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마을 正舌] 정부 믿다 폐관 위기에 처한 사립박물관

  • 1991년 이후 민간이 채운 문화예술의 빈자리

  • 부족한 문화접근성, 커지는 수요 

  • 상속세 앞에 형해화 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 소장품과 부동산, 두 겹의 비대칭

  • 공익법인에 형해화 된 빈 껍데기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1968년 등촌동에서 개관한 호랑이발을 모티브로 기둥을 만든 에밀레하우스 에밀레박물관의 전신으로 약 2천점의 민화를 소장했다
1968년 등촌동에서 개관한 호랑이발을 모티브로 기둥을 만든 에밀레하우스, 에밀레박물관의 전신으로 약 2천점의 민화를 소장했다.
1991년 이후 민간이 채운 문화예술의 빈자리
1991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이하 박미법)의 제정은 한국 문화기반시설사(史)의 분수령이었다. 당시 초대 문화부 장관 이어령(1934~2022)은 10년 안에, 전국에 1000개의 박물관·미술관을 세우겠다는 구상을 내놓았고, 이 구호는 수많은 개인 수집가와 지역 유지, 중소 기업인들을 박물관·미술관을 건립하도록 이끌었다. 국가가 재정을 투입해 감당해야 할 문화인프라 구축을, 민간이 자기 재산을 던져 대신 짊어진 것이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성과는 결코 적지 않다. 국제 사립미술관 조사기관 래리스 리스트(Larry’s List)가 암스테르담 대학교 사회학과와 공동으로 수행한 '2023년 사립 미술관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이 설립한 동시대미술관 수 기준으로 한국은 독일(60개), 미국(59개)에 이어 세계 3위(50개)를 기록했다. 도시 단위로 보면 서울은 17개의 사립 미술박물관을 보유해 베를린(14개), 베이징(11개), 뉴욕(10개)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전 세계 사립 동시대미술관의 82%가 2000년 이후 설립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민간 문화기반시설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세계적 수준의 양적 성장을 이뤄낸 셈이다. 이는 단순한 통계적 수치를 넘어, 이어령이 그렸던 구상이 예산이 아니라 개인의 헌신으로 채워질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고, 실제로 그 전제가 지난 30여 년간 유효하게 작동해 왔음을 보여준다. 
 
1990년 10년안에 1천개의 박물관시대를 열것을 천명한 이어령李御寧 초대 문화부장관2013년
1990년 10년안에 1천개의 박물관시대를 열것을 천명한 이어령(李御寧) 초대 문화부장관(2013년).


이렇게 K-컬처의 화려한 등장 뒤에는 수십 년간 사재를 털어 국가 대신 문화유산을 수집하고 보존해 오며 이를 조사 연구를 통해 전시해 온 사립박물관의 헌신이 있었다. 정부 역시 '박미법'을 앞세워 이들에게 정식 ‘등록’을 권장하고 공익적 기능을 수행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대한민국 박물관 설립 및 운영 주체별 현황
 

사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연간 관람객 수가 많다고 하지만, 사립박물관의 연간 총관람객 수는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넘는 2700만에 달해 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연 총관람객 2400만 보다 많다. 사립박물관에 종사하는 인력도 약 4 000여 명에 달한다.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도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소장품 숫자도 대한민국국립박물관의 총 소장품에 버금가며 그 종류는 훨씬 다양하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것은 공공성과 비영리라는 원칙을 지키면서 개인이, 법인이 문화복지와 문화 향수 그리고 학교 밖 학교로서의 역할을, 정부를 대신해 수행해 왔다는 점이다.
 
1983년 충북 보은군 속리산근처로 이전한 에밀레박물관 모습
1983년 충북 보은군 속리산근처로 이전한 에밀레박물관 모습

물론 정부도 그간 사립박물관에 각종 지원을 해왔다. 문화부는 학예 인력과 교육 인력 총 2명까지 1인당 월 160만 원을 지원한다. 박물관은 매월 40만 원을 자부담한다. 2020년의 경우 인력지원을 위해 총 287명에 54억 6900만 원이 지원됐다. 인턴 채용, 소장품 데이터베이스화, 인문학 프로그램 등 박물관의 ‘진흥’에 지난해 투입된 세금은 110억 원으로 2019년에 비해 28억원 증가했다. 하지만 이는 사립박물관 1관당 연 3000만 원 정도로 1~3개월 치 시설관리비도 안되는 돈이다.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은 이러한 민간 문화기반시설이 결코 재벌이나 대기업 문화재단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대기업이 세운 대형 미술관도 존재하지만, 대다수 사립박물관은 평생 모은 사재를 털어 소규모 전시 공간을 바탕으로 박물관을 일군 개인 수집가,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 은퇴한 교육자, 향토사, 생활사 연구자, 중소 기업인들이다. 특히 대개의 사립미술관은 작가인 설립자가 서울 요지의 부동산을 처분해 그 돈으로 지방에 미술관을 세운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들에게 미술관 건립은 재산 증식의 수단이 아니라, 평생의 예술혼과 수집벽을 공공의 자산으로 환원하겠다는 결단이었다. 

