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재의 경제가 답이다] 취업 계단 무너진 세대

  • 세대불균형 고용정책이 청년 실업 키운다

··박원재 논설고문
[박원재 논설고문]

여러 경제지표 가운데 요즘 먹고사는 형편이 어떤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가 실업률이다. 개인이든 가계든 일자리가 있고 거기에서 나오는 고정 수입이 있으면 경제적·정신적 여유를 갖게 되고 살아갈 의욕과 활력이 생긴다. 코스피가 연일 사상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면서 증시 주변이 흥청대고 있어도 일상의 살림살이에서 피부에 와닿는 것은 주가보다는 일자리다.

한국 경제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내수 침체,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가계 부채 같은 고민거리를 안고 있지만 실업률 통계로는 큰 어려움 없이 순항한다고 볼 수 있다. 실업률은 올해 1월 3.0%에서 2월 2.9%, 3월엔 2.7%로 하락했다. 1999년부터 올해까지 실업률 평균치가 3.53%인 점을 감안하면 고용 호조가 분명하다.

대상을 청년층(15∼29세)으로 좁히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2월 청년 실업률은 7.7%로 2021년 2월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공무원 자격증 등 시험 준비생, ‘그냥 쉰다’고 답한 잠재 구직자, 더 일하고 싶어도 짧은 시간만 일해야 하는 불완전 취업자까지 포함한 확장 실업률은 두 자릿수, 대략 청년 실업률의 두 배인 14∼15% 정도로 추산된다. 1분기(1∼3월) 청년층 취업자는 342만명으로 14분기 연속 감소하며 1980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었다.

졸업을 앞두고 구직에 나선 청년들은 기업의 경력직 선호와 신규 채용 축소에 가장 먼저 좌절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공채 제도를 유지하는 삼성 등 몇몇 그룹을 빼면 대부분 기업이 대졸 신입사원 공채를 하지 않는다.

훨씬 높아진 취업 문턱을 넘지 못한 청년들은 인공지능(AI) 쇼크까지 감당해야 한다. AI는 청년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분야에 영향을 미쳐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부터 잠식했다.

2월 법률 회계 엔지니어링 등 전문·과학 및 기술서비스업 취업자가 약 10만명 줄었는데 이 중 37%가 20대였다. 숙련도가 떨어지는 신입이 맡는 기초 코딩 같은 업무가 AI로 대체되면서 정보기술(IT) 분야의 20대 취업자도 5만명 넘게 줄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7월∼2025년 7월 청년층 일자리가 21만1000개 줄었는데 이 가운데 20만8000개가 AI에 많이 노출된 업종이다.

앞세대 선배들은 그나마 정규직 울타리 안에서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쌓을 시간을 벌지만 미취업 청년들은 업무를 통해 AI에 적응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경력 공백이 길어지면 청년들은 저숙련·저임금의 단순 일자리라도 받아들일지, 기약 없는 취업준비생의 길을 계속 갈지 선택을 강요받는 처지에 내몰린다.

일자리 정책과 관련 입법의 세대 불균형은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 청년실업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제도와 예산, 입법의 결정권을 갖는 정부와 국회가 중장년 및 고령층 중심의 대책을 쏟아내면서 청년층은 공공부문의 혜택에서도 배제됐다.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할 기업은 기존 구성원의 고용유지 부담이 커진 탓에 젊은 직원을 새로 뽑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부의 고용 정책은 정년 연장, 계속고용 장려금, 중장년 재취업 지원 등 정년을 앞둔 50대 이상 중장년의 일자리를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춰왔다. 단기 일자리 양산을 통해 60·70대 고령층의 수입을 보전하는 것도 정부의 관심사다.

올 들어 시행과 함께 산업 현장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노란봉투법은 조직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만든 법이다. 노조원에게는 든든한 우산이 생겼지만 아직 사번을 받지 못한 청년 구직자에게는 채용의 문을 좁히거나 닫게 할 소지가 큰 정책이다.

정년 연장, 고령자 대상 공공 일자리, 노란봉투법 등은 투표율과 조직률이 높은 중장년과 고령층, 노조 중심 의제가 행정부와 입법부의 우선순위 최상단에 올라 있음을 보여준다. 새로 일을 시작하는 세대를 늘리기보다 지금 일을 하고 있는 세대의 고용 안정에 주력하는 세대 불균형 정책과 입법이 청년 일자리 부족 현상을 심화시켰다. 청년 취업자가 36개월 연속 감소한 반면 고령 취업자가 57개월 연속 증가한 수치는 정부 정책과 예산의 편중이 빚어낸 결과다.

