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의 심리렌즈] '옵세션' 망가진 사랑인 걸 알면서도 왜 놓지 못할까?

  • 거절회피·회피형 애착·대상화로 본 소유와 집착의 심리

영화 옵세션 스틸컷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옵세션' 스틸컷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베어(마이클 존스턴)는 니키(인디 네버레티)를 오래도록 짝사랑했다. 니키도 자신을 좋아한다면 연인이 될 테고, 아니라면 거절당할 것이다.

두렵다. 친구 앞에서 고백을 연습하면서도 정작 니키 앞에서는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우연히 소원 하나를 들어준다는 '원 위시 윌로우'를 손에 넣는다.

소원을 빈다. 니키가 세상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베어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패턴이 눈에 들어온다. 불편한 감정이나 결과를 직접 마주하기보다 어떻게든 거리를 두려 하는 점이다.

애착이론에서는 애착회피가 높은 사람이 친밀감이나 갈등처럼 자신을 취약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감정을 억누르고 거리를 두는 방식을 '비활성화 전략'으로 설명한다.

베어는 니키를 원하면서도 거절당할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소원을 선택한다.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고 니키의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그 대답부터 정해버린 것이다. 물론 그 자신도 소원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후에도 비슷한 태도가 반복된다.

오래 키우던 고양이 샌디가 사고로 죽었을 때도 그렇다. 베어는 사체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처리한다. 상실을 충분히 슬퍼하기보다 일단 눈앞에서 치운다.

소원이 이뤄진 뒤 니키는 완전히 달라진다.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베어를 사랑하도록 강제된 니키는 잠든 그를 밤새 바라보고, 출근하지 못하도록 문을 막는다. 베어 곁에서 떨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관계가 조금만 흔들려도 극도로 불안해한다.

니키의 행동은 불안형 애착에서 말하는 '과활성화 전략'의 극단처럼 보인다. 상대가 멀어질 가능성에 예민해지고, 불안할수록 더 강하게 매달리는 방식이다.

 
영화 옵세션 스틸컷 사진IMDB
영화 '옵세션' 스틸컷 [사진=IMDB]

반면 베어는 여전히 뒤로 물러난다. 니키가 그의 고양이로 샌드위치를 만들었을 때조차  맞서지 못한다. 니키가 욕실에 들어간 뒤 문을 사이에 두고서야 겨우 화를 낸다. 이미 상식 밖 행동을 보인 니키가 두려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고백할 때부터 갈등을 겪을 때까지, 심지어 친구들과의 파티에 혼자 가겠다는 말을 할때조차 정면으로 부딪치지 못하는 모습은 흥미롭다. 베어는 늘 한발 물러선 자리에서야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옵세션'은 얼핏 회피형 남자와 불안형 여자의 파국적 연애담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두 불안정 애착의 전형을 빌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간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가능성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면, 그것도 사랑일까.

처음 베어는 행복하다. 오랫동안 원했던 일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니키와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알아가며 사랑을 만든 게 아니다. 그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나를 사랑하는 니키'라는 완제품을 받아들었다.

 
영화 옵세션 스틸컷 사진IMDB
영화 '옵세션' 스틸컷 [사진=IMDB]

완제품에 하자가 생기자 베어는 '원 위시 윌로우' 고객센터에 해결책을 묻는다. 니키를 '고칠' 수 없냐고. 니키를 원래대로 돌려달라는 게 아니다. 상대의 마음은 갖고 싶어하면서, 그 마음을 가진 상대가 하나의 독립된 인간이라는 사실은 성가시다.

자신을 사랑하는 니키는 그대로 두되, 집착과 폭력적 성향만 제거하고 싶은 것이다. 베어가 원한 건 상호적인 관계라기보다 자신에게 편리한 상태로 존재하는 니키다.