박물관 설립 운영자들이 소장 자료에 대해 생각보다 소유욕이 크지 않고, 이미 공익적 인식을 더 크게 갖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러한 성격을 뒷받침한다. 법인화를 못하는 이유 역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다. 법인화할 경우 이미 박물관을 설립 운영하는 데 재산을 쓴 나머지, 출연해야 할 재산의 감당이 어렵기 때문이다. 전시나 공연 등을 목적으로 하는 문화재단의 경우 장학재단보다는 기준이 조금 낮지만, 실무적으로는 3억 원에서 7억 원내외의 재산을 출연해야 재단 설립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때 박물관의 건물과 토지도, 소장 작품의 출연도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통상 부동산·유물과 함께 일정액의 정기예금, 현금 등 수익용 기본재산을 함께 출연해야 하는 것이 재단 설립에 큰 걸림돌이다. 또한 공익법인으로 전환하는 경우 이사회 구성 제한, 출연재산의 용도 제한, 운용 소득의 사후관리 의무 등 중소 규모의 사립박물관이 감당하기 어려운 행정적·법률적 부담을 동반해, 사실상 자본과 행정력을 갖춘 대형 기관이나 가능한 것도 이유이다. 
삼성문화재단이 설립운영중인 호암미술관 재단은 리움도 운영중이다
삼성문화재단이 설립운영중인 호암미술관, 재단은 리움도 운영중이다. [사진=위키피디아]

특히 사립박물관 설립자들이 재단 법인화를 기피하는 것은 세제 혜택도 중요하지만, 소장품 및 시설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할 우려 때문이다. 이는 공익법인의 지배구조 규제 즉 이사회 구성에서 이사를 설립자와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의 수를 현원의 5분의 1 이내로 제한한다는 규정은 소규모 사립박물관의 현실과 충돌한다. 특히 이사회 구성상 특수관계인 제한으로 인해 평생을 바쳐 수집한 소장품과 사재를 출연해 박물관을 세우고 운영해 온 설립자라 할지라도, 정작 그 운영의 핵심 기구인 이사회에서 소수자가 되어, 설립자의 영향력은커녕 유족의 운영권마저 배제될 위험 때문에 법인화 대신 불안정한 개인 명의 운영을 고수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사실 설립자 가족이 이사회에서 배제되어, 추후 운영에서 아주 배척되어 아예 축출된 사례가 있었던 것도 더욱 법인화를 꺼리게 된 원인이 되었다.
 
환기재단법인에 의해 김환기의 예술 세계를 헌창하고자 설립 1992년  개관한 환기미술관 본관 전경 사진httpskiaforg
환기재단법인에 의해 김환기의 예술 세계를 헌창하고자 설립 1992년 개관한 환기미술관 본관 전경 [사진=httpskiaf.org]

사립박물관의 이런 특수성을 반영한 별도의 지배구조 기준 마련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게다가 법인화해도 그 헌신의 가치를 존중해주지 못하는 '부자들의 여가 활동'쯤으로 치부하는 사실과 동떨어진 사회적 분위기도 교정이 필요하다. 
 
부족한 문화접근성, 커지는 수요 
사립박물관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화접근성은 여전히 국제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국토정책Brief 1062호’(2026.5.11.)는 서울과 베를린의 문화접근성을 대중교통·보행 이동시간을 반영한 ‘향상된 2단계 부동권역법(E2SFCA)’으로 비교 분석했는데, 그 결과는 매우 뼈아팠다. 도서관 접근성 중앙값은 서울이 0.168, 베를린이 0.216이었고, 박물관·미술관 접근성은 서울이 0.121, 베를린이 0.205로 그 격차가 더 컸다. 공연 시설의 경우 서울은 0.000으로 사실상 접근성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던 반면 베를린은 0.088을 기록했다. 유일하게 서울이 앞선 항목은 상업적인 성격이 강한 영화관(서울 0.078, 베를린 0.015)뿐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지역 간 불균형이다. 서울의 공연시설 접근성 지니계수는 0.969, 박물관·미술관은 0.827에 달해 서울에 문화시설이 극단적으로 편중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사립박물관 수 자체는 세계적 수준에 근접했음에도, 정작 시민이 일상에서 그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은 선진국 도시에 크게 못 미치는 이 모순이야말로, 지금 존재하는 사립 문화기반시설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사립미술관의 원조격인 토탈미술관 1986년 장흥토탈야외미술관을 시작으로 2026년 개관 50주년을 맞는다
사립미술관의 원조격인 토탈미술관, 1986년 장흥토탈야외미술관을 시작으로 2026년 개관 50주년을 맞는다.

문화접근성의 부족은 앞으로 문화복지와 문화향수권 신장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더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여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문화예술 향유에 대한 국민적 수요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가 발표한 '글로벌 미술시장 현황과 과제' 보고서(2021.9)가 지적했듯, 미술산업은 관광 등 연관산업과의 경제·산업적 시너지가 큰 고부가가치 산업이며, 국가의 새로운 소프트 파워로 발전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이 성장하는 수요를 받아낼 인프라, 특히 지역 단위의 중소 규모 문화시설이 다름 아닌 민간의 헌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화가 전혁림19162010이 털어 건립개관한 전혁림미술관2003의 외관 사진통영시
화가 전혁림(1916~2010)이 털어 건립개관한 전혁림미술관(2003)의 외관 [사진=통영시]

국공립 문화시설 확충이 예산과 절차의 제약 속에 더디게 진행되는 사이, 그 공백을 메워온 것이 바로 사립박물관들이다. 따라서 늘어나는 문화적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이미 존재하는 민간 문화기반시설이 세대를 넘어 존속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신규 확충 못지않게 시급한 정책 과제다.
 
