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마을 正舌] 원칙도, 기본도 없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통폐합

  • 왜 난립했나? 반성 없는 통폐합

  • 사라진 편법적 설립 관행에 대한 책임

  • 앞뒤가 바뀐 원칙도 없는 개편

  • 여전한 칸막이와 부처, 기관 간 나눠 먹기

 
1973년 장충동에 신축개관한 중앙국립극장 1991년 국립중앙극장으로 개편되었다 사진Wikimedia
1973년 장충동에 신축개관한 중앙국립극장, 1991년 국립중앙극장으로 개편되었다. [사진]Wikimedia]
왜 난립했나? 반성 없는 통폐합

정부는 2026년 9월 3일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하며,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 산하의 유사, 중복 기능을 가진 기관을 대폭 통폐합하겠다고 발표했다. 문화부의 산하 기관이 지나치게 많고 기능이 중복되어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문화부 예산 총액이 타 부처 국(局) 단위 예산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산하기관은 가장 많은 축에 든다는 비판은 문화예술계, 학계, 언론에서 거듭 제기해 온 사안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있어 통폐합을 바라보는 시각은 긍정적이다.

그런데 이번 통폐합 안에는 산하기관이 왜 이렇게 난립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다. 사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문화부 산하기관은 꽤 단출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극장 등 굵직한 몇몇 기관이 존재했다. 그런데 2005년 전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관을 설립하고 운영해 온 주체는 다름 아닌, 지금 산하기관 난립을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하고 나선 문화부 관료 자신들이다.

문화부에 산하기관이 우후죽순처럼 난립하게 된 것은 2005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KCAF, Korean Culture and Arts Foundation, 1973년 설립)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Arts Council Korea)로 전환하면서 시작되었다. 문예진흥원은 문화부의 하위 기구로 대부분의 결정권이 문화부에 있고, 문화부의 손발로 정책 실현을 담당해 왔다. 이와 함께 관료들이 퇴직 후 높은 급여를 받으며 노년을 보내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개혁 바람이 불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문화부 출신 간부들이 대거 퇴직하고, 2005년 민간 자율형 위원회인 아르코(ARKO)로 전환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문화부 내부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했으나 결국 개편은 성사되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CO 본관전경나주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CO) 본관전경(나주).

이후 문화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예산과 권한을 몰아주는 대신, '아르코는 순수 창작 지원만하라'고 선을 그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수족을 잘라냈다. 그리고 정책 영역의 확대를 명분으로 자신들이 100% 통제할 수 있는 별도 기관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변에 촘촘히 만들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가 합의제 기구로 출범할 당시, 내부 연구 부서인 전문예술법인단체평가센터 등으로 흡수될 예정이던 기능을 별도의 독립 법인인 예술경영지원센터(KAMS)로 설립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즉 산하기관 난립의 진짜 이유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라는 자율형 독립 기구에 문화예술 행정의 주도권을 내주지 않기 위해, 문화부의 각 과가 정책 확대를 명분 삼아 저마다의 수족을 끊임없이 만들어온 결과다. 1과 1 소속기관이라 할 정도로 소속기관을 양산해 놓고, 이제 와서 왜 난립했는지, 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소위 만들고 그 소속기관을 지도 감독이란 이름으로 지배해온 문화부의 행적에 대한 진단은 빠진 채, 그 양산의 결과물인 기관 수만 정리하는 것은 문제의 뿌리는 그대로 둔 채 가지만 치는 전형적으로 스스로 일을 벌여놓고 남의 탓을 하는 실로 염치없는 일이다.
 
사라진 편법적 설립 관행에 대한 책임
문화부는 산하기관을 만들 때마다 거의 매번 편법적인 방식을 사용해 왔다. 국회 승인이 필요한 특수법인 설립이라는 어렵고 시간과 품이 들어가는 절차를 피하고자, 장관 직인만으로 하루 만에 만들 수 있는 민법 제32조 기반의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기관을 먼저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재단에 민간 위탁금이나 사업 보조금 형태로 예산을 몰아주며 덩치를 키운 뒤, 법인의 몸집이 불어나고 직원 수가 늘어나면 “직원이 수십 명이니 정식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달라”며 국회와 기획재정부를 역으로 압박해 사후 공공기관화하는 방식을 써왔다.

이러한 편법은 많은 폐해를 낳았다. 우선 국회의 예산 심의와 국정감사라는 민주적 통제가 필요 없는 기관을 만들었다. 특히 법적 근거가 박약한 재단은 인건비와 운영비의 적정성을 국회가 따지기 어렵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부처 쌈짓돈의 공공연한 통로가 되었다.

더 중요한 폐해는 문화사업이 소위 산하 재단법인, 소속기관에 하청 주는 형태의 하청업으로 전락했다. 법적 독립성이 없는 소속기관은 예산과 인사권을 쥔 부처 담당과장이나 사무관 또는 주무관의 하청 업체로 전락해, 자율과 책임 아래 사업을 설계하기보다 정권의 입맛이나, 문화부의 성과를 위한 일회성 사업에 동원되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 전경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 전경

게다가 관료들의 낙하산 인사가 관행화되었다. 법적 근거 없는 재단법인은 임원 임명 절차가 허술해, 임기 만료를 앞둔 관료나 퇴직 공무원이 이사장이나 사무총장, 대표 자리로 내려가는 일이 일상화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장 인력의 고용 불안과 경력 소모가 일상화되었다. 제도적 근거 없이 급조된 조직이다 보니 정권이 바뀌거나 문화부 또는 관련부서 담당자의 관심이 멀어지면 사업과 예산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비정규직 비율은 늘 높았다.

