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엔비디아 선물 보따리 속의 은밀한 함정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수장이 서울을 방문하여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새로이 시도하는 CPU 플랫폼 AI 노트북 제품군 및 물체적AI 플랫폼이 주요 내용이다. 서울에 AI기술센터를 설립하고 국내 우수 인재를 적극 채용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돼있다. 이 중 CPU와 노트북은 인텔과 레노버를 비롯한 기존 강자들을 위협하는 엔비디아의 도전에 해당한다. 국내 언론과 산업계는 이를 긍정적 신호로 해석하며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 일색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흘러갈 수 있을까. 기술 패권 경쟁의 교훈을 돌이켜 분석해보면 단순히 호재로만 해석하는 것은 매우 순진하고도 위험한 생각이다. 세계 산업사에서 강대국은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세계 표준으로 퍼뜨리어 다른 국가들을 자신들이 만든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이는 교묘한 장악력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이런 생태계 구축 과정에서 누가 실질적 통제권을 확보하게 될지 세심히 따져봐야 한다. 진정한 선물은 과연 누구 몫으로 귀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일 우리가 정교한 글로벌 생태계의 구성원으로 편입되는 것으로 그치는 일방적 결과가 예상된다면 그리 좋아할만한 거리는 아닌 까닭이다.

한국의 정보기술 산업은 지난 반세기 동안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메모리 반도체를 세계 최고로 만들었고 통신망 역시 세계 최고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도 주도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 들여다보면 부품 제조 기술에서는 자립했지만 산업 질서 플랫폼에 대한 결정력을 가져본 적이 한번도 없다. 이런 결정력 상실 패턴은 고착화되다시피 했다. PC 시대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체계를 지배했고 인텔이 프로세서 생태계를 장악했다. 인터넷 시대에는 구글과 아마존이 시장 질서를 주도했다. 스마트폰 시대에 이르러서는 애플과 구글이 모바일 플랫폼을 통제하고 있다. 클라우드 시대로 돌입해서는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 데이터 인프라를 거의 다 장악해버렸다. 이렇듯 우리는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주체가 돼 본적이 한번도 없다. 마치 주체되기를 기피한 듯 추종자 처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답답한 행보를 펼쳐왔다. 이를 놓고 패권 포기 주의라고 보는 시각이 생긴지 오래다. 지금 AI 시대에도 이는 마찬가지다. 지금 AI 패권은 엔비디아에 아예 맡겨 둔 채 과거와 동일한 흐름이 재현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본다. 엔비디아와 정면 승부를 펼쳐야 마땅할 삼성도 이번에도 또 주도권을 허용하고 그런 처지에 자족할 것인가.

플랫폼을 가진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차이는 현격하다. 부품 공급의 수준에 머물면 하청업체간 경쟁이 매우 심하다. 대체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쟁자 등장으로 가격이 하락하여 공장이 문닫게 되고 살아남더라도 수익성 면에서 압박 요인이 크다. 반면 플랫폼은 시장의 지배자로서 독점력이 강할 뿐 아니라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수익 효과가 강화된다.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는 수의 크기에 단순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수의 제곱에 비례할 정도로 수직 상승한다는 사실이다.  40년전  나온 이론이다. 운영체계 데이터베이스 클라우드 검색엔진 등이 모두 그런 특수 효과를 누리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것이 플랫폼 지배자가 부가가치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생태계 현실이다. AI 시대에도 이는 여전히 통하는 진리다. 

엔비디아를 반도체 기업으로 볼 수도 하지만 실제 핵심 경쟁력은 GPU자체에 있지 않다. 오히려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GPU 개발 생태계가 자산 목록 1호다. 생태계란 다른 말로 운동장이다. 세계 연구자와 개발자가 대부분이 거기서 뛰어놀며 제품이 개발되고 서비스가 구축된다. 따라서 플랫폼 보유자의 위상은 막강하다. 그가 설정한 기술 발전의 방향과 시장의 표준에 따라 모든 참여 선수들의 활동 영역은 제한된다. 한국이 많은 메모리를 공급할수록 그들의 열매는 제곱 세제곱 네제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현상을 결국 도와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좁게 보면 윈원으로 보는 이도 있겠으나 실상은 착각에 해당할 뿐이다.

오늘날 AI 산업을 움직이는 핵심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엔비디아가 20년전부터 조성해온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생태계다. 그게 삼성을 비롯한 남을 흡인하는 기술 종속 구조의 핵이다. 워낙 잘 돼있어 대학과 연구소가 아무 저항없이 세계 표준처럼 받아들이며 사용하고 있다. 수많은 반도체 연구 논문과 AI 모델(딥시크같은)이 CUDA라는 설계 핵심 소프트웨어를 전제로 개발되고 있으며 스타트업에서는 처음부터 CUDA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설계하는 일이 당연시되고 있다. 그래야만 그들로서 3년내에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빅테크 또한 스타트업과 처지가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도 CUDA 최적화가 역시 사활의 최대 관건이다. 삼성도 예외 없이 갖다 쓴다. 이래서 엔비디아가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절대반지 격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젠슨 황이 여러 최고경영자들을 데리고 회동하는 장면을 연상해보변 이해가 될 것이다. 마치 빅테크 세계의 황제 같지 않은가.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심화될수록 엔비디아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의존도가 심화될수록 생태계 참여자들의 독자 기술 개발의 동기는 자연 실종된다. 연구 방향도 플랫폼 제공자의 전략 범위 내에만 결정하면 되는 까닭이다. 마치 과거 영연방 시대에 56개국으로 구성된 그 연방 조직이 돌아갔던 거버넌스와 비슷하다. 