상속세 앞에 형해화 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인의 희생과 헌신에 의한 외형적인 풍요로움 뒤에 숨겨진 사립박물관의 속사정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국가의 부추김에 응해 박물관을 열고 평생 유물을 지켜왔지만, 자녀에게 대를 물려 박물관을 영위하려는 순간 마주하는 것은 ‘세금 폭탄’과 ‘폐관의 길’이다. 박물관 법으로는 공공의 자산이라며 규제와 의무를 지우던 정부가, 세법 앞에서는 철저히 사적 재산으로 취급해 과세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 30여 년간 정부가 마련한 '박미법'에 의거 해 설립 운영해 온 사립박물관이라는 민간의 축적물이 세대교체라는 자연스러운 흐름 앞에서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민화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민학 운동을 전개해 온 조자룡이 1968년 서울에 에밀레하우스연 것을 계기로 1970년 에밀레박물관으로 개명후 1983년 충북 보은으로 이전 2000년설립자 타계 후 장기 방치 및 화재로 폐허가 되었다 2021년 후손과 주민들이 복원해 조자용 민 문화관으로 개관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 민화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민학 운동을 전개해 온 조자룡이 1968년 서울에 에밀레하우스연 것을 계기로 1970년 에밀레박물관으로 개명후 1983년 충북 보은으로 이전, 2000년설립자 타계 후 장기 방치 및 화재로 폐허가 되었다. 2021년 후손과 주민들이 복원해 조자용 민 문화관으로 개관 운영 중이다. 

1991년 시행된 '상속세법'(법률 제4283호)에서는 공익법인 여부와 관계없이 '박미법'상 등록된 사립박물관이면 부동산과 소장품의 상속세가 유예되었다. 그러나 '상속세법'이 1996년 12월 30일 법률 제5193호로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으로 전문 개정되어(舊 상속세법 제8조의3, 현행 제74조에 해당), 1997년 '상증세법'이 시행되면서, 공익법인이 설립 운영하는 박물관에 한해 상속세 징수유예가 되도록 축소·제한되었다.

하지만 개인이 사립박물관을 설립 운영하는 이들 상당수는 여전히 개인 명의의 사립박물관의 건물과 토지 그리고 소장 작품에 대해 상속세가 면세 또는 유예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알고 있는 이유는 당시 정부 특히 이어령 문화부 장관이 상속세 유예를 확언했고 이를 확고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립박물관들과 충분한 협의나 의견 조회 없이 일방적으로 세제개편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박물관계는 정부의 처음 약속을 믿고 있다. 정부가 편무적으로 세법을 개정했음에도 말이다. 따라서 사립박물관의 생사여탈권, 지속가능성이 달린 세법이 얼마나 졸속으로, 조세 당국의 편에서 처리했는 지를 반증한다. 
 
2011년 왈종후연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해 2013년 개관한 왈종미술관j
2011년 왈종후연미술문화재단을 설립해 2013년 개관한 왈종미술관.j

아무튼 현행 '상증세법' 제74조 제1항 제2호에 의하면, 공익법인이 아닌 개인이 설립 또는 상속받아 운영하는 사립박물관의 경우 건물과 토지는 물론이고, 소장 유물, 박물관자료에 대해서 상속세는 단 1원도 면제는커녕 징수유예조차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차가운 법적 현실이다. 법조문 괄호 안에 명시된 '사립박물관이나 사립미술관의 경우에는 공익법인 등에 해당하는 것만을 말한다'는 제한 규정은 개인이 소유한 박물관 자산을 세법상 비과세나 유예의 울타리 안에서 결코 용인 할 수 없다는 입법자 즉 정부의 강력한 의지다. 

이런 구조 아래서는 개인이 아무리 '박미법'에 따라 정식으로 박물관을 등록하고 국가적 가치가 있는 소장품을 대중에게 성실히 전시·보존해 왔더라도 소용이 없다. 상속세 법령은 문화예술의 보존과 계승 그리고 진흥과 교육이라는 공익적 목적보다 '부의 무상 대물림 방지'라는 과세 형평성을 우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이 사립박물관의 형태로 자산을 승계하게 되면 세법상 박물관이란 공간은 일반 사적 재산을 보관 관리하는 창고나 다름없이 취급된다. 결국 수많은 사립박물관의 소장 작품은 감정평가를 거친 가액과 최고가로 치솟은 건물 및 토지 즉 부동산에 가액이 전부 일반 상속재산과 합산되어 최고 50%에 달하는 무거운 상속세율을 피할 길 없이 고스란히 적용된다. 

이런 무서운 상속세라는 세금 폭탄을 피하고 박물관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상속인들이 상속세 신고 기한 내에 사립박물관 자산 전체를 출연하여 정식 '재단법인등 공익법인'을 설립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이렇게 공익법인화가 완료되어야만 비로소 '상증세법' 제74조에 따른 소장품 징수유예 혜택을 청구해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나아가 부동산에 대해서도 공익목적 사용을 전제로 상속세 과세가액 산입 제외(면제) 혜택을 시도해 볼 수 있다. 

결국 현재의 법적 구조 안에서는 '개인 자격의 박물관 승계 및 운영'은 소장품과 부동산 등 박물관 관련 전 재산을 잃게 되는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철저하게 법령의 단서 조항을 준수해 신고 기한 내에 공익법인으로 체제를 전환하거나, 도저히 법인화가 어렵다면 차라리 소장 자료 중 일부를 국가에 세금 대신 물납하는 ‘문화재·미술품 물납 제도’를 알아보고 부동산 세원을 마련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소장품과 부동산, 두 겹의 비대칭
문제는 공익법인을 설립해 상속세 유예 요건을 충족해도 상속세의 굴레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상증세법' 제74조는 애초부터 박물관자료·미술관자료라는 동산만을 규율 대상으로 삼을 뿐, 그 자료를 보관하고 전시하고 있는 건물과 토지는 이 조문의 적용 범위 밖에 있다. 따라서 부동산이 상속세 부담에서 벗어나려면 제74조의 징수유예가 아니라, 제16조에 따라 아예 해당 미술관의 건물과 토지의 소유권 자체를 공익법인에 출연하는 전혀 별개의 절차를 또 거쳐야 한다. 따라서 정작 유물은 유예를 받아 지켜내도 그것을 담을 건물은 지키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 이른바 ‘집 없는 소장품’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유예는 소유권을 그대로 둔 채 세금 납부 시점만 뒤로 미루는 것이지만, 출연은 소유권 자체를 내어놓는 것이다. 전자는 미루는 것이고 후자는 내놓는 것이니, 그 무게가 같을 수 없다.