그런데 금번 통폐합 안 어디에도 이런 편법적인 설립 관행 자체를 손질하겠다는 내용은 없다. 기관을 줄이되 설립과 운영의 방식은 그대로 둔다면, 몇 년 뒤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기관이 다시 생겨날 것이다. 하긴 그래서 혁신을 입에 달고 살지만, 또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앞뒤가 바뀐 원칙도 없는 개편
산하기관 통폐합에 앞서 마땅히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문화부 본부 조직에 대한 점검과 개편이다. 이는 산하기관이 난립하게 된 근본 원인이 문화부 본부의 방만한 업무 자체에 있다는 진단에서 시작된다.

사실 산하기관이 늘어난 과정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문화부 각 과·국 단위의 개별적 필요와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KoTPA)은 국악 관련 국책 사업을 국립국악원이라는 공무원 조직 체계 안에서 소화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문화부 공연예술과가 주도해 2007년 민간 재단법인으로 국악문화재단을 설립해 사업을 위탁한 후 2009년 지금의 명칭으로 개명했다.

2002년 12월 재단법인 ‘한국문화정보센터’로 처음 설립된 한국문화정보원은 정부 부처 전반에 ‘공공 데이터’, ‘디지털 뉴딜’ 바람이 불면서 문화부 정보화 담당 부서가 자신들의 사업 예산을 확보하고 하청 업무를 전담시키기 위해 재단법인으로 독립·격상시킨 기관이다. 이처럼 산하기관의 팽창은 본부 조직의 파편화와 칸막이 행정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동시에 문화부의 하청업체나 다름없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산하기관이 많다는 지적에 자신들이 만들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몰아서 시켰던 기관을 마치 자신들과는 관련이 전혀 없다는 듯 통폐합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여간 염치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원인을 그대로 둔 채 결과만 정리하는 방식의 개혁은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 문화부의 업무 배분 체계와 외청인 국가유산청과의 업무 조정 그리고 과·국 단위의 이해관계가 개편되지 않은 상태에서 산하기관만 통폐합할 경우, 시간이 지나면 유사한 기능의 조직이 다시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제도적 근거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관료들의 필요에 따라 급조된 조직들은 정권이 바뀌거나 담당자의 관심이 멀어지면 사업과 예산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고용 불안정성과 사업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결국 문화부 차원의 거버넌스 부실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요컨대 산하기관 통폐합은 몸통은 그대로 둔 채 팔다리만 잘라내는 방식의 개혁에 그칠 위험이 있다. 본부 조직이 먼저 기능 중심으로 재설계되어 부서 간 칸막이와 이해관계가 정리되어야만, 그에 맞추어 산하기관의 역할과 적정 개수 또한 합리적으로 재편될 수 있다.

따라서 산하기관 통폐합에 앞서 문화부와 국가유산청 그리고 각종 조직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과 개편이 먼저 이루어졌어야 한다. 즉 부처의 기능과 정책 방향이 먼저 재편되어야 그에 맞는 산하기관의 역할과 배치가 가능하고 업무도 정해질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런데 이번 개편은 문화부 본부 조직은 그대로 둔 채 산하기관만 이리저리 묶고 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몸통은 그대로 두고 팔다리만 잘라 붙이는 격이니, 애초에 내세운 ‘기능 중복 해소’와 ‘전문성 강화’라는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 ‘개혁’이란 이름의 산하기관 통폐합은 대통령의 “공공기관이 너무 많아 숫자를 다 세기 힘들 지경”이라며 “유사, 중복 기능에 대한 과감한 통폐합이 필요하다”고 주문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아예 전체 공공기관의 약 20%를 감축한다는 총량 목표를 정하고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정 절감과 조직 슬림화라는 총론적 필요성만으로, 전문성과 정체성이 중요한 문화예술 영역까지 일괄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타당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총량 목표를 먼저 정해 놓고 각 부처가 이를 채우기 위해 짜맞춘 흔적이 역력한 개편안이라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숫자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듯해보이지만 코끼리 몸에 토끼발이 달린듯 기형적인 2026 문회부 산하기관 조직개편안을 풍자해 Ai가 그린그림
그럴듯해보이지만 코끼리 몸에 토끼발이 달린듯 기형적인 2026 문화부 산하기관 조직개편안을 풍자해 AI가 그린그림.
 
