'의 시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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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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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녀'의 정병길 감독[사진=NEW 제공]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모두가 안 된다고 했다. 한국 영화계에서 여자 주인공을 앞세운 그것도 액션 영화를 기획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본 배우 김옥빈마저도 “이거 투자돼요?”라고 물었을 정도니. 말 다했다.

하지만 정병길(37) 감독은 굽히지 않았다.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가 나올 법한데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이 의아하지만 했다. “출발조차 없는 것에 대한 갈증”이 모든 것의 시발점인 셈이었다.

그리하여 영화 ‘악녀’(감독 정병길·제작 ㈜앞에 있다·배급 NEW)가 탄생했다. 살인 병기로 길러진 한 여자와 그녀를 둘러싼 두 남자, 자신의 정체를 절대 드러내지 말아야 할 세 사람의 비밀과 복수를 그린 액션물은 한국을 비롯해 해외까지 신선한 바람을 일게 했다. 제70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됐고 136개국에 선판매됐다.

영화 '악녀'의 정병길 감독[사진=NEW 제공]


영화 ‘악녀’의 출발점이 궁금하다
- 하고 싶은 영화를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여자가 원톱으로 나오는 영화가 로망이었다. 옛날 영화 중에 ‘돌아이’(감독 이두용)라는 작품이 있다. 밤무대를 전전하는 ‘드릴러’라는 여성 5인조 보컬 팀과 매니저의 이야기다. 영화는 매니저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저는 여성들의 삶에 더 관심이 갔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모두가 ‘안 될 것’이라고 했는데
- 투자도 안 되는 게 사실이다. 칸에서 외신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자기네 나라에도 여성 주인공 영화가 없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한국에는 더 드물지 않냐’고 했다. 출발도 이어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반응을 전복시키기 위한 정병길 감독의 한방은 무엇이었나?
- 동양 영화 속 여성들도 서양 영화 속 여성들처럼 거칠게 싸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원티드’나 ‘레지던트 이블’을 보면 서양 여배우들이 거칠게 싸우지 않나. 그런 매력을 우리는 충분히 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양 여성들은 예쁘게 싸운다고 해야 하나? 그런 점들이 아쉬웠다. 동양 여자가 더 처절하게 싸우면 어떨까? 관객이 가진 깨지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김옥빈을 캐스팅했을 때도 신체조건보다 얼굴이 가진 강함? 여유로움 때문에 캐스팅하게 됐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게 완벽하게 구현된 장면이 있다면?
- 음. 버스 신은 조금 아쉽고, 오토바이는 생각보다 잘 나왔다. 거진 생각한 대로 잘 나온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요정 집이 조금 아쉽다. 스케일이 더 커서 1대 다수가 마구 엉겨 싸우길 바랐는데 생각처럼 구현이 되지 않더라.

좁은 곳에서 벌어지는 액션이 많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 힘들었다. 일단 카메라가 작아져야 하니까. 한 손으로 들고 움직이거나 부딪치는 일이 많았다. 카메라 감독이 넘어지고 다치고 찰과상을 입는 일이 많았다.

영화 '악녀' 스틸컷 중, 배우 김옥빈[사진=NEW 제공]


칸 버전보다 오프닝이 6분가량 편집됐다
- 잘라낼 때 고통이 있었지만 내 자식이 잘될 수만 있다면…. 하하하. 러닝타임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스피드하게 잘라내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장단점이 있었다. 감정이 올라가기도 하지만 스피드로 밀어붙이는 것도 좋고. 관객들이 보기에는 더 스피드하고 재밌지 않을까? 내부 반응도 ‘훨씬 보기 좋다’고 했었다. 만약 영화가 잘 된다면 오리지널 버전 개봉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있다.

1인칭 슈팅 게임(FPS) 같은 오프닝이 인상 깊었다. 구상하게 된 계기는?
- 어릴 때부터 있던 게임인데 언젠가 이게 영상화되리라는 생각이 있었다. VR 영화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 않나. VR이 나오면 극장이 없어질 거라고 하기도하고. 어느 시점에는 내가 VR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VR 광고를 제안받았고 참여하게 됐다. 단편영화였는데도 예산이 꽤 컸다. VR을 시작하고 당시 착안했던 디자인이 있었는데 예산에 봉착해 쓰지 못하게 됐다. 그걸 ‘악녀’에 쓰게 된 거다. VR에서 한 노하우를 써보자는 마음이었다.

1인칭이었던 시점이 어느 순간 전환되며 3인칭이 된다. 시점 전한에도 고민이 컸을 텐데
- 롱테이크의 시점을 바꿔야 하는데 언제를 기점으로 삼느냐가 중요했다. 그러다가 거울을 마주 보고 화면이 바뀌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얼굴에 카메라를 달고 있으니까 거울에 박치기하면서 (카메라가) 빠지자는 생각이었다. 컷을 끊어내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게 중요했다.

