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호의 일.고.감] 물러서지 않는 카메라, 다큐멘터리스트 하라 가즈오

  • 1972년 <굿바이 CP>로 데뷔해 <가자 가자, 신군> 등 연출…이마무라 쇼헤이에게 영화 배워

  • 일본영화학교·시네마 숙 통해 후배 양성…팔순 넘겨 투병 속에서도 신작 질주

2024년 10월 이탈리아 라벤나 나이트메어영화제 시상식에서 주먹을 쥐어 보이는 하라 가즈오 감독사진오가타 레이카위키미디어 커먼스
2024년 10월 이탈리아 라벤나 나이트메어영화제 시상식에서 주먹을 쥐어 보이는 하라 가즈오 감독[사진=오가타 레이카/위키미디어 커먼스]

하라 가즈오(原一男)는 1945년 6월 8일 태어나 올해 81세가 된 일본의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1972년 뇌성마비 장애인 단체 푸른 잔디회를 다룬 <굿바이 CP>로 데뷔해 <가자 가자, 신군>(1987), <전신소설가>(1994), <센난 석면 피해배상 소송>(2017), <미나마타 만다라>(2020) 등을 만들었다. 촬영 현장에서 피사체가 카메라를 거부해도 물러서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그는 일본영화학교(현 일본영화대학) 강의와 1995년 '시네마 숙(塾)'을 통해 후배 양성에도 힘썼다. 그는 현재도 <미나마타 만다라>의 후속작을 준비하며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방공호에서 태어난 하라는 아버지가 전쟁에 나가 행방불명된 뒤 어머니가 광부와 재혼해 탄광촌에서 자랐다. 적십자사에서 일하며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고, 아사히신문 야마구치 지국에서 일하며 도쿄에서 파견된 신문기자의 취재에 동행해 현장 사진을 찍은 일을 계기로 보도사진가를 꿈꿨다. 1966년 4월 도쿄로 올라와 도쿄종합사진전문학교에 입학했다. 그해 여름방학 과제로 찍을 주제를 찾다가 중증 장애 아동을 만나 충격을 받았고, 반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장애인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1967년에는 승려 오사라기 아키라가 이바라키현에 세운 뇌성마비 장애인 공동체 '마하라바 마을'(1969년 해체)을 찾아 요코타 히로시, 요코쓰카 고이치 등을 만났다.

같은 해 도쿄 도립 광명양호학교(특수학교)를 찾았다가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다케다 미유키를 만났다. 하라는 1968년 4월부터 1년 2개월간 이 학교에서 장애 아동을 돌보는 보조원으로 일했고, 미유키와 동거하다 결혼했다. 1969년 7월에는 도쿄 긴자의 니콘 살롱에서 이곳 아이들을 찍은 사진전 '바보 취급하지 마!'를 열었다. 이 전시장에서 고바야시 사치코를 만났다. 니가타대 인문학부를 졸업한 고바야시는 영화 일을 하려고 혼자 도쿄로 올라와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시나리오 연구소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하던 중이었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에 중증 장애가 남은 그는 목발을 짚고 걸었다. 그해 10월 고바야시가 촬영만 해 주면 나머지 일은 모두 자신이 맡겠다며 함께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하라는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이후 하라의 대부분 작품은 고바야시가 제작을 맡았다.

1971년에는 산리즈카 투쟁(나리타공항 건설에 반대한 농민운동) 7부작을 찍은 오가와 신스케의 오가와 프로덕션에 들어가려고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받아 주지 않았다. 하라는 이를 단념하고 직접 영화를 만들어 1972년 2월 <굿바이 CP>를 완성했고, 이때 고바야시와 함께 제작사 질주(疾走) 프로덕션을 세웠다.

<굿바이 CP>(1972)는 마하라바 마을 이래 가깝게 지낸 가나가와 푸른 잔디회 회원들을 16밀리 필름으로 찍은 하라의 첫 작품이다. CP는 뇌성마비를 뜻하는 영어 'cerebral palsy'의 약자이고, 푸른 잔디회는 1957년 도쿄에서 뇌성마비 장애인들이 만든 당사자 단체다. 이 단체는 1970년 요코하마에서 어머니가 중증 장애 아이를 목 졸라 숨지게 한 사건에 감형 탄원이 이어지자 엄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이름을 알렸다. 영화는 회원 요코타 히로시가 휠체어에서 내려 무릎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장면과, 요코하마역 앞에서 모금운동을 하는 회원들에게 잔돈을 넣고 가는 행인들, 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의 인터뷰, 청년들이 직접 털어놓는 성 경험을 담았다. 말을 알아듣기 어려운 요코타의 대사에도 하라는 자막을 달지 않았다.