코끼리 몸통에 토끼 다리?
문화부가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은 세분화하고 파편화된 조직을 정비해 경영 효율성과 분야별 전문 시너지를 높이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통폐합되는 기관의 개별 조합을 뜯어보면 기능의 동질성이나 설립 목적의 유사성이 아니라, 기관 수를 줄이기 위한 산술적 편의가 통폐합의 기준이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우선 박물관·미술관 관련 통폐합 안을 보면 여전히 박물관에 대한 이해와 이에 따른 국가 정책의 부재를 드러낸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소장품의 성격, 연구·보존 방법론, 관람객과의 접점 방식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두 기관은 ‘박물관’이라는 개념적 틀 안에서 동일체로 취급되고 있다. 그런데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문화부 소관이 아닌 타 부처 산하의 과학관, 생물자원관, 수족관 등 학문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박물관 범주에 속하는 기관들, 그리고 도서관·문서보관소·기록관 역시 국가 차원에서 문화부가 통합 관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각 부처별로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애초에 국가 차원의 박물관 정책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지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이번 개편에서 가장 상징적이며 옳았던 조치는 국립박물관단지 통합운영지원센터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에서 문화부로 이관한 부분이다. 그러나 정작 그 단지 안에 입주한 타 부처 소속 박물관들의 운영 체계는 그대로 방치했다. 이는 대표적인 땜질식 처방이다. 그런데 문제는 통합운영지원센터가 다시 국립세계문자박물관과 함께 신설되는 ‘국립지식문화박물관재단’으로 통합된다는 점이다. 문화부 산하의 세계문자박물관 하나만 함께 포함될 뿐, 세종시 국립박물관 단지 내 타 부처 소속박물관이나 국가유산청 산하 박물관들은 여전히 별도 트랙에 남아 있어, 근본적 해결이라기보다는 ‘손댈 수 있는 것부터 손대거나’, ‘힘없는 기관부터 손을 댄’ 조치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중심으로 부처별 전시·관람 기관을 연결하는 K뮤지엄 협업체계 구축 계획 역시, 조직 통합이 아니라 느슨한 협의체 구성이라는 점에서 국가 차원의 통합이라는 근본 문제의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 또한 뮤지엄에 미술관은 어디에 속하는지도 모호하다. 차라리 ‘국립지식문화박물관재단’이 세계문자박물관을 제외하고 프랑스가 1895년 설립된 ‘국립박물관연합(RMN)’과 ‘그랑팔레’를 2011년 합병해 출범한 프랑스 문화부 산하 공공기관인 프랑스 국립박물관연합(RMN, Réunion des Musées Nationaux)이 루브르, 오르세, 베르사유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30여 개 주요 국립박물관, 미술관을 네트워크로 묶어 공동 수익사업을 총괄하는 것과 같이 개편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문화부 소속 유일한 법인격의 박물관인 세계문자박물관은 이번 개편으로 국립지식문화박물관재단에 편입된다
문화부 소속 유일한 법인격의 박물관인 세계문자박물관은 이번 개편으로 국립지식문화박물관재단에 편입된다.

사실 시설과 콘텐츠는 통합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은 박물관학의 기본 원칙이다. 이번 개편은 운영 주체만 옮겼을 뿐, 그 안에 입주한 기관들의 운영 체계라는 근본 구조는 그대로 둔 채 겉모습만 바꾼 데 불과하다. 이 점에서 이번 개편은 '개혁을 위한 개혁', '숫자 맞추기 개혁'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렇게 파편화된 통폐합 안은 박물관 분야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문화산업 진흥 체계 역시 기관별로 쪼개진 채 방치되어 있다. 콘텐츠 산업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출판 산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영화 산업은 영화진흥위원회가, 공예·디자인 산업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각각 별도의 법률과 별도의 조직으로 담당한다. 여기에 저작권 기반을 다루는 한국저작권위원회, 게임산업의 진흥과 등급 분류를 함께 맡는 게임물관리위원회까지 더하면, 콘텐츠 산업이라는 하나의 생태계가 최소 여섯 개 안팎의 기관으로 쪼개져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들 산업이 실제로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다. 웹툰이 영상화되고, 게임 지식재산권(IP)이 출판, 영화로 확장되며, 공예, 디자인 콘텐츠가 다시 디지털 플랫폼으로 유통되는 오늘날의 산업 구조에서, 산업별로 분절된 진흥 체계는 협업과 융합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벽으로 작동한다.

아무튼 이번 통폐합 안에서 가장 이질적인, 이상한 결합은 (가칭) 한국문화예술산업진흥원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산업 부문, 국립박물관문화재단, 국립문화공간재단이 통합되어 274명 규모의 조직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네 기관의 성격을 뜯어보면 공통분모가 거의 없다. 예술경영지원센터와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산업 부문은 예술 시장의 유통·경영·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시장을 대상으로 사업을 설계하는 조직인 반면,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국립중앙박물관 내 공연장·뮤지엄숍·식음료 시설을 운영하는 시설과 건물을 바탕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조직이다. 여기에 국립문화공간재단은 당초 당인리문화창작발전소 등 국립 문화시설의 운영·관리가 본령인 조직이다. 게다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는 공예·디자인·전통생활문화의 진흥을 목적으로 ‘문화역서울284’라는 시설을 운영·관리하는 기관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전문성이 요구되는 기관을 거대한 하나의 기관으로 묶는 것은 전략경영 차원에서 보면 “비관련다각화로 인한 시너지 착시”이다.

 
구 서울역을 개보수해 2011년 개관한 문화역서울 284
구 서울역을 개보수해 2011년 개관한 문화역서울 284


산업 지원 조직에는 산업 분석, 유통 구조 이해, 해외 네트워크, 기업 지원 설계 역량이 요구되지만, 시설 운영 조직에는 시설 안전, 임대차 관리, 관람객 동선 설계, 상시 운영 인력 관리 역량이 요구된다. 성과 지표도 다르다. 전자는 지원 기업의 매출 증가나 수출 실적으로 평가되지만, 후자는 시설 가동률과 방문객 수, 운영 수지로 평가된다. 예산 구조 역시 전자는 사업비 비중이 높은 반면, 후자는 고정 운영비 비중이 압도적이다.

이렇게 태생적으로 성격이 다른 기관을 하나의 간판 아래 묶는 것은 설립 목적과 기능이 전혀 다른 조직을 억지로 봉합하는 일이며, 통합 이후에도 업무 중복과 혼선은 불가피하다. 이질적인 두 사업군을 하나의 경영진이 동시에 관리해야 할 경우 결국 어느 한쪽은 방치되기 마련이며, 경험칙상 방치되는 쪽은 예산과 정치적 가시성이 낮은 쪽이다. 몇 년 뒤 시설 운영 기능이 산업 진흥 조직 안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재분리 논의가 시작될 것이고, 그 재분리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다. 더구나 국립문화공간재단은 2024년 말에야 출범한 조직으로, 설립 2년도 채 되지 않아 해체·재통합되는 셈이어서 행정의 일관성마저 의심케 한다. 
 