액션의 스타일링이 모두 다른데
- 첫인상이 강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여자가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관객이 지루하지 않도록 포인트를 잡았다. 이 영화는 감정과 상관없다. 또 오토바이는 중간지점에서 오프닝이 세다 보니 무언가 기대를 하고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넣은 것이다. 오토바이가 제일 신기한 것 같다.

정병길 감독이 언급한 '악녀'의 오토바이 신[사진=NEW 제공]


관객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신은 무엇인가?
- 오프닝과 엔딩 아닐까? 감정선이나 카메라, 영화가 가진 액션 스케일을 볼 때 그런 것 같다. 선수들이 좋아하는 건 오토바이 신인 것 같다. 선수들도 제게 ‘CG냐’고 물을 정도다. 오토바이 신은 데이터가 없으니까.

내친김에 오토바이 신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 달라
- 도전이었다. 오프닝, 엔딩 신에 관해서는 (제작진도) 어렵겠다고 했지만 오토바이 신은 안 된다고 했었다. 하지만 저는 ‘달나라에 가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안 되냐’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영화가 예산도 적고 액션영화 찍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니까. CG가 아니라 실사로 찍겠다니 다들 겁먹었던 것 같다.

촬영에 여러 변수가 있었을 텐데, 영화에 좋게 작용한 게 있나?
- 오토바이 신이다. 하하하. 원래는 시장에서 찍으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하다. 시장 쪽에서 장소를 못 빌려주겠다고 해서 제작 PD가 세종시에서 헌팅을 해왔다. 1차선 터널인데 오토바이 세 대가 달릴 수 있다고 했다. 거기에서 찍어서 심지어는 한 회차를 줄이기까지 했다. 시장에서 찍었으면…. 어휴 아찔하다.

숙희라는 인물은 수동적인 여성이다. 영화가 가진 능동적 액션에 비해, 캐릭터는 다소 수동적이라는 평인데
- 숙희는 악녀가 아닌 여자다. 모든 걸 알게 되고 악녀가 되는 여자기 때문에 능동적이라면 당할 수가 없으니까. 수동적일 수밖에 없어야 악녀가 가진 모습이 묻어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처음부터 여자가 비참하고 슬퍼지는 것. 착한데 계속 당하면서 사는 이야기를 그리려고 한 거다.

영화 '악녀'의 정병길 감독[사진=NEW 제공]


숙희 캐릭터에 대한 레퍼런스는?
- 김옥빈 씨 자체가 레퍼런스였다. 옥빈 씨는 가끔 순박해 보일 때가 있고, 또 어떨 땐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 매력을 영화에 담아보려고 했다. 신기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좋은 느낌으로 여배우 같지 않았다. 영화 안팎이 다른 느낌이었다.

배우들이 연기하면서 어렵게 느끼던 부분은 무엇인가?
- 다들 시나리오 안에서 잘 연기해줬다. 권숙(김서형 분)의 경우는 제게 ‘중상(신하균 분)과 권숙은 비슷한 인물 같다’고 했었다. 킬러를 키우고 있다는 점이나 정서적인 부분에서 중상을 보았다고 하더라. 자기보다는 중상의 표현을 주의 깊게 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권숙은 숙희였을 것’이라고 하더라. 숙희의 입장에서 살아남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다고 했고 저 역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이야기가 잘 통했다.

현수 캐릭터는 어떤가? 다른 캐릭터들과는 결이 다른데
- 재미난 남자아이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독특한 아이 같은 느낌? 그러면서 동시에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고 싶었다. 성준 씨를 캐스팅할 때도 그렇다. 일반인에 비하면 잘생긴 얼굴이지만 빼어나게 잘 생긴, 만화를 찢고 나온 느낌은 아니지 않나. 그 친근감을 좋게 생각했다. 친근감 있게 잘 생긴 남자가 여성에게 다가간다면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했다.

영화 ‘니티타’, ‘킬 빌’과 비교되곤 하는데
-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영화다. 특히 ‘니키타’는. 그 색깔이 묻는 게 저도 좋다. 묻히려고 하기도 했고. 칸에서도 그 점을 좋게 생각한 것 같다. ‘니키타’의 오마주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누군가에게 영화를 딱 10분만 보여준다면? 어떤 시퀀스를 꼽겠나?
- 버스 액션이다. 딱 10분짜리다. 하하하. 영화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기도 하고. 누가 잘못했고, 누구를 죽여야 하는지 이야기가 다 담긴 게 딱 그 1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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