영화 속 요코타의 집에서 청년들이 토론하는 장면에서는 역시 뇌성마비 장애인인 요코타의 아내가 계속 촬영하는 것을 강하게 거부했다. 그는 경련을 일으키며 촬영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경찰에 알려 스태프를 가택침입죄로 고소하겠다고 소리쳤지만 하라는 촬영을 멈추지 않았고, 약 6분에 이르는 이 장면은 그대로 영화에 들어갔다. 이후 영화는 신주쿠 거리에서 분필로 땅에 자기 이름을 쓰고 시를 낭독하던 요코타가 사복형사 두 명에게 연행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영화에 출연한 요코타는 훗날 푸른 잔디회 전국 회장을 지냈고 1979년 책 <장애인 살해의 사상>을 냈다. 가나가와 지부를 이끈 요코쓰카 고이치는 영화에서 자신이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서기도 했고, 1975년 책 <어머니여, 죽이지 마라>를 냈다. 1977년 4월에는 휠체어 승차 거부에 항의해 회원 60여 명과 지원자들이 가와사키역 앞 노선버스 약 30대를 점거했다.

두 번째 작품 <극사적 에로스>(1974)는 하라가 광명양호학교에서 만난 다케다 미유키의 삶을 담은 영화다. 두 사람은 3년 동안 함께 살았고 그 사이 결혼해 아이도 낳았다. 1972년 미유키가 이 생활을 정리하고 아이를 데리고 오키나와로 떠나자, 하라는 본토 반환을 앞둔 나하까지 카메라를 들고 뒤따라갔다. 미유키는 그곳에서 미군 병사를 상대하는 바의 호스티스로 일하며 여성 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하라가 합류해 셋이 살기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가 집을 나갔고, 도쿄로 돌아온 하라는 미유키에게서 임신했다는 편지를 받았다. 다시 나하를 찾은 하라는 미유키가 흑인 병사 폴과 함께 사는 것을 보고 질투에 휩싸였다. 세 번째로 나하를 찾았을 때는 당시 사귀던 고바야시 사치코를 데려갔고, 고바야시는 그곳에서 자신도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미유키에게 밝혔다. 미유키는 하라와 고바야시에게 화를 내며 격렬하게 질투했고, 세 사람은 일촉즉발의 삼각관계가 됐다.

이후 오키나와 생활에 지친 미유키도 도쿄로 돌아와 하라의 아파트에서 폴의 아이를 혼자 낳는다. 얼마 뒤 고바야시도 하라의 아이를 낳고, 미유키는 이 출산을 돕는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또 다른 어머니와 아이들을 불러 모아 공동체를 꾸리는 데서 끝난다. 이 공동체의 이름 '도쿄 코무우누(東京こむうぬ)'는 '아이를 낳는다'는 뜻의 일본어 '코오우무(子を産む)'와 코뮌을 합친 조어다. 하라는 이 영화를 찍는 동안 미유키와 이혼하고 고바야시와 결혼했다. 감독 자신의 사생활을 카메라에 담은 이 셀프 다큐멘터리는 1975년 프랑스 토농레뱅 국제독립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았다.

<극사적 에로스> 이후 하라는 13년 동안 영화를 내놓지 못했다. 이 기간에는 핑크영화(성인영화)의 촬영 보조로 생계를 꾸리며 다른 감독들의 현장에서 일했다. 촬영감독 히메다 신사쿠 밑에서 촬영 보조를 했고, 우라야마 기리오의 <태양의 아들 테다노후아>(1980)에서는 조연출을, 이마무라 쇼헤이의 <에에자나이카>(1981)에서는 스태프를, 구마이 케이 감독의 <바다와 독약>(1986) 등에서는 조감독을 맡았다. 이 현장들에서 하라는 이마무라, 우라야마, 히메다를 스승으로 삼아 영화를 배웠다. 훗날 하라는 1996년 우라야마의 삶을 다룬 간사이TV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우라야마 기리오의 초상>의 연출을 맡아 1998년 방송했고, 이 작품으로 방송문화기금상 우수상을 받았다.
 