결국 공익법인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사립박물관이라 해도, 여전히 두 겹의 불리한 구조에 놓이게 된다. 첫째, 애초에 공익법인이 아니라면 소장품이든 건물이든 어떤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없다. 둘째, 어렵게 공익법인이 되었다 해도 그 혜택의 방식이 소장품과 부동산이 서로 다르다. 공익법인에 출연된 부동산은 당연히 상속세가 면제된다. 
 
다만 박물관에 해당하는 자료를 상속인 개인의 재산으로 물려주면서 박물관에 전시만 하겠다면 세무당국에 담보를 맡기고 징수유예를 받을 수 있다. 이때 징수유예를 받으려면 유예할 상속세액에 상당하는 담보를 제공해야 하며, 담보 제공에 대해서는 연부연납 담보 규정(제71조)을 준용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지정문화유산·천연기념물 등은 담보를 면제하고 연례 보고로 대체할 수 있는 특례(제5항)조항이 있지만, 박물관자료에는 그런 예외 규정이 없어 결국 사립박물관 설립자 집안이 소유한 토지, 건물 등 부동산, 공채 및 상장주식, 또는 금융기관의 납세보증서 등을 담보로 제공해야 하는 점은 이 제도의 허점을 더욱 뚜렷이 드러낸다. 

다만 해당 자료의 소유권을 상속인 개인의 자산이 아닌 공익법인의 박물관 자산으로 영구히 귀속 즉 출연하면 상속세는 완전 면제가 가능하다. 소장품과 부동산을 이렇게 다르게 취급하는 것은 세법이 박물관을 배려해서 만든 장치가 아니라, 법 조문이 미처 챙기지 못한 빈틈에 가깝다. 그리고 그 빈틈의 대가는 평생을 바쳐 박물관을 일궈온 설립자뿐만 아니라, 그 뒤를 이어야 하는 유족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가업 승계를 돕기 위해 1997년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도입했다. 최대 수백억 원의 상속세를 감면해 가업의 대가 끊기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제도가 도입된 지 30년이 흐르는 동안, 세법상 공제 가능 업종에서 ‘도서관, 박물관 및 미술관 운영업’은 단 한 번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대를 이어 국가의 문화유산을 지키는 숭고한 행위가, 세법 앞에서는 경영 노하우가 없는 일반 서비스업이나 부동산 임대업과 동일하게 취급되어 온 것이다. 

과거 국세청은 사립박물관 소장 유물에 대해 '가업에 직접 사용되는 사업용 자산이 아니다'라며 공제 적용을 완강히 거부해 왔다. 정부도 공익법인 즉 재단으로 전환하면 세금을 유예해 줄 테니 소유권을 포기하라는 획일적인 틀만 강요한다. 하지만 평생 피땀 흘려 모은 자산을 국가가 정한 공익법인이라는 단 하나의 규율만으로 승계를 허용하겠다는 것은 사립박물관 생태계의 다양성을 짓밟는 또 다른 국가 행정의 폭력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입법 예고된 '상증세법' 개정안은 개인사업자 형태의 사립박물관의 마지막 희망마저 완전히 꺾어버렸다. 부동산 투기나 일부 대형 베이커리 카페의 편법 상속을 막겠다는 미명 아래, 가업상속의 심사 기준을 극도로 강화하고 넓은 전시장 부지에 필수적인 토지 공제 한도까지 신설했기 때문이다. 불똥은 엉뚱하게도 순수 사립박물관으로 튀어, 그동안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던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박물관의 정상적인 가업 승계 통로마저 아예 대못을 박아 차단해 버렸다.

많은 이들은 2023년 도입된 '상증세법' 제73조의2의 미술품·문화유산 물납 특례제도를 통해 상속세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이는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 상속세가 2000만 원을 넘고, 상속세가 상속받은 금융 재산 가액보다 많아야 한다는 이중 요건에 물납심의위원회의 까다로운 심사까지 더해져, 제도 시행 이후 실제 승인된 사례는 단 1회 10점을 신청해 4점이 통과된 것이 유일하다. 게다가 물납의 본질은 작품을 국가에 넘기고 세금 채무를 상계하는 것이지, 그 작품이 원래 있던 사립미술관에 남도록 돕는 장치가 아니다. 물납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개인 컬렉션이 설립자가 평생 일군 공간을 떠나 국립기관으로 흡수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유럽 금융재벌 로스차일드Rothschild가에서 막대한 상속세 대신 1974년 물납을 해서 루브르 상징이 된 페이르메르의 천문학자The Astronomer 1668
유럽 금융재벌 로스차일드(Rothschild)가에서 막대한 상속세 대신 1974년 물납을 해서 루브르 상징이 된 페이르메르의 천문학자(The Astronomer, 1668).

이 모든 결과는 명확하다. 상속인은 소장품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하거나, 무리하게 세금을 완납하거나, 끝내 박물관 문을 닫는 셋 중 하나를 선택 할 밖에 방법이 없다. 매각을 택하면 유예가 취소되어 유예된 세액이 그대로 부과되고, 완납을 택하면 유동성 없는 자산 때문에 개인 재정이 붕괴하며, 폐관을 택하면 수십 년간 축적된 공공재인 문화 자산이 시장에 흩어지게 될 것이다. 

재정난 속에 보물급 유물을 경매에 내놓아야 했던 간송미술관의 사례가 이 구조가 결코 가상의 우려가 아님을 증명한다. 심지어 이 고통은 박물관 설립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평생 작품을 쌓았으되 세금 낼 현금은 없는 미술작가들 사이에서 '작품을 보존하느니 차라리 불태우겠다'는 절규가 나오는 것도, 유작이 일반 상속재산과 똑같이 취급되어 시장성 없는 작품에 거액의 상속세를 내야하는 작금의 경직된 세제 때문이다. 
 
