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마을 正舌] 봉이 김선달식 국립현대미술관 지방분관 수요조사? 

  • 기대만 부풀린, 순서가 뒤바뀐 행정

  • 첩첩산중인 법적 관문

  • 외국의 분관 정책 

  • 지역거점미술관, 21세기 박물관정책 설계의 출발점

  • '공 법인화'라는 선립후행(先立後行)부터

창원시립미술관 조감도 이미 경남도립미술관과 성산아트홀7개전시실 총 620여평을 전시실로 확보하고있다 사진창원시립미술관 누리집
창원시립미술관 조감도, 이미 경남도립미술관과 성산아트홀(7개전시실, 총 620여평)을 전시실로 확보하고있다. [사진=창원시립미술관 누리집]
 
기대만 부풀린, 순서가 뒤바뀐 행정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유치 수요조사를 실시했다. 이를 위해 '지역거점 미술관 건립 타당성 연구 및 중장기 계획 수립' 용역을 발주하고, 지방자치단체별로 신청을 받았다. 그 결과 수도권의 고양·인천 송도, 영남권의 대구·창원·진주·밀양, 호남권은 광주·여수, 강원권은 원주가 각 권역의 문화 거점을 자처하며 유치 의사를 밝히거나 신청서를 제출했다.

문화부는 이들 도시의 신청을 토대로 정부의 ‘5극 3특 체제’ 즉 국토균형발전 정책에 맞춰 권역별 우선순위를 매겨, 내년 상반기 중 1단계 건립지를 포함한 중장기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한다. 이런 방향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국가적 시각문화 자산이 서울과 과천에 편중된 현실, 그리고 2021년 이건희 컬렉션 기증 이후 폭발한 지역 문화 격차에 대한 자각을 감안하면, 중앙정부가 지방의 목소리에 응답한 것 자체는 환영할 일이다. 
 
 5극3특 국가균형성장 추진전략설계도  자료EO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
5극3특 국가균형성장 추진전략설계도, [자료=EO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

문제는 순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방에 분관을 설치하는 것을 가로막아 온 법적·제도적 장벽을 먼저 걷어내지 않은 채, 지자체의 유치 열기부터 확인하는 절차를 앞세웠다는 점은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분관 설치를 위한 법적 정비가 뒤따르지 않는 수요조사는 지자체 간 소모적 경쟁만 부추기고,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기대만 지역에 심어주어 정책 신뢰도 자체를 갉아먹을 위험이 크다. 쌀도 없는 부엌에 밥 짓겠다고 먼저 들어가는 격이다.

이런 우려는 처음이 아니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을 계기로 창원·대구·광주·진주 등 거의 모든 지자체가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어느 지방자치단체도 구체적 실현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는 기증자의 의사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지방의 공립미술관에 분산 기증된 작품 중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기증 작품만 따로 떼어내, 이건희 기증관을 설립한다는, 학문적, 실제적 가능성이 없는 계획을 수립 공표한 섣부른 결정이 낳은 문화부의 실책이다.
 
이건희 기증관에서 송현동 국립문화시설로 변경된 국제설계공모 당선작 시간의 회복 사진문화부
이건희 기증관에서 송현동 국립문화시설로 변경된 국제설계공모 당선작 '시간의 회복'. [사진=문화부]

그리고 정부산하의 1차 소속기관인 국립문화예술기관이 분관 또는 지방관을 설립 운영하려면 법적 또는 대통령령의 직제를 통해 2차 소속기관을 둘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10조'이란 법률과 대통령령으로 직제 제35조를 통해 지방박물관 설치와 13개의 지역과 2026년 개관 예정인 충주관을 포함 14개관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이 중의 법적 근거를 통해 분관, 지방관을 건립 운영하고 있다.

또 국립중앙도서관은 도서관법 제19조 2항에 의거 국립세종도서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을 분관 즉 2차 소속기관으로 운영 중이다. 하지만 대통령령인 직제를 통해 직접 설치를 규정할 경우도 2차 소속기관 설치가 가능하다. 국립국악원은 직제 제61조의2를 통해 지방국악원 3곳을 직접 규정해 분관을 설립 운영 중이다. 국립고궁박물관도 대통령령인 직제에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과,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의 7개 지방문화유산원과 국가유산보존과학센터를 2차 소속기관으로 둘 수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에 의해서 설립 운영되고 있다.