개보수중인 당인리문화창작발전소 개관도 전에 운영을 맡은 국립문화공간재단이 통폐합된다
개보수중인 당인리문화창작발전소, 개관도 전에 운영을 맡은 국립문화공간재단이 통폐합된다.

다음은 ‘기타 나머지’ 기관을 묶어 만드는 ‘한국문화진흥원’은 더욱 큰 문제다. 문화균형발전을 선도하며 지역문화가치를 발굴 확산하는 지역문화진흥원, 문화예술교육보급 및 강사 관리등을 하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전통문화본부와 한복센터, 디지털 데이터 인프라를 관리하는 한국문화정보원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지역, 교육, 전통공예, IT 인프라라는 네 영역은 서로 달라 사실상 접점이 없다. 한국문화예술산업진흥원에 편입되지 못한 기관을 긁어모은 잔여 카테고리에 가까워, 이번 개편안 중 기능적 정합성이 가장 약한 ‘묶음’이다.

미디어, 방송국을 운영하는 국악방송과 공연지원 및 인프라, 해외진출을 담당하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의 결합은 최소한 ‘국악·전통예술’이란 동일 장르를 공유한다. 다만 편성·송출을 다루는 방송국과 정책 지원기관을 묶어, 향후 방송 편성의 독립성 문제가 통합 후에도 충돌 없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저작권보호원과 저작권위원회가 274명 규모의 한국저작권원으로 통합된다. 같은 저작권 생태계에 있다는 점에서 도메인 정합성은 높지만, 위원회는 분쟁조정·심의라는 준사법적 기능을, 보호원은 불법유통 단속이라는 집행 기능을 맡기 때문에, 조사·단속 기능과 조정·심의 기능을 한 조직에 두면, 자신이 단속한 사안을 스스로 조정하는 구조적 이해 상충 소지가 있어, 내부에서 얼마나 이를 제어할 장치를 설계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1987년 문을 연 한국저작권위원회 2015년 진주로 이전해 오늘에 이르고있다 사진출처 진주시
1987년 문을 연 한국저작권위원회, 2015년 진주로 이전해 오늘에 이르고있다. 사진출처 진주시.

성격이 완전히 다른 시설, 수장 보존, 관리 조직이 주업무인 ‘운영지원센터’를 전문 박물관인 ‘세계문자박물관’과 통합하는 것은 이번 통폐합 최대의 오류다. 차라리 박물관의 상업적 부대사업을 담당한다는 공통점을 지닌 국립현대미술관문화재단과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을 통합하는 편이 기능적으로 훨씬 타당했을 것이다. 시설 운영지원 조직을 개별 박물관에 붙인 이번 결정은, 성격이 비슷한 조직끼리 묶어야 한다는 통합의 기본 원칙조차 지키지 못한 사례다. 한국체육산업개발의 국민체육진흥공단 편입, 태권도원의 태권도진흥재단 흡수는 동일 도메인 내 유사·중복 기능 정리에 해당해 다른 사례들보다 논리적 정합성이 그나마 높은 편이다.

그런데 이번 개편안은 큰 기관이나 힘이 센 기관 간의 중복된 기능과 역할은 전혀 손대지 않고 오히려 덩치만 키웠다는 것이다. 신설 예정인 한국문화진흥원과 기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업무와 미션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분명하지 않다. 문화예술 진흥이라는 목적과 지원 대상, 사업 영역에서 상당 부분 중첩되는 두 기관을 그대로 존치한 채, 규모가 작은 기관들만 짜맞춘 것은 개혁의 우선순위 설정이 잘못되었다는 방증이다. 유사·중복 기능 해소가 이번 개혁의 명분이라면, 가장 먼저 검토 대상에 올라야 할 기관으로 여러 기관을 합쳐서 만드는 한국문화진흥원과 기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통합이 오히려 검토 밖에 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외국의 성공적인 통폐합 사례

사실 외국에서도 한국처럼 유사한 문화기관 통폐합과 재편이 상당히 유사한 배경에서 추진되었고, 몇몇은 나름의 성과를 냈던 사례들이 있다. 대부분의 국가 문화기관이 난립하게 된 배경은 우리나라와 정말 비슷하다. 부처나 부서마다 디지털화, 메타버스, 뉴딜, 한류 확산 같은 정책 유행에 따라 별도 재단을 신설해 예산과 인력을 확보해 조직을 키우려는 관행이 쌓였고, 그 결과 유사·중복 기능을 가진 기관이 난립하는 패턴이 반복해 왔다. 그리고 이는 관료제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예를 들면 ‘계량화된 성과 측정과 평가’가 조직의 증설과 폐지의 원칙인 영국도 2010년 전후 ‘준정부기구(Quango) 난립’이 재정위기 속에서 정치적 문제가 됐고, 프랑스도 외교부와 문화부가 각자 유사한 해외문화진흥 조직을 운영하며 비효율이 누적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런 비효율을 개선하고자 통폐합을 통해 성공적으로 안착한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우선 프랑스 ‘레위니옹 데 뮤제 나시오노-그랑팔레(RMN-GP, Réunion des musées nationaux- Grand Palais)’라는 프랑스의 국립박물관을 지원하고 그랑팔레를 운영하는 상업적 성격의 공공기관을 탄생시켰다. 이 통합 기관은 34개의 국립박물관을 관할하며, 각 박물관은 법적·재정적 자율성을 유지하는 공공기관이거나 문화부 박물관국 소속의 국가관할기관으로 운영되지만 RMN-GP는 각 박물관의 정체성은 그대로 둔 채, 재원 통합과 공통 관리 체계 수립이라는 목적으로 탄생한 브랜드이다. 즉 개별 박물관의 학예·전시 정체성은 건드리지 않고, 매표·출판·상품·홍보 등 ‘공유 가능한 백오피스 기능’만을 통합한 기관이다. 이는 문화부의 산하기관 통폐합이 “성격이 다른 기관을 억지로 묶는” 문제와는 대비된다.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 전경 사진Wikimedia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 전경 [사진=Wikimedia]


