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미학] 복숭아도 따고 파스타도 만들고… 세종에선 먹는 게 여행이다

  • 지역 농산물로 직접 요리 '세종의 식탁'… 농장·음식점·장터가 여행 코스로

  • 참가 경쟁률 평균 5대 1·만족도 4.82점… 회차마다 달라지는 제철 미식체험

  • 1박 2일 '세종오식'도 2년 연속 매진… 다양한 먹거리로 체류·지역 소비 늘려

지난달 31일 세종시 싱싱장터에서 열린 세종의 식탁 클래스 참가자들이 후무스 만들기를 마친 후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지난달 31일 세종시 싱싱문화관에서 열린 '세종의 식탁' 클래스 참가자들이 '나만의 플래터 만들기' 프로그램을 마친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세종시 싱싱문화관. 미식체험 프로그램 '세종의 식탁' 참가자들이 조리대 앞에 모였다. 이날 배울 음식은 병아리콩으로 만드는 후무스와 크림치즈를 활용한 요리다. 강사가 재료 손질법을 설명하고 직접 시연하자 참가자들은 어떤 재료를 곁들이면 좋을지, 집에서는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지 질문을 이어갔다.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설명은 기초부터 시작됐다.

실습에 들어가자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자연스럽게 역할을 분담했다. 누군가는 재료를 다듬고 다른 참가자는 맛의 조합을 고민했다. 서로 의견을 보태는 동안 접시가 하나둘 완성됐다. 요리에 서툰 참가자들이 만든 음식도 제법 먹음직스러웠다.

'세종의 식탁'은 세종시문화관광재단이 지역 먹거리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제철 농산물을 직접 다루고 농가와 음식점, 장터를 찾아가도록 구성했다. 음식에 대한 관심이 세종의 다른 장소를 방문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려는 취지다.

여행지에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일은 익숙하다. 하지만 음식이 자란 밭을 찾아가고 생산자에게 이야기를 듣는 여행은 다르다. 무엇을 먹었는지뿐 아니라 그 음식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여행의 기억으로 남는다. 세종은 조치원 복숭아와 제철 농산물, 지역 음식점 등 이미 갖추고 있는 먹거리에서 관광의 소재를 찾았다.

지난달 31일 세종시 싱싱장터에서 열린 세종의 식탁 클래스 현장 참가자들이 앞으로 나와 강사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사진기수정 기자
지난달 31일 세종시 싱싱문화관에서 열린 '세종의 식탁' 클래스 현장. 참가자들이 강사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사진=기수정 기자]


◆ 복숭아밭부터 동네 식당까지

세종 하면 정부청사와 계획도시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도심 밖에는 논밭과 과수원이 있고, 조치원 복숭아를 비롯한 농산물이 생산된다. 전통시장과 로컬푸드 직거래 장터에서는 지역에서 기른 먹거리를 만날 수 있다.

'세종의 식탁'은 이들 자원을 활용한 당일형 미식체험이다. 해마다 5~6회가량 운영하며 계절에 맞춰 메뉴와 체험 장소를 바꾼다. 지난해 참가했던 사람이 다시 신청하기도 한다. 올해는 '여름 이야기' '맛 이야기' '요리 이야기' 등 세 가지 주제로 꾸렸다.

'여름 이야기'는 조치원 복숭아 농장에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생산자에게 복숭아 고르는 법과 수확 요령을 배우고 직접 열매를 땄다. 품종별 맛을 비교하고 수확한 복숭아로 디저트도 만들었다.

당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박상정씨(40대·수도권 거주)는 "세종에 복숭아가 유명한지 몰랐다"며 "정부를 위한 도시라는 인식이 강해 여행이나 특산물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번 기회에 새로운 매력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마트에서 쉽게 구입하는 과일이지만 농부에게 설명을 듣고 직접 수확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품종에 따라 맛이 어떻게 다른지, 수확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알게 된다. 복숭아를 맛보러 왔다가 농촌의 풍경과 생산자의 일상까지 접하는 것이다.

