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재 논설고문]
오르기만 하던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거나 보합세에 머물고, 팔려고 내놓은 매물이 쌓였다. 매도자 우위가 당연시되던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조차 매수자 우위로 바뀌고, 그 여파는 한강벨트로 확산됐다.
핵심 요지의 하락 거래가 이어지면서 ‘부동산 불패(不敗)’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시장과 힘겨루기를 해서 이겨본 기억이 거의 없는 정부가 승기를 잡는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 아파트 가격의 흐름을 바꾼 것은 정부, 정확히 표현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이재명 대통령의 부동산 안정화 드라이브다. 이 대통령은 서울 아파트 가격의 과도한 상승과 투기성 거래를 겨냥한 메시지를 많을 때는 하루 한 건꼴로 쏟아내며 부동산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나섰다.
1월 23일 오전 1시, 본인의 X에 올린 한 문장이 부동산 시장과 한판 승부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5월 9일 만기인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면제 연장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를 예정대로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일몰 시한이 다가오면 이런저런 이유로 연장이 거듭되던 관행에 칼을 빼든 것이다. 당사자인 다주택 보유자는 물론 담당 공무원의 잠도 달아나게 한 조치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 정상화가 오천피(코스피 5000)보다 쉽고 중요하다”며 자신감을 보였고 “표 계산 없다. 국민을 믿고 비난을 감수하면 될 일”이라며 후퇴를 기대하는 심리를 눌렀다. “시장에 맞서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정부에 맞서지 말라는 말도 있다”며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를 총동원해 집값 잡기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세 문장으로 요약된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올랐다. 부동산 투기를 방치하면 나라가 망한다. 정치적 유불리와 상관없이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겠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섣불리 건드렸다간 파장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지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존재다. 어디서 어떤 뇌관이 터질지 몰라 정책 담당자는 현상 유지를 최선으로 여기고, 후임에게 넘기면 안도하는 ‘폭탄 돌리기’의 대상이 됐다.
부동산 대응에 실패해 정권을 잃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상반된 형태의 학습효과가 생겨났다. 시장은 '버티면 오른다'는 확신으로 무장했고, 정부는 무대책이 상책이라는 보신주의에 매몰됐다. 문재인 정부는 규제 강화로, 윤석열 정부는 규제 완화로 부동산 시장을 몰아붙이거나 달랬지만 둘 다 실패했다. 정권 지지율이 급락하며 국정 운영의 동력을 상실했다.
집권 초기에 부동산과 한판 승부를 택한 이재명 정부는 힘든 길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용감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움직일 것이라는 예측을 뒤엎고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는 점에서 전략적이기도 하다. 정치적 리스크가 큰 결정이지만 대통령 주택 매도의 상징성이 더해지면서 정책의 진정성을 인정받는 효과를 거뒀다.
3월 초 한국갤럽 조사에서 응답자 51%가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잘한다’고 답해 긍정 평가가 201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로서는 험난한 부동산 전선(戰線)에서 여론의 지지라는 든든한 응원군을 얻은 셈이다.
대통령의 이슈 제기가 효과를 내면서 시장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실거래가 기준 13.5% 오를 정도로 과열됐던 서울 아파트 가격이 진정세를 보이고, 2024년부터 100주 이상 연속 올랐던 강남 3구 집값이 하락했다. 서울 아파트 매물은 올해 1월 5만6000건에서 3월 말 7만8000건으로 40% 가까이 늘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에 더해 공시가격 상승과 보유세 인상 가능성에 현금이 부족한 고령층을 중심으로 급매물이 나오고 있다.
눈에 보이는 몇몇 지표가 호전됐다고 해서 부동산 시장이 정상화 경로에 들어섰다고 판단하는 건 무리다. 정부가 초반 득점에 성공했지만 과거 숱한 정책 실패를 경험한 시장은 움츠린 채 상황 반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선 정부의 의지가 예상보다 강하고 어떤 정책 수단이 나올지 몰라 일단 숨을 고르면서 지켜보는 단계로 봐야 한다.