이와 함께 프랑스 외무부와 문화통신부는 프랑스 문화를 전 세계에 홍보하고자 2006년 프랑스 예술 활동 협회(AFAA)와 프랑스 사상 보급 협회(ADPF)를 합병해, 컬처스프랑스(Culturesfrance)를 설립했다. 원래 프랑스 사상 보급 협회(ADPF)는 외무부 산하의 프랑스어 서적 보급을 목표로 했으며, 프랑스 예술 활동 협회(AFAA)는 1922년 프랑스 정부가 국제 문화 교류를 증진하고 시각예술, 응용미술, 건축, 문화유산 등 예술 분야에 대한 개발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였다. 이후 두 조직은 2011년 통폐합되어 외교부가 단독으로 관할하는 프랑스문화원(Institut français)이 되었다. 이후 프랑스문화원은 프랑스 영화 홍보에도 힘쓰면서 현재 96개국에 걸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프랑스의 대외 문화 영향력 확산에 기여하는 기관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2011~2014년 사이 해외 공관의 문화관련 조직을 프랑스문화원 본부에 직접 편입시키는 실험을 캄보디아·인도·영국 등 13개국에서 시도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아 정부는 이 계획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중앙집중과 통합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로, 실패한 사례로 참고할 가치가 충분하다.

영국은 ‘통합’이 아니라 반대로 기능에 따른 분리를 통해 효율성을 높인 경우도 있다. 1984년 설립된 잉글리시 헤리티지(English Heritage)는 국가 문화유산에 대한 규제·인허가·연구자문 기능과, 스톤헨지(Stonehenge)를 비롯한 400여 개의 국가 유적을 직접 운영하는 현장 사업 기능을 한 조직 안에서 동시에 수행해 왔다. 따라서 이런 이원적 구조는 정부 기관이라는 제약 때문에 민간 기부금이나 후원 유치에 한계가 있었고, 2010년대 초 긴축재정의 여파 속에 재정적인 문제로 유적 보수를 미루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영국 정부는 국영 운하관리기구가 자선단체인 ‘운하수로신탁(Canal & River Trust)’으로 전환해 성공한 선례를 참고로, 2013년 유적 운영 기능을 별도의 단체로 분리하는 개혁안을 마련했다. 
 
스톤헨지Stonehenge 사진출처 나무위키
스톤헨지(Stonehenge) 사진출처 나무위키

당시 문화부 장관 마리아 밀러(Maria Miller, 1964~)는 새로운 단체가 민간 재원 조달에서 훨씬 자유로워짐으로써 10년 내 정부 지원 없이 자립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고 이를 바탕으로 2015년 4월 1일을 기점으로 조직을 두 개로 나누었다. ‘영국 역사 건축물 및 기념물 위원회(Historic England)’는 기존 조직의 법적 지위를 승계해 정책 자문, 유적 등재, 인허가 등 공적 규제 기능을 전담하는 정부 기관으로 남고, 새로 설립된 ‘잉글리시 헤리티지 트러스트(English Heritage Trust)’는 히스토릭 잉글랜드로부터 재산 사용 허가를 받아 국가 유적의 실질적 보존과 관람객 서비스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출범했다. 정부는 신설 단체의 연착륙을 위해 초기 8000만 파운드(약 1470억 원)를 지급하고, 이후 점점 보조금을 줄여 2022~23년까지 한시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완전히 자립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분리된 이후 현재, 당초 목표에 근접하거나 이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잉글리시 헤리티지 트러스트도 2021~22년을 끝으로 정부의 정기 보조금 지원에서 벗어나, 2023~24 회계연도에 총 수입의 65%를 자체 재원으로 조달하는 데 성공하면서 많은 성과를 기록했다. 한편, 규제 기능을 전담하게 된 히스토릭 잉글랜드 역시 정부 보조금을 안정적으로 지원받으며 본연의 공적 기능에 집중하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의 통폐합 대신 분리한 사례는 성격이 이질적인 기능을 무리하게 한 조직에 묶어두기보다, 공적 신뢰와 독립성이 요구되는 규제 기능과 유연성·민간 재원 유치가 관건인 현장 운영 기능을 각기 다른 거버넌스로 분리함으로써 양쪽 모두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이런 성공이 초기 거액의 이행 재원과 단계적으로 지원을 점점 줄여가는 제도적 안전장치 위에서 가능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사례의 핵심은 ‘같은 유산 분야’라도 규제자 역할과 시설 운영자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 각자의 책무를 분명하게 해 잘 하는 것을 더 잘하게 함으로써, 성과를 극대화하는 “문화부의 조직개편 없이 산하기관만 뒤섞는” 방식과는 정반대로, 기능 정의를 먼저 명확히 한 뒤 조직을 설계한 사례이다.

독일의 경우 베를린을 중심으로 박물관, 도서관, 기록보관소 등을 총괄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문화·예술 및 학술 연구 기관 중 하나인 프로이센문화유산재단(SPK, Stiftung Preußischer Kulturbesitz)을 1957년 설립했다. 1947년 연합국 통제위원회에 의해 독일의 구체제 상징이던 프로이센 주가 공식 해체되면서 프로이센 왕국과 주 정부가 소장했던 방대한 유물, 미술품, 도서 등의 소유권과 관리 주체가 모호해지자, 서독 연방 정부는 구 프로이센의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보존하기 위해 연방법을 제정하고 재단을 설립했다.