영화 가자 가자 신군의 주인공 오쿠자키 겐조사진질주 프로덕션
영화 <가자 가자, 신군>의 주인공 오쿠자키 겐조[사진=질주 프로덕션]

<가자 가자, 신군>(1987)은 전직 일본군 병사 오쿠자키 겐조를 좇은 영화다. 1920년 효고현에서 태어난 오쿠자키는 1941년 징집돼 뉴기니 전선에 파병됐고, 살아 돌아온 소수의 병사 가운데 하나였다. 전쟁이 끝난 뒤 고베에서 전파사를 하다 금전 문제로 부동산업자를 폭행해 숨지게 한 일로 상해치사 혐의를 받아 징역 10년을 받았고, 1969년 도쿄 황거(일왕이 사는 곳)에서 열린 신년 하례 행사에서 발코니에 선 일왕을 향해 파친코 구슬을 쏜 일로 징역 1년 6개월을 살았다. 자신을 '신군(신의 군대) 평등병'이라 부르며 전쟁 책임을 추궁해 온 그는 하라가 촬영을 시작하기 전해인 1981년 책 <다나카 가쿠에이를 죽이기 위해 기록한다>를 자비로 펴내기도 했다.

영화는 오쿠자키의 일상으로 시작한다. 오쿠자키는 지인의 결혼식에서 자신의 내력과 국가관을 거침없이 말하고, 40년 전 뉴기니에서 자신의 상관이던 야마다를 병문안한다. 전사한 전우들의 묘를 찾아다니며 공양하고, 뉴기니 방문 허가를 구하는 편지를 인도네시아 대통령에게 쓰기도 한다. 이어 오쿠자키는 패전 23일 뒤 자신이 속했던 연대에서 중대장이 부하 두 명을 총살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처형된 병사의 유족 두 명과 함께 생존한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진상을 말하라고 요구한다. 위생병이었던 장어집 주인의 입에서 이 사건이 극한 상황에서 인육을 먹은 일과 관계가 있다는 말이 나오고, 유족이 동행을 그만두자 오쿠자키는 아내 시즈미와 지인에게 유족 행세를 시킨다.

오쿠자키는 때로 폭력을 쓰며 증언을 얻어낸 끝에 요양 중인 야마다에게서 같은 부대 병사들이 서로 죽이고 먹었다는 진상을 듣는다. 영화는 여기까지를 기록하고, 오쿠자키가 뉴기니를 다녀온 뒤 전직 상관의 아들에게 권총을 쏴 중상을 입혔다는 사실은 신문 기사로, 징역 12년을 받았고 아내 시즈미가 영화 개봉 직전 병으로 숨졌다는 사실은 자막으로 전한다.

하라는 1982년 초부터 1983년 봄까지 카메라를 직접 들고 오쿠자키를 찍었다. 촬영 중 오쿠자키는 전직 상관을 살해하는 장면을 찍어 달라고 하라에게 요청했다. 하라는 당황해 선뜻 답하지 못했고, 제작을 맡은 고바야시 사치코는 이에 반대했다. 비평집 <군론 가자 가자, 신군>(1988)에서 하라는 자신이 그 장면을 찍지 않은 것은 오쿠자키가 싫었기 때문이며 좋아했다면 찍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오쿠자키는 연출과 각본에 요구를 내세우며 하라와 자주 부딪혔다. 장면마다 주문을 하고 자신의 연기가 어땠는지 묻는 오쿠자키에게 화가 났지만 오쿠자키를 연출할 수 있는 것은 오쿠자키뿐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같은 책에 썼다. 하라는 2018년 한 인터뷰에서 오쿠자키를 찍는 동안 애증 가운데 미움이 애정을 넘어섰다며 이례적인 경우였다고 말했다.

이 작품의 기획은 본래 이마무라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오쿠자키가 일왕 저격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 한 젊은 여성 주간지 기자가 이마무라에게 영화화를 제안했고, 이마무라는 뉴스 촬영용 태엽식 필름카메라를 분해해 법정에 몰래 들여가 찍는 계획을 세웠다. 다른 스태프들이 '재판장, 이의 있습니다'라며 소란을 피우는 사이 카메라맨이 촬영하려 했지만 태엽 소리가 너무 커 곧바로 발각돼 쫓겨났다. 이마무라는 이후에도 방송사에 기획을 냈으나 오쿠자키의 과격한 행동 때문에 성사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10년 뒤 이마무라는 자신의 영화 <에에자나이카> 현장에서 스태프로 일하던 하라에게 오쿠자키를 소개했다.