물론 국립현대미술관도 2차 소속기관인 분관을 둘 수 있는 조항이 박물관미술관진흥법에 존재하지만, 실제로 분관 설치를 위해서는 별도의 개별 법정비나 법 개정이 필요하며 특히 책임운영기관이란 한계를 벗어나야 가능하다. 따라서 국립현대미술관 지방 분관 설립의 반복된 좌절의 원인은 정치적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분관을 설립할 법적 근거 자체가 없는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법적 근거 없이 지역거점이란 명분을 들어 지방자치단체에 수요조사를 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번 수요 조사가 같은 결말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분관 설립이 기능하도록 법률적, 행정적 정비를 통해 제도적인 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이야기가 나온 지 30여 년이 지나도록 분관 설립의 결림돌을 방치했던 문화부가 이제 와 새삼 분관 건립, 지방 거점미술관 설립을 위한 수요 조사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믿지 못하는 것은 법령도 마련하지 않은 채 지금껏 업무를 해태 해 왔기 때문이다. 
 
국가유산청 고궁박물관의 2차소속기관으로 설립2023년 개관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국가유산청 고궁박물관의 2차소속기관으로 설립2023년 개관한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첩첩산중인 법적 관문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유치를 향한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쟁이 뜨겁다. 이에 문화부가 새삼스럽게 '지역거점미술관 건립'이라는 사업을 통해 지방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건립을 위한 수요조사를 했다. 하지만 정작 이 논의의 출발점이어야 왜 그동안 분관 건립이 불가했는지, 또 앞으로 분관 건립을 위해 어떤 법적·행정적 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한 제대로 된 검토는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중앙부처인 문화부는 물론 부지를 제공하고,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지자체들의 의지만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우선 법적 근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10조 4항에 의하면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지방 박물관 및 지방 미술관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은 현재 문화부 소속의 책임운영기관이다. 그리고 책임운영기관은 산하에 다시 소속기관, 이른바 2차 소속기관을 설치하는 것을 규정한 법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라는 명칭 자체가 현행 정부조직법과 책임운영기관법 체계 안에서는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인 것이다. 즉 책임운영기관법은 책임운영기관이 하위에 별도의 분관을 설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두지 않았다. 따라서 국립현대미술관이 책임운영기관인 이상, 그 틀 안에서 분관을 신설한다는 것 자체가 법을 어기는 일이다. 
 
2027년 하반기 개관을 목표로 하는 원주시립미술관 조감도 원주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유치에도 도전했다
2027년 하반기 개관을 목표로 하는 원주시립미술관 조감도. 원주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유치에도 도전했다.

그리고 설사 분관 설치를 법적으로 우회해서 강행한다 해도 책임운영기관으로서 성격조차 정할 수가 없다. 현행 국립현대미술관의 지배구조인 책임운영기관으로 할 경우 지역 분관을 조사·연구 기능을 갖춘 ‘학술기관형’으로 할지, 전시·향유 중심의 ‘문화예술 보급 및 전시형’으로 할지에 따라 책임운영기관 유형 자체가 달라진다. 물론 미술관은 법적으로 ‘학문’적인 기관이 아니라 지역 분관을 학술기관형으로 설계할 법적 근거가 없다. 

아무튼 분관을 소속 책임운영기관의 형태도 문제지만 별도의 ‘특별법인’으로 할 수도 있다. 이런 기관의 성격은 단순한 세부 사항이 아니라 향후 인사, 예산, 조직 운영 전반을 좌우할 핵심 쟁점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결국 이런 문제 때문에 ‘지배구조'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분관을 특별법인으로 한다면 본관은 책임운영기관, 분관은 특별법인이라는 한 기관에 서로 다른 법적 지위가 공존하게 된다. 지휘·감독 체계와 인사·예산 편성 방식이 근본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하나의 기관아래 이질적인 두 법적 성격의 지배구조가 뒤섞이는 모순이 발생한다.
 