2022년 간송미술관 보화수보寶華修補전시 당시의 보화각 ©archistory KU Research Unit of Architectural History Korea University
2022년 간송미술관 보화수보(寶華修補)전시 당시의 보화각 ©archistory KU, Research Unit of Architectural History, Korea University.
 
공익법인에 형해화 된 빈 껍데기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1994년 '소득세법 시행규칙'과 '법인세법 시행규칙' 개정은 사립 문화기반시설 확산에 실질적인 마중물이 되었다. '박미법'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만 되어 있으면, 그 박물관·미술관에 기부한 법인이나 개인은 별도의 추가 절차 없이 해당 기부금을 손금이나 필요경비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4.04.20.) 이때는 등록이라는 하나의 관문이 곧 세제 혜택의 자격이었던 셈이니, 이 시기 제도는 문턱이 낮고, 예측 가능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구조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현행 법인세법 시행령 제39조 체계에서 박물관·미술관은 사회복지법인이나 학교, 의료법인처럼 시행령에서 기부금에 관한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목록에서 빠져있다. 그 결과 박물관을 운영하는 주체가 재단법인 등 비영리법인이어야 함은 물론, 그 법인이 기획재정부(구 재정경제부)장관으로부터 개별적으로 지정·고시를 받아야만 비로소 기부금 손금산입과 필요경비 인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즉 '박미법'상 ‘등록’이 곧 기부금에 관한 세제 혜택이 가능했던 시절이 지나고, 그 위에 ‘공익법인 지정’이라는 또 하나의 허들이 생긴 것이다. '상증세법' 제74조의 소장품 상속세 징수유예 역시 같다. 결국 기부금이든 상속세든, 사립박물관을 둘러싼 세법 전반이 지난 30여 년간 ‘등록’보다 ‘법인격’을 더 무겁게 요구하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움직여왔다. 그런데 일이 그리고 '박미법'이 이렇게 껍데기로 전락하는 동안 법의 소관 부처인 문화부는 과연 무슨 일을 어떻게 해왔는지 모르겠다.

이런 변화가 남긴 결과는 명확하다. 등록만 마치고 개인이나 개인사업자 형태로 운영되는 사립박물관은, 아무리 법에서 강제하는 하루 4시간 이상, 연간 90일 이상 개방하고, 국보, 보물 등은 물론 학술적 가치가 높은 자료를 소장하며, 법에서 요구하는 수장고, 교육실 등 시설을 갖추었다 해도 후원자의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을 부여할 길은 없고, 상속 단계에서도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 반면 재단법인으로 전환하고 기획재정부의 지정·고시까지 받아낸 소수의 박물관만이 이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기부 문화를 통해 민간 문화기반시설을 지탱하려던 제도의 취지는 유지되었으되, 그 수혜의 문턱은 ‘등록’에서 ‘지정’으로, ‘자동’에서 ‘심사’로, ‘넓은 길’에서 ‘좁은 길’로 바뀌어 온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훨씬 더 근본적인 역설이 드러난다. 이미 공익법인 자격을 갖춘 이가 박물관을 세우려 한다면, 굳이 '박미법'에 따라 번거롭게 등록해서 실익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상증세법' 제16조는 공익법인 등에 출연한 재산에 대해 상속세 과세가액 자체를 불산입한다. 이는 그 재산이 소장품이든 건물이든 토지든 가리지 않으며, '박미법'상 등록 여부와도 무관하다. 공익법인이라는 지위 하나만 확보하면, 제74조의 소장품 징수유예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혜택, 즉 동산과 부동산을 아우르는 완전한 과세제외의 혜택을 이미 받을 수 있다.

반면 제74조가 주는 혜택은 이보다 좁다. '박미법'에 따라 등록된 소장품에 한정되고, 부동산은 애초에 대상조차 아니며, 유예이지 면제도 아니다. 게다가 등록에 뒤따르는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전문 인력을 상시 고용해야 하고, 시설 기준을 유지해야 하며, 정기 평가와 재등록 절차를 거쳐야 하고, 소장품 변동 사항을 매년 신고해야 한다. 이 모든 의무를 감당하고도 얻는 세제상의 이득이, 애초에 공익법인 지위만으로 이미 확보한 혜택보다 오히려 적다면, 공익법인의 경우 굳이 '박미법'에 의한 등록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결국 지금의 제도는 기이한 유인구조일 뿐이다. 세제 혜택을 좇는 공익법인이라면 차라리 '박미법'상 정식 등록을 하지 않은 채 박물관 자료만 보유하는 편이 행정적으로 더 가볍고 세제상으로도 불리하지 않다. 국가가 정작 장려해야 할 것은 박물관으로서 전문성과 공개성, 즉 학예인력을 갖추고 시설 기준을 지키며 대중에게 상시 개방하는 정식 등록 박물관인데, 세법은 그 등록에 아무런 추가 혜택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등록하지 않으면 법적 의무없이, 세제 혜택을 받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게끔 만들어 놓았다. 등록이라는 공적 책무의 이행이 세제상으로는 보상은커녕 순수한 비용과 의무로만 남는다면, 이는 '박미법'의 등록 제도 자체의 의미를 세법이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지금의 세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집단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등록의 의무를 지워왔다. 법인화할 여력이 없는 개인 설립자에게는 등록이 아무런 보호도 없는 무거운 책무로만 남았고, 이미 법인화를 마친 공익 법인에게는 등록이 굳이 감수할 필요 없는 불필요한 부담으로 전락했다. 어느 쪽에서 보아도 '박미법' 등록은 매력이 없다. 사립박물관 세제를 논할 때, 개인 설립자의 법인화 부담 못지않게 이 지점, 즉 등록이라는 제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는 문턱이 되고 그것이 필요 없는 이에게는 군더더기가 되어버린 구조 역시 함께 손질해야 할 대목이다.
 
