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이번 사태는 절대 공정하지 못한 것으로서 선관위가 국민투표권을 훔친 결과다. 민주주의의 미래는 신뢰에 달려 있고 신뢰는 투명성과 검증 가능성에서 나온다. 그의 토대가 되는 선거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야를 떠나 모든 국민이 결과를 수용할 수 있는 선거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국가적 책무다. 그런데 최근 치러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그리고 그 이전의 서울시장 선거와 각종 재보궐선거를 돌아보면 민주 절차상 중대하게 우려되는 바가 반복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어느 정당이 승리하든 일부에서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음모론으로 규정하며 맞선다. 문제의 핵심은 의혹의 진위 여부를 떠나 국민 신뢰가 지속적으로 흔들리는 현상이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로만 유지되지 않는 것이다. 선거 결과를 국민이 믿고 수용할 때 비로소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결과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선거는 통합의 기능을 상실하고 갈등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번 선거도 그랬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 여전히 반복됐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국민 전체가 신뢰할 수 있는 선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지금 고치지 않으면 어떤 거센 후폭풍이 밀어닥칠지 매우 염려된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갖추고도 선거만큼은 수십년 전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냉정하게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나라를 짊어질 미래 세대가 민주주의 과정 자체에 망연자실하게 회의를 표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투표 현장에서 투표용지 부족, 장시간 대기, 지역별 투표 환경 격차 등은 젊은 유권자들에게 크나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투표소를 찾았는데 기본적인 준비 부족으로 중대한 불편과 고난을 겪는다면 국가가 참정권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품게 되는 일은 당연하다. 젊은 세대는 공정성과 투명성에 특히 민감하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절차가 공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국가가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 기초인 선거조차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운영하지 못한다면 과연 어떤 미래 비전을 그들에게 제시할 수 있겠는가. 국가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반복되는 논란을 줄이고 신뢰 회복을 위해 차세대 선진형 디지털 선거 시스템 구축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청년층만이 아니다. 국민의 바람은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디지털 기술은 바로 이러한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젊은 세대가 국가를 신뢰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도 선거 혁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종이 없는 행정을 지향하는 디지털 시대에 종이 투표를 언제까지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정부 행정망 역시 대부분 전자결재 시스템 위에서 운영된다. 은행 업무를 스마트폰으로 처리하고 부동산 계약도 전자서명으로 체결한다. 세무신고 건강보험업무 민원신청 주민등록등본 처리도 모두 그렇게 디지털로 한다. 그러나 유독 선거만은 종이 투표와 수작업 중심 절차를 유지하고 있다. 디지털전환을 적용 안 하겠다면 대만처럼 전 과정을 투표 현장에서 투표함 이동 없이 여야 입회 하에 수개표로 즉각 하면 된다. 디지털 전환의 핵심은 단순히 종이를 컴퓨터 화면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더 편리 더 정확 더 안전, 이 셋을 기치로 국가 사회 시스템을 질적으로 격상시키는 데 있다. 디지털 키오스크가 생활 속 대세를 이룬 가운데 선거 역시 시대 변화에 맞게 디지털로 진화해야 한다. 지금은 시대에 맞는 DB 중심 선거정보시스템이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한 까닭이다. DB만 도입해도 신뢰를 급격히 향상시킬 수 있다. 이에 에스토니아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세계 최초로 국가 단위 인터넷 투표를 정착시켰다. 총선은 물론 대통령선거에 대해서도 전자투표를 전면 실시하고 있다. 온라인이라 투표장이 따로 없다. 블록체인 기술 기반 시스템으로 집이나 직장에서 또한 격지에서도 투표 가능하다. 편리 정확 안전에서 세계 최첨단이다. 부정선거 논란이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모습은 거기선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블록체인 기술은 위·변조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국제적 기술이며 금융 물류 의료 예술 분야에서도 이미 널리 활용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 절차인 선거에 이러한 기술을 적용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따라서 우리도 충분히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정치권이 많은 혁신을 부르짖지만 유독 선거혁신만은 들어 본 적은 없다. 국가 운영의 모든 영역을 디지털화 대상으로 하겠노라는 선언을 하면서 선거만 예외로 남겨두는 것은 설득력이 대단히 부족하다. 공공정책의 시작점 역할을 하는 국가 선거에 대한 신뢰가 확보되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 국방혁신 교육혁신 연금혁신 의료혁신 노동혁신이라는 구호는 선거철마다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고정 메뉴다. 디지털 전환 더 나아가 인공지능 전환 역시 거의 모든 정책 공약에 등장한다. 그러나 정작 민주주의의 첫 시작점이자 출발지점인 선거 시스템 혁신에 대한 단초조차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점은 유감 중 유감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 자체가 디지털 혁신의 제1 대상이 되어야 할 시점이다. 따라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조직 개편이 요구된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조직으로 전면 개편될 필요가 있고도 남는다. 전통적 관행적 조직 구조로 21세기형 선거를 관리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됐다. 지금까지 운영돼 온 선관위는 근본적으로 법률과 행정 중심 조직이다. 이제는 그를 초월하여 투개표 데이터 관리 및 보안 기반의 선거 시스템 아키텍처 설계를 중시하는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 선거 시스템 보안과 데이터 관리 역량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도 이러한 관행적 구조 한계에서 기인한다. 선거는 정보기술 전문가가 책임져야 하는 국가 핵심 인프라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정보화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가능하다. 데이터베이스 보안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한국경제 2025년 1월 18일자)도 제기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 전자정부 평가에서 늘 3위 내에 들 정도의 디지털 최강국이다. 인공지능 양자컴퓨팅을 논하는 국가에서 선거 관리가 구태의연한 방식에 머문다면 국가혁신은 말로 만이지 실제 없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이 과연 진정한 디지털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가장 먼저 혁신해야 할 대상은 다름 아닌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선거 데이터 시스템 고도화 그 자체다. 그래서 K-선거를 세계 만방에 자랑스럽게 보여야 한다. 데이터 처리에 의혹 한 점 없이 공정한 첨단 선거정보시스템으로 만들어 대대로 사용하게끔 말이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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