<가자 가자, 신군>은 1987년 베를린영화제 칼리가리 영화상과 호치영화상 최우수감독상, 1988년 파리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시네마 뒤 리엘 대상과 블루리본상 감독상 등을 받았다. 2007년에는 마이클 무어가 미국 풀 프레임 다큐멘터리영화제의 '파워 오브 텐' 프로그램 상영작으로 이 작품을 골라 하라를 초청했다.

<굿바이 CP>와 <가자 가자, 신군>에서 하라는 촬영과 연출을 혼자 맡았고, 와이드 렌즈를 단 카메라를 가슴에 늘어뜨린 채 눈대중으로 구도를 잡고 현장으로 달려가 어떤 사태가 벌어져도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피사체나 그 가족이 촬영을 거부해도 카메라를 거두지 않은 일은 두 영화에서 되풀이된다. 하라는 자신의 방법을 두고 찍히는 쪽이 행동하면 찍는 쪽은 셔터를 누르고, 카메라가 한번 돌아가기 시작하면 찍는 쪽도 찍히는 쪽과 함께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고, 이를 '액션 다큐멘터리'라 불렀다. 등장인물을 선과 악 어느 한쪽으로 나누지 않고 한 사람 안의 엇갈린 면을 그대로 담으려 한 점도 두 영화에 공통된다.

<전신소설가>(1994)는 소설가 이노우에 미쓰하루(1926~1992)의 마지막 5년을 기록한 영화다. 이노우에는 1989년 암 진단을 받은 뒤에도 문학 강습소에서 강의하고 강연하며 글을 썼다. 제목은 작가 하니야 유타카가 이노우에를 두고 한 말로, 존재 자체가 소설가라는 뜻이다. 이노우에가 숨진 뒤 그가 말해 온 이력과 성장 과정, 첫사랑 이야기가 모두 허구였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영화는 이를 조사하는 과정까지 담았다. 이 영화는 <키네마 준보>가 선정한 1994년 일본영화 1위에 올랐고, 하라는 같은 매체의 일본영화 감독상을, 영화는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일본영화 대상을 받았다.

하라는 2005년 첫 극영화로 <치카의 여러 얼굴>을 선보였다. 2000년 촬영을 시작했다가 자금난으로 중단했고 2003년 재개한 작품이다. 체육 교사 치카가 남편의 병을 계기로 고향에 돌아갔다가 동료와 불륜에 빠지고 일과 가정을 잃은 뒤 다시 도쿄로 나오는 삶을, 그가 사랑한 네 남자별 네 장으로 나눠 그렸고, 모모이 가오리 등 여배우 네 명이 치카를 나눠 맡았다.

2017년에는 오사카부 센난 지역의 석면 피해 소송을 다룬 <센난 석면 피해배상 소송>을 내놓았다. 2005년 석면 제품 공장 구보타에서 노동자들의 석면 피해가 드러난 '구보타 쇼크' 이후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2006년부터 2014년까지 따라간 기록이다. 영화는 일본 정부의 거듭된 외면에 분노하는 피해자들의 변화와 정의를 되찾으려는 변호인단의 투쟁을 시간순으로 비춘다.

2019년 참의원 선거는 하라의 카메라에 <레이와 시대의 반란>으로 담겼다. 신당 레이와 신센구미 후보 열 명의 선거운동을 따라간 이 영화는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 야스토미 아유무를 중심에 둔다. 평소 여성복을 입고 지내는 것으로도 알려진 야스토미는 '아이들을 지키자'를 내걸고 출마해 전국을 돌며 거리 연설을 했고, 야마모토 타로 대표와 다른 후보들도 함께 담겼다. 이 영화는 마이니치영화콩쿠르 다큐멘터리 영화상을 받았다.