'맛 이야기'는 지역 음식점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은 식당을 열게 된 사연과 주요 식재료에 관한 설명을 듣고 생면 파스타와 뇨키를 직접 만들었다. 손님일 때는 완성된 음식만 받지만 조리 과정에 참여하면 그 집이 어떤 재료를 쓰고 어떻게 맛을 내는지 살펴볼 수 있다. 평소 즐겨 찾던 식당도 주방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달리 보인다.

세종의 식탁은 회차마다 체험 장소와 메뉴를 바꿔 지역 먹거리를 여러 방식으로 접하도록 했다. 농장에서 수확하고 음식점에서 조리법을 배우며 장터에서 구입한 식재료로 자신만의 음식을 만든다. 특정 메뉴 하나를 배우는 요리 수업과 달리 생산자와 음식점 운영자, 지역 상인까지 관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세종의 특성도 이러한 프로그램에 힘을 보탠다. 별도의 대규모 관광시설을 조성하지 않더라도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시장과 식당, 농장을 여행 코스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지난달 31일 세종시 싱싱장터에서 열린 세종의 식탁 클래스 현장 참가자들이 앞으로 나와 강사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사진기수정 기자
지난달 31일 세종시 싱싱문화관에서 열린 '세종의 식탁' 클래스 현장. 참가자들이 강사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사진=기수정 기자]


◆ 같은 재료, 다른 접시

지난달 31일 열린 ‘요리이야기’는 대학생과 20~30대 1인 가구를 대상으로 세종 로컬 식재료를 활용해 일상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요리를 통해 세종의 먹거리를 친근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지난달 31일 열린 '요리 이야기' 수업은 생활요리와 케이터링 등을 진행해 온 '제자리' 정은지 대표가 맡았다. 후무스와 크림치즈 만드는 법부터 재료 손질과 조합 요령까지 직접 시연했다. 정해진 레시피를 외우기보다 재료의 특징을 이해하고 각자 입맛에 맞게 활용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참가자들은 실습 중에도 질문을 이어갔다. 어떤 재료를 더해야 맛이 어울릴지, 서로 다른 식재료를 어떻게 조합하면 좋을지 의견을 나눴다. 같은 설명을 들었지만 팀마다 재료를 다루는 방식과 완성된 음식의 모양은 조금씩 달랐다.

정 대표는 싱싱장터와 요리 공간이 가까이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싱싱장터에서 직접 식재료를 구입하고 바로 옆에서 요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참가자들이 요리를 어려워하면서도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사용한 식재료는 세종로컬푸드 싱싱장터와 세종전통시장 등에서 구입했다. 싱싱문화관 바로 옆에는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싱싱장터가 있다. 참가자들은 수업에서 다룬 식재료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알게 되고, 배운 요리를 집에서도 만들어볼 수 있다.

특별한 조리 기술이 없어도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지역 농산물을 맛보는 데서 끝내지 않고 일상에서 활용하는 방법까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세종시 싱싱장터에서 열린 세종의 식탁 클래스 현장 참가자들이 나만의 후무스를 만들고 있다사진기수정 기자
지난달 31일 세종시 싱싱문화관에서 열린 '세종의 식탁' 클래스 현장. 참가자들이 '나만의 플래터 만들기'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 다섯 끼를 따라 하룻밤 더

세종시문화관광재단은 당일 체험과 별도로 1박 2일 미식여행 '세종오식'도 운영하고 있다. 지역 음식점과 관광명소, 시장, 숙박을 묶은 상품이다. 올해는 여행자 관심사에 따라 'NEW' 'LIGHT' 'HELLO' 등 세 가지 테마로 확대했다.

육류 중심인 'NEW'는 석갈비 등 지역 음식을 맛보고 국립세종수목원이나 고복저수지, 세종호수공원 등을 둘러본다. 이튿날에는 세종전통시장 미션투어와 조치원 골목투어가 이어진다.

건강한 먹거리를 내세운 'LIGHT'는 콩정식과 브런치, 세종호수공원 피크닉에 싱싱장터 장보기를 더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HELLO'는 보리밥과 쌈밥 등 한식 체험, 개성주악 만들기, 전통시장 방문 등으로 구성했다.

