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人100言]박영주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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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1-26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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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업인들의 ‘이 한마디’ (17)

이건 박영주 이건산업 창업자[사진=이건산업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지난 2000년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에서 부족간 내란이 일어났을 때였다. 현지에 진출한 이건산업 직원들이 조림활동을 하던 중 반군으로부터 협박을 받고, 차량을 몰수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건산업 직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반군 대장은 이건(利建) 박영주 이건산업 창업자에게 사과편지를 보내고, 모든 차량을 돌려보냈다. 내란이 벌어지자 다른 기업은 모두 철수하는 가운데에서도 잔류를 결심한 이건.

당시 사건은 그의의 현지문화 존중의 경영철학을 솔로문 군도 국민이 얼마나 존경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건은 서른 두살이던 1972년 목재전문기업 이건산업을 설립해 1980년대 이후, 사양산업이 된 국내 합판분야에서 첨단제품 개발을 통해 한국 목재업계의 거상으로 성공했다.

그는 이건산업을 필두로 △시스템 창호와 태양광발전 부문의 이건창호 △친환경 조경사업 부문의 이건환경 △목재 물류자재를 다루는 이건그린텍 △바이오에너지 부문의 이건에너지 등 5개 관계사를 키워냈다.

1980년대초에 진출한 솔로몬군도에는 이건의 기업관이 고스란히 베어있다. 1970년대말 산림자원이 풍부한 파푸아뉴기니로 진출한 그는 안정적인 원자재 확보를 위해 솔로몬군도 초이셀 섬을 선정, 제주도 크기의 2배에 달하는 11억평에 달하는 거대한 산림의 20년간 벌채권을 획득했다.

이건은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장장 8년여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가 솔로몬 정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현지인의 미래의 삶의 질을 함께 고민했기 때문이다. 이건은 나무만 베어가는 다른 목재 회사와 달리, 조림사업을 함께 추진했다. 순수 민간기업으로 조림사업을 하는 곳은 이건산업이 유일했다.

벌채권을 확보한 이건은 개발에 앞서 두가지 원칙을 내세웠다. 장기발전계획으로 추진하고, 직경 50cm 이하의 나무는 손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1년에는 초이셀 섬에 ‘승민기념병원’을 열었다. 이를 통해 현지인 수만명이 의료 혜택을 받았고, 많은 신생아가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었다.

현지인들로부터 지지를 얻은 이건산업은 솔로몬군도 조림지에서 70여년간 유칼립투스를 벨 수 있는 벌채권을 얻었다. 벌목과 식재를 병행해 사실상 무한정 나무를 얻을 수 있게 된 셈이다. 돈 이전에 사람을 보고, 수십년이 걸려도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이건의 경영철학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이건은 ‘메세나(Mecenat, 문화예술·스포츠 등에 기업이 자금이나 시설을 지원하는 활동)’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90년, 체코 아카데미 목관 5중주단 초청공연을 시작으로 매년 가을 ‘이건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음악 후원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40여년간 기업을 경영하며 돈이 남아 여유롭다는 생각을 한번도 못했다. 메세나는 돈을 더 벌면 하겠다는 생각보다, 자신의 역량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말은 메세나뿐 아니라 모든 나눔 활동을 할 때 ‘경제적 여유’가 아닌 ‘기업가의 철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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