외국은 어떻게 대를 이어 갈까
해외 문화 선진국들은 이런 문제를 이미 반세기 가까이 전부터 제도적으로 풀어왔다. 그 핵심 원칙은 공통적이다. 문화시설을 지키고 유지하는 세금 부담은, 그 시설이 계속 대중에게 열려 있고 본래 목적대로 쓰이는 한 유예하거나 면제하며, 그 대가로 소유자에게 공개·관리 의무를 지운다는 것이다.

영국은 1975년부터 ‘조건부 면제(Conditional Exemption)’ 제도를 운영해 왔다. 국가적, 역사적 또는 예술적 중요성을 지닌 품목이나 재산에 대한 상속세(IHT) 및 양도소득세(CGT) 납부를 연기하는 제도로, 그것을 담는 건물과 토지까지 하나의 ‘묶음’으로 상속세 유예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핵심이다. 소유자가 자산을 영국 내에 두고 상태를 유지·관리하며 대중에게 일반 공개하는 한 상속세는 유예되고, 세대가 바뀌어도 새 소유자가 국세청과 다시 약정을 맺으면 유예가 계속 이어진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미술품 물납 제도Dation의 가장 대표적이며 성공적인 결실로 꼽히는 파리 피카소미술관
프랑스가 자랑하는 미술품 물납 제도(Dation)의 가장 대표적이며 성공적인 결실로 꼽히는 파리 피카소미술관.

지금까지 약 300건의 사유지·저택·컬렉션이 이 제도로 보존되고 있다. 나아가 영국은 1909년 예산안에서 유래한 ‘물납제(Acceptance in Lieu, AIL)’를 병행해, 국가적으로 중요한 미술품을 국가에 인도하는 대가로 상속세 채무를 시가보다 다소 높은 가치로 탕감받도록 하며, 국가적 가치뿐 아니라 지역적 가치가 탁월한 작품까지 물납 대상에 포함했다. 

프랑스는 1968년 문화부장관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1901~1976)의 주도로 ‘대물 변제(Dation en Paiement)’ 제도를 도입했다. 상속세·증여세·부유세를 현금 대신 예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 서적, 유물, 경우에 따라 부동산으로 대납할 수 있게 했다. 초기에는 고인이 된 작가의 작품만 인정했으나, 2006년부터는 생존 작가의 작품도 제한적으로 포함시켰다.

여기에 2003년 메세나법, 속칭 아야공 법(Aillagon Law)을 제정해 기부금의 66%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법안을, 2012년에는 문화재·미술품 기증을 기부금으로 간주해 세액공제를 해주는 방식으로 물납제를 보완했다. 피카소(1881~1973), 마티스(1869~1954), 샤갈(1887~1985)의 유족이, 세잔(1839~1906)은 컬렉터가 이 제도를 활용해 세금으로 납부했고, 그 결과 파리 피카소미술관이 탄생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례다. 특히 프랑스는 별도로 국가지정 역사기념물로 등록되고 대중에 공개되는 건물에는 상속세를 정액 감면하는 규정도 갖추고 있어, 프랑스는 동산과 부동산 모두에 다층적 장치를 두고 있는 셈이다. 
 
덕산세계인형박물관 전경
덕산세계인형박물관 전경

미국은 접근 자체가 다르다. 비영리법인(501(c)(3))에 귀속되는 재산에는 무제한 상속세 공제가 적용되는데, 미국의 개인 미술관들은 애초에 설립 단계부터 비영리법인 형태를 취하는 것이 관행이자 표준이다. 건물과 컬렉션이 처음부터 설립자 개인이 아닌 법인 명의로 존재하기 때문에, 설립자가 사망해도 그 재산은 개인의 상속재산에 아예 포함되지 않는다. 문제가 상속 시점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휘트니미술관 수입의 99%, 보스턴미술관의 78%, MoMA의 71%가 기부와 기증이 차지하는 사실은, 이러한 기부 유도형 세제와 두터운 비영리법인 지원 인프라가 오랜 기간 축적된 결과임을 보여준다.

일본은 한국과 유사하게 국채·공채·증권·부동산 등을 물납 대상으로 인정하는 일반 물납제와 함께 별도로 ‘등록미술품 제도’를 운영한다. 문화재급 가치가 있는 미술품을 국가에 등록시켜 공개 전시 등 국민 향유를 촉진하는 이 제도의 특징은 절차의 순서에 있다. 유럽식이 ‘선물납 후공개’인 것과 달리, 일본은 먼저 등록미술품으로 지정해 공개 요건을 검증한 뒤 이를 상속세 물납에 활용하는 ‘선공개 후물납’ 방식이 특징이다.
 
‘진흥’과 ‘폐관’, 두 부처 사이에 낀 사립박물관의 딜레마
법 제도의 단절과 이중잣대는 결국 '사립박물관의 소멸'이라는 국가적 재앙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거액의 상속세를 감당 못 한 상속인들이 박물관을 폐관하면, 평생 모아 온 소장 유물들은 한순간에 경매를 통해 흩어지거나 해외로 유출될 것이다. 국가가 장려한 문화 인프라를, 나라의 세법이 스스로 파괴하는 모순이자 비극이다. 사립박물관을 상속인에게 물려주는 것은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문화유산 보존 책임의 대물림’이다. 개인이 공익을 위해 평생 일궈온 문화의 보루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조세특례제한법상 가업상속공제 대상 업종에 ‘등록 박물관’을 즉각 포함시키는 세법 개정도 시급하다. 정부는 더 이상 사립박물관을 징세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진정한 문화 선진국에 걸맞은 세법상의 보호막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의 제도는 해외 여러 나라가 공유하는 문화유산의 계승과 보존, 전시와 교육을 위한 원칙의 절반만 인정하고 있다. 소장품에는 상속세를 유예해 주면서, 건물과 토지에는 아무런 장치가 없고, 공익법인 설립이라는 단 하나의 우회로만 열려 있고, 그 우회로마저 사실상 대형 기관이나 재벌기업에만 열려 있다. 이는 돈 많은 이들만 사립박물관을 설립 운영하라는 지시와 다름없다.