추진 주체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지방 문화예술기관 설립은 본래 문화기반과의 소관 업무이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국립현대미술관을 관할한다는 이유로 시각예술디자인과가 분관 건립 업무를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국립중앙박물관 지방관 건립 등으로 축적된 문화기반과의 경험과 노하우가 반영되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긴다.

특히 지방 분관이 미술박물관을 지향한다면 문화기반과가, 소장품없는 전시관이나 ICA같은 기관을 표방한다면 시각예술디자인의 업무가 맞다. 그러나 시각예술디자인과가 중심이 되어 추진할 경우 지역이 유치하려는 미술관은 소장품을 갖춘 ‘미술박물관’인데 반해, 분관은 소장품 없이 전시만 하는 ‘전시관’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단체는 국립미술관 분관을 유치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쿤스트할레 성격의 전시장을 떠안게 된다면, 이는 중앙정부가 지방을 기만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사업의 명칭이 ‘지역거점 미술관 건립’이라면 문화기반과가 주관하는 것이 옳다. 업무 소관과 추진 주체의 불일치는 정책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근본에서부터 흔든다.
 
2012년 청주시가 건물을 국가에 무상 양여해 건립된 최초의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인 청주관 사진MMCA누리집
2012년 청주시가 건물을 국가에 무상 양여해 건립된 최초의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인 청주관 [사진=MMCA누리집]

마지막으로 타 책임운영기관과의 형평성 문제도 남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다른 책임운영기관들 역시 유사한 분관 건립 수요를 안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만 별도의 법적·조직적 해법을 마련한다면 책임운영기관 제도 전반의 일관성이 무너질 우려가 크다.

이상의 여러 가지 문제는 각기 별개의 사안이 아니다. 법적 근거의 부재가 제도적 불가능을 낳고, 제도적 불가능은 성격 미정으로 이어지며, 성격 미정은 지배구조의 충돌을 낳고, 지배구조의 충돌은 추진 주체의 부적합성과 타기관과의 형평성 문제로 확산하는 연쇄적인, 물고 물리는 구조이다. 부지와 예산, 지역 수요라는 실무적 조건을 아무리 갖춘들 이 근본적인 법·제도 설계가 선행되지 않는 한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은 조직법상 존립 자체가 불가하다.

그럼에도 문화부는 이런 선결과제에 대한 해결 없이 지자체 수요 조사부터 시작했다. 이는 순서가 뒤바뀐 행정으로 '쌀도 없이 밥 짓겠다고 부엌에 들어간 꼴'이다. 근본적인 법적 근거마련과 지배구조에 대한 결론을 유보한 채 진행한 유치 경쟁은, 결국 지방자치단체 간 소모적 경쟁만 부추기고 실현 불가능한 기대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분관 유치 청사진이 아니라, 이 문제를 정면으로 짚어내는 냉정한 법과 제도의 마련이다. 

그리고 설사 이런 걸림돌이 모두 해소된다 해도 곧바로 분관이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10조 제4항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지방 미술관을 둘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 조직 신설에는 직제 개편, 정원 확보, 예산 반영이라는 세 단계가 더 있고, 이는 행정안전부의 조직 심사와 기획재정부의 예산 협의를 동시에 거쳐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의 수요 조사와 타당성 연구 용역이 이런 관문을 통과할 조직법적 기반을 함께 마련하지 않는다면, 1단계 건립지 발표가 나오더라도 실행 단계에서 다시 좌초할 가능성을 배 제할 수 없다.
 
외국의 분관 정책 
외국의 경우 사례를 찾아보면 ‘국립미술관 지방분관’이라는 발상 자체가 보편적이지는 않다. 사실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의 14개 지방관체제가 좀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영국의 테이트는 하나의 법인이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테이트 모던과 함께 리버풀·세인트아이브스의 지역관까지 통합 운영하는 단일 법인·다지역 통합형 모델이다. 조직을 새로 신설하지 않고 하나의 거버넌스 아래 지역 분관을 늘려왔다.
 