베어가 니키를 원래대로 돌려놓지 못하는 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렇게 하는 순간 처음부터 피해온 질문과 다시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니키가 자유로운 상태에서도 날 선택할까. 베어는 애초에 그 답을 듣는 것이 두려워 소원을 빌었다. 그런데 이제 소원을 취소하는 일은 자신이 편법으로 없애버린 '거절당할 가능성'을 다시 세상에 들여놓는 일이다. 베어가 끝까지 놓지 못한 건 니키만이 아니라 니키에게 사랑받는 자신, 정확히는 거절당하지 않는 자신이었다.

영화 초반 니키는 자신이 쓰고 싶은 작품을 '로맨스'가 아니라 '러브 스토리'라고 구분한다. 베어는 둘이 같은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베어에게 사랑은 그만큼 단순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면 사랑은 완성된다. 그래서 소원도 단순하다. 나를 가장 사랑하게 해주세요.

사람을 하나의 독립된 주체보다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대상화'와 닮아 있다. 상대에게 무엇을 느끼는지보다 '내게 어떤 존재인가'가 중요해지는 순간, 그 사람의 자율성과 고통은 뒷자리로 밀려날 수 있다.

정체성을 빼앗긴 진짜 니키는 잠시 모습을 드러내 베어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애원한다. 죽는 편이 나을 만큼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베어는 "나와 함께 있는 게 뭐가 그렇게 나쁘냐"고 묻는다. 니키의 절규 앞에서도 니키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가 아니라, 자신이 왜 거절당해야 하는지가 궁금하다.

그녀가 겪는 고통에는 자신의 욕망이 들어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려면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행동이 한 사람의 자유를 빼앗았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베어는 계속 돌아간다. 친구들이 이상하다고 경고해도 '우리는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니키가 무서워졌는데도 니키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간다.

파국이 걷잡을 수 없게 된 뒤 이안에게 도움을 청하면서도 기묘한 말을 한다. 자신의 소원을 되돌려주면 그다음에는 이안이 니키와 함께하면 된다고. 니키를 누구와 함께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가졌다가 이안에게 넘겨줄 수 있는 소유물처럼 취급한다.

 
영화 옵세션 스틸컷 사진IMDB
영화 '옵세션' 스틸컷 [사진=IMDB]

쇼펜하우어식 욕망의 허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을 가져보니 별것 아니었다'는 권태에서 온다면, 베어의 허무는 조금 다르다.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는 깨달음이다.

니키를 원했다고 생각했지만 소원으로 만들어낸 건 '나를 사랑하는 니키'였다.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상태로 존재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느끼고, 내가 원하는 상태로 존재해야 한다. 이때부터 사랑은 통제와 닮아간다.

'옵세션'에서 니키가 보여주는 공포는 원초적이다. 밤새 베어를 바라보고, 문을 막고, 사람을 죽인다. 무엇을 할지 몰라서 무섭다.

베어가 보여주는 공포는 무엇을 하는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무섭다. 사랑받고 싶고, 거절당하기 싫고, 어렵게 얻었다고 생각한 관계를 놓치고 싶지 않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두렵고, 조금만 손보면 지금 가진 것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만큼 극단적이지 않을 뿐, 흔히 볼 법한 마음이다.
 
영화 옵세션 스틸컷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옵세션' 스틸컷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친밀한 관계에는 불확실성이 따라온다. 상대는 내 머릿속 각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확답을 받고 싶고, 마음을 확인하고 싶고, 때론 행동까지 바꾸고 싶어진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관계를 확실하게 만들려는 순간 관계는 가장 쉽게 망가질 수 있다. 확실성을 얻기 위해 상대의 자유를 줄이기 시작하면 사랑은 더이상 두 사람 사이 만들어지는 감정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상태가 된다. 베어가 니키의 마음을 자기 뜻대로 만들려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니키가 다시 베어의 삶을 자기 뜻대로 묶어두려 했던 것처럼.

사랑은 상대를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나와 다른 욕망과 선택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하는 일이다. 그 사실을 잊는 순간 사랑과 집착의 경계는 쉽게 무너진다고 '옵세션'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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