따지고 보면 정부의 엄포와 일부 지역의 급매물 거래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 가격을 비정상적으로 밀어올린 요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중동 사태에 따른 추가경정예산 집행으로 시중에 유동성이 증가하는 것을 비롯해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구조적인 위험 변수는 곳곳에 잠복해 있다. “정부 대책은 2~3개월 정도만 효력이 있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비판은 이런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4월 들어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 폭이 2주 연속 확대되고 용산은 6주 만에 상승세로 전환됐다. 강남 3구가 하락세를 보이지만 인접한 성동구·동작구·강동구는 조금씩 오르는 모습이다. 시장의 의구심을 해소할 후속 대책이 나와야 정부의 안정화 드라이브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지금처럼 입구와 출구를 모두 막는 방식으로 아파트 거래를 묶는 조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전례 없는 고강도 대출 규제로 수요를 누르는 데 성공했지만 규제의 유효기간이 무한정일 수는 없다.
부동산 안정화는 실수요자들에게 설득력 있는 공급 계획, 보유세와 거래세의 균형이 잡힌 세제 개편, 투기는 철저히 차단하되 실수요 거래엔 물꼬를 터주는 합리적 금융 정책이 상호보완적 완결성을 갖출 때 가능해진다.
서울 아파트 가격을 밀어올린 수요 압력은 강도 높은 대출 규제와 매물 증가로 잠시 시야에서 사라졌을 뿐 바닥에는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확실한 처방은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주택이 적시에 공급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정부가 지난해 9·7 대책과 올해 1·29 대책을 통해 신규 공공택지, 도심 내 공공 및 유휴부지 등을 중심으로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 지연, 관련 입법 미비로 탄력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공급은 단순히 많이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입지와 시기에 의해 성패가 결정된다. 대부분 개발이 끝나 빈 땅이 거의 없는 서울에서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은 중요한 주택 공급 수단이다. 서울 아파트 중 30%가 준공 30년을 넘긴 노후 주택이라는 점을 고려해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와 행정절차 간소화로 도심 공급 비중을 늘려야 한다.
보유세 인상을 결정하지 않았다는 정부의 설명에도 시장은 초고가 주택과 비거주 1주택 소유자의 보유세 인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의 매물 증가와 하락 거래도 보유세 인상의 영향이 크다.
보유세를 올린다면 거래세는 낮추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매물 잠김 방지를 위해서도 맞는 방향이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합한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1%로 1%를 넘는 미국·일본·프랑스 등 다른 선진국보다 낮다. 반면 양도소득세·취득세 등 집을 사고팔 때 내는 거래세는 투기 억제 조치를 취할 때마다 임시방편식으로 높인 탓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대비 2배에 이른다. 거래세 부담을 낮추고 보유세 중심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집값이 장기적으로 하향 안정 흐름을 이어가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파트 가격을 잡기 위한 대출 규제가 내 집을 장만하거나 집을 넓히려는 실수요자의 거래까지 막는 모순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원하는 위치에 급매물이 나와도 현금 부자만 살 수 있고, 대출이 막힌 실수요자가 거래에서 배제되는 것은 사회 정 차원에서도 옳지 않다. 수요 억제를 위해 불가피하게 규제의 범위를 넓혔다면 이제는 실수요자 처지에서 묶어야 할 규제와 풀어야 할 규제를 구분하는 정책의 분별력을 발휘해야 할 시기다.
대통령이 부동산 화두를 던지고 이슈를 주도하는 ‘원톱’ 방식의 효용성도 따져볼 때가 됐다. 대통령의 노출 빈도가 잦으면 시장이 피로감을 느끼고 시간이 지날수록 메시지의 효과가 떨어질 소지가 있다.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와 여당이 대통령에게 의존한 정책 서사의 공백을 메우고 시스템으로 해결하는 프로세스가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부동산 안정화는 단순히 천정부지로 치솟는 서울 아파트 값의 고삐를 잡는 게 아니다. 갭 투기의 여지를 차단하고, 가격 안정을 통해 실수요자 중심의 거래가 자리 잡게 하며, 전월세 부담을 완화해 거주비용을 낮추고, 부동산 대출의 과도한 차입을 줄여 가계부채 리스크를 해소하는 작업이다. 핵심 경제 정책인 동시에 사회개혁 정책이라는 점에서 코스피 활성화보다 중요한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다.
정권을 넘어 공동체 명운이 걸린 이 프로젝트는 전초전을 마치고 본 게임을 시작한다. 정부를 응원하는 시각에서 이번 대결은 시간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박원재 필자 주요 이력
▷핀란드 알토대 경영학석사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논설위원, 경제부장 ▷동아닷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 ▷경성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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