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명성 강화의 양면···결국은 원화 절상 압력 작용?
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미국 재무부와 환율정책 합의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시장 투명성 강화 차원에서 환율 관련 시장안정조치의 월별 내역을 미국 재무부에 '비공개'로 공유하고 대외적으로는 처음 연도별 외환보유액 통화구성 정보를 공개하기로 했다. 월별 개입 내역에 대해 일본은 지난 12일 미국과 합의해 외부에 공개하기로 했지만 우리나라는 개입 내역이 공개되면 투기 세력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 비공개를 전제한 것으로 풀이된다.당초 시장에서는 미국이 인위적인 원화 절상을 직접 압박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으나 이번 합의문에 관련 내용이 명시적으로 포함되지는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율 관세정책이 효과를 내려면 교역국들의 자국 화폐 가치를 낮추는 환율정책이 없어야 하는데 미국은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이를 관철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일각에선 이번 투명성 강화 방안이 외환당국의 환율 관리 여력 위축으로 이어져 원화 강세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는 그 자체로 환율 수준을 조정하는 수단은 아니지만 타이밍과 방식에 따라 시장에 상당한 심리적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이와 관련해 기재부 측은 "협의 과정에서 인위적인 절상 요구는 없었다"면서 "한국의 외환정책은 이미 양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도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취약한 외환시장 구조…"위기 땐 충격 확대"
환율 급변에 따른 정부 개입 여지가 줄어들며 외환시장 충격에 취약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처럼 수출에 기대는 개방형 교역국에서 외환시장의 혼란은 고스란히 국가 경제에 충격이 될 수 있다. 한국은행이 글로벌 리스크 충격에 대한 2004~2024년 국가별 반응 계수를 측정한 결과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깊이(심도·depth)는 세계 최하위권이다. 그만큼 글로벌 충격 시 통화가치가 더 크게 출렁인다는 의미이며 외환시장 개입과 거시건전성 정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월 단위로 공개되면 정부가 미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니 리스크가 잠재한다고 볼 순 있다"면서도 "지금은 환율이 오르는 상황인 만큼 최근 이뤄지는 달러 매도 개입은 미국도 원하는 방향이어서 이번 조치 자체를 리스크로 보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환율 향방 초점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통화스와프 가능성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한·미 재무당국 간 환율정책 합의가 환율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외환시장은 환율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는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對美)투자펀드 재원 조달 방안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주간 거래 종가는 0.3원 오른 1403.2원으로 마쳐 충격을 받지 않은 모습이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이번 협상을 환율관찰국에서 빠지는 계기가 될 걸로 보면 외환시장에 긍정적으로 영향은 미칠 수 있겠지만 현재 외환시장은 관세 협상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원·달러 환율 밴드를 1380~1430원 수준으로 예상했다. 민경원 연구원도 "월 단위 공개가 지금 현 상황에서는 구조적인 수급 변화로 이어져 원화 강세 분위기를 연출하기는 쉽지 않다"며 "지금은 내려갈 만한 요인이 뚜렷하지 않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교착 상태에 빠진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에 대한 타결점을 찾지 못하면 원·달러 환율이 당분간 안정을 찾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이번 환율 협상으로 우리 정부가 요구한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 기대감이 더 높아진 상황으로 통화스와프 체결 여부가 외환시장 안정의 관건이란 평가가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2018년 분기별 외환거래내역 공개 발표 당시 "외환정책 투명성 제고 이벤트는 일시적으로 두드러진 원화 강세 효과가 있었으나 그 효과는 장기간 지속되지 않았다"며 "통화스와프 체결에 환시는 조금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향후 외환당국의 시장안정조치 내역 공개가 본격화하면 환율 쏠림현상 억제 등 금융 안정을 위한 통화정책 기능이 이전에 비해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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