따라서 첫째, '상증세법' 제74조의 적용 범위를 공익법인이 설립했건 개인명의의 박물관이던간에 '박미법'에 근거해 등록된 모든 박물관은 상속 이후에도 계속해서 박물관을 유지할 경우, 소장품은 물론 건물·토지 등 박물관 운영에 필요한 모든 재산에 대해 상속세 유예를 '박미법'에 명기 확대해야 한다.

영국의 조건부 면제 모델처럼, 등록된 박물관·미술관이 전시실·수장고 등 고유목적사업에 직접 사용하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등록 상태 유지와 일정 수준의 대중 관람 제공을 조건으로 상속세 징수를 유예하고, 매각하거나 등록이 취소되는 시점에만 과세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다. 

둘째, 공익법인 설립 요건을 규모에 따라 차등화해야 한다. 개인이 세운 소규모 사립박물관·미술관을 위한 간이 공익법인 제도나, 이사 정원 제한을 지역 소형 시설에 한 해 완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지금의 제도는 사실상 대기업 문화재단만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어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셋째, 지자체의 등록·관리 시스템과 세무서의 신고 체계를 일원화해, 정상 운영 중인 사립박물관·미술관에 대해서는 매년 별도 세무서 신고 의무를 면제하고 지자체의 정기 점검 데이터 공유만으로 유예 자격을 갱신하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박물관의 설립목적에 의거 공익적으로 보존되는 소장품에 대해서는 금융적 납세 담보 요구를 전면 폐지하거나, 소장품 자체의 문화적 가치를 담보로 인정하는 전향적 개선이 시급하다.

넷째, 물납제도와 사립미술관 존속 지원을 연계해야 한다. 물납으로 국가에 귀속된 작품이라도 원래의 소장하고 있던 사립박물관에 장기 위탁 또는 순회전시 형태로 소유는 국가가 하더라도 관리와 조사 연구는 원소장처인 박물관이 할 수 있는 제도를 병행한다면, 국가는 세수를 확보하고 사립미술관은 전시 기능을 유지하는 선에서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물납특례의 이중 요건을 완화하고 심의 기간을 상속세 신고 기한과 연동해 단축하며, 승인 대상 장르도 문화재 미술품이 아닌 사립박물관의 역사, 고고, 자연사, 인류학, 생활사 유물 등은 물론 도자, 섬유, 시계, 카메라, 농기구, 인형, 디자인, 포스터, 산업용기계, 광산용 장비 등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박미법' 제23조와 제19조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이다. '박미법' 23조 제2항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박물관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국유재산법·지방재정법·물품관리법에 따라 무상이나 유상으로 양여·대여하거나 보관을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같은 조 제4항은 그 보존·처리·관리에 필요한 경비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제19조 제1항·제2항은 지방자치단체 소유의 유휴 공간을 박물관으로 용도 변경해 활용하거나, 박물관을 설립·운영하려는 자에게 무상으로 대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들을 실제 상속세 상계 절차와 연계한다면, 상속세에 해당하는 만큼의 소장 자료나 부동산의 소유권을 국가나 지자체로 이전하되 그 관리는 기존 운영자에게 위탁하는 방식으로, 공간과 소장품의 연속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국가가 세수 명분을 확보하는 절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여섯째, 상속세 연부연납 기간을 문화시설에 한 해 확대하고 담보 제공 요건을 완화해, 유족이 급하게 자산을 처분하지 않고도 세금을 분할납부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세청이 함께 참여하는 합동심의기구 같은 것을 신설해 개별 사립미술관의 존속 가능성과 공익적 가치를 사안별로 심사하고 유예·감면 여부를 유연하게 판단하는 체계도 갖출 필요가 있다.
 
강탈? 국가에 빼앗기는 사립박물관
문화유산의 보존과 조사연구, 전시는 본래 국가의 책무다. 그러나 그 책무의 상당 부분을 재벌이 아닌 평범한 개인들이 30여 년간 자발적으로 짊어져 왔고, 그 결과 한국은 사립박물관 수에서 세계 최상위권에 오를 만큼, 민간에서 문화기반을 축적하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정작 시민의 문화접근성은 여전히 선진 도시에 못 미치고, 늘어나는 문화적 수요를 감당할 그릇은 여전히 부족하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이미 존재하는 민간의 자산조차 세법 한 조문 때문에 다음 세대로 넘어가지 못하고 흩어지게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명백한 직무 유기다. 