영국의 미술만을 집중해서 다루는 테이트 브리튼 사진위키피디아
영국의 미술만을 집중해서 다루는 테이트 브리튼 [사진=위키피디아]

프랑스의 루브르는 2012년 옛 탄광 지대인 랑스에 분관을 열어 국가 균형발전 정책과 연계했고, 퐁피두센터는 메츠·말라가에 이어 2026년 서울 분관까지 여는 브랜드 라이선스형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두 나라는 모두 지자체가 부지·건립비의 상당 부분을 분담하는 재정 협약 구조를 공유한다. 

반면 연방제 국가인 독일은 문화정책을 각 주가 행사하는 다극 체제이기 때문에, 한국처럼 ‘국립미술관 지방분관’ 같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베를린 국립미술관 5개 관은 모두 베를린 시내에 있으며, 프랑크푸르트 슈타델 미술관이나 뮌헨의 회화관은 각각 주와 시 정부 소관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좁은 국토와 원활한 도시 간 이동을 이유로 분관 없이 단일 거점을 유지하며 순회전과 대여로 지역 접근성을 풀어 왔고, 호주는 연방 국립미술관과 각 주의 독자적 주립미술관이 애초부터 소속·예산 계통이 다른 별개 기관으로 존재해 ‘국립관의 지방분관’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메츠Metz분관 사진위키미디아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메츠(Metz)분관 [사진=위키미디아]

체코의 프라하국립미술관은 법률에 근거한 단일 기관이면서, 고대에서 바로크 이전 유럽 미술을 다루는 슈테른베르크 궁, 자국의 바로크미술을 조사연구하는 슈바르첸베르크 궁, 체코 중세미술을 학술적으로 다루는 성 아녜스 수도원, 그리고 19C~21C 미술을 다루는 벨레트르주니 궁 등 프라하 시내 여러 역사적 건물을 단일 법인이 시대·장르별로 별관을 통할한다.

폴란드의 크라쿠프국립미술관도 체코와 마찬가지로 시대와 장르에 따라 분관을 운영하는 우리가 눈여겨볼 만한 절충형이다. 두 미술관 모두 단일 법인이 관장 산하에 회화부·조각부 등 부서를 두고, 시대와 장르별로 나뉜 여러 별관을 학예연구실의 각각의 학술연구부서 전시 공간처럼 운영한다. 분관마다 별도의 기관장·예산권을 두지 않고도 다변화된 전시 거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책임운영기관 편제의 벽에 막힌 한국이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결국 어느 나라도 반드시 분관을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지리적·행정적 조건에 따라 전혀 다른 해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들 사례는 보여준다.
 
 2009년 슈타델 미술관Städel Museum 증개축을 위한 모형 사진위키피디아
2009년 슈타델 미술관 증개축을 위한 모형 [사진=위키피디아]
 
지역거점미술관, 21세기 박물관정책 설계의 출발점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이 가속화하고 행정 통합 논의가 본격화하는 시대에, 건물과 상주 인력을 전제로 한 고비용·고정형 분관 모델을 모든 지역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전략인지도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문화부가 주도하고 라 빌레트가 조율하는 혁신적인 디지털 문화 거점 조성 프로젝트로 그랑팔레·루브르·베르사유궁·오르세미술관·퐁피두센터 등 12개 국립문화시설이 참여하는 ‘미크로-폴리’ 사업을 통해, 물리적 분관 없이 디지털 위성관 네트워크로 소도시의 문화 접근성을 넓혀 왔다. 국가가 별도의 컬렉션 기금을 조성해 작품을 매입한 뒤 전국 미술관에 대여·순환시키는 제도 역시, 건물 신설 없이 지역이 상시적으로 양질의 컬렉션에 접근하게 하는 대안으로 검토할 만하다. 이런 사례로는 프랑스의 국립현대미술기금과 이를 관리하는 국립 시각예술 센터, 영국의 ‘박물관 없는 컬렉션’을 지향하는 ‘아트 카운실 컬렉션’, 호주의 ‘내셔널 컬렉션 공유 사업’이 있다.
 