현재 재단 산하에는 25개 기관이 통합, 소속되어있다. 1961년 업무를 시작할 당시 베를린 국립도서관(Staatsbibliothek zu Berlin)과 ‘박물관 섬(Museumsinsel)’을 포함, 15개 이상의 박물관이 배속된 베를린 국립박물관군(Staatliche Museen zu Berlin)을 시작으로, 1962년 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Ibero-Amerikanisches Institut)와 국립음악연구소(Staatliches Institut für Musikforschung), 1963년 프로이센 국립기록보관소 (Geheimes Staatsarchiv Preußischer Kulturbesitz)가 순차적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프로이센문화재단은 역사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 문화예술기관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로이센 유산 소장품들을 베를린에서 통합적으로 보존·공개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대표적인 성과로, 성과의 핵심은 박물관·도서관·아카이브·연구소라는 이질적 성격의 기관을 통합하면서도 소장품·연구 영역별 전문성은 유지하고 예산·인사 등 행정 기능만 재단 차원에서 통합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1992년 독일통일과 함께 동서독이 나누어 관리하던 문화유산들을 하나로 합치는 역사적 과제가 성공적으로 완전히 통합함으로써, 행정적 효율을 위한 통폐합이 아닌 문화적 통폐합을 완성했다. 재단은 독일 연방정부와 16개 주 정부가 공동으로 재정을 지원하며, 약 200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대규모 조직으로 개별기관은 독자적으로 조사, 연구, 전시 등의 활동을 보장받고 있다. 
 
 통독이전 서독의 문화유산을 집적한 쿨투르포럼Kulturforum회화관 판화관  미술 도서관 및 공예 박물관 등이 있다  근처에 베를린 필하모니 국립신미술관도 있다 사진 Wikimedia
통독이전 서독의 문화유산을 집적한 쿨투르포럼(Kulturforum)회화관, 판화관 , 미술 도서관 및 공예 박물관 등이 있다. 근처에 베를린 필하모니, 국립신미술관도 있다. 사진 Wikimedia

하지만 통독과 조직의 비대화는 개혁을 요구받기 시작해, 프로이센문화유산재단(SPK)은 2025년 12월 1일 새 재단법 시행과 함께 역사적인 구조 개혁을 공식 완료했다. 20개가 넘는 기관과 470만 점 이상의 유물을 관리해 온 재단의 거대 조직은 다층적 위계에 따른 경직된 하향식 의사결정, 개별 박물관·연구소의 예산·인사 자율권 부재, 세계적 규모에 걸맞지 않은 예산·인력 부족이라는 세 가지 고질적 문제에 시달려왔다. 따라서 2020년 독일 과학인문위원회 (WR,Wissenschaftsrat)가 재단 해체와 개별기관 독립이라는 파격적 권고안을 내놓은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개혁 논의가 시작되었고, 이는 5년여의 논의 끝에 연방의회를 통과한 새로운 법이 시행되면서 개혁의 열매를 맺었다.

개혁의 골자는 관료제 축소와 현장 자율성 확대이다. 우선 단독 회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던 체제를, 최대 7인의 기관 대표로 구성된 합의제 이사회 체제로 전환해 의사결정의 권력을 분산하고, 중간 관료 조직이었던 베를린 국립박물관 총국을 폐지함으로써 페르가몬 박물관 (Pergamon Museum), 함부르거 반호프(Hamburger Bahnhof) 등 개별기관이 예산 편성과 인사 관리 권한을 직접 행사할 수 있게 했다. 세 번째로는 정부와 주 정부 인사가 뒤엉켜 비대했던 이사회 의결 위원 수를 20명에서 9명으로 줄여 의사결정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기관장 등 최고위직 임용을 영구직에서 임기제 계약직으로 전환해 민간 수준의 역동성과 책임성을 제도화했다.

이러한 개혁은 앞서의 영국·프랑스의 사례와 맥을 같이한다. 영국이 잉글리시 헤리티지를 기능별로 분리해 각 조직이 자기 성격에 맞는 논리로 운영되게 한 것처럼, SPK 역시 중앙집권적 통제 기구를 없애고 현장 단위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을 택했다. 다만 프로이센재단의 개혁은 조직을 통폐합해 몸집을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비대해진 상부 관료제를 덜어내고 권한을 현장으로 되돌리는 ‘군살 빼기’와 ‘분권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이는 통폐합이 능사가 아니라, 조직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따라 통합이 아닌 분권화가 해법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1996년 미국 의회는 박물관·도서관서비스법(MLSA, Museum and Library Services Act)을 제정해 1976년 설립된 박물관서비스원(IMS,Institute of Museum Services)과 교육부 산하 도서관프로그램국(Library Programs Office)을 통합, ‘박물관도서관서비스원(IMLS, Institute of Museum and Library Services)’을 창설, 이를 통해 박물관과 도서관을 보다 통일적이고 전략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상위 기관을 만들었다. 
 
