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人100言]조창걸 “아름다운 디자인은 누구나 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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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2-02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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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업인들의 ‘이 한마디’ (23)

조창걸 한샘 창업자[사진=한샘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1970년대 초만 해도 ‘부엌을 설계한다는 것’은 생소한 얘기였다. 주거 환경 중에서 부엌은 가장 뒤처진 공간에 속했다. 싱크대와 화기 정도의 구색만 갖추면 부엌이라고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단출한 공간에 ‘가구’라는 개념을 추가한 것이 조창걸 한샘 창업자다.

조 창업자는 1970년 서울 연신내에 7평짜리 비닐하우스를 세워 ‘한샘산업사’라는 간판을 걸고 직원 3명과 사업을 시작했다. 싱크대 상판과 싱크볼 정도를 만드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건축 사무소를 운영하던 그는 주거 문화의 변화를 앞서 분석해 앞으로는 대부분이 아파트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려면 기존 부엌의 개념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디자인은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모던하고 세련된 선진국의 주방 문화를 한국에 보급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서양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주방을 모델로 하되 한국인의 체형과 생활 습관을 고려한 새로운 부엌을 그려냈다.

조 창업자는 아파트 건설업체를 찾아다니며 새로운 부엌의 모습을 소비자에게 보여주자고 제안했다. 1970년대에 여기저기 세워지는 아파트에 한샘이 구상한 새로운 입식 주방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세련된 디자인의 한샘 부엌 가구를 집에 들이는 것이 주부들의 꿈이 됐다.

조 창업자는 국내에서의 선풍적인 반향에 등에 입고 해외로 눈을 돌려 미국, 중동 등지로 수출했다. 1979년 수출 100만 달러를 돌파했고, 4년 뒤에는 500만 달러를 달성했다.

해외에서의 성공은 한샘이 ‘국내 고급 브랜드’로 입지를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샘은 사업영역을 주방에서 침실, 거실, 서재 등 주택내 모든 공간으로 넓히며 토탈 인테리어 기업으로 거듭났다.

한샘이 국내 가구업계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디자인'이다. 조 창업자는 “디자인 산업은 다가올 미래 사회에서 한국이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대표 분야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또 “다가올 미래 사회는 동·서양의 문명이 만나 일방적 지배가 아닌 두 문명의 장점이 조화를 이뤄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 같은 생각을 ‘드뷰(DBEW, Design Beyond East&West)’란 디자인 철학으로 정립해 사업에 적극 반영했다.

1994년 전문경영인에게 대표이사직을 넘기고 경영에서 손을 땐 조 창업자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꿈꿔온 목표에 도전했으니, 2012년 설립된 한샘드뷰(DBEW) 연구재단이다.

한샘드뷰 연구재단은 한국의 미래 전략을 개발하고 한국과 동북아를 포함해 세계를 이끌어갈 리더를 육성하기 위해 만든 공익법인이다.

“남북분단과 6.25전쟁 등은 우리나라가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비극이다. 앞으로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한국의 미래를 개척할 싱크탱크가 꼭 필요하다“는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2015년 3월에는 한샘드뷰 연구재단에 자신의 사재 4400억여 원을 출연했다. 조 창업자는 한샘드뷰 연구재단을 한국에도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 랜드연구소와 같은 싱크탱크를 만들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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