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률이 낮아졌다고 생활비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이미 오른 가격에 추가 부담이 쌓이는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는 뜻이다.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8%로 전달보다 0.1%포인트 낮아졌다. 그러나 올해 1~10월 누계 상승률은 2.7%로 정부의 연간 전망치 2.6%를 웃돈다.
월급이나 연금이 물가만큼 늘지 않으면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과 서비스가 줄어든다. 저축을 줄이거나 외식과 문화생활을 포기하는 식으로 지출을 맞춰야 한다. 식비와 교통비, 난방비처럼 줄이기 어려운 지출의 비중이 큰 가구일수록 선택지는 좁다.
평균 상승률 뒤에 가려진 품목별 격차도 봐야 한다. 10월 석유류 가격은 14.9%, 가공식품은 2.9% 올랐다. 기름값 상승은 주유소에서 끝나지 않는다. 화물 운송비와 제조업체의 에너지 비용을 높이고, 가공식품과 외식 가격에도 시차를 두고 영향을 줄 수 있다.
고물가는 이자 부담과도 연결된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도 2.8%에 이른다. 한국은행이 추가 긴축 가능성을 열어두는 배경이다. 물가가 0.1%포인트 더 오른다고 곧바로 기준금리가 같은 폭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물가 압력이 오래 남으면 긴축 기조를 거두기 어려워지고, 대출을 낀 가계와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도 길어질 수 있다.
물가를 잡는 과정의 비용도 살펴야 한다. 공급 부족과 수입 원가 상승에 따른 부담을 금리만으로 해결하려 하면 소비와 투자에 충격이 커질 수 있다. 정부가 공급과 유통의 병목을 풀고, 한은은 물가의 지속성과 성장·금융안정 여건을 함께 판단해야 한다.
정부는 김장철 농수산물 출하와 비축물량 방출 시기를 맞추고, 할인 지원이 실제 판매가격 인하로 이어지는지 점검해야 한다. 수입·유통 과정의 비용과 마진을 살펴 부당한 가격 인상을 막는 일도 필요하다. 원가가 내려갈 때 그 효과가 소비자가격까지 전달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가격 억제와 할인행사를 오래 유지하는 데도 재정이 든다. 지원 기간과 비용을 공개하고, 일률적인 지원보다 먹거리와 에너지 지출에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을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 생산과 유통의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소비자가격만 눌러서는 공급 위축이나 이후의 가격 급등을 부를 수 있다.
연간 물가 상승률 2.6%는 정부가 제시한 전망치다. 전망을 웃돌 가능성이 커졌다면 원인과 대응 경로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동시에 주요 생필품 가격과 취약 가구의 실제 지출 부담이 얼마나 줄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물가 안정은 국민의 월급과 연금이 제값을 하도록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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