최근 우리 산업계는 HBM 수요 급증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AI 플랫폼이 확대될수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도 증가되고 있어 그렇다. 그러나 국가 전략의 성패는 수십 년 후의 경쟁력을 기준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분기 실적과 같은 근시안적 관점에서 판단하는 게 아니다. 과거에도 우리는 메모리 시장의 호황을 경험했지만 그것이 플랫폼 경쟁력으로 이어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경시하면 아니 된다. 초격차로 불리는 부품 제조 경쟁에 몰두한 결과 플랫폼의 기반인 소프트웨어에 대한 자립 의지와 걸맞은 투자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지금도 같은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HBM 호황이 생태계 조성의  중요성을 외면하게 만드는 위험한 착시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엔비디아 플랫폼의 성공에 우리 산업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퇴로 불가의 영역으로 더욱 깊숙이 끌려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가 AI기술센터를 서울에 설립하고 제시하는 인재 채용 계획 역시 양날의 칼이다. 한편으로는 국내 연구자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환경을 제공할 수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다르게 봐야 한다. 오랜 기간 노력을 통해 우리가 양성한 인재들이 결국 해외 플랫폼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주는 역할만 하고 끝난다면 이게 무슨 꼴인가. 그냥 남에게 봉사하는 희생 아닌가. 인재는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자산이다. 국내 기업들은 이미 AI 인재 부족을 호소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 경우 국내 생태계 성장 가능성은 약화 정도가 아니라 전면 실종될 수 있다. 따라서 기술센터 유치를 성공으로 평가하기 전에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 그 가치가 어디에 귀속되는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지금 AI는 국방 금융 의료 교통 에너지 행정 등 전역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인프라로서 그 적용 무대가 날로 확장되고 있다. 따라서 AI 플랫폼에 대한 의존은 단순히 기업 경쟁력만의 문제로 봐서는 곤란하다. 크게는 국가 존폐를 다루는 안보 영역과도 직결되는 중대 사안이다. 최근 이란 전쟁을 보라. 만약 특정 국가나 특정 기업이 엔트로픽 같은 핵심 AI 인프라를 통제하게 된다면 다른 국가들은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갑자기 을의 위치에 처하는 구조적 상황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데이터흐름 알고리즘방향 시스템표준이 모두 외부에서 결정되는 까닭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반도체 수익만으로 미래 경쟁력을 판단하는 것은 큰 숲을 애써 외면하고 지엽적으로 나무 한 그루에만 신경 쓰는 격이다. AI 전환 및 응용에 능한 처세술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척도가 돼서는 안된다. 기업은 기초 기술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지라도 국가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은 우리가 AI 기술의 향방에 대한 기술적 주도권과 영향력을 얼마나 행사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생태계 영향력도 없이 우왕좌왕하는 처지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엔비디아를 상대로 이런 생태계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기업이 미국에는 인텔을 비롯하여 여러 기업이 있다. 플랫폼 주권에 대한 욕심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그런 기업이 하나도 없다. 삼성도 인텔처럼 엔비디아를 꺾어 보겠다는 의지와 도전 정신을 가져야 하는데 그런 흔적을 전혀 찾아볼 길 없이 그저 협력만 하려고 든다.

플랫폼 주권 확보에는 운영체계 데이터베이스 클라우드 같은 기반 기술이 긴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각각이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기 10년씩은 투자해야 성공할까 말까다. 그러나 이러한 분야를 포기한다면 다른 국가가 만든 운동장에서 용병 선수로서 뛰는 신세를 영영 면할 길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운동장 만드는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으니 포기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어떤 이는 이를 놓고 한국의 소프트웨어 패배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경비즈니스 2025년 2월 10일자). 엔비디아 같은 유망한 기업과 협력 자체를 부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협력을 초월한 절대적 의존은 다른 각도에서 봐야 한다. 지금 AI 혁명은 역사적 분기점을 또다시 만들고 있으며 이번 분기점은 과거와 다르게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거리를 훨씬 더 벌려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프트웨어에 관한 한 한참 후진국이다. 우리가 어떤 수를 언제 어떻게 둠으로써 앞으로 어떤 위치에 서게 될 것인지도 냉정하게 고민해야 한다. 선진국처럼 늘 20년 앞을 내다보는 자세로 말이다.

엔비디아 선물 뒤에 숨겨진 얽히고 설킨 구조를 슬기롭게 읽어내고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반도체 수익 극대화에 자축할 시점이 아니다. AI생태계 수장이 방한하여 소맥잔을 들고 “Go, Korea”를 외치는 진의가 과연 어디에 있을지 지혜롭게 분석해봐야 할 것이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