세종의 식탁이 지역 식재료를 직접 다뤄보는 프로그램이라면 세종오식은 음식을 중심으로 여행 일정을 넓힌 상품이다. 식당 한 곳에 들렀다 돌아가는 대신 시장과 골목을 걷고 관광명소를 찾으며 하룻밤을 묵도록 했다. 관광객이 오래 머물수록 음식점뿐 아니라 시장과 숙박시설, 체험업체 등을 이용할 기회도 많아진다.

참여 수요도 높다. 재단에 따르면 '세종의 식탁'에 대한 평균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82점, 평균 참가 경쟁률은 5대 1이다. '세종오식'은 지난해 네 차례에 이어 올해 네 차례 계획된 프로그램도 모두 매진됐다. 지역 음식을 활용한 체험과 숙박형 관광상품이 모두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세종시 싱싱장터에서 열린 세종의 식탁 클래스 현장 후무스를 만들어보이는 강사 사진기수정 기자
지난달 31일 세종시 싱싱문화관에서 열린 '세종의 식탁' 클래스 현장. 강사가 후무스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 예약금 2만원, 지역 상점으로

재단은 미식체험 참가자의 소비가 지역 상권으로 이어지도록 운영 방식에도 신경을 썼다. '세종의 식탁' 참가자는 온라인 신청과 추첨을 거쳐 선정되며 예약금 2만원을 낸다. 실제 수업에 참여하면 예약금 전액을 세종 지역화폐 '여민전'으로 돌려받는다. 체험을 마친 뒤 지역 음식점이나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참가자 선정 과정에서도 세종 지역 음식점 이용 영수증을 제출한 사람과 다른 시도 거주자를 우대한다. 외지 관광객을 유치하면서 지역 음식점 이용도 장려하려는 취지다. 계절마다 메뉴와 체험 장소를 달리하는 운영 방식은 재참여를 이끄는 요인으로 꼽힌다.

재단은 온라인 여행플랫폼을 통한 판매 채널 확대와 테마별 홍보 콘텐츠 제작, 참가자 후기 활용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역 농가와 음식점의 참여를 넓히고 다양한 체험을 마련하는 일도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세종의 미식관광은 지역에 이미 있는 자원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조치원 복숭아밭과 동네 음식점, 로컬푸드 장터처럼 주민들에게 익숙한 장소가 여행자에게는 새로운 방문지가 된다. 당일형 요리 체험과 숙박형 미식여행을 함께 운영해 여행 일정과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세종을 찾는 이유가 반드시 유명 관광명소일 필요는 없다. 제철 복숭아를 따고, 동네 식당에서 요리를 배우고, 장터에서 식재료를 고르는 일도 여행이 된다. 지역 내 평범한 먹거리를 일부러 찾아갈 만한 여행상품으로 만들고, 그 발길이 골목과 시장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 행정중심복합도시, 이른바 '행복도시' 세종이 먹는 행복까지 더하며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세종시 싱싱장터에서 열린 세종의 식탁 참가자들이 만든 나만의 후무스 결과물 사진기수정 기자
지난달 31일 세종시 싱싱문화관에서 열린 '세종의 식탁' 참가자들이 만든 결과물. [사진=기수정 기자]
지난달 31일 세종시 싱싱장터에서 열린 세종의 식탁 클래스 현장 사진기수정 기자
지난달 31일 세종시 싱싱문화관에서 열린 '세종의 식탁' 클래스 현장. [사진=기수정 기자]
세종시문화관광재단은 7월 25일 8월 8일과 9일 피치스 고개농원에서 여름 제철 특산물인 복숭아 수확 체험과 디저트 만들기를 진행했다 사진세종시문화관광재단
세종시문화관광재단은 7월 25일, 8월 8일과 9일 피치스 고개농원에서 여름 제철 특산물인 복숭아 수확 체험과 디저트 만들기를 진행했다. [사진=세종시문화관광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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