흐라트차니 광장에서 본 체코의 바로크미술을 조사연구하는 슈바르첸베르크 궁전의 모습 사진위키미디아
흐라트차니 광장에서 본 체코의 바로크미술을 조사연구하는 슈바르첸베르크 궁전의 모습 [사진=위키미디아]
 
국립현대미술관도 2020년부터 지역미술관 협력망 사업을 운영하며 소장품 순회전과 지역미술관 지원사업을 병행해 왔고, 2022년에는 소장품관리시스템 보급과 아카이브 구축 지원, 추천작가 및 전문가 매칭 지원으로 사업을 다각화했으며, 2026년부터는 전시 순회부터 국제작가 커미션 신작, 영화·다원예술, 교육, 미술품표준관리시스템 지원에 이르는 ‘MMCA 지역동행’ 사업으로 확대했다.

이미 작동하는 인프라를 확장하는 방식이므로 직제·정원·예산이라는 삼중 관문을 새로 통과해야 하는 분관과 달리 법·행정적 장벽이 낮고, 해마다 지역별 프로그램 배치를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어 대응이 기민하다는 강점이 있다. 다만 한계도 뚜렷하다. 대부분의 협력망 사업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은 더 크고 전문화된 기관으로서 다른 기관을 도와주는 방식이었고, 소장품 대여는 제한적이며, 자체 기획한 전시를 지역에 일방적으로 순회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체코의 프라하국립미술관 산하의 19C21C 미술을 다루는 벨레트르주니 궁 사진위키미디아
체코의 프라하국립미술관 산하의 19C~21C 미술을 다루는 벨레트르주니 궁 [사진=위키미디아]

그럼에도 협업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기능이 분명 있다. 순회전은 두어 달이면 끝나지만, 지역민들에게는 '언제 가도 국립 수준의 전시를 볼 수 있는 장소'를 원한다는 점에서, 분관만이 이를 충족해 줄 수있다. 서울·과천 중심의 수장고 포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려면 소장품 보존·수장 기능을 지역에 물리적으로 분산할 공간도 필요하고, 예산 편성 여부에 따라 존폐가 좌우되는 협업 사업과 달리 한 번 법률에 의거 설립, 직제화된 분관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지역이 협업보다 분관을 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결국 분관과 협업 중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방식을 단계적으로 결합하는 접근이 현실적일 수도 있다.
 
폴란드 크라쿠프국립미술관 전경 사진위키미디아
폴란드 크라쿠프국립미술관 전경, [사진=위키미디아]

사실 2004년 참여정부의 문화부는 '창의한국-21세기 새로운 문화의 비전'과 하위 세부 이행 계획인 '새로운 한국의 예술정책'을 통해 세웠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전 및 5개 지방 분관 설립 계획은 문화 분권과 통일 시대를 겨냥한 혁신적인 청사진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 도심 이전과 함께 계획된 권역별 분관 구상은 단순한 공간 확장을 넘어 시각예술을 통한 지역 균형발전 의지를 담았었다. 영남권 분관은 근대미술의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과 역량을 결합한 분관을, 호남권 분관은 예향의 전통 남종산수화와 서예 그리고 자연주의적 풍경화를 동시대 미술과 융합, 중부충청권의 경우 국토 중심의 지리적 이점과 직지등 활자에 기초한 판화 및 공예중심의 분관, 국제자유도시 제주에는 국립국제미술관, 경기북부에는 통일시대를 대비해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국립민족미술관을 계획했었다. 예산과 정치적 여건으로 전면 실현되지는 못했으나, 이 구상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다관 체제의 이정표이자 오늘날 문화 균형 발전의 핵심 준거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이전의 계획도  '지역거점미술관 건립'에 참고했으면 한다. 
 