미국의 모든 박물관 도서관 문서보관소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박물관도서관서비스원IMLS Institute of Museum and Library Services건물전경 사진 Wikimedia
미국의 모든 박물관, 도서관 문서보관소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박물관도서관서비스원(IMLS, Institute of Museum and Library Services)건물전경 사진 Wikimedia

두 기관을 하나의 지붕 아래 통합함으로써 IMLS는 부문 간 협업을 촉진하고 모범사례를 공유하며, 문화·교육 기관을 위해 통일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통합이 30년 가까이 안정적으로 작동해 온 배경은, 박물관과 도서관이 “재원 확보, 기술 적응, 다양한 관객 확보, 소장품 보존”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안고 있다는 기능적 유사성이 명확했다는 점 때문이다. 다만, 2025년 트럼프 행정부가 IMLS를 해체 대상 기관 목록에 올린 바 있어, 정치적 상황에 따라 성공적인 기관도 존폐 위협에 놓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1983년 호주의 빅토리아주 정부는 ‘박물관법(Museums Act 1983)’을 제정해, 1854년 설립된 빅토리아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of Victoria)과 1870년 설립된 산업기술박물관(Industrial and Technological Museum), 이후 응용과학박물관·응용과학연구소를 거쳐 1971년 과학박물관(Science Museum)으로 통합했다. 이로써 빅토리아주의 자연사·기술·인류사 컬렉션이 처음으로 하나의 체계 아래 통합 관리되기 시작했으며, 통합된 조직은 ‘빅토리아박물관(Museum of Victoria)’이라는 명칭으로 출범했다. 이후 조직은 하나의 지붕아래 기관을 두는 우산 같은 성격을 조직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며 점차 산하기관과 시설을 확대해 나갔다. 1992년 사이언스웍스(Scienceworks)가 개관해 과학·기술 관련 컬렉션을 담당하게 되었고, 1998년 이민박물관(Immigration Museum)이 산하에 문을 열었다. 같은 해인 1998년 조직의 명칭을 ‘뮤지엄빅토리아(Museum Victoria)’로 변경해, 이후 2016년 지금의 명칭인 ‘뮤지엄스빅토리아(Museums Victoria)’을 얻었다. 
 
호주 빅토리아주의 자연 기술 인류학박물관등을 관장하는 뮤지엄스빅토리아
호주 빅토리아주의 자연, 기술, 인류학박물관등을 관장하는 뮤지엄스빅토리아

이런 일련의 통합과 확장 과정을 거친 뮤지엄스빅토리아는 멜버른박물관, 사이언스웍스, 이민박물관 등 세 개의 박물관과 수장고 시설을 운영하며,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로열전시관(Royal Exhibition Building)의 관리 기관 역할까지 겸하는 조직으로 성장해, 호주 최대 규모의 공공박물관 조직으로 자리 잡았다. 재미있는 것은 빅토리아주의 이런 통합이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2002년 뮤지엄스빅토리아는 건물 신축 이전과 함께 600만 달러(약 81억 원)의 적자와 관람객 감소의 위기를 맞았는데, 이는 조직 구조가 박물관 운영의 실질적인 필요가 아니라 신축 공사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다시 조직을 정비해 현재의 안정적인 우산형 조직 체계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급하게 짜맞춘 조직 개편은 결국 부작용을 낳고, 재조정이 필요해진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이들 해외 사례를 관통하는 공통된 성공적인 통폐합의 사례의 원칙은 세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미국의 박물관·도서관처럼 유사 기능, 규제자와 운영자처럼 역할이 명확히 다른 영국처럼 통합과 분리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프랑스나 독일처럼 기능의 동질성 또는 명확한 역할 분담이 선행된 다음 개별기관의 정체성과 전문성은 유지한 채, 공유가 가능한 행정·재정 기능만 통합한 것이다. 세 번째 상위조직 개편이 선행된 후, 그에 맞춰 산하기관 재배치가 뒤따랐다는 것이다. 호주의 경우 이 순서를 역으로 실행하면서 초기에 부작용을 겪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여전한 칸막이와 부처, 기관 간 나눠 먹기
결정적으로 이번 통폐합안이 졸속이라고 지적을 받는 것은 문화부와 국가유산청의 중복되는 기능 또는 관할 업무에 대한 개편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유네스코(UNESCO)의 세계유산 체계는 물리적 형태가 있는 역사, 예술, 과학, 고고학적 가치 등을 지닌 기념물, 건축물 군, 유적지를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 인간의 개입 없이 자연적인 생태적, 지질적, 물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유산을 ‘자연유산(Natural Heritage)’,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구전 전통, 예술 표현, 사회적 관습, 의례, 전통 장인 기술 등 인간의 행위와 공동체를 통해 전승되는 ‘살아있는 문화’를 뜻하는 ‘무형유산(Intangible Heritage)’으로 구분하고 있다. 단 인간이 물리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제작물 즉 건축물이나 구조물에 포함되지 않는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예술, 과학, 고고학, 인류학적 가치를 지닌 유형문화재는 세계유산 체계에 속하지 않는다. 이런 유형의 문화재들은 이미 박물관이란 기구와 기관이 수집, 소장, 관리 및 조사 연구해 왔기 때문이다.

2024년 개편된 국가유산법은 UNESCO의 국제 기준을 지향하며 만든 법이라고 하지만, 국내의 단일 행정 구조에 맞추기 위해 무형유산까지 ‘국가유산’으로 무리하게 통합하고 자연유산을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등 세부적인 정의와 운용 방식에서 국제 협약과 어긋나는 정합성의 문제와 함께 박물관학에서 규정한 유형문화재를 다루는 박물관 설립운영까지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국제적인 규범에 맞추어 문화부가 ‘유형문화유산’ 즉 박물관·미술관·공연예술 등 ‘유형’의 문화 콘텐츠와 현대적 문화산업에 집중하고, 국가유산청은 자연유산·무형유산·궁능과 사적 등 건조물의 보존·수리를 담당하는 원칙을 분명하게 하면서, 산하기관까지 통폐합하는 진정한 개혁이 필요하다. 
 