‘등록’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나누어 지웠다면, ‘보호’라는 이름으로 그 책임에 상응하는 보상 또한 함께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이미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이 반세기 가까이 운영해 온 상식적인 제도, 즉 문화시설을 유지하는 대가로 세금을 미루거나 감면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서두르지 않는다면, 한 세대가 쌓아 올린 사립 문화 기반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지 못하고 조용히 해체되어 사라지는 일은 앞으로 더 자주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결론은 하나다. 상속세 징수유예도, 기부금 손비 혜택도, 결국 그 박물관이 법인화되어 있는지, 그중에서도 기획재정부의 개별 지정·고시까지 받은 공익법인인지에 달려 있다. 등록만으로는 아무런 세제상 지위를 얻지 못하는 이 구조를 뒤집어 보면, 국가는 사실상 ‘법인화’를 통해 재산을 내놓을 생각이 없다면 애초에 박물관 등록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등록을 통해 전문 인력과 시설 기준을 갖추고 일정 기간 개방이라는 무거운 공적 책무를 지우면서, 그 책무를 다한 대가로 돌아오는 세제상의 보호는 법인화라는 별도의 관문을 넘어야만 주어진다. 책무는 등록에서, 보상은 법인화에서 나오는 이 어긋난 구조 속에서, 결국 개인 명의로 소박하게 운영해 온 사립박물관은 등록이라는 의무만 지고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현재 휴관 중인 제주전쟁역사평화박물관 개인이 전 재산을 털어 개관한 일제만행을 고발하는 등록문화재를 보유한  아픈 역사의 현장 수년간 극심한 경영난과 정부·지자체와의 매입 협상 결렬로 현재 장기휴관중이다
현재 휴관 중인 제주전쟁역사평화박물관, 개인이 전 재산을 털어 개관한 일제만행을 고발하는 등록문화재를 보유한 아픈 역사의 현장, 수년간 극심한 경영난과 정부·지자체와의 매입 협상 결렬로 현재 장기휴관중이다.

투명성과 세금의 형평성이라는 명분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 개인 소유 자산에 무조건적인 세제 혜택을 준다면 상속세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고, 사유재산이 공적 감독 없이 혜택만 누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는 그 자체로 타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명분이 실현되는 방식이 오로지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는 데 있다.

법인화에 필요한 이사회 구성, 출연재산의 사후관리, 운용 소득의 의무 지출은 상당한 행정력과 법률 비용을 요구하는데, 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대다수의 영세한 문화를 사랑하고, 우리 예술을 수집해 보존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았던 개인과 유족은 이런 관문 앞에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결국 남는 선택지는 셋 중 하나다. 무리해서 사는 집이라도 팔아 상속세를 완납하거나, 소장품과 박물관을 사용하던 건물과 토지를 팔아 세금을 마련하거나, 그도 아니면 국가에 물납하거나 출연하는 것이다. 마지막 방법은 세금을 내지 못해 국가에 몰수당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어느 쪽을 택하든 종착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등록된 사립박물관은 시간이 흐를수록 개인의 손을 떠나 국가나 공공의 소유로 흡수될 수밖에 없는 구조 위에 놓여 있다. 바로 '박미법'에 의거 '등록된 사립박물관은 종국에는 국가의 소유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할 질문이 있다. 만약 세금을 못 내서 몰수를 당하거나 물납 또는 기증을 통해 국가에 귀속된 문화예술, 박물관 적 유산을 국가는 그럼 실제로 제대로 관리하고 운영할 역량이 있는가이다. 이는 결코 가벼운 우려나, 그냥하는 질문이 아니다. 사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아마도 기획재정부는 상속세를 내지 못해 몰수나 압류된 사립박물관 소장품을 공매 등을 통해 현금화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렵게 모은 모든 박물관 자료가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이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규모조차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 견주어 크게 못 미치는 형편이지만, 국공립 박물관들 역시 수장고 포화와 전문 학예인력 부족이라는 만성적 난제를 안고 있어 국가기관에 이관도 거의 불가능하다. 
 
독일 뮌헨에 있는 18C및 19C유럽 미술 중심의 세계적인 미술관 신회화관Neue Pinakothek 유럽은 시대구분에 따라 미술관을 설립 운영한다
독일 뮌헨에 있는 18C및 19C유럽 미술 중심의 세계적인 미술관, 신회화관(Neue Pinakothek), 유럽은 시대구분에 따라 미술관을 설립 운영한다.

게다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80년이 다 되어가도록 한국근대사를 다룰 ‘국립20C미술관’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정작 국가 스스로 미술관을 건립하고 소장품을 제대로 축적·관리할 여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개인이 평생을 바쳐 수집하고 지역사회와 밀착해 운영해 온 소규모 사립박물관의 자료와 부지와 건물을 국가가 소유한다고 한들 그것을 원래의 맥락과 정체성을 살려 운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설립자가 평생 쌓아 올린 자료와 주제와 지역성, 전문성은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의 일반적 관리 체계 속으로 편입되는 순간 희석되거나 방치되거나 사장될 될 위험이 크다. 실제로 국가가 소장하고 있는 여러 가지 종류의 자료들이 활용되지 못한 채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는 지적 역시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결국 지금의 제도는 두 겹의 모순을 안고 있다. 하나는 개인에게만 법인화의 부담을 지우고 그 실패의 대가로 자산의 국유화를 사실상 강제한다는 모순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국유화된 자산을 받아 안을 국가의 관리 역량이 애초에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모순이다. 세금의 형평성을 지키려다 문화유산의 다양성과 생명력을 잃고, 투명성을 확보하려다 정작 그것을 넘겨받을 곳의 준비 부족을 방치하는 것이라면, 이는 제도의 명분과 실제 결과가 정면으로 어긋나는 셈이다.

결국 문제는 “나라를 믿고 법에 따라 박물관을 등록해 공개했더니 결국 국가가 합법적으로 빼앗아 가더라”라는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개인에게 법인화만을 강요하는 일방적 구조가 아니라, 국가가 실제로 흡수할 역량을 갖추었는지를 함께 점검하며 설계하는 제도, 즉 개인의 헌신과 국가의 책임이 함께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의 근본적인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반도체 붐에 세수가 넘쳐나 '미래대응기금'을 만든다고 하면서 사립박물관의 미래에는 빗장을 걸어 잠그는 이유를 모르겠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때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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