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차기작으로 첫 장편 애니메이션을 내놓는다. 제목은 '앨리'(ALLY). 바닷속 협곡에 사는 심해어들이 인간 세상을 궁금해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태양을 직접 보고 싶어하고, TV 출연까지 꿈꾸는 아기돼지오징어 앨리가 정체불명 항공기의 추락을 계기로 예상치 못한 모험에 휘말린다는 설정이다.
겉으로만 보면 제법 동화 같다. 심해, 모험, 친구들, 그리고 세상을 향한 호기심. 하지만 봉준호의 세계에서 이런 단어들은 늘 순진한 얼굴로 등장했다가 결국 인간 사회의 민낯을 비추는 거울이 되곤 했다. 괴물이 강을 헤집을 때도, 열차가 계급을 싣고 질주할 때도, 냉혹한 자본이 유전자를 조작할 때도 그랬다. 이번에는 카메라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빌려, 바다 밑 생명체의 눈으로 인간을 올려다보게 만든다.
그 시선이 흥미로운 이유는 분명하다. 봉준호는 늘 인간을 인간의 시선으로만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 바깥에 서 있는 존재를 통해 인간의 모순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 능했다. 인간은 스스로를 이성적이고 문명화된 종이라 믿지만, 봉준호의 영화 속에서 그 믿음은 번번이 조롱당했다. 탐욕은 품위를 입고 등장했고, 폭력은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됐으며, 잔혹함은 늘 효율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감독이 이제 심해어를 앞세운다. 인간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보다, 인간을 궁금해하는 존재를 내세우는 편이 더 뼈아프기 때문이다.
정체 불명 항공기의 추락 역시 의미심장하다. 인간 세계의 잔해가 바다 밑 평온을 깨뜨리는 장면은, 굳이 거창한 은유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봉준호답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세계의 사고를 외부로 확산시켜 왔다. 자신들이 만든 불안, 오만, 재난, 쓰레기, 소음은 늘 약한 존재들의 삶을 먼저 흔든다. 인간이 만들어낸 추락이,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모험 서사가 된다는 점은 묘하게 정확하다. 누군가의 실수는 언제나 다른 누군가의 생존 문제가 된다. 이 단순한 진실이야말로 봉준호 영화가 집요하게 되짚어온 현실이다.
이번 작품이 더 기대되는 건 형식의 변화 때문이다. 봉준호는 실사 영화에서도 이미 과장과 우화, 장르적 비틀기를 자유롭게 다뤄온 감독이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은 그 상상력을 더 멀리 밀어붙일 수 있는 형식이다. 심해라는 공간도 그렇고, 심해어라는 주인공도 그렇다. 실사로는 구현 이전에 설명이 먼저 붙었을 설정들이, 애니메이션 안에서는 곧바로 세계가 된다. 봉준호가 처음 장편 애니메이션을 택했다는 사실이 단순한 변신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다. 오히려 이제서야 가장 적절한 형식을 만난 것에 가깝다.
제작진 면면도 이 기대를 뒷받침한다. '잠'의 유재선 감독이 각본에 참여했고, '인셉션'과 '듄'의 시각특수효과 작업에 참여한 글로벌 스튜디오 디넥(DNEG), '토이스토리4'의 김재형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클라우스'의 마르친 야쿠보프스키 프로덕션 디자이너, '슈렉'의 데이빗 립먼 프로듀서 등 12개국 제작진이 합류했다. CJ ENM과 펜처인베스트, 프랑스 영화사 파테 필름이 투자·배급에 나서고, 바른손씨앤씨가 제작을 총괄한다는 점 역시 프로젝트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물론 이름값만으로 작품을 보증할 수는 없다. 봉준호라는 이름은 이미 세계적 브랜드가 됐고, 그만큼 기대 역시 거대해졌다. 자칫하면 그 기대는 작품을 보기 전에 이미 작품을 소비해버리는 함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신작 소식은 여전히 두근거림을 준다. 영화계가 익숙한 성공 공식과 안전한 반복에 머무는 동안, 가장 널리 알려진 감독은 더 낯선 형식으로 더 깊은 곳을 향한다. 모두가 익숙한 빛을 좇을 때, 봉준호는 심해로 내려간다. 그 어둠 속에서 끌어올릴 것이 결국 또 인간일 것이라는 점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봉준호의 영화는 늘 인간을 노골적으로 미워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잔인한 방식을 택했다. 인간을 끝까지 관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관찰 끝에서 관객 스스로 깨닫게 했다. 괴물은 늘 바깥에만 있지 않았고, 추락은 언제나 예고 없이 타인의 삶에 떨어졌으며, 문명은 생각보다 쉽게 우스워진다는 사실을. 심해어가 인간 세상을 궁금해하는 이야기라지만, 정작 더 궁금한 건 이쪽이다. 봉준호는 이번에도 인간을 얼마나 민망하게 만들어 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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