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닥터X: 하얀 마피아의 시대'가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뒤 논란에 휩싸였다. 피해자들의 아픔을 조명했다는 호평이 나오는 한편, 드라마 방영 중단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까지 등장했다. 제작 책임자가 SNS에 남긴 "NO FEAR" 문구도 논쟁에 불을 지폈다.
논란의 중심에는 지난 24일 방송된 6회가 있다. 극 중 환자 오상범(하성광 분)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은 뒤 40여년간 후유증에 시달려온 인물이다. 당시 형을 잃었다는 죄책감까지 안고 살아간다. 주인공 계수정(김지원 분)은 위험 부담 때문에 다른 의료진이 주저하는 수술에 나선다. 가상의 전직 대통령 지두석도 등장해 국가권력과 그로 인해 상처받은 개인의 삶을 대비시킨다.
긍정적인 평가가 나올 만한 부분도 있다. 5·18의 비극이 사건 당시의 희생에 그치지 않고 생존자의 몸과 삶에 오랫동안 상처를 남겼다는 사실을 대중적인 의학 드라마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병원을 배경으로 환자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작품에서 수십 년간 후유증에 시달린 피해자를 다루는 게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비판을 단순히 역사적 소재에 대한 거부감으로 치부할 수도 없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오래전부터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소재로 삼아왔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5·18 민주화운동을, '서울의 봄'은 12·12 군사반란을 다뤘다. 현빈이 주연을 맡은 디즈니+ '메이드 인 코리아2' 역시 한국 현대사의 정치적 격변을 극의 중요한 배경으로 활용했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이라고 모두 호평만 받진 않았다. 최근 영화 '암살자(들)'은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가 역사 왜곡 논란에 직면했다. 역사적 사실과 창작적 상상력 사이의 경계가 쟁점이었다.
이들 사례가 보여주는 건 역사적 사건을 다뤘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에 대한 평가가 결정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관점으로 사건에 접근했고, 그것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이야기 속에 담아냈는지가 관건이다.
일본 인기 의학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닥터X'는 뛰어난 수술 실력을 지닌 의사가 병원 내 권력과 부조리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한국판이 국내 현실에 맞춰 설정과 사건을 각색하는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다만 5·18처럼 한국 현대사에서 무거운 의미를 지닌 사건을 끌어올 때는 그 선택을 뒷받침할 서사적 설득력이 요구된다.
6회는 5·18 피해자와 가상의 전직 대통령을 한 회차에 배치했다. 시청자는 묻게 된다. 왜 하필 이 작품에서, 이 시점에, 이 방식으로 5·18을 다뤄야 했는지. 피해자의 고통은 한 인물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 위해 등장했을까, 아니면 메시지를 심으려는 장치였을까.
방송 이후 등장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이런 논란이 온라인상 갑론을박에 머물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원인은 5·18 관련 내용이 기존 이야기와 무관하게 삽입됐다며 제작 과정 검증과 방영 중단을 요구했다.
제작 책임자인 이옥규 스튜디오S CP는 방송 당일 SNS에 "NO FEAR"라는 문구를 게시했다. 처음부터 아무런 논란도 예상하지 않았고, 자신의 선택에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면 굳이 두려움이 없다고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두려움이 없다는 말은 때로 두려워할 만한 무언가를 의식하고 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제작진이 실제로 어떤 우려를 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역사적 비극을 의학 드라마의 서사에 끌어들이는 선택이 얼마나 민감한지, 그에 따른 반발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인식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두려움을 느꼈는지가 아니라, 그럼에도 왜 이러한 선택을 했고 시청자를 설득할 만큼 고민했는지다.
작품은 종종 정치의 도구가 되고, 진영 대결의 전장이 된다. 창작자가 의도하지 않은 메시지조차 시청자들의 서로 다른 시선 속에서 정치적 의미를 얻는다. 작품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보다 어느 편에 서 있는가가 중요해지는 순간, 작품의 가치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창작자는 메시지를 지키면서도 작품이 이념에 잠식되지 않도록 섬세한 균형 감각을 발휘해야 한다. 두려움 없는 창작보다 어려운 건, 두려워해야 할 걸 아는 창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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