정년 연장은 중장년 세대의 노후 안전망을 확보하고 퇴직 후 연금 수급 공백을 줄인다는 측면에서 필요성이 인정되는 정책이다. 노란봉투법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노동자의 권익을 지킨다는 입법 취지는 정당성을 갖는다. 통계상 낮은 실업률에도 실업자가 여전히 100만명이 넘는 현실을 고려하면 기존 일자리를 지키고 하나라도 더 만들어내려는 정부의 노력을 폄훼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의 관심과 배려가 중장년 및 고령층과 노조에 주어지는 만큼 청년 세대에게도 비슷한 비율로 배분되는 것이 공정의 가치에 부합한다.

정부가 최근 청년 10만명에게 직업 훈련과 일 경험 등을 제공한다고 발표한 청년 뉴딜 프로젝트는 실무경험을 중시하는 요즘 취업시장의 특성을 반영한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다.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공공사업 확대로 실업 구제에 나섰던 문제의식을 청년실업 대책에 적용한 것도 참신한 접근으로 평가받을 만했다.

대표적인 일 경험 기회로 제시된 것은 세금체납 관리 9500명, 농지 전수조사 4000명의 시한부 채용이다. 전문성 함양과 거리가 먼 단순 임시직 일자리는 청년 고용대책이 아니라 정책 효과를 선전하기 위한 숫자 늘리기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한정된 단기 '알바' 자리를 놓고 이런 일자리에 익숙한 중장년 고령층과 취업 실패로 주눅이 든 청년들이 경쟁하는 상황이 펼쳐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 정책의 근본적인 한계는 청년 뉴딜에 참여한 청년이 프로젝트를 마친 뒤 어떤 경로를 거쳐 상시 일자리를 갖게 될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름값 못하는 청년 뉴딜’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거창한 명칭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청년실업 위기를 극복할 해법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1월 경제성장전략 국민보고회에서 “고용절벽에 내몰린 우리 청년들의 현실을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고 국가역량을 총동원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단의 대책’이 구조 개혁 없이 포장만 그럴싸한 관료적 사고의 단발성 정책이어서는 곤란하다.

역대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다짐하며 내놓은 일자리 정책이 실패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일자리 300만개 공약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건설경기 활성화로 고용문제를 풀어보려 했지만 건설 현장의 비정규 단순노무직 양산에 그쳐 청년 고용과 연계하는 데 실패하고 고용 지표도 악화됐다. 공기업 인턴제에 공을 들인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수석은 권한과 예산이 수반되지 않은 탓에 존재감 없이 고용사정 악화에 속수무책이었다.

역대 정부의 거듭된 실패가 남긴 교훈은 정부 예산으로 만드는 단기 일자리, 정식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인턴제 남발로는 청년실업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이다. 민간 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도록 청년 채용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정공법이 진정한 ‘특단의 대책’이다. 대책의 출발은 이미 일자리를 확보한 세대의 잔류에 초점을 맞춘 정책 방향을 일터 밖에서 대기하는 세대의 진입을 촉진하는 쪽으로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청년층이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된 상황을 인식해서인지 청년 문제를 전담할 연구기관이나 정부 내 청년 전담 조직, 더 나아가 청년부를 신설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청년의 고민을 파악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청년 정책의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청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와의 소통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펼치고 미래를 설계할 일자리다. 청년부 장관도 일자리를 늘리는 역할이 아니면 다수의 청년에게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1분기 한국 경제는 반도체 슈퍼사이클 덕택에 1.7% 성장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올해 연간으로 3% 성장이 가능하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경제지표가 좋아지는데 청년의 일자리 사정이 나빠지는 것을 단순히 지표의 역설로 치부하고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실업자 100만명 뉴스는 우울하지만 실업자 4명 중 1명이 청년이라는 사실은 더 암담하다. ‘일자리를 잃어버린 세대’가 누적되면 개인과 가정의 불행을 넘어 공동체의 재앙으로 돌아온다.

이 대통령은 “청년 고용 문제 해결엔 정부뿐 아니라 기업의 노력도 필요하다”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비유로 기업의 동참을 촉구했다.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모두 필요한 것은 맞지만 순서를 따지자면 정책 기조의 변화가 먼저다.

고용정책의 세대 불균형을 고치지 않으면 청년실업은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뇌관이 될 것이다.


박원재 필자 주요 이력
▷핀란드 알토대 경영학석사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논설위원, 경제부장 ▷동아닷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 ▷경성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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