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현지 파트너사를 거치지 않는 직접판매(직판)에 잇달아 나서고 있다. 현지 유통을 넘어 가격 정책과 보험 등재, 영업·마케팅까지 직접 맡으며 수익 구조를 바꾸려는 움직임이다. 다만 해외 현지 법인을 세우고 영업·유통 인프라를 직접 구축해 직판 체제를 안착시킨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8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미국 의약품 직판: 성공을 위한 핵심 요소와 준비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직판의 성공 가능성이 기술적 난도가 높거나 특정 환자군을 겨냥한 전문의약품에서 상대적으로 높다고 분석했다. 경쟁자가 제한적인 데다 제품 경쟁력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대표적인 사례는 SK바이오팜이다. 회사는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 엑스코프리) 품목허가를 받은 뒤 2020년 미국 자회사 SK라이프사이언스를 통해 현지 직판에 나섰다.
SK라이프사이언스는 미국 뉴저지 설립 초기부터 글로벌 빅파마 출신 중추신경계(CNS) 영업·마케팅 전문가를 영입하며 현지 유통망과 의료진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여기에 세노바메이트가 난치성 성인 부분 발작 환자 대상 임상에서 경쟁 약물을 크게 웃도는 완전 발작 소실률을 입증하면서 처방 현장의 신뢰를 확보했고, 이는 직판 체제의 조기 안착으로 이어졌다.
세노바메이트는 미국 시장에서 처방이 꾸준히 늘며 지난해 630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보다 약 44% 증가한 규모다. 판매 확대에 맞춰 공급도 늘고 있다. 회사는 지난달 SK라이프사이언스와 5536만달러(약 793억원) 규모 의약품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들어 다섯 번째 계약으로 누적 규모는 2818억원에 이른다.
셀트리온은 지난 2019년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이 해외 직판망 구축 계획을 제시한 이후 꾸준한 직판 체제를 구축해왔다. 유럽은 2020년 직판 체제로 전환했고 미국은 2023년부터 직접 판매를 본격화했다. 직판 품목도 2023년 1개에서 현재 6개로 늘었다.
직판 확대는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짐펜트라(성분명 인플릭시맙)와 유플라이마(성분명 아달리무맙) 판매 증가에 힘입어 회사의 올해 2분기 북미 직판 매출은 분기 기준 처음으로 2000억원을 넘어섰다. 특히 짐펜트라는 FDA 허가 이후 출시 7개월 만에 미국 3대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를 포함한 주요 보험 처방집에 등재됐다.
셀트리온은 이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과 유통망을 후속 제품에도 적용했다. 옴리클로(성분명 오말리주맙)는 이탈리아에서 직판 경쟁력을 입증하며 유럽 시장에서 올해 1분기 점유율 16%를 기록했다.
미국 의약품 시장은 제조사와 도매상뿐 아니라 보험사, PBM, 구매 컨소시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보험 등재와 가격 협상, 처방 네트워크 확보 여부가 시장 안착을 좌우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현지 법인이 품목허가부터 가격 책정, 보험 등재, 영업·마케팅, 매출 인식까지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는 직판은 높은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는 반면, 상당한 자금과 현지 네트워크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SK바이오팜은 자체 개발 신약과 글로벌 임상을 통해 현지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키우면서 보험사·PBM과의 협상력, 마케팅 역량을 축적해 직판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제품 하나만으로 성패가 갈리는 사업이 아니라 글로벌 임상과 현지 영업 역량을 장기간 축적해야 가능한 모델이라는 의미다.
이승규 부회장은 "직판은 글로벌 경험과 현지 네트워크, 자금력이 함께 갖춰져야 가능한 전략"이라며 "시장에 대한 이해와 마케팅 역량이 뒷받침돼야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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