 대한제국기 제실박물관을 계승해 2005년 개관한 국립고궁박물관 궁중관련 유형문화재를 다루고있다 사진 Wikimedia
대한제국기 제실박물관을 계승해 2005년 개관한 국립고궁박물관, 궁중관련 유형문화재를 다루고있다. 사진 Wikimedia.

사실 문화부와 국가유산청의 업무 영역이 점점 중첩되면서 박물관·전시 콘텐츠의 디지털 아카이빙, 전통공예·전통문화 진흥, 지역 문화유산 관광 콘텐츠 개발 등의 영역은 문화부 산하기관과 국가유산청 산하기관이 사실상 유사한 사업을 각자 수행해 온 것이 사실이다. 문화부는 이번 개편에서 자신의 산하기관을 18개에서 7개로 줄이면서도, 정작 국가유산청과의 경계에 놓인 중복 기능은 검토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는 “유형문화유산 대 자연·무형유산”이라는 기능 배분 원칙에도 불구하고, 그 원칙을 부처 간 기관 재편에는 적용하지 않은 것으로, 이번 개편의 근본적 한계를 보여준다.

따라서 향후 후속 조치에서는 다음 세 가지가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첫째, 문화부와 국가유산청 산하기관 가운데 유·무형유산의 경계에 걸쳐 있어 기능이 중복되는 전통공예·한복 관련 기능, 지역 문화유산 콘텐츠 기능, 디지털 아카이빙 기능을 전수 조사해 문화부건 국가유산청이건 하나의 소관으로 정리해야 한다.

둘째, 국가유산청 소관의 박물관·전시시설과 문화체육부 소관의 박물관이 이원화된 운영 체계를 유지하는 한, 이번 개편이 표방한 ‘K뮤지엄 협업체계’ 역시 협의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유형문화유산를 다루는 모든 대한민국박물관 운영을 통합하는 상위기구가 문화부 내에 필요하며 국가유산청은 자연유산과 무형유산을 잔담하며, 환경부와 산림청, 해양수산부와 중첩되는 업무도 관할권을 정리해야했다.

셋째, 부처 간 기능 재배분은 부처 내부 조직 통폐합보다 정치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부처 내부 통폐합보다 우선순위에 두어야, 이번 개편이 ‘개혁을 위한 개혁’, ‘보여주기식 개편’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개편안의 최대약점은 ‘업무의 동질성’이 아니라 ‘정원’과 ‘숫자 맞추기’가 통합의 실질적 기준으로 작동했다는 의심이다. 이들 기관 상당수는 애초에 문화부 관료들 스스로가 공무원 조직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익사업이나 통제력 확보를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즉 만들 때는 개별 업무의 특수성을 근거로 쪼개고, 없앨 때는 그 특수성을 무시한 채 편의적으로 다시 묶는 이중 잣대가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공공기관 수를 줄이는 일 자체는 필요하다. 그러나 통합의 성패는 숫자가 아니라 통합된 조직이 실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업무 성격이 전혀 다른 기관들을 ‘산업 육성’이라는 느슨한 명분으로 묶는다면, 통합 이후에도 내부의 이질적 기능들은 봉합되지 못한 채 갈등만 이어갈 뿐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각 기관이 시장을 상대하는 조직인지 시설을 운영하는 조직인지, 그리고 어느 기관과 실질적으로 업무가 겹치는지부터 다시 따져야 한다. 여기에 더해 문화부와 국가유산청 사이의 기능 중복까지 함께 정리하지 않는다면, 이번 개편은 몸집을 줄였다는 숫자상의 성과만 남긴 채, 몇 년 안에 재분리와 재조정이라는 청구서로 다시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인원이다. 이번 개편으로 4개 기관이 합쳐 274명 규모의 한국문화예술산업진흥원이 출범한다고 하지만, 정부는 임원을 제외한 정규직·무기계약직의 고용 승계를 보장하고 신규 채용 규모도 줄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조직은 통폐합하면서 인력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은, 통폐합의 본래 목적인 비효율 해소와 관리비용 절감이라는 취지 자체를 무색하게 만든다. 간판만 바꿔 달고 인원 감축 없는 통폐합을 단행한다면, 통폐합에 따른 유무형의 비용만 들어갈 뿐이다. 이는 국민의 눈을 가리고 개혁을 흉내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돌이켜보면 2008년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역시 36개 기관을 16개로 묶는 대규모 통폐합을 단행했으나, 이 과정에서 성격이 전혀 다른 기관들이 뭉뚱그려지면서 오히려 업무 영역만 무분별하게 확장되고, 인사 특혜 논란까지 불거지는 등 부작용을 남긴 전례가 있다. 당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 한국게임산업진흥원과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통합되며, ‘콘텐츠’라는 이름 아래 업무 범위만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사례가 그것이다. 18년 전의 그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원칙이다. 정부는 문화부 조직 개편을 먼저 매듭짓고, 박물관학·문화행정의 학문적인 논리에 입각해 기관 재배치의 큰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그렇지 않은 통폐합은 숫자만 줄이고 문제는 그대로 남기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개혁에 그칠 뿐이다.

결국 이번 통폐합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은 부처 예산과 자리를 지키기 위한 산하기관 재배치가 아니라 정부가 문화를 관리하고 육성하던 시대에서 정부가 생태계를 조성하고 전문 영역에 권한을 넘기는 시대로의 전환이어야 한다. 승진 적체 해소를 위한 조직 확장의 관행을 스스로 끊어내지 못한다면, 문체부는 또 한 번 이름만 바꾼 조직도를 발표하고 몇 년 뒤 같은 문제로 또 조직개편을 하면서 개혁을 말할 것이다. 선진국 대한민국의 문화행정은 조직의 크기가 아니라 기능의 정합성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번이 그 전환의 마지막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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