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향후 5년간 저밀도폴리에틸렌(LDPE)과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VA)의 가격과 공급을 제한하는 등 시정조치가 함께 부과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케미칼과 롯데대산석화, HD현대오일뱅크, HD현대케미칼이 석유화학 사업재편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대산 1호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했다고 20일 밝혔다.
대산 1호 사업은 HD현대케미칼이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을 물적분할해 설립한 롯데대산석화를 흡수합병하는 사업재편이다. 결합 이후에는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HD현대케미칼 지분을 각각 50%씩 보유해 공동 지배한다.
공정위는 LDPE와 EVA 시장에서 경쟁제한 우려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기업결합 이후 국내 사업자 수가 한화와 LG, 롯데, HD현대 등 기존 4곳에서 3곳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생산능력 기준으로는 한화가 약 50%, LG·HD현대가 약 25%의 비율로 시장을 점유하게 된다.
특히 공정위 조사 결과 HD현대케미칼은 경쟁업체보다 제품을 대략 10%가량 저렴하게 공급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신규 사업자인 HD현대케미칼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만들어진 가격 경쟁 압력이 기업결합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빚어진 것이다.
여기에 기업결합으로 사업자 수가 줄어 경쟁 사업자들의 가격 협조가 용이해지고 담합에 따른 가격 인상 및 생산 중단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공급 과잉이 문제가 됐던 1990년대에 국내 LDPE 시장에서는 담합이 10여년간 지속된 전례도 있었다.
이에 공정위는 향후 5년 동안 LDPE·EVA 국내 판매가격의 변동률을 수출가격 변동률에 연동하도록 했다. 수출가격이 오르거나 유지되면 국내가격 인상률을 수출가격 인상률 이하로 하고, 수출가격이 내려가면 국내가격 인하율은 수출가격 인하율 이상으로 해야 한다.
공정위가 수출가격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국내보다 경쟁이 치열한 해외시장의 가격이 경쟁가격에 가장 가깝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 대산공장과 HD현대케미칼은 생산 제품의 70% 이상을 수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결합 당시 생산 중이던 모든 LDPE·EVA 제품에 대해서는 국내 수요자가 요청한 물량을 공급하도록 했다. 국내 구매자의 상당수가 중소 플라스틱 가공업체인 만큼 사업재편 과정에서 수익성이 낮은 일부 제품의 생산을 중단하거나 소량 주문을 기피해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 HD현대오일뱅크는 LDPE·EVA의 가격과 수량, 원가, 재고량 등 경쟁에 민감한 정보도 원칙적으로 공유할 수 없다. 다만 실제 제품 구매나 중개 판매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경우 내부 통제장치를 마련하고 공정위 승인을 받아 예외적으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도록 했다.
시정조치 기간은 5년이다. 전성복 공정위 기업거래결합심사국장은 "석유화학 사업재편 기간이 3년이지만 시장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업재편 이후일 것"이라며 "중국과 해외 경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5년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5년 뒤에도 경쟁제한 우려가 남아 있다고 판단되면 시정조치를 연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통합 법인인 HD현대케미칼은 공정위와 협의해 협력업체와 상생 협력을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이번 조치는 후속 사업재편인 '여수 1호' 심사에도 이번 결정이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여수 1호는 롯데케미칼 여수 기초소재 사업과 한화솔루션 여수 폴리에틸렌·석유수지 사업, DL케미칼 폴리에틸렌 사업, 여천NCC를 통합하는 방안이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롯데케미칼과 한화솔루션, DL케미칼이 여천NCC를 공동 지배하게 된다.
특히 공정 당국은 대산 1호와 여수 1호가 모두 이뤄질 경우 롯데케미칼을 매개로 두 합작법인 사이에 지분 연계가 발생한다는 점을 대산 1호 심사에서도 고려했다. 전 국장은 "대산 1호 시장 상황이 확정된 만큼 여수 1호를 판단할 때도 당연히 고려될 것"이라며 "여수 1호에 참여하는 회사가 달라지는 만큼 분석해야 하는 상품 시장의 개수나 종류가 변경될 수 있지만 최대한 신속하게 마무리 하겠다"고 말했다.
업계는 대산 1호 승인에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화학산업협회는 이날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 로드맵에 따른 첫 사업재편 모델로서 성공적인 구조개편 사례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며 "산업 경쟁력 제고라는 구조개편 취지가 차질 없이 실현될 수 있도록 후속 기업결합도 신속하게 심사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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