국립20세기미술관송현동부지 단면조닝 다이어그램 사진홍재승
국립20세기미술관(송현동부지) 단면조닝 다이어그램 [사진=홍재승]

물론 광역시도의 현재 건립 운영 중인 미술관을 지역거점관으로 육성하는 방법도 있고, 문화예술계가 염원하는 국립 20세기미술관 건립 그림과 대한민국 발전의 일대 전기가 된 ’88 서울올림픽과 함께 조성된 ‘올림픽조각공원’도 차제에 ‘국립조각미술관’으로 확대 발전시켜,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역량을 오롯이 체육진흥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향후 21세기 한국의 박물관 정책과 시대별 장르별 미술관을 어떻게 추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문화기반시설 조성 및 운영 지원, 시설관리를 임무로 하는 문화기반과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박물관 정책에 관한 큰 그림을 먼저 그린 다음 그 그림에 따라 ‘지역거점’을 논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공 법인화’라는 선립후행(先立後行)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의 지역거점 분관 설립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인 동시에 법적인 제약을 직접적으로 우회할 방법은 특별법에 근거한 ‘공법인화’다. 국가로부터 분리된 별도의 공법인, 이를테면 '국립미술관법인 국립현대미술관(가칭)'으로 지배구조를 바꾸고, 지방 분관을 하나의 법인이 계열사처럼 통합 운영하는 방식이다.
 
서울대학교가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을 통해 국가행정기관에서 분리돼 독립 법인격을 획득한 선례가 이미 있다. 또 국립과학관이나 국립문자박물관등 이미 법인격의 박물관이 존재한다. 따라서 국립현대미술관을 법인화하면 새로운 지방 분관을 세울 때마다 국가공무원 정원과 직제를 새로 따낼 필요 없이 법인 내부에서 인력과 조직을 재배치하면 되므로, 분관 설치의 최대 걸림돌인 ‘책임운영기관의 2차 소속기관 설치 제한’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이는 영국의 ‘비부처공공기관’이나 프랑스의 루브르처럼 문화부 산하의 ‘공공 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와의 재정 협약에 기반한 ‘문화협력공공법인(EPCC)’과 유사한 모델로, 조직심사와 예비타당성조사 같은 관문을 뛰어넘어 지방 분관을 추진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다만 지자체의 운영 참여권 보장, 지방분관 학예인력의 정규직화, 국유재산 관리 체계의 사전 정비라는 보완 장치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송현동 부지를 활용한 국립20세기미술관의 부지검토 및 건축적 제안 사진홍재승
송현동 부지를 활용한 국립20세기미술관의 부지검토 및 건축적 제안 [사진=홍재승]

이와 함께 제도 정비도 미룰 수 없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2조의 미술관 정의에 ’학문'을 추가해 제1조 목적조항과의 정합성을 회복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새로운 권한을 만드는 개정이 아니라 이미 제1조에 명시된 입법 취지를 정의조항에 맞게 바로잡는 정합성 개정이므로 입법 저항도 크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국립현대미술관의 조사·연구 기능을 법률 또는 직제 차원에서 명시해 국가 학술진흥 지원사업의 대상 자격을 확보하고, 문화기반과와 예술정책과 사이의 사무분장을 명문화하며, 같은 직제 조항을 공유하는 국립중앙극장 등 다른 책임운영기관까지 아우르는 일괄 정비 방안을 마련해야 형평성 시비를 피할 수 있다.
 
‘학문’이라는 단어 하나가 빠진 정의조항의 결함처럼 보이는 문제가, 실은 목적조항과의 불일치, 책임운영기관 편제와의 충돌, 분관 사업 설계의 법적 근거 취약이라는 더 높은 층위로 파급되면서, 지역거점 미술관 사업을 방해하는 구조적 결함이란 사실을 문화부는 이제라도 직시하고 실감해야 한다. 10여 개 지자체가 유치전에 뛰어들고 내년 상반기 중장기 계획 발표가 예고된 지금, 법률적·행정적 뿌리를 그대로 둔 채 지역의 열기만 확인하는 절차는 기대만 부풀리고 실망만 안겨줄 위험이 크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금이라도 조직 체계 개편이라는 본질적 과제를 수요조사·타당성 연구와 함께, 아니 그보다 먼저 논의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이제라도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 근본과 지엽을 가려야 할 것이다. 
서울대 정문광장 2011년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 독립법인 체제로 전환했다 법인화에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이다 사진위키피디아
서울대 정문광장, 2011년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 독립법인 체제로 전환했다. 법인화에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이다.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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