<미나마타 만다라>(2020)는 미나마타병 피해자들이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병의 인정과 보상을 요구하며 벌인 싸움을 20년에 걸쳐 찍은 3부 구성의 다큐멘터리다. 1부는 국가가 환자 인정 기준으로 삼아 온 '말초신경설'(증상을 말초신경 손상으로 보는 학설)이 가와카미 재판에서 부정되고 중추신경설이 새로 채택됐지만, 이를 입증한 구마모토대학 의학부 교수는 고립되고 국가와 현은 판결을 무시한 채 환자를 인정하지 않는 방침을 이어 가는 모습을 비춘다. 2부는 소아성 미나마타병 환자인 이코마 히데오 부부가 차별을 이겨 온 길과 태아성 환자들과 가족의 갈등, 90세가 되어서도 국가를 상대로 새 재판에 나선 가와카미 도시유키의 싸움을 따라간다.

3부는 태아성 환자 사카모토 시노부의 외로움과, 환자운동의 최전선에 서면서도 생활인으로서 흔들리는 이코마, 오랜 싸움 끝에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에서 이긴 미조구치 아키오의 이야기를 담고, 미나마타에서 '용서'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미나마타병에 관한 저서를 많이 남긴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가 말한 '모다에가미(悶え神, 남의 괴로움을 함께 괴로워하는 사람)'도 이 3부의 주제다. 이 영화는 2021년 <키네마 준보> 문화영화(다큐멘터리) 부문 1위와 일본영화 5위에 올랐고, 마이니치영화콩쿠르 다큐멘터리 영화상도 받았다.

하라는 감독 외에 교육자로도 활동했다. 1995년 8월에는 야마구치현 하기의 세계영화예술제에서 영화 사설 강좌 '시네마 숙'의 제1회 강좌를 열었다. 이 첫 강좌의 주요 초대 손님은 후카사쿠 긴지 감독과 배우 오기노메 게이코였고, 1996년 도쿄 강좌에는 이마무라도 초대 손님으로 나왔다. 강좌는 이후에도 하라가 일본 영화감독들과 대담하는 방식으로 이어졌고, 2016년부터는 니코니코 생방송으로, 2017년부터는 유튜브 생중계로도 진행됐다.

1997년부터는 이마무라가 세운 일본영화학교 영상저널리즘과에서 특별 고문으로 일했다. 하라는 이 학교에서 2001년 전임강사(3학년 담임), 2004년 부교장을 맡았고, 2003년에는 오사카전기통신대학 교수가 됐으며, 2006년부터 2018년도까지 오사카예술대학 영상학과 교수를 지냈다.

해외에서도 하라의 작품이 잇따라 소개됐다. 2019년에는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하라의 전작이 상영됐고, 2024년 10월에는 이탈리아 라벤나 나이트메어영화제에서 공로상 격인 '골든 링 스페셜 에디션'을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받았다. 이 영화제는 하라의 작품 네 편을 특집 상영하고 마스터 클래스도 열었다. 2025년 4월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하라의 작품 네 편이 상영됐다.

하라는 2024년 12월 <미나마타 만다라> 후속 <미나마타 만다라 파트2>(가제)의 제작비 모금을 시작했다. 이듬해 넘어져 만성 경막하혈종이 생겼고, 올해 2월 14일 수술을 받은 뒤 한 달 반가량 입원해 3월 31일 퇴원했다. 당시 회복률이 약 80%라 밝혔던 하라는 투병과 재활을 이어 가는 중에도 현장을 놓지 않고 <미나마타 만다라 파트2> 제작을 계속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7년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센난 석면 피해배상 소송>이 소개돼 비프 메세나상을 받았다. 2018년에는 제18회 인디다큐페스티발이 <굿바이 CP>, <가자 가자, 신군>, <센난 석면 피해배상 소송>으로 하라 특별전을 열었고, 제15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는 하라가 심사위원장을 맡아 <극사적 에로스>, <가자 가자, 신군>, <센난 석면 피해배상 소송> 세 편이 일본영화 특별전 부문에서 상영됐다. 같은 해 6월 15일부터 24일까지는 서울아트시네마가 '하라 가즈오 특별전: 물러서지 않는 카메라'를 열어 <굿바이 CP>부터 <센난 석면 피해배상 소송>까지 여섯 편을 상영했고, 6월 16일에는 하라가 직접 극장을 찾아 변성찬 영화평론가와 관객과의 대화를 했다.

2020년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미나마타 만다라>가 국내에 처음 상영됐고, 같은 해 제1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레이와 시대의 반란>이 상영됐다. 2023년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하라가 비프 메세나상 심사위원을 맡아 10월 9일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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